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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대한민국 희망 보고서’를 읽다.

Written by leejeonghwan

March 4, 2005

이 나라에 무슨 희망이 남아있단 말인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선 가운데 비정규직을 확대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돈은 넘쳐나지만 흐르지 않고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사람들은 가난해지고 있다.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경제 전반에 걸쳐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절망은 이미 뿌리가 깊다.

이런 우리들에게 미국에서 건너온 이 책은 논쟁이 될만하다. ‘한겨레’와 ‘이코노미21’ 기자 출신인 이 책의 저자는 현재 MIT 슬론스쿨 MBA과정에 재학중이다. 지난해에는 월스트리트의 거시경제 컨설팅 회사에서 아시아 담당 애널리스트로 일하기도 했다. 그가 월스트리트와 MIT에서 찾은 대한민국의 가능성과 희망이 이 책의 큰 주제다.

우리나라 경제는 여전히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올해 국내총생산 예상 성장률은 4.9%, 세계적으로 이만큼 놀라운 성장률을 이루는 나라는 많지 않다. 적도기니(16%)나 아제르바이잔(14%), 앙골라(11.9%), 알제리(8.2%), 중국 (8.1%) 같은 나라 정도다. 우리나라는 명목 국내총생산 기준으로 세계 11위다. 지난 30년간 실질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연 평균 7.4%, 세계 4위 수준이다. 비슷한 경제 규모에 이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나라는 세계를 통틀어 우리나라 밖에 없다.

수출은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수출증가율이 지난해 31%에서 올해는 10%대로 떨어질 걸로 예상되지만 증가율이 줄어드는 것일뿐 전망은 여전히 밝다. 10%만 해도 놀라운 증가율이다. 경제의 중심이 제조업 중심에서 마케팅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도 큰 변화다. 원천기술이 없어서 문제라고들 하지만 이미 삼성이나 LG 등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제조업의 대안을 찾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가 세계적 기업들이 중국이나 인도로 진출하는 허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월스트리트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그런 가능성을 찾고 있는데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비관과 자학만 넘쳐난다고 개탄한다. 골드만삭스의 예측에 따르면 2035년 중국과 인도는 각각 세계 1위와 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다. 작지만 개방된 나라, 강력한 소비 대국이라는 인상을 세계에 심어주는게 이런 지리적 강점을 활용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은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산업에서 가능성을 본다. 2~3년 마다 휴대전화를 바꾸는 나라, 50만원이 넘는 휴대전화를 생일선물로 주고받는 나라, 중고등학생들까지 휴대전화를 들고다니는 나라, 이른바 떼거리 근성이고 좋게 말하면 앞서가는 소비유형이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카메라폰은 세계적인 유행이 됐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류 열풍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욘사마 배용준은 서구적인 배려의 매력과 동양적인 가족의 가치를 체화한 인물이다. 아시아와 서구 자본주의가 만나는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문화산업의 모델이고 아시아 경제권에서 우리나라가 갖는 문화 허브로서의 경쟁력라고 볼 수도 있다. 과거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이제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소비 유형이 아시아와 세계로 퍼져나간다.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은 묻는다. “당신들은 왜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이렇게 비관적인가. 당신들이 만든 이 화려한 성적표를 왜 애써 부인하려 하는가.” 이들은 그 이유를 찾아 우리나라에 왔다가 “대학도 못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막 되먹은 좌파정부가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는 막말을 듣고 돌아가야 했다. 이 책의 저자는 묻는다. “손님들 앞에서 칭찬을 듣고 자신감을 되찾는 꼬마아이를 생각해 봐라. 우리는 왜 손님들 앞에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가.”

이 책이 내놓은 해법은 자신감이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우울증에 빠진 올림픽 꿈나무’고 ‘금메달 유망주’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기업에 주목하는 걸 봐라.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그 어느 때보다 더 매력적이다. 내수 침체가 아니라 지나친 내수 진작의 후유증이 해소되는 과정일뿐이다. 경제의 역동성과 성장 잠재력은 여전하다.

여기까지가 이 책의 주장이다.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이 우리나라에서 찾는 희망과 우리 경제주체들이 보는 희망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나친 비관이 위험한만큼 막연하고 근거없는 낙관도 경계해야 한다. 문제는 양극화와 성장동력의 부재다. 세계로 뻗어나간 몇몇 대기업들은 돈을 긁어들이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날마다 무너지고 있다. 소득이 줄고 있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을 불안에 떨고 있다.

우리들의 불안과 절망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개혁과 구조조정이 불러온 성장은 결국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의 희생에서 비롯했다. 회사를 사들여 합병하거나 사업부문을 통폐합 또는 매각하고 노동자들을 잘라내면서 기업들은 이익을 늘려왔다. 살아남은 회사는 몸집을 불리고 이익이 늘어나는만큼 주가도 올랐다. 과점 경쟁의 혜택을 톡톡히 본 셈이다.

문제는 그런 성장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 것이냐다. 설비투자는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고 기업들은 더이상 새로운 공장을 짓지 않는다. 바야흐로 제조업의 위기 시대, 새로운 성장 모델은 막연하고 요원하다. 투자자들은 열광하고 있지만 그 성장의 열매는 생각보다 많지 않고 오래 가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들의 불안과 절망은 여기서 비롯한다.

물론 투자자들이 열광하는만큼 주가는 더 오를 수 있고 그들에게 더 많은 이익을 안겨줄 수도 있다. 객관적으로 우리나라는 저평가 됐고 주가는 여전히 싸다. 목을 매고 기다리던 것처럼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넘어 안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삼성과 LG의 성장이 곧 우리나라의 성장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월스트리트의 희망은 우리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 몇몇 기업들에 국한돼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나라가 ‘리틀 아메리카’, ‘아시아의 따뜻한 미국’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주목할 부분은 ‘따뜻함’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성장을 이끌어왔던 것은 산업화에 따른 균등한 소득 분배였다. 갑자기 잘 살게 되면서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소비했다. 그때 그 장밋빛 전망이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는게 문제다.

자신감이 소비로 이어지고 경제에 역동성을 불러일으키려면 과거와 같은 폭넓은 소득 분배가 확보돼야 한다. 일자리와 안정적인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전제돼야 하고 사회안전망도 확충돼야 한다. 성장이냐 분배냐 논란이 많지만 결국 우리에게는 평등주의가 성장주의다. 그때 비로소 자신감도 확보될 수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비정규직과 계급 차별의 문제를 풀어야 한다. 희망 보고서는 그때야 가능하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희망보고서 / 이원재 지음 / 원앤원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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