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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의제 설정 시스템, 검색과 기사의 네트워크.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1, 2020

“저 섬유유연제 다우니에 어도러블 뭐시기 저시기 쓰고 있어요.”

‘다우니 어도러블’이라는 ‘인기 검색어’가 처음 뜬 건 2019년 1월20일 오후 10시38분이었습니다.

이날 저녁 방탄소년단의 정국이 팬 카페 채팅에서 어떤 섬유유연제를 쓰느냐는 질문에 “다우니 어도러블 뭐시기 저시기”라고 답변을 남긴 뒤 순식간에 품절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른바 ‘실급검’에 떠서 사흘 뒤인 1월22일까지 60시간 이상 ‘인기 검색어’ 순위에 머물렀습니다.

첫 기사가 뜬 것은 다음날인 1월21일 오후 2시2분이었고요. 검색어가 기사 보다 15시간 이상 빨랐던 거죠. 1월21일부터 1월25일까지 나흘 동안 무려 220여건의 기사가 계속 쏟아졌습니다.

언론 보도는 쿠팡과 위메프 등에서 특가 판매가 시작되고 품절 대란이 한바탕 지나간 뒤에 나왔습니다. 그 사이에 BTS 팬들이 수없이 ‘다우니 어도러블’을 검색했는데 관련 기사는 없었던 것이죠.

첫 번째 뉴스레터에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을 좀 했습니다만,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오늘은 ‘인기 검색어’ 이야기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중간에 있는 동영상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건 제가 지난 몇 달 동안 매달려 있었던 그림 가운데 하나입니다.

2019년 8월 한 달 동안의 검색어와 기사의 분포를 나타낸 것인데요. 파란색 점은 네이버에서 6시간 이상 지속된 ‘인기 검색어’고요. 빨간색 점과 노란색 점은 네이버 ‘많이 본 뉴스’입니다. 빨간색 점은 ‘인기 검색어’로 검색되는 기사들입니다.

검색어와 기사의 연결 관계를 표시해 보면 다음과 같은 그림이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2018년 11월부터 2020년 8월까지 670일 동안 ‘인기 검색어’ 195만407건과 ‘많이 본 뉴스’ 14만4900건을 분석했더니 ‘많이 본 뉴스’ 가운데 16.98%가 6시간 이상 지속된 ‘인기 검색어’와 연결되는 기사였습니다. 조회 수 비중으로는 21.50%였습니다.

1. 언론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사와
2. 사람들이 궁금해서 찾아보는 기사와
3. 실제로 많이 읽은 기사가 다 다르다는 것인데요.

기사 조회 수에 따라 분포를 그려보면 다음 그림과 같습니다.

아래의 동영상은 670일 분량의 데이터를 날짜별로 나타낸 것입니다. 눈여겨 보실 부분은 ‘인기 검색어’와 연결되는 기사들이 조회 수가 상대적으로 더 높다는 사실입니다. 평균 조회 수가 26.67%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동영상을 들여다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의제설정(agenda setting) 이론이 처음 나온 게 1968년입니다. 언론이 강조하는 이슈가 실제로 중요한 이슈로 받아들여진다는 이론인데요. 언론이 독자들에게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what to think about)를 말해주기도 하고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how to think)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는 겁니다. 50년이 넘은 이 이론이 아직도 유효할까요?

최근 연구에서는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이 약화된 반면, 미디어 이용자들이 의제파급(agenda rippling)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미디어 이용자들이 만든 의제가 공중의 의제로 확대되는 역의제설정(reversed agenda setting)도 중요한 화두입니다. 공중의 의제가 5~7개 이상을 넘어가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세요. ‘펭귄문제’라는 ‘인기 검색어’가 뜨고 4시간 뒤에 기사가 뜨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47시간 동안 ‘인기 검색어’ 순위가 지속됐고 무려 339건의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100만 뷰 이상을 기록한 기사도 있었고요. 이 정도면 전체 조회 수 합계가 1000만 뷰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지난 9월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의 “카카오 들어오라 하세요” 메시지로 공정성 논란이 확산되자 네이버가 ‘많이 본 뉴스’를 없애 버렸죠. ‘많이 본 뉴스’ 210건은 기사 수로는 0.35% 정도지만 네이버 전체 뉴스 페이지 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 정도 됐습니다. 이 기사들이 한국 사회의 여론을 흔드는 기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이 본 뉴스’와 ‘인기 검색어’의 네트워크를 살펴보니 실제로 하루 10개 안팎의 의제가 한국 사회를 지배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의 고민은 도대체 어떤 이슈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어떤 이슈는 관심을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이슈를 공중의 의제로 끌어올리고 싶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인공지능이 뉴스를 편집하는 시대, 사람들의 관심이 알고리즘의 핵심 변수 가운데 하나라면, 나의 관심은 사적일 뿐이지만 우리의 관심은 투표가 되고 정치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검색이 권력이 되는 시대, 달라진 의제설정의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요. 사례를 몇 가지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언론사망’이라는 ‘인기 검색어’가 등장한 것은 조국 기자간담회 다음날인 2019년 8월29일 새벽 5시23분이었습니다. 이에 앞서 딴지일보 게시판에 “가짜뉴스아웃-내일은 ‘한국언론사망’ 합시다”라는 제목의 글의 올라온 게 8월28일 오후 5시12분. 실제로 밤 사이에 검색이 쏟아지면서 다음날 새벽 ‘인기 검색어’ 리스트에 뜨기 시작했고 이튿날까지 ‘한국언론사망’이라는 ‘인기 검색어’ 현상을 다룬 기사가 135건이나 쏟아졌습니다.


‘제주도 카니발 폭행 사건’은 커뮤니티 사이트 보배드림에서 처음 알려진 사건이었습니다. ‘인기 검색어’가 36시간 동안 ‘인기 검색어’에 머물러 있었고 사흘 동안 197건의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대림동 여경’이나 ‘벌떡 떡볶이’, ‘여행에 미치다’ 등의 검색 주도형 이슈가 공중의 의제로 떠오르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나 ‘이수역 폭생 사건’도 마찬가지고요.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시작한 이슈가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설악산 흔들바위 추락” 같은 만우절 조크가 인기 검색어에 올라 뒤늦게 기사가 쏟아진 적도 있었습니다. 연합뉴스와 동아일보, 한국일보 같은 주류 언론사들도 낚시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이런 가십성 이슈들이 ‘인기 검색어’와 ‘많이 본 뉴스’와 맞물리면 관련 기사가 쏟아지면서 수백 만 명이 공유하는 이슈가 되죠.

개가 사람을 물면 기사거리가 안 되고 사람이 개를 물면 기사거리가 된다고들 하지만 어떤 이슈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면 기사거리가 됩니다. “조국 힘내세요”와 “조국 사퇴하세요”가 경쟁하는 것처럼 검색이 집단적인 의사 표현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언론의 집중을 받기 어려웠을 사건 사고 이슈가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화제가 되면서 ‘인기 검색어’로 이어지고 대형 이슈로 발전하는 사례를 숱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핵심은 뉴스 콘텐츠도 주목(attention)의 시장에서 하나의 상품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경쟁 상품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요. 뉴스 생산자들은 끊임 없이 ‘이것이 중요해’라고 메시지를 던지지만 대부분의 메시지가 독자에 게 이르지 못하고 소멸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뉴스 생산자들은 끊임 없이 독자들의 관심 을 좇지만 동시에 독자들의 관심을 일깨우는 전략을 고민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의제가 있다면 ‘이 것이 왜 중요한가’를 끊임 없이 독자들에게 설득하고 토론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의제설정 메커니즘의 모든 변수를 파악하거나 추적할 수 없습니다. 다만 과거에는 의제설정이 언론의 사회적 책임의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대중의 집단지성 또는 일시적인 관심 집중이나 선정적인 여론 조작과 정치적 선동 또는 상업 적 동기의 마케팅 이벤트 등이 공중의 의제설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검토해야 합니다. 일련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검색이 주도하는 이슈는 대부분 가십거리거나 뒤늦게 대중 매체가 뛰어들어 이슈를 부풀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언론이 대중의 관심을 좇아 트래픽 경쟁에 올라타면서 더 중요한 이슈가 가려지거나 지엽적이고 선정적인 이슈가 과장되고 뉴스 회피 현상을 가속화할 가능성도 우려됩니다. 대중이 선정적인 이슈를 좇는다고 무시할 게 아니라 이들이 모두 주목의 경쟁 시장에서 전통적인 뉴스와 경쟁하는 대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의제설정 시스템을 복원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는 게 제 논문의 결론이었습니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오늘 뉴스레터는 제가 최근에 쓴 논문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구성했습니다. (기사와 논문은 정말 다르군요. 기자들이 잘 쓴 기사를 보면 이거 거의 논문이네, 하곤 했는데 역시 논문은 논문입니다. 곰국이고요.)

언론의 의제설정 능력의 복원과 건강한 공론장과 토론 문화 구축, 민주주의의 확장을 위해서라도 포털 저널리즘과 소셜 미디어 플랫폼, 커뮤니티 기반의 의제 파급 효과 등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알고리즘에 대한 감시와 비판, 플랫폼의 공정성과 다양성 확보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미디어X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다른 포맷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뉴스레터를 시작합니다.

몇 가지 링크.

카르텔이 된 기자단 논란.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List.html?sc_serial_code=SRN160

미디어오늘이 법조 기자단 해체를 요청하는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취재 편의 차원을 넘어 다른 언론사들의 정보 접근권을 제한하고 외부의 감시와 비판을 차단하는 낡은 관행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기자들이 임의로 엠바고를 설정하고 담합하는 오래된 관행도 사라져야 합니다. 소송 비용이 꽤 부담됩니다만, 지더라도 해볼 만한 소송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심 갖고 응원해 주십쇼.

‘서울대 출신’ 아니면 언감생심 조선일보 편집국장.

1968년부터 조선일보 편집국장들의 출신 학교를 분석해 봤더니 일본 와세다대학교를 나온 유건호씨를 빼고는 26명이 모두 서울대학교 출신 남성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조선일보 기자 2명 가운데 1명이 서울대 출신이라고 하지만 뭔가 독특한 기업 문화인 것은 분명합니다. 미디어오늘이 2000~2017년까지 조선일보가 진행한 신입 공채 20건을 조사한 결과 신입 기자 232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 합격자는 109명이었습니다. 전체의 약 47% 수준.

주니어 미디어오늘 001호 : 리터러시, 나쁜 뉴스 해독제.

미디어오늘이 10대를 위한 미디어 비평 잡지, ‘주니어 미디어오늘’을 창간했습니다. 월간지로 계속 갈지, 무크북 형태의 기획 출판으로 갈지, 온라인 미디어로 갈지, 아니면 멤버십 형태의 오프라인 커뮤니티로 갈지 등등 여러가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살펴보시고 의견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고래가그랬어’나 ‘독서평설’처럼 10대 시장이 타겟이고요. 즐기는 미디어로 접근하고 토론과 비판적 사고를 다룹니다.

가르치려 드는 언론 통하지 않는 시대.

월간 신문과방송이 50주년 기념호를 찍었습니다. 600호 커버스토리에 기고한 글입니다.

“이제는 기자가 뭔가를 틀어쥐고 있으면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 세상이 아니고 기자들이 뭔가를 외친다고 해서 그렇게 바뀌는 세상도 아니다. 신문사와 방송사 다 해봐야 몇 군데 안 되던 시절에는 그런 게 가능했겠지만 문제는 아직도 많은 기자가 그 시절 신문을 만들고 방송을 만들던 방식으로 현장에 접근한다는 데 있다. 지금은 기자들에게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진단과 분석을 요구하는 시대다.”

누가 이슈의 중요도를 결정하는가.

오늘 소개드린 논문 “누가 이슈의 중요도를 결정하는가 : 의제설정 이론으로 본 네이버 ‘인기 검색어’와 ‘많이 본 뉴스’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을 몇십 부 여유있게 찍었습니다. 뉴스레터 구독자 한정, 혹시 관심 있는 분은 보내드리겠습니다. 풀 컬러 인쇄라 인쇄비+배송료는 부담하셔야 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답장 주세요.

(이번주부터 시작한 미디어X 뉴스레터에 실어 보낸 글입니다. 구독하시려면 아래에서 신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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