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린다’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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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에 나타난 독일 녹색당의 새 환경부 장관은 놀랍게도 헐렁한 양복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그가 요쉬카 피셔였다. 언제였을까. 내 기억에 남은 요쉬카 피셔는 그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젊고 건강한 정치인이었다.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걸 그는 보여주었다.

(나는 우리나라 민주노동당도 독일의 녹색당처럼 언젠가 정권을 잡게될 날이 올거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난 6월13일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정당 지지도를 봐라. 한나라당은 52%, 민주당은 29%, 민주노동당은 8%, 자유민주연합은 7%다. 민주노동당은 이제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의 세번째 정당이다. 적어도 자유민주연합만큼의 목소리는 낼 수 있다. 독일의 녹색당처럼 뜻이 맞는 다른 정당과 손을 잡고 집권을 노려볼만큼의 지지도는 충분히 된다.)

요쉬카 피셔는 이제 많이 늙었다. 그가 쓴 달리기 이야기가 ‘나는 달린다’다.

“나는 지난 세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정치적 성공을 위해 바쳐왔다. 너무 일에만 집중한 나머지 자아와 육체에 대해 소홀했다. 달리기는 이런 생활의 우선 순위를 바로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아마 요쉬카 피셔가 털어내고 싶었던 것은 몸무게 뿐만 아니라 일상에 덕지덕지 묻어있는 게으름이었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는 두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하나는 그렇게 게으름에 묻혀 조금씩 망가지는 것, 다른 하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바뀌는 것. 요쉬카 피셔는 두번째를 선택했다.

물론 살이 찐다고 문제될 건 없다. 그러나 살이 찌면서 게을러지고 현실과 맞서 싸울 열정을 잃어버린다면 문제가 된다. 게다가 계단을 오를 때 숨이 차고 더이상 등산이나 운동을 할 수 없다면,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건강이 무너져 간다면 그건 큰 문제다. 젊은 너의 열정은 어디로 갔는가.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달린다.” 체코슬로바키아의 마라톤 선수, 에밀 자토펙의 이야기다.

사람은 달려야 한다. 사람은 달리기에 맞는 몸을 갖고 태어났다. 사람은 그래서 100킬로미터 이상을 달릴 수도 있다. 물론 달리기는 처음에는 매우 고통스럽다. 그렇지만 한동안 달리고 나면 몸 깊은 곳에서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걸 느낄 수 있다. 달리기를 하면 엔돌핀이 늘어난다. 몸 안의 모든 세포들이 맑고 깨끗한 산소를 뒤집어 쓴다.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맥박이 펄쩍펄쩍 뛰어오른다. 온몸에서 새로운 호르몬이 뿜어 나온다. 그때 달리기는 더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달리기는 새로운 힘과 열정을 만들어낸다.

건강하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새벽의 맑은 바람을 온몸에 맞으면서 힘차게 달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요쉬카 피셔는 달리기를 하면서 게으름을 털어버렸다. 그리고 젊은 날의 열정을 다시 되찾았다. 그는 아직도 눈빛이 살아있는 많지 않은 정치인 가운데 한명이다.

올해 새해 계획 열가지 가운데 하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뛰어서 오르내린다’였다. 이제 와서 돌아보면 이 계획은 80% 정도 지켜졌다. 게으름의 유혹은 좀처럼 견디기 어렵다.

게으름을 털어버려야 여유를 즐길 수 있다. 그래야 나에게 더 많은 시간을 줄 수 있다. 달리기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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