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뉴욕 3부작’을 읽다.

Written by leejeonghwan

February 11, 2004

이게 뭐야. 비슷한 줄거리의 하다가 뚝 끊긴 같은 세 이야기. 이런 이야기에 나는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다.

첫번째 이야기, 유리의 도시.

퀸은 잘못 걸린 전화를 받고 엉뚱하게 탐정 노릇을 하게 된다. 교도소에서 막 나와 자기 아들을 죽이려는 미친 아버지를 감시하는 일. 그런데 13년만에 세상에 나온 이 남자는 딱히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 날마다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맴돌뿐이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관찰하는 일은 꽤나 지루하고 막막하다. 어느날 퀸은 방심하고 있다가 이 남자를 놓친다. 불쌍한 아들은 두려움에 떨고 퀸은 그 집앞 골목에 숨어 미친 아버지를 기다린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겨 왔다. 그리고 실제로도 지난 5년 동안 적극적으로 혼자 있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고독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골목안에서의 삶이 계속되고 있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이제 그는 자기 자신 말고는 기댈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 또 그가 거기에 있던 동안 알아내게 된 모든 일 가운데 가장 믿어 의심치 않은 것도 바로 자기가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몇달 뒤 골목에서 나와 정신을 차렸을 때 미친 아버지는 이미 죽고 없었고 불쌍한 아들과 그의 부인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두번째 이야기, 유령들.

블루는 탐정이다. 화이트에게 돈을 받고 길 건너 아파트의 블랙을 감시한다. 블랙은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를 쓰고 있다. 가끔 ‘월든’을 읽기도 한다. 그런 블랙을 하루종일 지켜보는 블루는 고독하고 가끔 이런 막막한 상황이 지독하게 두렵다. 블루는 아무 의미도 없는 보고서를 쓴다. 어쩌다가 이런 일에 말려든걸까.

“이제 갑자기 그 보이는대로의 세계가 그에게서 멀어지고 블랙이라는 이름의 희미한 그림자 외에는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게 되자, 예전 같았으면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을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난감해지기 시작한다. 길 건너편에서 블랙을 염탐하는 일이 블루에게는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고, 그래서 자기가 그저 남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삶의 속도가 그처럼 극적으로 느려져 있어서 블루는 이제 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놓쳐 버렸던 것들까지도 볼 수 있다.”

견디다 못한 블루는 마침내 블랙을 직접 만나 말을 걸고 블랙도 탐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 놀랍게도 블랙은 누군가를 하루종일 감시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한다. 블루는 혼란에 빠진다.

블루는 다음날 블랙의 아파트로 건너가 블랙을 죽인다. 블랙은 말한다. “블루, 그거 모르나? 당신은 이 모든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어.”

세번째 이야기, 잠겨 있는 방.

친구의 부인이 편지를 보내왔다.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는데 죽은게 틀림없다. 그 사람이 쓴 원고가 잔뜩 쌓여 있는데 당신이 처분해달라. 그게 그 사람의 유언이었다.

펜쇼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나는 뛰어난 재능을 갖춘 그를 늘 질투했다. 나는 그의 원고를 가져다 출판했고 책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리고 부자가 된 그의 부인과 결혼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어딘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를 굳이 찾고 싶지는 않았지만 유명작가가 된 그의 전기를 쓰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된다.

“펜쇼가 거기 있었다. 내가 아무리 그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것은 예상치 못했던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그를 더는 찾지 않으려고 했더니 그가 더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펜쇼를 찾으려는게 아니라 달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펜쇼는 바로 내가 있는 곳에 있었다.”

결혼 생활은 결국 파탄이 났다. 결론은 여기서도 좀 엉뚱하다. 펜쇼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서 노트를 한권 건네준다. 그리고 끝이다.

Related Articles

Related

“당신들은 전혀 래디컬하지 않다.”

대학 거부 선언한 김예슬이 한국 진보에게 던지는 뼈 아픈 충고.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지난달 10일 한 대학생이 학교를 그만뒀다. 그것만으로는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그가 던진 메시지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국가와 대학과 시장을 적으로 규정했다. "일단 대학은 졸업하라"는 주변의 충고를 거부하고 자퇴를 선택한 그는 "작지만 균열이 시작됐다"며 "그래,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보자"고 선전포고까지 했다. 한 젊은이의 감상과 치기로 보기에 그 울림은 컸다....

쌍용자동차, 사람 자르는 것으로 위기 넘어설 수 있나.

쌍용자동차가 지난 8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인력 7179명 가운데 2646명을 정리해고한다는 계획인데 당연히 노동조합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쌍용차 노조는 13~14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84%의 찬성으로 가결, 만약 정리해고가 시작되면 총파업으로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쌍용차 사태는 한치앞도 내다 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주요 언론이 보도한 바와 같이 쌍용차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따르면 다음달 6일 법원에 제출될 실사...

궤변으로 점철된 공병호의 장하준 비판.

국내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로 꼽히는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지난해 10월 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공 소장은 월간조선 2월호에 기고한 에서 "생각이 가난하면 삶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며 장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장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애초에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선진국들은 보호무역으로 성장했으면서 이제 와서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Join

Subscribe For Updates.

이정환닷컴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