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버카스텔,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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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파버 이야기를 좀 해야겠네. 이 연필은 이상적이라고 할만큼 단단하면서도 매우 부드럽고 목공용 연필보다 색감도 훨씬 좋아. 언젠가 재봉사 소녀를 그릴 때 이 연필을 썼는데 석판화 같은 느낌이 정말 만족스럽더라고. 부드러운 삼나무에 바깥에는 짙은 녹색이 칠해져 있지. 가격은 한 개에 20센트밖에 하지 않아. ”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그의 친구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의 부분이다. 정확한 날짜는 적혀 있지 않지만 고흐가 죽은 때가 120년 전이니까 그 이상됐다고 볼 수 있다. 고흐가 즐겨 썼던 그 연필이 바로 파버카스텔이다. 247년의 역사. 한해에 18억개 이상의 연필을 만들어 판다는 세계 최대의 필기구 제조회사다.

고흐를 감동시켰던 바로 그 연필.

파버카스텔의 역사는 17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버카스텔은 미국의 최장수 기업인 듀폰이나 영국의 최장수 기업인 펄킹턴보다 더 오래됐다. 이 두 회사는 올해로 각각 205년과 181년을 맞는다. 파버카스텔은 700년 역사의 스웨덴 스토라나 400년 역사의 일본 스미모토와 함께 세계 최장수 기업의 반열에 올라 있다.

파버카스텔의 창업자는 가구 제조업자였던 카스파르 파버와 그의 아들인 안톤 빌헬름 파버. 회사 이름은 아들의 이름을 따서 AW파버로 지었다. 이 회사를 세계적인 회사로 끌어올린 사람은 손자인 로타 폰 파버였다. 연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다. 1839년에 회사를 맡아 60년 가까이 경영을 이끌었다.

로타르 폰 파버는 책상 위에서 구르지 않도록 육각형 연필을 개발했고 인필심에 경도의 개념을 최초로 적용했다. 직원들 복지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아 사택을 제공하고 독일 최초로 직원들에게 건강보험을 도입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특사를 보내 그의 경영기법을 벤치마킹하기도 했을 정도다.

로타르 폰 파버는 후발 업체들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특허법과 상표법 등을 제안하고 독일 최초로 상표 등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아들이 일찍 죽으면서 손녀인 오틸리에가 가업을 잇게 된다. 파버카스텔이라는 이름은 그의 남편 알렉산더 카스텔에서 따온 것이다.

여성이 결혼하면 남편의 성을 따르도록 돼 있지만 오틸리에는 정부에 특별 건의를 했고 두 사람의 성을 같이 쓸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냈다. 회장을 맡고 있는 안톤 볼프강 그라 폰 파버카스텔은 창업자인 카스파르 파버의 8대 손이다. 1978년에 취임해 30년 가까이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연필계의 빌 게이츠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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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본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파버카스텔 연필은 부드러우면서도 매우 단단하다. 3kg 이상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흑연과 점토의 배합 비율 등은 모두 특허로 보호되고 있다. 로타르 폰 파버는 질 좋은 흑연을 구하기 위해 일찌감치 시베리아에 흑연 광산을 개발하기도 했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히말라야산 삼나무도 파버카스텔만의 특징이다. 파버카스텔은 친환경 경영으로도 유명하다. 파버카스텔 제품의 90% 이상이 지속가능한 재료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보증을 받고 있다. 파버카스텔은 브라질 삼림지대에 2500평방킬로의 숲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곳에 해마다 2만그루의 나무를 심고 있다.

View from the airplane onto one of Faber-Castell’s forest areals in Prata, Brazil

친환경 수성 페인트를 쓰는 것도 돋보인다. 휘발성 물감이나 아세톤을 쓰면 덧바르지 않아도 되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파버카스텔은 친환경 수성페인트를 6차례나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무게감을 주는 짙은 녹색은 친근함을 준다. 향긋한 나무 냄새가 살아있는 것도 수성 페인트 덕분이다.

Wood-cased pencil production at the Faber-Castell headquarters in Stein, Germany. Photographs by Uwe Mühlhäußer.

연필을 입에 잘 갖다 대는 어린이들 경우는 특히 페인트에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파버카스텔의 모든 연필은 장난감 표준이라고 부르는 유럽 EN71-3규정을 따른다. 이를 위해 파버카스텔은 1992년 세계 최초로 수용성 래커를 개발하기도 했다. 광택을 유지하고 세균 번식을 막으면서도 피부에는 아무런 자극도 주지 않는다.

Two B or not Two B.
Let it B.

히말라야산 삼나무에 친환경 수성 페인트.

파버카스텔의 연필은8H부터 F와 HB를 거쳐 8B까지 18단계의 경도 체계를 갖는데 점토가 많을수록 단단하면서 옅고 흑연이 많으면 짙고 무르다. HB 연필 한 자루에는 56km의 선을 그을 수 있는 흑연이 들어 있다. 로타르 폰 파버가 만든 1794년에 만든 경도 체계가 이제는 세계 표준이 됐다.

파버카스텔의 대표 제품은 카스텔 9000과 그립 2001이다. 카스텔 9000은 1905년에 처음 출시돼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는 장수 베스트 셀러다. 나무 판자 전체에 본드를 바르는 특수 공법으로 연필심과 나무가 들뜨지 않아 떨어뜨려도 연필심이 부러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단면이 삼각형으로 된 그립 2001은 오돌토돌한 검은 돌기가 붙어 있어 미끄러지지 않는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이 제품을 2000년 올해의 10대 상품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실용적이면서도 미려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이 제품은 카스텔 9000과 함께 수많은 파버카스텔 애호가들을 만들어 냈다.

모든 파버카스텔 제품에는 말에 올라단 탄 두 사람의 기사가 새겨져 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창으로 찌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창이 아니라 연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창만큼 단단한 연필이라는 의미다. 구석 구석에서 오랜 전통과 멋, 세심한 배려를 읽을 수 있다.

소설가 귄터 그라스는 파버카스텔 애찬론자였다. “초록색에 금박이 박힌 카스텔 9000은 너무 딱딱하지도 너무 무르지도 않아 활기찬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좋다”고 쓴 적도 있다. 특히 그는 3B 연필을 애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양철북’ 역시 카스텔 9000 3B로 쓰여졌다.

독일의 소설가 에프라임 키손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실례지만 3B연필 있어요?’라고 제가 물어봐요. 그럼 종업원이 ‘몇개나 필요하세요?’라고 대답하겠죠. 그럼 나는 ‘1000개 정도요. 그런데 카스텔 3B연필이어야 해요. 매우 부드러워서 눌러쓸 필요가 없어야 하고 매우 단단해서 부러지지 않아야 해요’라고 말하죠.”

요즘은 연필 쓰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연필만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자식 시계 보다 태엽식 시계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연필의 사각사각거리는 따뜻한 느낌과 썼다 지울 수 있는 유연함, 부드러운 필기감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800원짜리 연필 한 자루에도 수백년을 이어온 전통과 과학이 담겨있다. 쉽게 부러지지 않으면서도 글쓰기 잘 씌여져야 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잘 닳지 않고 오래 쓸 수 있어야 하고 감성과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매력적인 디자인이어야 한다. 파버카스텔은 이런 기대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준다.

Coming from one of the oldest German family-owned companies, the world’s most expensive pencil was created in Germany in 2008. This limited edition pencil was crafted with 240-year-old olive wood and 18-carat white gold. Called the Graf von Faber-Castell Perfect Pencil, it even includes a handy built-in eraser and a pencil sharpener. It also features three diamonds and comes with a certificate. Billionaires can feel comfortable using this as a writing instrument or to display in their collection. According to most-expensive.com, only 99 limited edition Perfect Pencils were created.

파버카스텔의 연필은 800원에서 20만원 넘는 제품까지 다양하다. 2001년 회사 창립 240주년을 기념해 만든 퍼펙트 연필은 한 자루에 9천유로, 우리 돈으로 1350만원이나 했다. 백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이 연필은 한정판으로 99개만 만들었는데 순식간에 동이 났다.

파버카스텔은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늘 새로운 디자인을 고민했다. 카스텔 포켓 연필은 연필깎기와 클립이 포함돼 있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연필을 깎을 수 있고 클립을 닫으면 정장 주머니에 꽂아도 잘 어울린다. 뒤쪽에는 지우개가 달려 있어 편리하다. 연필을 다 쓰면 클립만 다른 연필에 꽂아 쓸 수도 있다.

연필 뿐만 아니라 샤프펜슬이나 볼펜, 만년필 등도 눈에 띄는 제품이 많다. 이모션 시리즈는 시거 모양에 배나무를 썼다. 고전적이면서도 우아한 멋이 풍기는 제품이다. 코코넛 우드 시리즈는 독특한 결의 코코넛 나무와 반짝이는 금속 재질의 뚜껑이 차분하면서도 깊은 멋을 풍긴다. 레드닷디자인상을 받은 제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파버카스텔 색연필이 인기다. 판매량으로만 세계 2위에 이를 정도다. 파버카스텔은 신제품을 자주 내놓지는 않지만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대규모 패션쇼를 연다. 2003년에 열린 런던 패션쇼에서는 연필로 만든 모자와 옷, 만년필 촉으로 만든 드레스 등을 선보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3 Pencils No. III, br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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