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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여자’를 보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8, 2004

복선과 확인 만으로 영화를 만들 수도 있다. 장진의 ‘아는 여자’가 그렇다. 이나영이 연기하는 한이연은 ‘네 멋대로 해라’의 전경 그대로다. 딱히 새로울 건 없는 영화다. 줄거리가 어설프지만 꽤나 재기발랄하고 그럭저럭 재미도 있다. 그게 바로 복선의 힘이다. 아래는 영화를 보지 않을 생각이거나 줄거리를 미리 알아도 상관 없는 사람만 읽기 바란다.



복선 1. 의사가 동치성에게 사망 선고를 한다. 의사 말에 따르면 동치성은 심장이 안좋다. 그런데 이 의사, 좀 이상하다.
복선 2. 동치성은 코피를 잘 흘린다.
확인 3. 동치성이 한이연이 일하는 카페에 와서 술을 마신다. 이 카페의 주인은 동치성의 선배다.
확인 4. 한이연은 동치성이 술 마시다 우는 걸 본다. 한이연은 그날 밤 술취한 동치성을 여관에 데려다 눕힌다.
복선 5. 동치성은 9회말 투아웃에 역전을 당한다. 관중석에서 여자가 어떤 소리를 질렀고 동치성은 그 소리를 듣고 얼어붙는다. 그 여자는 어떤 남자에게 “사랑이 뭔줄 알아?”라고 외쳤다. 동치성은 투수에서 강등돼 2군 외야수로 떠돈다.
복선 6. 한이연과 동치성은 한 동네에 산다.
복선 4. 한이연은 아주 오래 전부터 동치성을 알고 있었다. 한이연이 중학생이고 동치성이 고등학생이던 무렵부터다. 동치성은 한때 잘 나가던 야구 선수였다.
확인 7. 한이연은 아픈 동치성을 위해 날마다 약을 달여서 동치성의 집을 찾아온다. 동치성은 창문 밑에 서있는 한이연의 키를 재 분필로 담벼락에 표시를 한다.
복선 8. 두 사람의 동네에 도둑이 든다. 동치성이 그 도둑을 잡았다가 딱한 사정을 듣고 돌려 보낸다. 도둑은 선물로 훔친 핸드백을 하나 놓고 간다.
확인 8. 도둑이 놓고 간 핸드백 때문에 동치성은 도둑으로 몰린다. 동치성의 집에 경찰이 몰려들고 동치성은 한이연의 집에 머물기로 한다.
복선 9. 핸드백의 주인은 살해됐다고 한다. 동치성은 이제 살인범으로 몰릴 판이다.
복선 10. 한이연은 야구를 잘 모른다. 텔레비전을 보던 한이연은 투수가 땅볼을 잡아서 1루로 안던지고 관중석으로 던지면 참 재미있겠다고 말한다.
확인 6. 한이연과 동치성의 부모님들은 동네에서 단체로 해외 여행을 갔다가 비행기 사고로 모두 죽었다.
복선 7. 한이연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치성의 집 담벼락에 기대 동치성의 방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다. 한이연은 분필로 담벼락에 자기 키만큼 표시를 한다.
복선 3. 한이연은 동치성이 어느 카페 주인과 이야기를 하는 걸 본다. 그래서 이 카페에서 일하기로 한다.
확인 1. 의사가 다른 사람의 엑스레이를 잘못본 것으로 드러난다. 동치성은 심장병이 아니다.
복선 12. 의사가 동치성의 집을 찾아오지만 경찰들 밖에 없다.
확인 2. 동치성은 코를 후비는 버릇이 있다. 코피를 잘 흘리는 건 그 때문이다.
확인 9. 동치성은 경찰에 잡혀갔다가 풀려난다.
복선 11. 살인범은 죽은 여자 때문에 실연당한 여자라고 한다.
확인 10. 동치성에게 투수로 뛸 기회가 주어진다. 동치성은 기대 이상으로 잘 던진다. 그러나 9회말 투아웃 상황, 동치성은 땅볼을 잡아서 관중석으로 던진다. 야구장은 순간 얼어붙는다. 동치성의 선수 생활은 정말 끝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 까짓거 상관없다. 한이연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확인 12.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동치성은 경찰이 건네준 의사의 쪽지를 읽는다.
확인 5. 살인범은 야구장에서 “사랑이 뭔줄 알아?”라고 외치던 여자였다.
확인 11. 여자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트럭에 치어 죽는다. 붕 떠오른 짧은 순간, 여자와 동치성은 눈을 마주친다. 죽어버리면 영원히 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살아있어야 사랑도 하는 거다.

이 이야기를 복선과 확인으로 풀어보면 아래와 같다. 이런 뻔한 이야기들을 적절한 흐름으로 배치하고 과거와 현재를 뒤섞어 하나씩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면 영화가 된다.

복선 1. 의사가 동치성에게 사망 선고를 한다. 의사 말에 따르면 동치성은 심장이 안좋다. 그런데 이 의사, 좀 이상하다.
확인 1. 의사가 다른 사람의 엑스레이를 잘못본 것으로 드러난다. 동치성은 심장병이 아니다.

복선 2. 동치성은 코피를 잘 흘린다.
확인 2. 동치성은 코를 후비는 버릇이 있다. 코피를 잘 흘리는 건 그 때문이다.

복선 3. 한이연은 동치성이 어느 카페 주인과 이야기를 하는 걸 본다. 그래서 이 카페에서 일하기로 한다.
확인 3. 동치성이 한이연이 일하는 카페에 와서 술을 마신다. 이 카페의 주인은 동치성의 선배다.

복선 4. 한이연은 아주 오래 전부터 동치성을 알고 있었다. 한이연이 중학생이고 동치성이 고등학생이던 무렵부터다. 동치성은 한때 잘 나가던 야구 선수였다.
확인 4. 한이연은 동치성이 술 마시다 우는 걸 본다. 한이연은 그날 밤 술취한 동치성을 여관에 데려다 눕힌다.

복선 5. 동치성은 9회말 투아웃에 역전을 당한다. 관중석에서 여자가 어떤 소리를 질렀고 동치성은 그 소리를 듣고 얼어붙는다. 그 여자는 어떤 남자에게 “사랑이 뭔줄 알아?”라고 외쳤다. 동치성은 투수에서 강등돼 2군 외야수로 떠돈다.
확인 5. 살인범은 야구장에서 “사랑이 뭔줄 알아?”라고 외치던 여자였다.

복선 6. 한이연과 동치성은 한 동네에 산다.
확인 6. 한이연과 동치성의 부모님들은 동네에서 단체로 해외 여행을 갔다가 비행기 사고로 모두 죽었다.

복선 7. 한이연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동치성의 집 담벼락에 기대 동치성의 방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다. 한이연은 분필로 담벼락에 자기 키만큼 표시를 한다.
확인 7. 한이연은 아픈 동치성을 위해 날마다 약을 달여서 동치성의 집을 찾아온다. 동치성은 창문 밑에 서있는 한이연의 키를 재 분필로 담벼락에 표시를 한다.

복선 8. 두 사람의 동네에 도둑이 든다. 동치성이 그 도둑을 잡았다가 딱한 사정을 듣고 돌려 보낸다. 도둑은 선물로 훔친 핸드백을 하나 놓고 간다.
확인 8. 도둑이 놓고 간 핸드백 때문에 동치성은 도둑으로 몰린다. 동치성의 집에 경찰이 몰려들고 동치성은 한이연의 집에 머물기로 한다.

복선 9. 핸드백의 주인은 살해됐다고 한다. 동치성은 이제 살인범으로 몰릴 판이다.
확인 9. 동치성은 경찰에 잡혀갔다가 풀려난다.

복선 10. 한이연은 야구를 잘 모른다. 텔레비전을 보던 한이연은 투수가 땅볼을 잡아서 1루로 안던지고 관중석으로 던지면 참 재미있겠다고 말한다.
확인 10. 동치성에게 투수로 뛸 기회가 주어진다. 동치성은 기대 이상으로 잘 던진다. 그러나 9회말 투아웃 상황, 동치성은 땅볼을 잡아서 관중석으로 던진다. 야구장은 순간 얼어붙는다. 동치성의 선수 생활은 정말 끝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 까짓거 상관없다. 한이연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다.

복선 11. 살인범은 죽은 여자 때문에 실연당한 여자라고 한다.
확인 11. 여자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트럭에 치어 죽는다. 붕 떠오른 짧은 순간, 여자와 동치성은 눈을 마주친다. 죽어버리면 영원히 남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살아있어야 사랑도 하는 거다.

복선 12. 의사가 동치성의 집을 찾아오지만 경찰들 밖에 없다.
확인 12.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동치성은 경찰이 건네준 의사의 쪽지를 읽는다.

죽을 거라고 생각하고 모든 걸 다 버리고 아무렇게나 부딪혔는데 갑자기 죽지 않게 된 남자,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이 남자 주위를 맴돌았던 여자의 이야기다. 많은 걸 잃었지만 동치성에게는 그래도 이제 첫사랑과 술버릇과 내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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