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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을 보다.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1, 2004

이 영화는 중국 사람들의 꿈이다. 우리는 언뜻 그들의 꿈에 매료되지만 그 꿈에서 깨는 순간 언짢아진다.

이 영화는 진나라의 황제, 진시황과 그를 죽이려는 자객들의 이야기다. 수천명 정예 군사의 호위를 뚫고 진시황을 죽일 방법은 거의 없다. 장천과 파검, 비설이라는 자객들이 그를 죽이려 했다가 실패했다. 진시황은 이들 세명의 자객을 모두 죽이는 자에게 황제를 열걸음 앞에서 만날 수 있는 영광을 주겠다고 선언한다.

또 다른 자객 무명은 이를 노린다. 자객들을 모두 죽이고 호위를 뚫고 황제 앞에 설 수만 있다면 그를 죽일 수도 있다. 그게 진시황의 욕망 앞에서 무참하게 죽어간 동족의 원수를 갚는 유일한 방법이다.

중국 사람들의 꿈은 여기서부터다. 한때 황제를 죽이려다가 실패했던 파검이 무명을 말리고 나선다.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칼로 바닥에 ‘천하(天下)’라고 적는다. 그러나 결국 무명은 장천과 파검, 비설을 죽였다는 증거로 그들의 칼을 받아들고 황제 앞에 선다. 황제와 무명, 둘 뿐이다.

황제는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앉아있다. 그는 당당하다. 그는 촛불이 흔들리는 걸 보고 곧 무명이 살기를 품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는 알면서도 무명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다. 무명은 허풍스럽다.

관객들은 파검이 왜 황제를 죽이지 않고 돌아왔는가 알지 못한다. 파검이 왜 황제를 죽이는 걸 말리는가 알지 못한다. 관객들은 무명이 황제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황제가 멋있다고 생각하고 그가 죽어서는 안된다는 걸 알아차린다. 여기서 이미 관객들은 중국 사람들의 자아도취에 함께 젖어든다.

무명도 결국 황제를 죽이지 못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무명은 ‘천하(天下)’의 의미를 설명한다. 천하가 갈려 있으면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수많은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나서서 천하를 통일하는게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길이다. 그 누군가가 진시황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감동적이지 않은가. 당연히 황제는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한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황제는 이제 죽어도 좋다고 쇼를 한다. 무명은 등을 돌리고 선 황제 앞에서 칼을 거두고 돌아 나온다.

결국 ‘영웅’의 영웅은 진시황이다. 그는 모든 영웅들보다 강하고 결국 천하를 통일한다. ‘영웅’은 천하 통일의 대의명분을 선전하는 영화다. 중국 사람들에게는 가슴 벅찬 감동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나라와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는 다만 요란한 볼거리로 치장한 지배 욕망에 다름 아니다.

‘영웅’은 고구려사 왜곡의 전초전이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누군가가 천하를 통일해야 하고 꿈에서나마 그 누군가가 중국이 돼야 한다고 믿고 있을 수도 있다. 천하를 얻겠다는데 작은 가치들을 돌볼 여유가 있겠는가. 아름다운 영화지만 그 메시지는 섬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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