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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하느님’을 읽다.

Written by leejeonghwan

May 31, 2004

교회의 비판은 물론 필요하고 외부 비판도 마찬가지다.

몇일 전에 동생이 홈페이지에 “설교 비판은 가능한가”라는 글을 썼다. 동생은 나처럼 얼치기 크리스챤은 아니다. 문장이 말끔하지는 못하지만,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 발췌해서 싣는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사람이다. 사람은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하나님 앞에서 죄의 크고 작음에 따라 큰 죄인 작은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주의 긍휼을 입어야 할 죄인일뿐이다. 그러기에 실수할 수도 있다. 항상 깨어 기도하지만 잠깐이나마 하나님을 벗어나는 수가 있다. 사람 앞에 하나님의 자리에 있기에 더욱 그럴 수 있다.”

“그래서 목사의 설교 비판은 필요하다. 설교는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도 비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외부의 비판 보다는 내부 비판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주 독서토론회에서 함께 읽었던 권정생의 ‘우리들의 하느님’에도 비슷한 맥락으로 눈여겨 볼 부분이 있다.

“내가 바친 헌금과 새벽 제단에 쌓은 통성기도와 열심히 다닌 부흥회로 최상급의 보상이 약속된줄 착각하고 있다. 철저히 자신만을 위한 기도와 헌금과 부흥회로 하느님을 이용하려 하는 것이다. 그들은 벌써 받을 보상을 다 누린 사람들이다. 하느님과는 상관없는 기도, 이웃의 고통은 아랑곳 않고 오직 나의 출세와 성공만을 위한 기도가 어찌 진정한 기도인가. 그런 기도를 예수께서 언제 가르쳐주었던가.”

“이런 인과응보의 신앙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도깨비 방망이식의 교훈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수백번, 수천번 부흥회를 해도 한국 교회의 삶이 우리 기독교인의 삶이 언제나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는 까닭이 이런 축복 신앙에 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의 교회에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나라, 나의 민족이 이 지경인데 먼 나라까지 선교사업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허영에 지나지 않는다. 이 지구상에서 한국이란 나라만큼 한국의 민족만큼 고통당하고 있는 민족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제 코가 석자나 빠졌는데 남의 코를 거둬주려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다.”

얼치기 크리스챤이라서 그런가 모르겠지만 나는 초상집에 가서 죽은 사람의 사진 앞에 절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의미를 두지 않는 이상 그런 행동이 우상 숭배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죽은 사람과 그의 가족에 대한 마음의 표시 정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권정생은 굳이 하나님이라고 쓰지 않고 하느님이라고 썼다. 김용옥도 언젠가 비슷한 주장을 했고 이외수의 소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기독교는 우리가 수천년동안 믿어왔던 하느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가르쳤다. 그 결과 하느님은 미개한 우상이 됐고 그 자리를 하나님께 내줬다. 그 차이를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믿는 하나님은 하느님과 결코 다르지 않고 하느님은 곧 하나님이다. 천지 만물과 그 원리를 만들고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 말이다. 이런 생각을 교회에 다니는 내 친구들은 범신론이라고 비판한다.

내가 아는 하나님은 형식적으로 내는 십일조나 주일 성수를 크게 기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늘 하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가족과 이웃을 돌볼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그의 기도를 더 기쁘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믿음은 결국 생활에 반영되고 실천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 아닌가.

김규항의 ‘B급좌파’에서 잠깐 언급되기도 했지만 “물질의 축복”을 달라고 드리는 기도는 정말 끔찍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다만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 그 기도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믿음은 형식적이다. 예수님이라면 지금 어떤 기도를 드릴까.

과연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사회에 반영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질문해 보자. 쉬운 질문은 아니지만, 교회는 과연 하나님을 섬기는 것 말고 다른 무엇을 하고 있는가. 어쩌면 하나님은 거기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건 또 하나의 우상이 아닌가.

‘우리들의 하느님’은 김규항의 추천도서였다. 김규항은 권정생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글을 쓴다고 말했다. “그의 산문은 한 치의 정치적 혼란도 없다”면서 “사람답게 사는 법을 알고 싶다면 권정생을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그런데 독서토론회의 반응은 별로였다. 몇부분을 더 발췌한다.

“기독교가 있는 없든 교회가 있든 없든 하느님은 헤일수 없는 아득한 세월동안 우주를 다스려왔다. 선교사가 하느님을 전파하면 하느님이 거기 따라다니며 머물고 같이 사는게 아니라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부터 하느님은 어디서나 온 세계 만물을 보살펴 오셨다. 하느님은 지식으로 아는게 아니라 자연스레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인간들의 마음이다. 종교는 하느님의 섭리에 따르려는 의지이지 종교가 요구하는대로 하느님의 섭리를 바꾸는게 아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바로 자연의 섭리가 된다. 하느님은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시는 분이라 했다. 그러니 하느님은 곧 자연인 것이다.”

“경제정의란 말과 사회주의란 말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함께 일해 함께 사는 세상이 사회주의라면 올바른 사회주의는 꼭 이뤄져야 한다. 몇사람의 혁명가가 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기독교적 차원에서 경제정의는 필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성서의 가르침이 그렇고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이웃과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안동지방은 댐을 두군데 막는 바람에 안개가 끼고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무척 추워졌습니다. 초가지붕을 뜯고 나니 참새가 없어지고 지붕속에 살던 능구렁이와 족제비가 없어지고 그러다 보니 쥐가 많아져서 쥐약을 살포해서 고양이가 죽고 다른 가축들이 죽었습니다. 자연은 어느 한군데가 망가지면 연쇄반응을 일으킵니다. 화학비료를 사용하다보니 땅이 죽고 땅이 죽으니 그 속에 살던 곤충이 죽어 상대적으로 해충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농약을 살포하니 그것이 개울로 흘러들어 많은 물고기가 죽어버렸습니다. 물고기가 죽으니 새들이 죽고 새들이 죽으니 산의 나무들이 또 병이 들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렇게 서로 섬기며 살라는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종의 몸으로 섬기러 왔다고 하셨고 그 말씀대로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찾아다니며 섬기러 왔다가 결국 죽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기독교란 대체 무엇인가. 예수님은 지금 교회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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