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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들이 KT 이사회를 모두 납치한다면….

Written by leejeonghwan

November 19, 2013

조셉 그런드페스트 미국 스탠퍼드대 법학과 교수가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외계인들이 어느날 갑자기 이사회 이사들을 모두 납치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들이 알아차리기나 할까. 회사는 이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얼마나 돈을 쓸까. 또는 이사들을 돌려보내지 말아달라고 돈을 내놓지는 않으려나.” ‘비즈니스 에틱스’ 편집장 출신의 마조리 켈리가 쓴 ‘주식회사 이데올로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론상으로는 이사회의 이사는 주주가 선출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CEO(최고경영자)와 이전 이사회의 이사가 새로운 이사를 선별하고 주주는 승인 도장을 찍을 뿐이다. 이사회는 주주의 이해관계에 따라 기업을 통치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저 CEO를 고르거나 CEO가 나머지를 다 처리한다. 어쩌다 한 번 인수나 합병 제안에 대해 의결하기도 하지만 그 뿐이다.”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풍경 아닌가.

만약 외계인들이 KT 이사회 이사들을 한꺼번에 납치했다고 해도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 하는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이석채 전 회장의 배임·횡령 의혹이 숱하게 보도됐을 때 KT 이사회는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멀쩡한 사옥을 내다 팔고 그 사옥에 임대로 들어앉을 때도 KT 노동자들의 자살 사건이 계속되고 있을 때도 아무런 내부 비판이 없었고 심지어 이 전 회장은 지난해 연임까지 했다.

켈리는 이렇게 말한다. “외계인들이 이사들을 전부 납치해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모든 중요한 통치는 이사회가 열리기 전에 다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사회가 통치하는 게 아니라 이사회가 구현하는 사상이 통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주식시장이 구현하는 사상이 기업을 통치한다. 진실을 말하자면 주식시장이 기업 사회를 통치하는 진짜 힘이다.”

민영화 이후 KT를 흔히 ‘주인 없는 기업’이라고 말하지만 진짜 주인은 이석채였다. 그런데 그 이석채의 권력은 주주들에게 나왔다. 직원들을 자르든 말든 비관련 다각화를 하든 말든 주가가 계속해서 오르는 이상 상당수 주주들이 이석채를 지지하거나 적어도 묵인했다. 전세 보증금만 10억원에 이르는 삼성동 타워팰리스에 회장 사택을 마련하고 심지어 회장 친인척 회사에 수상쩍은 투자를 해도 주가가 오르고 두둑이 배당을 주면 모두 오케이였다.

흔히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을 때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가 발생한다고 하지만 KT의 경우를 보면 오히려 대리인들이 주주들과 적극적으로 결탁하는 양상을 보였다. 지배주주가 없기 때문에 상당수 주주들이 단기 실적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멀쩡한 사옥을 헐값에 내다 팔아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가 크게 훼손되는 데도 당장 현금이 들어오고 배당이 늘어날 거라는 기대로 주가가 뛰어오르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다.

이 전 회장은 취임 첫 해인 2009년 주당 순이익 2353원에 주당 2000원을 현금 배당, 배당 성향이 94.2%까지 치솟기도 했다. KT는 3분기 영업이익이 지난 분기 대비 11.6%나 줄어들었다. 통신부문만 놓고 보면 영업이익이 지난해 1분기 5230억원에서 올해 1분기에는 2360억원으로, 3분기에는 1470억원으로 급감하고 있다. KT는 지난해에도 주당 순이익이 2953원 밖에 안 됐는데 2000원을 배당해 고액 배당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연임에 성공하면서 “향후 3년 동안 주당 2000원 이상 배당을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KT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가장 높은 배당을 주는 기업으로 꼽힌다. 최근 이 전 회장 낙마 이후 KT 주가가 크게 흔들렸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KT는 지난 1일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배당 정책은 이미 이 회장이 말했던 것과 같이 유지된다”고 밝힌 바 있으나 실행 여부는 불확실한 상태다.

장하준 영국 캐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주주들의 이해와 경영진의 이해가 일치하는 지점이 바로 고액 연봉과 스톡옵션”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임금을 동결하거나 노동자들을 자르고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설비투자를 미루면서 이익을 늘리고 시세차익과 배당의 형태로 나눠 갖는다”는 지적이다. 장 교수는 “단기 실적을 노리고 장기적인 성장성을 희생하는 일도 벌어지는데 그게 주주 자본주의의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KT는 2010년부터 전화국 건물 38개를 내다 팔아 4330억원을 벌어들였는데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KT 내부문건에 따르면 KT는 27개 건물을 감정가보다 869억원 가까이 싸게 판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장은 줄어드는 영업이익을 만회하기 위해 자산을 내다 팔아 영업외 이익을 늘려왔다. 멀쩡한 건물을 내다 팔고 월세로 들어앉은 덕분에 10개 전화국이 지불하는 임대료만 해마다 19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이 전 회장의 연봉은 22억원을 웃도는 것으로 추산된다. KT는 2006년까지만 해도 이사 보수 한도가 35억원 수준이었는데 2008년 50억원으로 늘어났고 그 이듬해 늘어났다. KT 안팎에서는 이 회장이 챙겨가는 돈이 1년에 70억원도 넘을 거라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나돌았다. 검찰에서는 KT가 사외이사들 연봉을 올려준 뒤 되돌려 받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을 의혹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전 회장이 주주들과 결탁을 했다는 표현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면서 “오히려 제대로 된 주식시장이라면 장기적으로 주주 가치가 훼손되는 상황에서 주가가 떨어져야 옳고 주주들이 계속해서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면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일어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현실적으로는 그런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전 교수는 KT의 경우 주주 자본주의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주주 자본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는 입장이다. 이 전 회장이 경영을 잘못해서 KT의 주주 가치가 떨어졌다면 그 결과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게 주주들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주주들이 주주총회를 통해 심판을 해야 했지만 이 전 회장은 지난해 3월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당당히 연임에 성공했다.

조태욱 KT노동인권센터 집행위원장은 “KT의 특수성을 봐야 한다”면서 “외국인 주주들이 외국인 지분 한도 49%를 거의 가득 채우고 있는 상황에서 자사주 6.8%는 의결권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외국인 주주들이 의결권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조 위원장은 “통신 공공성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지분 한도를 강제로 낮추고 정부 지분을 다시 늘리는 방안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에서 활동하는 이지수 변호사는 “KT를 흔히 주인 없는 기업이라고 부르지만 지배 주주가 없고 주식이 분포돼 있는 기업들이 모두 이렇지는 않다”면서 “KT의 경우 이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아무리 이석채가 뽑은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집행임원들이야 그렇다 치고 이사회 이사들은 이석채에게 유리하고 주주들에게 불리한 사안에 명확하게 반대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이석채가 주주들과 결탁했다기 보다는 이사회가 이석채와 결탁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주들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특히 주주들이 자기 권리를 찾는 문화가 없고 국내 기관 투자자들도 대부분 재벌 대기업 계열이기 때문에 경영권 개입을 꺼리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는 것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KT의 경우는 정부가 뒤를 봐준다는 인식 때문에 특히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이 있는 것 같다”면서 “기관 투자자들도 KT는 정권과 함께 갈 거라고 보기 때문에 낙하산 회장의 전횡을 방치하고 장기적으로 주주 가치 개선을 요구하는 데 소홀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이런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어떤 사람이 낙하산으로 내려오더라도 이 전 회장의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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