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이케아 이야기.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20, 2007

“스웨덴에서 온 상상초월 가구점.” 이케아가 1974년, 스웨덴을 벗어나 독일에 처음 진출했을 때 썼던 광고 문구다. 이케아는 “우리와 함께 하면 모두 젊음”이라거나 “이케아보다 싼 것은 가만히 서있는 것뿐”이라거나 “밝은 나무로 연출한 화려함”이라는 등의 참신하고도 도발적인 광고 문구로 눈길을 끌었다.

이케아는 창업자인 잉바르 캄프라드와 그의 고향 아군나리드의 머리글자를 모아 만든 말이다. 캄프라드가 이케아라는 이름으로 처음 통신판매 사업을 시작한 때는 그가 17세 되던 1943년. 운송 도중 파손을 막기 위해 탁자의 다리를 떼어내 따로 포장해 배송한 것이 이케아 조립식 가구의 시작이었다.

물론 조립식 가구를 만든 것이 이케아가 최초는 아니었다. 그러나 캄프라드는 조립식 가구가 제조 비용은 물론이고 운송 비용까지 줄이는 최선의 대안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캄프라드의 실용적인 아이디어는 평등주의를 추구하는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 모델과도 잘 맞아 떨어졌다.

권위적인 떡갈나무 책상에 대한 반항.

이케아에서는 고객들이 가구 재료를 사서 직접 조립해야 한다. 캄프라드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고객을 왕으로 대접하는 건 상당한 비용이 드는 일이다. 화려한 궁궐을 꾸미는데 드는 비용은 결국 고객들이 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고객을 왕으로 대접하지 않으려고 한다. 고객에게 직접 일을 시키려고 한다.”

1970년대는 완전 고용의 시대가 저물고 실업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던 무렵이었다. 석유파동까지 겹쳐서 물가도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사람들은 묵직한 서랍이 달린 암갈색 떡갈나무 책상 보다는 밝고 가벼운 느낌의 이케아에 열광했다. 이케아는 실용적이었고 무엇보다도 가격이 훨씬 쌌다.

이케아는 부모 세대의 낡은 디자인을 싫증내기 시작한 젊은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무렵 이케아 카달로그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훌륭한 옛 귀족의 전통을 파괴했습니다. 우리는 떡갈나무 대신에 니스를 칠한 소나무를 씁니다. 친근하고 밝고 유쾌한 느낌을 준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독일의 슈피겔 기자 출신인 뤼디거 융블루트가 쓴 ‘이케아’라는 책에는 이런 이야기도 나온다. “대학 첫 학기를 맞으면서 갖는 과도한 기대와 실제 생활에서 겪는 실망은 이케아를 조립하면서 현실로 완성되곤 했다. 이케아는 제품의 생산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노동의 느낌을 줬다. 이케아 책상은 떡갈나무로 만든 거만하고 권위적인 책상에 대한 반항이었다.”

독일에 진출한 이후 이케아는 진보적 유행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거듭났다. 저렴한 가격 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다. 이케아의 가구는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는 집안의 다른 가구와 조화를 이룬다. 사람들은 이제 커튼을 바꾸는 것처럼 집안 분위기를 위해 가구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케아 가구는 소모품이다. 이케아의 가구를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람들은 흔히 자동차보다 식탁을 훨씬 오래 쓰지만 이케아는 이런 문화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이케아는 홈페이지에서 “당신의 가구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마라”고 제안한다. “아이들 역시 집을 스스로 꾸밀 수 있게 내버려 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케아는 ‘체인지 룸 제너레이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툭하면 집안을 통째로 바꾸는 세대를 말한다. 이케아는 오래 된 가구를 돌보는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것은 가구일 뿐이야. 바꿔버려.” 보수적인 영국에서는 이런 슬로건을 내걸기도 했다. “영국적인 것, 오 이제 제발 그만.”

이케아의 디자인을 이해하려면 스웨덴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위도가 높은 스웨덴에서는 겨울이면 오후 3시면 밤이 된다. 겨울은 길고 춥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집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머무는 공간이다. 이들이 밝고 따뜻한 느낌의 가구를 좋아하는 것은 바깥의 음울한 날씨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세기 초반 스웨덴에서는 정부 주도 아래 값이 싸면서도 예술적인 가구와 생활용품을 만드는 계획이 진행됐다. 예술가들이 대량생산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스웨덴 예술인 노조의 위원장, 그레고르 파울손은 “디자인은 그 디자인의 값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것이 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른바 민주적인 디자인의 개념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민주적인 디자인.

예테보리디자인대학의 마츠 테셀리우스 교수는 이케아를 이렇게 평가한다. “우리 스웨덴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생각하는 민족이다. 어느 상황에서나 경쾌한 에너지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민족이다. 이케아의 가구는 이런 스웨덴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다. 우리가 찾던 민주적인 디자인에 가장 부합하는 제품이다.”

흥미롭게도 캄프라드는 디자인에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디자인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 디자인이 가격을 낮추는 역할을 할 때뿐”이라는 비아냥이 나돌 정도였다. 수석 디자이너인 이터보른은 언젠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캄프라드는 디자인이란 개념을 뭔가 사치스럽고 과도한 것, 거의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이케아가 디자인를 완전히 배격한 것은 아니다. 이케아에는 이터보른을 비롯해 길리스 룬드그렌이나 넬스 감멜고르, 노보루 나카무라 등 훌륭한 디자이너가 많았다. 이들은 캄프라드와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스웨덴 전통 가구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다시 해석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재창조하는데 성공했다.

이케아의 디자이너들은 1770년대 구스타프 3세가 집권하던 무렵 유행했던 인테리어 양식을 불러왔다. 로코로 스타일이면서 금색 대신에 세련된 회색과 파랑, 노랑을 썼다. 고전적인 스칸디나비아 양식뿐만 아니라 미니멀리즘과 젊고 밝은 느낌의 실용적인 디자인, 이른바 스웨덴 라인을 결합했다.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 필립 스탁은 동료인 재스퍼 모리슨에 빗대어 “모리슨의 탁자를 사려면 수천 유로를 줘야 하지만 나 같으면 차라리 이케아로 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역시 가구 디자이너인 구닐라 알라르드는 “이케아에 가면 행복해진다”며 “많은 신선한 아이디어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케아의 가장 큰 매력은 저렴한 가격이지만 사람들이 가격 때문에 이케아를 찾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이케아에 빠져드는 건 따뜻한 삶의 느낌, 충만한 에너지 때문이다. 허세 부리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동시에 부드럽게 공간과 조화를 이루는 이케아만의 독특한 디자인에 사람들은 빠져든다.

이케아는 독특한 매장 운영방식으로도 유명하다. “배고픈 사람은 쇼핑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캄프라드의 철학에 따라 매장마다 스웨덴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레스토랑은 매장 개점 시간보다 30분 일찍 문을 연다. 캄프라드는 이케아 매장을 온 가족이 소풍하는 기분으로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케아의 성공에는 복지 시스템의 교과서로 자리 잡았던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와 스웨덴의 간판 스타인 아바의 세계적인 인기도 한 몫을 했다. 이케아는 해외에 진출할 때 철저하게 스웨덴 기업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캄프라드는 이케아를 ‘스웨덴식 디즈니랜드’로 만들겠다고 말하곤 했다.

성인들을 위한 레고.

이케아 매장에서는 점원들이 전혀 간섭을 하지 않는다. 전시된 가구에 앉아있거나 드러누워 보거나 마음껏 만져보고 흔들어 봐도 된다. 사람들은 굳이 점원에게 물어보기 보다는 직접 느릿느릿 둘러보고 비교하고 평가하기를 원한다. 융블루트는 이런 분위기를 “마치 고모네 집 같다”고 말한다. 심심하면 괜히 놀러가고 싶은 그런 고모네 집 말이다.

점원들이 거의 방해를 하지 않는 대신 가구를 고르고 카트에 싣고 계산대까지 싣고 가는 것도 모두 고객의 몫이다. 집에 가서 포장을 풀고 부품을 조립하고 나사를 조여 가구를 완성하는 것 역시 고객의 몫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많은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 이상의 재미를 준다. 이케아는 성인들을 위한 레고와 같다.

이케아의 카탈로그는 세계적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다. 지난해 8월에 찍은 카탈로그는 1억6천만부가 나갔다. 지금까지 인쇄된 카탈로그를 모두 모으면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아늑한 삶의 여유를 느끼게 해주는 이케아의 카탈로그는 그것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마냥 찬사를 늘어놓는 것은 곤란하다.

캄프라드의 할머니와 아버지는 나치 추종자였다. 세금을 피하기 위해 본사를 네덜란드로 옮겼고 40년 이상 스위스에 거주하기도 했다. 우파 정부가 들어서고 부유세를 폐지한 뒤에야 스웨덴으로 돌아왔다. 환경 오염 논란도 끊이지 않고 아동 착취 논란도 있었다. 저렴한 가격 이면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캄프라드는 자서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가장 저렴한 가격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고통도 아껴서는 안 될 것이다. 낮은 제품 가격은 항상 정당하며, 따라서 우리는 납품업자들이 이를 따르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엄격한 비용 제한이 없이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인도의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조합이라고요? 아니 경영진들은 받아들이지 않을걸요. 만약 감독관들이 공장으로 온다면 그들은 빠져나갈 거짓말들을 반복할 텐데요.”

르몽드디플로마티크는 “인터뷰를 한 여러 노동자들은 누가 인터뷰를 했는지 밝혀질 경우 해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다”고 보도했다.

“3개국의 모든 하청업체에서 여전히 행동강령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다. 가장 많이 위반된 부분은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권, 임금, 초과근무와 관련된 것이었다. 가장 심각한 곳에서는 노조가 없고 주당 7일 근무를 하고 최소임금제가 지켜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케아의 행동강령에 대해 아는 근로자도 없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케아는 세계 32개국에 202개의 점포를 두고 있다. 해마다 4억5천만명이 가구를 구매한다. 2005년 기준 이케아의 매출은 148억유로, 우리 돈으로 18조4353억원에 이른다. 캄프라드는 2005년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6위 부호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이케아는 아직 우리나라에 출점 계획은 없다.

이케아, 스웨덴 가구왕국의 상상초월 성공 스토리 / 뤼디거 융블루트 지음 / 배인섭 옮김 / 미래의창 펴냄.
이케아, 그 신화와 진실 / 엘렌 루이스 지음 / 이기홍 엮음 / 이마고 펴냄.

Related Articles

Related

“당신들은 전혀 래디컬하지 않다.”

대학 거부 선언한 김예슬이 한국 진보에게 던지는 뼈 아픈 충고.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지난달 10일 한 대학생이 학교를 그만뒀다. 그것만으로는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그가 던진 메시지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국가와 대학과 시장을 적으로 규정했다. "일단 대학은 졸업하라"는 주변의 충고를 거부하고 자퇴를 선택한 그는 "작지만 균열이 시작됐다"며 "그래,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보자"고 선전포고까지 했다. 한 젊은이의 감상과 치기로 보기에 그 울림은 컸다....

쌍용자동차, 사람 자르는 것으로 위기 넘어설 수 있나.

쌍용자동차가 지난 8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인력 7179명 가운데 2646명을 정리해고한다는 계획인데 당연히 노동조합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쌍용차 노조는 13~14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84%의 찬성으로 가결, 만약 정리해고가 시작되면 총파업으로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쌍용차 사태는 한치앞도 내다 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주요 언론이 보도한 바와 같이 쌍용차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따르면 다음달 6일 법원에 제출될 실사...

궤변으로 점철된 공병호의 장하준 비판.

국내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로 꼽히는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지난해 10월 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공 소장은 월간조선 2월호에 기고한 에서 "생각이 가난하면 삶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며 장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장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애초에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선진국들은 보호무역으로 성장했으면서 이제 와서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Join

Subscribe For Updates.

이정환닷컴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Top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