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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왜 대안인가’를 읽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3, 2005

올해로 2회를 맞는 ‘맑스 코뮤날레’의 발제 자료들을 엮은 책이다. 이 사람들은 “마르크스는 과연 희망인가”라고 묻지 않고 “왜 마르크스가 희망인가”라고 묻는다.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이야기한 게 1848년이고 그를 따르던 사회주의 나라들도 일찌감치 거의 모두 무너졌는데 이들은 아직도 그 유령을 이야기한다.

조정환은 두가지 전제를 둔다. 첫번째, 코뮤니즘은 사회주의의 연속이 아니라 단절이다. 두번째, 코뮤니즘은 미래에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실재한다. 현실의 모순을 타개해가는 운동으로서 코뮤니즘과 미래에 실현될 사회 형태로서 공산주의는 구분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려면 코뮤니즘의 정의와 상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마르크스는 1870년 코뮌 봉기의 경험을 근거로 “코뮌은 노동자 계급이 기존 국가기구를 단순히 장악해 그것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가동시킬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줬다”고 말한 바 있다. 가뜩이나 이제는 생산수단이 물적 수단의 형태보다는 지적이고 정동적인 협력의 형태로 존재한다. 권력 또한 국가에 집중되기 보다는 삶의 모든 영역에 분산돼 있다.

황선길에 따르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아직 원칙만 존재할뿐 일상의 투쟁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발전돼야 할 개념이다. 그가 평의회 공산주의에 주목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는 평의회 공산주의 이론에서 보면 결코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평의회 이론에서는 국유화된 생산시설에 기초한 국가와 관료들의 계급 지배를 근본적으로 반대한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은 국가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결과 마르크스의 사회는 국가로 대체됐고 국제주의적 세계관은 민족주의적 애국심으로 대체됐다. 대중은 권위주의와 신비주의에 빠져 수동적인 입장에 머물렀고 결국 사회주의 인간해방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른바 역사적 발전은 경제적 성장에 집중됐고 대중은 생산력 발전을 위한 기계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다.

조정환은 코뮤니즘을 노동정치 또는 피고용자 정치보다는 삶 정치 또는 다중 정치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뮤니즘을 경제투쟁이나 정치투쟁이 아니라 삶의 문맥 속에 내재화된 윤리 정치학의 개념으로 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진경은 적대와 차이의 문제를 파고든다. 적대의 정치학은 모든 것을 적과 동지로 나누고 정통성의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정한다. 숨쉴 공간도 없고 차이는 부정된다. 그러나 이진경에 따르면 차이의 정치학은 “모든 차이를 대립과 모순으로 인도하고 결국 적대의 효과 아래 복속시키는 ‘척도의 권력에 대한 투쟁'”이다. 척도를 재생산하는게 아니라 새로운 척도를 만들거나 복수의 척도를 구성한다는 이야기다. 더 쉽게 풀어보자.

“전 지구적 범위로 진행되는 생산과 착취의 확장, 생활의 모든 영역으로 침투하고 있는 자본과 화폐의 권력에 맞서 모든 것을 자본으로 화폐로 동일화하는 권력에 맞서 그것의 외부, 화폐화되지 않고 자본에 포섭되지 않는 삶의 가능성, 차이가 숨쉴 수 있는 공간을 창안하려는 사람들에게 마르크스는 여전히 중요한 이론적 자원이다.”

홀거 하이데는 노동사회를 벗어나는 대안으로 마르크스의 위기이론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꾸지 않는 이상 그 내부의 불의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한계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분배정의를 위한 싸움은 자본주의의 중독을 벗어나게 만들기는커녕 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여기가 바로 마르크스의 위기이론이 필요한 지점이다.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을 개선시킨다는 환상, 자본주의가 여전히 지속가능하고 다른 대안은 없다는 확고부동한 환상을 깨뜨릴 수 있는 대안 이론으로 마르크스를 주목하는 것이다. 다만 그는 “이론은 물화된 것을 폭로할 수 있을뿐, 이론으로 사람의 생동성을 포착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덧붙였다.

이성백은 계몽의 복원이라는 관점에서 마르크스를 주목한다. 그는 자본의 논리와 도구적 이성의 논리가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후기산업주의나 탈현대주의는 이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 다른 이성 개념을 규정하고 이성과 욕망의 관계를 새로 설정해 계몽의 기획을 복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마르크스 주의는 불가능한 포스트 모던이 아니라 ‘네오 모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박주원은 다음과 같이 코뮤니즘의 과제를 정리한다.

“코뮌이 새로운 사회질서가 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나 국가 외부에 존재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나 국가의 관계를 뒤집어 갈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가야 한다. 국가나 자본주의와 전적으로 다른 시선으로 살아야 하면서 동시에 국가나 자본주의를 항상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는 점, 바로 여기에 코뮌의 어려움이, 그리고 코뮌의 자유로움이 있다.”

강수돌은 마르크스의 실천적 대안으로 공동체 운동에 주목한다. 자본주의의 생산력 기반에서 그 토대를 반성하고 새로운 사회관계를 구축하고 새로운 인간관계와 삶의 문화를 형성하자는 이야기다.

“현대 공동체 운동은 계급 모순의 지양을 한걸음 넘어가려는 실천일 수도 있고 노동영역 이외에도 가족영역, 자연영역, 위계질서, 문화영역, 여성문제까지 확장된 계급 모순을 포괄적으로 해결하려는 실천일 수도 있다. 기존의 경제가치를 넘어 사회가치, 생명가치를 구현하려는 실천이다.”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농민운동도 하나의 사례가 된다. 외부화된 권력을 쟁취하는데 힘을 쏟기 보다는 민중의 자율성을 삶의 현장에서 실현하는 것이 “맑스와 함께 맑스를 넘는 길”이라는 이야기다. 한발 더 나가면 각각 삶의 단위나 공동체가 스스로 국가가 됨으로써 국가를 넘어서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된다.

윤수종은 소수자 운동에 주목한다. 소수자 운동은 권력의 장악이 아니라 기존의 권력에서 벗어나 자율적인 집합체를 만들고 운동 주체의 폭을 넓히고 사회전체의 다양성을 증대시키고 결국 그 과정에서 권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윤수종은 “소수자들의 다양한 증식이야말로 제국의 지구 계획에 맞서 대중의 삶의 공간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길”이라고 지적한다.

조정환이 거듭 강조한 것처럼 금융 세계화 시대, 자본은 이미 코뮤니즘을 구현하고 있다. 금융자본이 생산자본을 지배하고 다중은 자본에 저항해 싸우기 보다는 자본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그 대안으로 이들은 마르크스와 코뮤니즘을 주목한다. 조정환은 니체와 들뢰즈를 인용, “코뮤니즘은 낡은 법칙들을 절단해 특이한 힘을 펼쳐내는 영원히 새로운 구성운동”이라고 정의한다.

“오늘날의 코뮤니즘은 모든 법칙, 동일성에 대항하는 특이한 삶들의 으르렁거림, 차이와 투쟁들의 유통과 연결, 즉 반복의 네트워크 그 자체다. 그것은 부단히 현실화하고 또 현실속에서만 전개되지만 그러나 현실속에 폐쇄되는 것을 거부하는 잠재적 실재성의 삶, 정치적 네트워크다.”

맑스, 왜 희망인가 / 맑스 코뮤날레 조직위원회 엮음 / 메이데이 펴냄 /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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