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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발견’을 읽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10, 2005

슈미트는 하루에 1.15달러를 받고 12.5톤의 무쇠를 운반한다. 그런 그에게 1.15달러를 받고 싶은가 아니면 1.85달러를 받고 싶은가 물어보자. 슈미트는 당연히 더 많이 받는 쪽을 선택한다. 회사는 몸값이 비싼 사람이 되려면 지시 받은대로 정확히 일하고 말대답을 하면 안된다는 조건을 내건다. 다음날부터 슈미트는 하루 47.5톤의 무쇠를 운반했다. 임금은 60% 늘어났는데 일은 400%나 늘어났다.

신기한 것은 다른 노동자들도 슈미트를 따라하기 시작했다는데 있다. 일자리를 잃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거나 슈미트처럼 몸값이 비싼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거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게 1910년대의 이른바 과학적 관리법이었다. 이 경영기법을 창안한 프레드릭 테일러는 “순종을 얻어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많은 임금을 지불해 그들의 사리사욕에 호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이 관리자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 때 힘의 균형은 노동자들에게 쏠린다. 테일러가 만든 과학적 관리법의 목표는 ‘누구나’ 효율적으로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있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더 많은 일을 더 빨리 해주기를 바란다. 힘의 균형은 관리자에게 옮겨가고 노동자들은 이제 관리자가 시키는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노동자들은 얼마든지 대체가능하고 당연히 아무런 힘이 없다.

돈만 조금 더 주고 일을 많이 시킨다는 테일러의 무식한 경영기법은 지금도 여전히 먹혀든다. 우리는 주변에서 슈미트와 같은 사례를 숱하게 본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은 돈을 벌면서도 그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건강까지 망친다. 그의 인생에 일은 거의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는 다만 돈 벌이에 중독돼 있을뿐이다. 돈을 벌기 위해 평생을 다 바치지만 정작 돈을 쓰는 방법을 모르거나 쓸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한 마을 전체가 실업 상태에 빠진 사례가 있었다. 주목할 부분은 실업이 늘어나자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고 정치활동이나 모임, 여가활동도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부쩍 늘어났는데 사람들은 그 시간을 쓸줄 몰랐다. 일이 사라지면서 여가도 사라졌다. 구속된 시간이 없으면 자유로운 시간도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늘 일에서 자유롭기를 꿈꾼다. 그러나 일이 없으면 과연 날마다 넘쳐나는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행복과 정체성은 일에 의존한다. 일은 신의 저주였다가 종교개혁과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축복받은 특권 또는 소명으로 격상된다. 우리는 일자리를 잃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고 일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우리의 일에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태국에서는 코코넛 열매를 따는데 원숭이를 동원한다. 원숭이는 사슬에 묶여 농부의 지시에 따라 일하고하루 세끼 식사를 대접 받는다. 농부들은 멸종 위기의 원숭이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고용 관계가 원숭이에게도 유익하다고 변명한다. 굶어죽느니 착취를 당하더라도 살아남는 게 낫다는, 이른바 착취의 논리다.

원숭이 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일을 선택할 자유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거나 없다. 아무도 우리에게 노예가 되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기꺼이 노예가 되기를 선택한다. 극단적인 경우지만 성매매 여성들은 그들의 노동을 자발적으로 그만둘 수 없다. 그들은 노예나 다름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일이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억지로 한다.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일을 할 때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상실한 대가로 보상을 받는다. 일자리를 얻을 때 우리는 암묵적이든 명시적이든 회사가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는데 동의한다. 서구 경영학 100년의 역사는 결국 노동자들을 길들여 가는 과정이었다. 우리들 직장에는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고 더 많은 이윤을 짜내는데 필요한 환상이 넘쳐난다.

공사장의 인부는 할당량을 끝내면 남은 시간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쉴 수 있다. 빨리 끝내면 끝낼수록 더 많이 쉴 수 있다. 만약 그에게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끊임없이 계속 일을 하도록 한다면 생산량이 늘어날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할당량만 채우면 될 때 그는 더 많이 쉬려고 더 열심히 일한다. 시간을 채워야 할 때 그는 굳이 열심히 일해야 할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오래 일한다고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1930년 켈로그의 일자리 나누기 운동이 이를 증명한다. 이 회사는 불황에 대처하려고 하루 여덟시간 노동을 여섯시간 노동으로 줄였다. 놀랍게도 노동시간을 줄이자 생산성이 늘어났다. 여덟시간 일할 때 한시간 평균 83상자를 포장하던 노동자들은 여섯시간 일할 때 93상자를 포장했다.

산업사회가 발전하면서 환상은 더욱 교묘해진다. 할당량과 근무시간을 조절해가면서 더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일을 시키는 게 경영학의 과제다. 현대 경영학은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일을 더 하도록 만들기 위해 리더십과 기업문화를 강조한다. 성공한 기업이라는 환상과 자부심은 노동자들에게 초과근무와 열정을 이끌어 낸다. 이들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직장을 단순한 일자리 이상으로 받아들이기를 요구한다.

이제 기업들은 노동자들에게 공동체의 환상을 심어주려고 노력한다. 과거 슈미트는 무쇠를 운반하기만 하면 됐지만 이제는 직장 상사와 동료들과 함께 어울려야 하고 조직에 충성까지 보여야 한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가기만 하는게 아니라 이제는 직장에 인생의 의미를 둬야 한다. 이런 직장에 매여있는 이상 슈미트에게는 어떤 개인적인 꿈도 희망도 없다. 과장되게 말하면 이렇다.

“집안에서 일하는 흑인 보다는 들에서 일하는 흑인이 되는 편이 낫다. 들에서 일하는 흑인은 자신이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공손히 대해야 하는 부가적인 모욕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올바른 직장을 만들기 보다는 노동자들이 기분 좋게 일할 환경을 만드는데 힘을 쏟아왔다. 우리는 그런 환상이 무엇을 희생한 대가인가 고민해 봐야 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서 과연 우리 삶의 질이 더 나아졌는가. 더 풍성해졌는가. 우리는 과연 더 자유로워졌는가. 퇴근 후 TV를 들여다보면서 흘려보내는 우리 청춘은 과연 건강한가. 무엇을 위해 일하고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이 책은 일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라고 조언한다.

일의 발견 / 조안 B. 시울라 지음 / 안재진 옮김 / 다우 펴냄 /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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