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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의 불가능한 욕망, 언론이 해결사로 나섰나.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25, 201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병세가 호전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말을 걸면 눈을 깜박거리는 정도라 여전히 경영 일선에 복귀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삼성그룹은 이 와중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을 삼성화재에 넘기고 삼성생명이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을 넘겨받기로 했다는 공시가 떴다. 거래는 주말을 지나 16일에 이뤄졌다.


‘이재용 왕국’으로 가는 가장 큰 걸림돌은 국회에 계류돼 있는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7.6% 보유하고 있는데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내다 팔아야 한다. 이건희 회장은 그동안 삼성생명 보험 가입자들이 낸 보험금으로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여 삼성전자와 다른 계열사들을 지배해 왔는데 이재용 회장 시대에는 이런 간접적인 지배구조가 불가능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현행 보험업법에서는 보험회사가 취득원가 기준으로 자기자본의 60%, 총자산의 3% 이내에서 계열사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 그러나 개정안에서는 취득원가가 아니라 시가로 계산하게 된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등 계열사 지분의 취득원가는 4조원이 안 되지만 시가로 계산하면 19조원에 이른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이 가운데 15조원 가까이를 처분해야 한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지분 맞교환은 보험업법 개정안 통과에 대비해 계열사 지분을 정리하고 삼성생명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맞교환 이후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지분을 14.98%, 삼성증권을 11.14%, 삼성카드를 34.1%씩 보유하고 있는데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추가로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삼성카드의 최대주주는 37.45%를 보유한 삼성전자인데 삼성생명이 이 지분을 일부 넘겨받아 최대주주가 돼야 한다.

삼성생명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기까지는 몇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금융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상장 기업의 경우 30%, 비상장 기업의 경우 50% 이상 확보해야 한다. 삼성화재나 삼성증권 등의 지분을 추가로 사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금융 계열사들이 보유한 비금융 계열사들 지분을 내다 팔아 현금을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와 삼성중공업, 호텔신라 지분을 각각 7.6%와 3.4%, 7.3%씩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내다 팔면 이건희 일가가 삼성전자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는 데 있다. 이건희 일가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4.7% 밖에 안 된다. 삼성이 계속해서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을 흘리면서도 미적거리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삼성생명을 계열 분리하려면 삼성전자까지 잃게 되고 삼성생명을 가져가려면 금융산업 분리 원칙이나 보험업법 개정안 등이 발목을 잡는 상황이다.

최근 언론 보도에서는 이런 복잡한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우선 머니투데이가 지난 4일 “삼성그룹 지배구조 전환의 밑그림은 지주회사 전환이 아니라 현행 지배구조 유지를 통한 3남매의 삼성그룹 분할”이라고 분석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이 신문은 “지주회사요?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라고 익명의 삼성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지주회사 전환에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금융지주회사법 등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머니투데이 보도는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지주회사로 갈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해석하면 법을 바꿔주면 지금 이대로 남고 싶다는 의미도 된다. 머니투데이 보도 이후 상당수 언론이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 낮다는 보도를 쏟아냈다. 문화일보는 지난 10일 “관련법이 개정되지 않는 한 지주회사 전환에는 너무나 많은 자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삼성 그룹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조선일보도 10일 “지주회사가 선이고, 순환출자가 악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삼성그룹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중복·유사 업종을 통합하는 사업 조정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이를 자산으로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어가는 방법이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아주경제는 “지주 전환은 증권가나 언론에서 제기하는 시나리오일 뿐”이라는 삼성생명 관계자의 말을 인용 보도했다.

먼저 삼성 관계자들이 이런 발언을 언론에 흘린 맥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재용 부회장 입장에서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생명,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간접적 지배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지만 지금 이대로 가면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의결권을 일부 잃게 된다. 여기에 보험업법 개정안까지 통과되면 삼성전자 지분을 강제로 내다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렇다고 당장 지주회사 전환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삼성에버랜드 밑에 삼성생명을 중간금융지주회사로 두는 대안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중간금융지주회사는 도입하자는 논의만 있었을 뿐 아직 허용돼 있지 않다. 결국 법이 바뀌지 않는 이상 지주회사로 갈 수도 없고 안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어떤 경우든 삼성 특혜라는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파이낸셜뉴스는 지난 16일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회사 전환 작업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보도했고 매일경제도 14일 “이번 거래는 삼성생명의 중간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염두에 둔 차원으로 해석된다”고 보도했다. 상당수 신문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기정사실화하면서 바람을 잡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정권 차원에서 돕지 않으면 지주회사 전환이 어렵다는 의미가 깔려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딜레마는 적은 지분으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둘 다 움켜쥐려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건희 회장 때는 온갖 편법으로 가능했지만 이제는 둘 중의 하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삼성생명 가입자들의 보험금으로 삼성전자를 우회 지배하면서 회장 행세했던 그런 아름다운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흥미롭게도 삼성그룹이 지주회사로 전환할 가능성이 낮다고 보도하는 신문들이 정작 지금의 순환출자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고 있다. 분명한 것은 삼성생명이 확보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은 어떻게든 정리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만약 계속 버티면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게 줄어들 것이고 자칫 경영권을 빼앗길 우려도 있다. 삼성전자를 잃으면 다른 계열사들도 잃게 된다.

지주회사 전환이 바람직한 대안인지도 의문이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18일 경향신문 칼럼에서 “과거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미래의 거듭남을 위해서는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지난 9일 기사에서 “후진적 순환출자 구조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지배구조 개선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진보적 성향 신문들도 경제개혁연대 등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주회사를 재벌 체제의 대안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일찌감치 지주회사로 전환한 SK그룹의 사례에서 보듯 지주회사 체제가 총수의 전횡을 견제하지 못한다는 게 입증된 바 있다. 오히려 지주회사 전환 이후 총수 일가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SKC&C처럼 지주회사 외부의 자회사를 통해 편법 세습을 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남아있다. 삼성 입장에서도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둘 다 가져가면서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지주회사 전환이 어렵다는 보도나 지주회사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는 보도나 너무 나간 건 마찬가지다. 현재로서는 둘 다 법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고 원칙적으로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어느 신문에서도 이런 사실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고 있다. 삼성은 배짱을 튕기며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언론이 애가 타서 바람을 잡고 있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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