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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영화제에 가다.

Written by leejeonghwan

May 25, 2003

몇년 전 일이다. 전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자리의 외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책 표지 사진을 봤던 모양이다.

캐나다에서 온 초등학교 교사라는데 대학원에서 노암 촘스키를 전공했다고 했다. 머리를 뒤로 묶고, 짧은 반바지에 깊은 갈색 눈이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러면서 나보고 촘스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떠듬떠듬 안되는 영어로, 언어학은 잘 모르겠지만 요즘 친구들과 신자유주의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모임의 목표는 신자유주의에 맞설 대안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도 했다. 네오 리버럴리즘이니 얼터너티브 이데올로기니 생각나는대로 꿰어맞춘 말들을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모르겠다. 그는 휴가를 내서 일본과 우리나라에 배낭여행을 하러 왔는데 여기서 촘스키를 읽고 있는 사람을 만날줄 몰랐다면서 너무 반가워했다. 편지 보내라고 이메일 주소까지 적어줬는데 잃어버렸다.

그때 노암 촘스키의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를 나는 밑줄을 그어가면서 세번 읽었다. 열심히 읽었던 책이고 정말 아끼는 책이었는데 친구에게 빌려주고는 아직 못받았다. 책이야 다시 사면 되겠지만 밑줄과 틈틈이 적어넣은 메모가 자꾸 아쉽다.

그해 신자유주의 세미나 모임은 결말을 맺지 못하고 흩어졌다.

어제 지희가 전화를 걸어와서 인권영화제 이야기를 했을 때만 해도 나는 심드렁했다. 그런데 첫날 두번째 프로그램이 노암 촘스키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오후 일을 빼먹고 영화를 보러 갔다.

아니나 다를까. 영화는 꽤나 지루했고 나는 10분을 못 넘기고 쿨쿨 잠이 들어버렸다. 다큐멘터리 영화라도 좀 재밌게 만들면 안되나. –; 이런 영화는 도무지 적응이 안된다.

그래도 작고 아늑한 극장, 아트큐브가 너무 마음에 들었고 그 앞 푸드코트의 야채볶음밥도 너무 맛있었다. 일 빼먹고 놀러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스무번쯤 들었다. 풀다 만 과제들이 다시 머리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노암 촘스키는 말한다. “당신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결국 당신의 몫이다.”

노암 촘스키는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폭력에 맞서 싸우는 우리 시대의 가장 용감하고 씩씩한 지식인이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를 읽으면서 나는 피가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는 이정환 추천도서다. 깜짝 놀랄만한 책이니 반드시 읽어볼 것. 관심있는 사람들은 직접 촘스키 사이트에도 들러보기 바란다. http://www.zmag.org/chomsky, http://mitpress.mit.edu/e-books/chomsky. 촘스키가 쓴 모든 책의 내용이 모두 여기에 올라있다. 큰맘 먹고 제대로 공부를 시작해봐도 좋을 것 같다.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까, 오늘은 여기까지만.

아래는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가운데 뽑아 모음.

– 신자유주의는 상대적으로 소수인 이익 집단이 그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가능한 한 많은 분야에서 사회를 지배하도록 허용한 정책과 조치를 가리킨다.

–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경제에 미쳤던 영향은, 사회와 경제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었고, 가난한 나라와 그 국민은 극심한 손실을 감수해야 했으며, 세계적인 환경 재앙을 불러왔다.

– 미국을 예로 들면, 양대 정당은 업계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기업이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따라서 두 정당은 새로운 정당, 즉 업계가 아닌 다른 이익 단체를 지원 세력으로 삼으려는 정당의 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시키고 있는 현행법을 개정할 움직임조차 없다. 공화당과 민주당에 대한 불만이 빈번하게 표출되고 있더라도 선거 정치는 경쟁과 자유 선택이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는 빈 껍데기일 따름이다.

– 미국의 선거 정치를 예로 들면, 상위 0.25%의 부유층의 지원이 개인 정치 헌금의 80%를 차지하고 있으며, 업계의 헌금은 노동계 헌금의 10배에 달한다. 신자유주의하에서, 이런 차이는 분명한 뜻을 갖는다. 선거는 시장 원리를 반영하는 것이며, 정치 헌금은 궁극적으로 투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결과로 대부분의 국민은 선거 정치에 무관심해지고, 그 대신 저항 없는 기업의 지배 보장된다.

–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국민 사이에 일정한 공감대가 마련되어야 하며, 그런 공감대는 시장 원리와 상관없는 조직이나 제도를 통해서 표현된다. 활기찬 정치 문화를 위해서는 국민이 서로 만나서 생각을 교환하며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공동체, 도서관, 공공학교, 친목단체, 협동조합, 만남의 장소, 자원봉사단체, 노동조합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시장이 전능하다고 여기는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이런 부문에 전혀 관심이 없다. 신자유주의는 시민이 아니라 소비자를 만들어 내며, 공동체가 아니라 쇼핑센터를 만들어 낼 뿐이다. 그 결과로 기가 꺾이고 사회적인 무력감을 호소하며 뿔뿔이 흩어진 개인만이 존재하는 원자 사회가 남게 된다.

– 시장은 결코 공정한 경쟁터가 아니다.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지닌 거대 기업이 대부분의 경제를 지배한다.

– 정부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비대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떳떳하게 빈곤층과 노동자를 무시하고 있다.

– 세계화는 강력한 정부, 특히 미국 정부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기업계와 부자들이 세계 시민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지지 않으면서 세계 경제를 보다 쉽게 지배할 수 있도록 무역 등에 관한 협정을 강요한 것이다.

– 당신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결국 당신의 몫이다.

– 시장 경제 논리는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된다. 첫째는 힘없는 나라에 강요된 공식적인 주장이고, 둘째는 실제로 존재하는 시장경제 논리이다. 달리 말해서 시장 원리의 적용 방식은 ‘당신에게는 시장 원리가 좋다. 그러나 명백하고 즉각적인 이득이 없다면 내겐 부적절하다는 식이다.

– 신자유주의는 힘있는 사람이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교묘하게 포장한 이론, 결국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만이 준엄한 신자유주의의 시련을 감내해야 한다.

– 주인을 위해서는 아니더라도, 노동자를 위한 정부 정책은 언제나 공정하고 정당해야 한다.

– 노동자가 외부의 통제를 받으면서 일하게 될 때, 우리는 그가 하는 일에 찬양을 보내지만, 그의 직업에 대해서는 경멸을 보낸다.

– 올바른 민주 사회는 피지배자들의 동의라는 원칙에 기초를 두어야만 한다. 이 원칙은 사람이 지배받고 통제받아야만 한다는 뜻을 품고 있기 때문에 너무 강경한 원칙이지만, 한편으로 비인도적인 지배자까지도 폭력으로만이 아니라 지배받는 사람들의 동의를 일정하게 묻고 보편적인 동의를 얻어내야 하기 때문에 너무 미약한 원칙이다.

– 흄은 다수가 소수에 의해 지배되는 편안함, 결국 다수가 소수의 지배자에게 운명을 내맡기는 암묵적인 굴복이라는 현상에 흥미를 느꼈다. 힘은 언제나 지배받는 다수에게 있었기 때문에 너무도 놀라운 현상이었다. 사람들이 그런 힘의 논리를 깨닫게 된다면, 언제라도 궐기해서 지도자를 전복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흄은 정부가 여론의 통제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는 가장 전제적이고 가장 군사적인 정부뿐만 아니라 가장 자유롭고 가장 민주적인 정부에까지 확대되는 원리였다.

– 자유롭고 민주적인 정부일수록 지배자에 대한 굴복을 보장받기 위해서 여론 통제에 더욱 의존해야만 했다.

– 국민의 복종은 어떤 시대에서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민주국가에서도, 피지배자들은 동의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현대의 진보주의적 개념에서도, 진정한 힘을 대표하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국민은 방관자이지 참여자는 아니다. 참여자로서의 역할은 정치의 장에서 끝난다. 보통 사람들은 경제의 장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하지만 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부분 경제의 장에서 결정된다. 여기에도 대중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 폭력의 사용이 제한받게 될 때, 피지배자들의 동의는 소위 여론 조작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얻어내야만 한다.

– 거대 기업이 생산, 유통, 광고, 운송 및 통신 수단을 지배하고, 언론과 언론 매체 그리고 광고와 선전이라는 다른 수단을 지배함으로써 국가의 삶을 지배하게 될 때 민주주의는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에서 노동자는 고용주가 임대한 도구가 아니라 각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주체가 되어야만 한다. / 듀이.

–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회 보장비를 잔인하게 삭감하면서도, 국방비의 예산은 증가시킨다. 국민은 반대하지만, 경제계에서 적극 지원하기 때문이다.

– 우리에게 살 권리가 없다면 당신에게도 지배할 권리가 없다.

– 무엇인지 알 수도 없는 사회적 제약에 우리가 얽매어야 한다고 믿어야 할 이유는 없다. 또한 인간의 의지에 당연히 종속되어야 할 제도가 만들어낸 결정에 인간 스스로가 구속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이제 우리는 그런 제도의 적법성을 따져보아야만 한다. 그리고 제도가 적법하지 못하다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보다 자유롭고 보다 공정한 다른 것으로 바꾸어가야 할 것이다.

– 1985년을 기준으로, 1만 6천 명의 쿠바인이 제3세계에서 봉사 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미국에서 파견한 평화봉사단과 AID전문가를 합한 것보다 두 배나 많은 인원이었다. 1988년, 쿠바는 어떤 선진 산업국보다, 또한 유엔의 WHO(세계보건기구)보다 많은 의사를 해외에 파견하고 있었다. 대부분이 무상 지원이었다.

– 기회가 없는 자유는 악마의 선물이며, 그런 기회 제공을 박탈하는 것은 범죄이다.

– 자본에 의한 노동의 완전한 종속.

– 미국의 입김이 가장 크게 미쳤던 나라에서는 진보의 흔적을 찾을 것도 없었다. 민주주의로 진보가 있었던 나라에서 미국의 역할은 미미했거나 부정적이었다. 캐로더즈의 결론에 따르면, 미국은 비민주적인 사회의 기본 질서를 유지하면서 민중에 근간한 변화를 피하려 애썼으며, 미국과 오랫동안 동맹 관계를 맺어온 전통적인 권력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우 제한적인 상의하달(top-down)식의 민주적 변화를 꾀할 수밖에 없었다.

– 1992년 유엔의 한 개발 보고서에 따르면, 1960년대부터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격차는 부유층에 대한 보호조치에서 상당 부분 비롯된 것이다.

– 세상이 돌아가는 것은, 이름 없는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헌신적이고 용기 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다.

– 시장 경제는 불평등과 대다수 국민의 소외를 가속화시킬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해도 좋을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다.

– 부유층과 특권층이 내세우는 효율성과 경제의 건강이란 개념은 대다수 국민에게 아무런 혜택도 안겨주지 않는다. 대다수 국민은 어떤 이익도 누려보지 못하고 빈곤과 절망으로 내몰릴 따름이다.

–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하게 되면서, 그 결과로 노동자는 고통받고 있다. 또한 엄청난 규모의 투기성 자본은 해당 정부의 정책을 좌우할 만큼 강력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 많은 복합적인 이유 때문에 세계는 저임금과 저성장 그리고 고이윤의 사회로 변해가면서 양극화와 사회 분열이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

– 개인이 여론의 장에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민주주의가 가능하게 된다. 권력의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으면서,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나름대로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하는 법이다. 따라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물질적 자원, 정보 자원 등에 접근할 수 있는 상대적인 평등이 전제되어야 한다.

–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의사 결정을 여론의 장에서 ‘책임 없는 제도권’으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책임 없는 제도권이란 왕과 왕자, 성직자 계급, 군사 정부, 독재 정권, 혹은 요즘의 기업을 뜻한다.

– 권력층의 가치관이 공평 무사하게 행사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법이 가난한 사람을 압박하고, 부자가 그런 법을 만든다.

– 아무리 멋진 말로 포장된 법이라도 운영이 문제인 것이다.

– 1997년 현재, 상장된 주식의 절반을 상위 1%의 부자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상위 10%가 거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 못된 생각이 세력을 얻는 것은, 힘 있는 집단의 이해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 지난 25년 동안 성장률과 생산성은 눈에 띄게 감소되었다. 반면에, 대다수 국민의 임금과 수입은 정체되었거나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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