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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을 읽다.

이게 뭐야. 비슷한 줄거리의 하다가 뚝 끊긴 같은 세 이야기. 이런 이야기에 나는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다.

첫번째 이야기, 유리의 도시.

퀸은 잘못 걸린 전화를 받고 엉뚱하게 탐정 노릇을 하게 된다. 교도소에서 막 나와 자기 아들을 죽이려는 미친 아버지를 감시하는 일. 그런데 13년만에 세상에 나온 이 남자는 딱히 아무일도 하지 않는다. 날마다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맴돌뿐이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관찰하는 일은 꽤나 지루하고 막막하다. 어느날 퀸은 방심하고 있다가 이 남자를 놓친다. 불쌍한 아들은 두려움에 떨고 퀸은 그 집앞 골목에 숨어 미친 아버지를 기다린다.

“그는 언제나 자신을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겨 왔다. 그리고 실제로도 지난 5년 동안 적극적으로 혼자 있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고독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골목안에서의 삶이 계속되고 있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이제 그는 자기 자신 말고는 기댈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 또 그가 거기에 있던 동안 알아내게 된 모든 일 가운데 가장 믿어 의심치 않은 것도 바로 자기가 추락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몇달 뒤 골목에서 나와 정신을 차렸을 때 미친 아버지는 이미 죽고 없었고 불쌍한 아들과 그의 부인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두번째 이야기, 유령들.

블루는 탐정이다. 화이트에게 돈을 받고 길 건너 아파트의 블랙을 감시한다. 블랙은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를 쓰고 있다. 가끔 ‘월든’을 읽기도 한다. 그런 블랙을 하루종일 지켜보는 블루는 고독하고 가끔 이런 막막한 상황이 지독하게 두렵다. 블루는 아무 의미도 없는 보고서를 쓴다. 어쩌다가 이런 일에 말려든걸까.

“이제 갑자기 그 보이는대로의 세계가 그에게서 멀어지고 블랙이라는 이름의 희미한 그림자 외에는 볼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게 되자, 예전 같았으면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을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난감해지기 시작한다. 길 건너편에서 블랙을 염탐하는 일이 블루에게는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고, 그래서 자기가 그저 남을 지켜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삶의 속도가 그처럼 극적으로 느려져 있어서 블루는 이제 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놓쳐 버렸던 것들까지도 볼 수 있다.”

견디다 못한 블루는 마침내 블랙을 직접 만나 말을 걸고 블랙도 탐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더 놀랍게도 블랙은 누군가를 하루종일 감시하는 일을 맡고 있다고 한다. 블루는 혼란에 빠진다.

블루는 다음날 블랙의 아파트로 건너가 블랙을 죽인다. 블랙은 말한다. “블루, 그거 모르나? 당신은 이 모든 이야기를 이미 알고 있었어.”

세번째 이야기, 잠겨 있는 방.

친구의 부인이 편지를 보내왔다. 남편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서 돌아오지 않는데 죽은게 틀림없다. 그 사람이 쓴 원고가 잔뜩 쌓여 있는데 당신이 처분해달라. 그게 그 사람의 유언이었다.

펜쇼는 내 가장 친한 친구였지만 나는 뛰어난 재능을 갖춘 그를 늘 질투했다. 나는 그의 원고를 가져다 출판했고 책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그리고 부자가 된 그의 부인과 결혼까지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어딘가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를 굳이 찾고 싶지는 않았지만 유명작가가 된 그의 전기를 쓰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된다.

“펜쇼가 거기 있었다. 내가 아무리 그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것은 예상치 못했던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그를 더는 찾지 않으려고 했더니 그가 더 가까이에 있었다. 나는 펜쇼를 찾으려는게 아니라 달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펜쇼는 바로 내가 있는 곳에 있었다.”

결혼 생활은 결국 파탄이 났다. 결론은 여기서도 좀 엉뚱하다. 펜쇼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서 노트를 한권 건네준다. 그리고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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