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사다리 걷어차기’를 읽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18, 2004

“Kicking away the radder.”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영어로 쓴 책이 얼마 전에 번역돼 나왔다. 사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장 교수를 만나 선물로 받았다. 장 교수는 교환 교수로 1년 동안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

참고 : 대안연대회의 사람들을 만나다. (이정환닷컴)

그는 선진국들이 보호 관세와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으로 성장을 이뤘다고 보고 있다. 그런 선진국들이 그들의 뒤를 따르려는 후진국들에게는 자유 방임과 시장 경제를 강요한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그는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부른다. 그가 보기에 ‘사다리 걷어차기’는 약탈의 전략이다.

유럽진보정치경제학회, EAEPE가 주는 뮈르달 상을 받은 책이다. 간단히 요점을 정리해 본다.

– 영국의 경우.

영국은 1721년 법률을 제정해 보호관세 제도를 도입했다. 제조업자들의 원자제 수입에 붙는 관세는 줄이거나 폐지했고 관세를 환급해주기도 했다. 제조품의 수출 관세를 폐지하고 보조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반면, 수입 관세는 파격적으로 올렸다.

영국의 보호관세 정책은 영국의 기술력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때까지 계속됐다. 1815년부터 영국은 다른 나라에 자유 무역 이데올로기를 불어넣었다. 영국이 매우 점진적으로 자유 무역 체제를 도입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게다가 영국의 자유 무역 체제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 미국과 독일이 뒤쫓아오기 시작했고 영국은 1932년 관세 제도를 다시 도입했다.

영국의 식민지는 관세 정책을 사용할 수 없었다. 1차 산업품의 생산을 권장하는 정책이 장려됐고 제조업 활동은 금지됐다. 영국 상품과 경쟁관계에 있던 식민지 상품들의 수출도 금지됐다. 리스트에 따르면 식민지 국가들은 말 편자의 못을 제조하는 것조차 금지됐다.

– 미국의 경우.

관세 문제도 남북 전쟁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미국은 1820년 무렵 모든 제조품에 40%에 이르는 관세를 매겼고 이런 보호관세 정책은 제조업 중심의 북부와 농업 중심의 남부 사이에 갈등을 불러 일으켰다. 영국의 제조품을 싸게 살 수 없게 된 남부는 반발했고 급기야 연방을 탈퇴하기에 이른다.

링컨은 1860년 보호주의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됐고 그 이듬해 남북 전쟁이 터진다. 미국은 19세기 초기부터 1920년까지 강력한 보호주의를 고수했다. 1816년부터 1945년까지 미국의 관세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미국의 우파 포퓰리스트 정치인 뷰캐넌은 자유무역이 미국적 사고가 아니라고 말했다.

– 독일의 경우.

1879년 비스마르크 수상은 지주들과 중공업자들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관세율을 크게 인상했다. 이 동맹은 철과 호밀의 결혼이라고 부른다. 독일은 보호 관세 뿐만 아니라 기업의 독점권을 인정하고 왕립공장을 통해 저렴한 원료를 공급하는 등 다양한 정부 주도의 산업 정책을 펼쳤다.

– 프랑스의 경우.

나폴레옹 정권의 붕괴 이후 프랑스는 자유방임 정책으로 돌아선다. 그 결과 프랑스는 2차 대전까지 침체기를 겪는다. 정부를 재조직하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이후였다. 프랑스는 개입주의 정책으로 산업화를 이뤄냈다.

– 스웨덴의 경우.

스웨덴은 1880년부터 보호관세 제도를 도입했다. 특히 스웨덴에서는 관민 합작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농업의 관계 배수를 비롯해 철도 공사까지 정부가 개입했다. 1913년 국가 소유의 철도회사가 전체 철도의 33%, 물품 운송의 60%를 책임질만큼 성장했다.

– 일본의 경우.

1858년 일본은 강대국들의 강압에 밀려 불평등 조약을 체결한다. 관세율은 5%를 넘을 수 없었고 자국 무역을 보호할 아무런 장치도 없었다.

일본 정부는 적극적인 정부 주도의 산업 활성화 정책에 나섰다. 1880년대에는 정부 지원금의 36%가 철도 산업에 투입됐고 1906년에는 주요 본선들이 모두 국유화됐다. 불평등 조약이 종결된 1911년 이후 일본은 강력한 보호주의 국가로 변모했다.

일본은 1920년부터 산업 합리화를 실시, 카르텔 결성을 허가하고 기업 합병을 장려했다. 소모적 경쟁을 막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는데 목적을 뒀다.

– 도둑에서 파수꾼으로.

1820년대 지금의 선진국들은 현재의 방글라데시(1인당 720달러)나 이집트(1인당 1927달러) 사이의 발전 수준에 있었다.

선진국들은 그들의 상대적 위치에 따라 정책 방향을 바꿔왔다. 따라잡기 기간 동안 선진국들은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외국의 숙련된 노동 인력을 빼돌렸다. 다른 나라가 수출을 금지한 기계를 밀수입하기도 하고 산업 스파이를 고용하고 다른 나라의 특허권과 상표를 계획적으로 도용했다.

그러나 일단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고 나면 자유무역을 주장하고 숙련된 노동인력과 기술 유출을 금지하고 특허권과 상표를 강력하게 보호하기 시작한다. 도둑질을 일삼던 이들이 하나씩 차례로 파수꾼이 된 것이다.

와이스브롯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116개 국가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1960년과 1980년 사이 연 3.1% 성장을 보였지만 1980년과 2000년 사이에는 1.4% 성장에 그쳤다. 개발도상국은 바람직한 정책을 사용한 1980년 이후 20년보다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을 사용한 1960~1980년 사이에 더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

바람직하다고 강요되는 정책과 제도들은 성장 역동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사실상 많은 개발도상국들의 경제는 성장을 멈췄다.

.

www.leejeonghwan.com

Related Articles

Related

“당신들은 전혀 래디컬하지 않다.”

대학 거부 선언한 김예슬이 한국 진보에게 던지는 뼈 아픈 충고.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지난달 10일 한 대학생이 학교를 그만뒀다. 그것만으로는 특별한 일도 아니지만 그가 던진 메시지는 충격적이었다. 그는 국가와 대학과 시장을 적으로 규정했다. "일단 대학은 졸업하라"는 주변의 충고를 거부하고 자퇴를 선택한 그는 "작지만 균열이 시작됐다"며 "그래,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보자"고 선전포고까지 했다. 한 젊은이의 감상과 치기로 보기에 그 울림은 컸다....

쌍용자동차, 사람 자르는 것으로 위기 넘어설 수 있나.

쌍용자동차가 지난 8일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인력 7179명 가운데 2646명을 정리해고한다는 계획인데 당연히 노동조합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쌍용차 노조는 13~14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84%의 찬성으로 가결, 만약 정리해고가 시작되면 총파업으로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쌍용차 사태는 한치앞도 내다 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주요 언론이 보도한 바와 같이 쌍용차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따르면 다음달 6일 법원에 제출될 실사...

궤변으로 점철된 공병호의 장하준 비판.

국내 대표적인 자유주의자로 꼽히는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 소장이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지난해 10월 출간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공 소장은 월간조선 2월호에 기고한 에서 "생각이 가난하면 삶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며 장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장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애초에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선진국들은 보호무역으로 성장했으면서 이제 와서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더 나은 세상은 가능하다, 이정환닷컴!

Join

Subscribe For Updates.

이정환닷컴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

www.leejeonghw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