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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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章子怡’는 ‘장쯔이’라고 부르면서 ‘劉德華’는 ‘유덕화’라고 부르는 것일까.

‘章子怡’의 중국 발음은 ‘장쯔이’고 한국 발음은 ‘장자이’다. ‘劉德華’의 중국 발음은 ‘류떠화’고 한국 발음은 ‘유덕화’다. 우리는 ‘章子怡’를 ‘장쯔이’라는 중국 발음으로 부르고 ‘劉德華’를 ‘유덕화’라는 한국 발음으로 부른다. 최소한의 원칙도 없다.

일본 사람인 ‘金城武’는 일본 발음으로 부르면 ‘가네시로 타케시’가 되고 중국 발음으로 부르면 ‘진청우’가 된다. 우리는 그를 ‘금성무’라고 부른다.

‘장이머우(張藝謨)’ 감독을 어떤 사람은 마음대로 ‘장예모’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궈룽(張國榮)’은 ‘장국영’이 되고 ‘저우룬파(周潤發)’는 ‘주윤발’이 된다. 잘난 척을 하려는 게 아니라 부르기에는 편하지만 분명히 잘못된 발음이다.

한글학회의 한글 맞춤법 가운데 외국 인명 표기 원칙은 다음과 같다.

–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 중국의 역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우리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 일본의 인명과 지명은 과거와 현대의 구분 없이 일본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1911년 신해혁명이다. 이를테면 ‘모택동’이 아니라 ‘마오쩌둥(毛澤東)’, ‘등소평’이 아니라 ‘덩샤오핑(鄧小平), ‘주은래’가 아니라 ‘저우언라이(周恩來)’, ‘주용기’가 아니라 ‘주룽지(朱鎔基)’라고 불러야 한다. 그러나 ‘공자(孔子)’나 ‘노자(老子)’, ‘제갈량(諸葛亮)’ 등은 그대로 불러도 된다.

일본 사람은 모두 현지 발음으로 부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등등.

참고 : ‘일본 정신의 기원’을 읽다. (이정환닷컴)

김용옥 선생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 보면 ‘공부’와 ‘쿵푸’의 차이가 나온다.

우리 말의 ‘공부(工夫)’를 중국에서는 ‘쿵푸’라고 읽는다. ‘공부(study)’를 뜻하는 말이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이 다 다르다. 일본에서는 공부를 ‘勉强’이라고 쓰고 ‘벵쿄스루’라고 읽는다. 중국에서는 공부를 ‘念書’라고 쓰고 ‘니엔수’라고 읽는다. 생각이 나라마다 다들 다르고 당연히 언어도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한자를 쓰지만 우리 한자와 중국 한자, 일본 한자는 모두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고. 참고 : 우리는 검정고시를 어떻게 보는가. (이정환닷컴)

우리가 ‘콩쯔’를 ‘공자’라고 부르고 ‘리우뻬이’를 ‘유비’라고 불렀던 것은 중국을 외국으로 보지 못하고 기꺼이 중국의 속국이 되기를 갈망했던 결과다. 따라서 ‘덩샤오핑’을 ‘등소평’이라고 부르고 ‘이토 히로부미’를 ‘이등박문’이라고 고쳐부르는 것을 주체적인 행동이라고 착각하지 마라. 그것은 우리 한자와 중국 한자, 일본 한자가 이미 다른데 우리 한자를 버리고 중국 한자와 일본 한자를 가져다쓰는 꼴이다.

중국어와 일본어는 번역돼야 한다. ‘張藝謨’는 번역해서 ‘장이모우’가 되고 ‘金城武’는 번역해서 ‘가네시로 다케시’가 된다. 중국 한자와 일본 한자는 우리 한자나 한글로 번역돼야 한다. 하다 못해 이름 하나 쓰고 부르는데서도 그게 안되니까 온갖 문화와 개념의 표절이 일어난다.

아무리 부르기 편하다고 해도 ‘장이머우’를 ‘장예모’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가네시로 다케시’를 ‘금성무’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류떠화’는 ‘류떠화’고 ‘장쯔이’는 ‘장쯔이’다. 중국 놈은 중국 놈이고 일본 놈은 일본 놈이다. 그걸 김용옥 선생은 ‘타자화’라고 부른다. 우리는 타자화의 과정을 결여했고 그 결과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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