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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새판짜기’ Vs. ‘쾌도난마 한국경제’.

Written by leejeonghwan

November 17, 2007

삼성 비자금 의혹의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재벌개혁 논쟁 또는 사회적 대타협 논쟁이 재연될 전망이다. 재벌개혁을 주장해 온 경제개혁연대(참여연대)와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해온 대안연대 학자들의 의견 대립이 삼성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정면충돌하는 모양새다. 논쟁의 화두는 간단하다. “이런 삼성과 사회적 대타협을 할 수 있느냐”는 것.


김상조 한성대 교수와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홍종학 경원대 교수 등이 최근 출간한 <한국경제 새판짜기>라는 책이 논쟁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에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교수들이다. 이들의 대화를 한겨레 곽정수 기자가 정리해 엮은 책이다.

논쟁의 다른 한 축에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와 정승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의 대화를 엮은 <쾌도난마 한국경제>라는 책이 있다. 2005년에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던 이 책은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정리했다. 대안연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주주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지속적으로 비판해왔다.

김상조 교수와 장하준 교수는 재벌개혁의 방향을 놓고 거세게 충돌한다. 장하준 교수는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장 교수는 재벌의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하는 쪽이다. 재벌이 한국 경제의 성장을 주도해 왔고 재벌과 주주자본주의가 대척점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재벌을 깨면 결국 주주들, 특히 외국 투기자본만 이익을 보게 된다는 이야기다. 장 교수는 “재벌을 깨서 우리가 얻는 것이 뭐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재벌의 과잉투자가 문제라고 하지만 오히려 한국은 지난 50년 간 과잉투자 때문에 성장해 왔다는 게 장 교수의 주장이다. 삼성전자나 포스코가 대표적인 사례다. 반도체나 철강, 자동차, 조선 등 한국 경제의 전략 산업들은 재벌의 선도적인 투자 덕분에 가능했다. 그런데 단기 실적을 좇는 신자유주의는 기업의 이익을 주주들에게 빼돌린다. 설비투자보다는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늘리도록 유인한다. 일자리가 줄어들고 장기 성장성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참여연대가 주도했던 소액주주 운동에 대해서도 장 교수의 입장은 다르다. 장 교수는 “소액주주 운동이 주주자본주의를 확산시킨다”고 공격한다.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와 대주주가 결탁하게 되고 단기 이익을 좇아 성장의 발목을 잡게 된다는 이야기다. 장 교수는 “노동운동의 주적은 재벌이 아니라 초국적 금융자본과 시장 근본주의가 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 교수가 주주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재벌과의 타협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국에서 소액주주운동과 주주자본주의는 재벌의 경영권을 공격한다. 주주자본주의가 국민경제와 재벌의 공동의 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장 교수는 주주자본주의로부터 재벌의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재벌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자고 주장한다. 내줄 건 내주고 받을 건 받자는 이야기다. 지속적인 설비투자와 고용안정, 일자리 창출 등이 재벌의 사회적 책임으로 논의될 수 있다.

“스웨덴에 사회적 대타협의 좋은 사례가 있어요. 1938년 잘츠요바덴 협약에서 사회주의 노동조합들이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포기하는 대신 자본 측에서는 소득세를 대폭 올리는 데 동의한 겁니다. (우리도) 노사정에 속하는 분들이 자기 집단의 입장 뿐만 아니라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넓게 보면서 타협하고자 하는 마인드를 갖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장하준, <쾌도난마 한국경제> 가운데)

그러나 김상조 교수 등은 <한국경제 새판짜기>에서 장 교수의 주장을 정면 반박한다.

“대안연대 주장에 내재한 위험성은 위험의 공유가 갖는 장점만 강조했지,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폐해를 간과하고 있다는 겁니다. 대안연대는 개별 경제주체 간의 단기적 이해충돌이 벌어지는 현실을 은폐하고 정부가 이를 권위주의적으로 조정하던 단계가 지났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한국경제 새판짜기> 가운데)

홍종학 교수도 “재벌에게 당근을 준다면 그에 걸맞은 통제수단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스웨덴 모델이라고 하는 것도 대기업 체제를 인정하는 대신 무거운 세금을 물리고 경영 투명성을 보장하는 체제가 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는 이야기다. 홍 교수는 “국내 대기업들이 이를 받아들이겠느냐”고 반문한다. 스웨덴은 노조 조직률이 85%나 됐지만 우리나라는 10%도 채 안 된다. 애초에 협상이 되겠느냐는 이야기다.

최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도 장 교수를 비판했다.

“스웨덴 재벌하고 한국 재벌이 같으냐는 겁니다. 스웨덴은 입헌군주국이고 우리나라는 봉건군주국이에요. 재벌 체제가 완전히 다른데 같다고 하고. 그리고 그나마도 스웨덴이 전 세계에서 유일한 겁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재벌 해체하자고 한다는데 해체할 힘이 있습니까. 해체 안 됩니다, 결코. 재벌 해체한다는 게 기업군을 해체한다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차원의 문제예요.”

홍종학 교수는 설비투자 부진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르다.

“불행하게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투자 규모를 나누어 놓은 통계가 거의 없어요. (…) 대기업 투자는 엄청나게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산업은행 자료를 보면 IT 산업 같은 경우는 2003년도 54.7%, 2004년도에는 72.8%까지 증가했습니다. (…)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했을 때 제조 대기업의 경우 설비투자가 20%, 30%씩 증가했습니다. 오히려 투자가 증가했기 때문에 2005년 이후에는 상대적으로 대기업 투자가 줄어든 겁니다.” (홍종학, <한국경제 새판짜기> 가운데)

주주자본주의 때문에 설비투자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장 교수의 주장이 틀렸다는 이야기다.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맞는다면 주주자본주의에 가장 근접했다고 하는 미국기업들은 모두 단기 실적주의에 빠져 투자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 기업은 갈수록 첨단산업이나 새로운 기술개발에서 뒤쳐져야 하는데, 실제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 경제를 주주자본주의나 금융자본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이고요. (…) 현재 우리나라 재벌 대기업의 지배구조는 아마 총수자본주의라고 해야 할 텐데요, 이를 개혁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 권리의 강화와 경영권 방어 장치 약화는 개혁의 지렛대로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를 두고 반드시 주주자본주의를 지향한 것이라고 볼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유종일, <한국경제 새판짜기> 가운데)

<한국경제 새판짜기>와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차이는 주주자본주의의 인식에서부터 비롯한다. <새판짜기>가 소액주주 권리 강화를 재벌개혁의 지렛대로 보고 있는 반면, <쾌도난마>는 주주자본주의를 한국경제의 당면 과제로 인식한다. <쾌도난마>가 주주자본주의의 결과로 진행되고 있는 저투자 저성장의 대안으로 재벌과의 타협을 주장하는 반면, <새판짜기>는 그런 타협은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고 재벌중심의 발전모델 역시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이다.

분명한 것은 이번 삼성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국내 최대의 기업집단인 삼성과 이건희 회장 일가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삼성은 이 회장 일가의 사유물이 아니다. <새판짜기>와 <쾌도난마>가 안고 있는 고민은 이런 맥락에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삼성을 개혁하되 사회적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그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재벌과 노동계, 정부가 타협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보다 발전적인 기업집단의 모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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