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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 2’를 보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2, 2004

슈렉은 못생겼고 가난하다. 피부색부터 다르다. 진흙탕에서 살고 입 냄새도 고약하다. 사람들은 슈렉을 무서워하거나 싫어한다. 슈렉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다. 차별과 소외, 무관심과 냉대, 적의에 그는 익숙하다. 그는 사회적 약자고 소수자다.

1편의 마지막 장면, 마법에서 풀려난 피오나 공주가 여전히 괴물에 머물렀을 때 우리는 실망하면서도 안도했다. 공주가 꼭 예쁠 이유는 없다. 못생긴 괴물이라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석연치는 않았지만 그때만해도 ‘슈렉’은 동화의 그야말로 동화적인 이데올로기를 뒤집는 것처럼 보였다.

2편에서 슈렉은 마법 덕분에 잠깐이지만 건장하고 멋진 청년으로 변신한다. 잠깐이지만 그때 그는 더이상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남들이 갖지 못하는 것을 갖는다는 건 정말 신나는 일이다. 그가 지나갈 때 동네 여자들은 황홀한 눈길로 그를 쳐다본다.

피오나 공주도 마찬가지다. 사람일 때 피오나 공주는 정말 예쁘다. 그러나 슈렉과 피오나 공주는 사람으로 머물기를 거부하고 기꺼이 다시 괴물로 돌아간다. 그리고 두 괴물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

2편에서 ‘슈렉’은 동화의 위선과 허구를 뒤집기는커녕 확대 재생산한다. ‘슈렉’은 동화의 이데올로기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다. 슈렉은 결국 진흙탕으로 돌아가고 다시 사회적 약자로 머문다. 사람들은 슈렉과 자기 자신을 결코 동일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슈렉이 동화를 침범하거나 훼손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안도한다.

‘슈렉 2’의 해피엔딩은 슈렉이 조롱하는 그 어떤 동화보다도 더 억지스럽다. ‘슈렉’은 동화의 허황된 이데올로기를 더욱 공고히 한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슈렉’은 동화를 부정하는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동화에서 배제한다. 왕자와 공주의 동화는 여전히 동화로 남고 다만 슈렉이 거기에 합류할 자격이 없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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