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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1, 2011

신송희씨는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웨이퍼 불량 여부를 검사하는 일을 했다. 웨이퍼가 담긴 박스가 오면 그는 숨을 삼켰다. 뚜껑을 열면 참을 수 없는 악취가 났다고 한다. 비닐봉지에 구토를 하기도 했고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라인에 쏟을 때도 있었다고 한다. 신씨는 이곳에서 6년 동안 일한 뒤 대학에 진학했으나 2년 만인 2009년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았다. 신씨는 자신의 병이 그 지독한 악취와 이름을 모르는 화학약품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유명화씨는 2000년에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해 고온 테스트 공정에서 일했다. 1년이 지나자 하혈이 시작됐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어느날 눈에 실핏줄이 터져 병원에 갔더니 중증 재생 불량성 빈혈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골수에 세포가 부족해 피가 만들어지지 않는 질병이다. 유씨는 한 달에 두 번 병원을 찾아 수혈을 받고 있다. 유씨는 말한다. “다시 시간을 되돌린다면 삼성에 가지 않을 거에요.”

1985년생 황유미씨는 2003년 기흥공장에 입사해 1년9개월 동안 일하다가 2005년 6월 백혈병이 발병해 2007년 사망했다. 23세의 나이였다. 황씨는 ‘퐁당퐁당’ 작업을 했다. 플루오르화수소 용액에 웨이퍼를 담갔다 빼는 세척작업을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냄새만 맡아도 불임이 된다는 독성 물질이었지만 이 공장에서는 일상적인 작업이었다. 황씨와 같은 팀에서 일했던 이숙영씨도 2006년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

황씨와 이씨와 함께 일했던 한수영씨는 베게너육아종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렸다. 백혈구가 혈관을 공격해 혈관 조직이 썩어가는 병이다. 한씨는 삼성전자에서 엔지니어로 10년을 일했다. 두 달 동안 의식이 없다가 깨어나니 목에 호스를 꽂고 있고 병원에서는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한씨가 요청한 산재신청을 미루더니 퇴직을 권유했다. 그리고 소송을 걸지 않는 조건으로 위로금을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

설비 엔지니어 이성현씨의 증언에 따르면 가스가 새도 모르고 일하는 경우도 많았다. 가스가 새면 어디에서 새는지 엔지니어들이 직접 냄새를 맡으면서 찾아야 한다. 엔지니어들은 “가스 마셨으니까 오늘은 삼겹살이나 굽자”는 농담을 하곤 했다. 처음에는 충격을 받지만 나중에는 무감각해진다고 한다. 냄새가 나지 않는 가스도 많고 냄새가 나더라도 하루 종일 그냥 지나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삼성전자 천안공장에서 일했던 김주현씨는 입사 1년 만에 기숙사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김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을 때 가족들은 반대했다. 아버지 김명복씨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회사를 제 발로 나온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내가 일하는 걸 봐야 알겠냐”며 화를 내더니 휴직 2개월이 끝나고 공장에 돌아간 그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씨가 죽고 나서야 가족들은 그가 얼마나 열악한 조건에서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일했던 박지연씨는 입사 2년7개월 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판정을 받고 지난해 3월 2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박씨의 증언에 따르면 실수로 장비를 끄지 않은 상태에서 뚜껑을 열거나 다른 사람이 장비를 끄지 않은 걸 모르고 자재를 넣거나 빼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삼성전자 직원은 박씨의 부모에게 억대의 치료 비용을 대신 내주는 조건으로 산재신청을 취소하고 소송을 취하하라고 제안했고 박씨의 부모는 이를 받아들였다.

박씨의 죽음 이후 삼성전자는 여론의 비난을 의식한 듯 창사 이래 최초로 반도체 생산 라인을 언론에 공개했다. 그러나 이날 공개한 생산 라인은 황씨와 이씨 등이 일했던 낙후된 1~3라인이 아니라 자동화 비중이 높은 5라인과 최신 설비를 갖춘 S라인이었다. 이날 100여명의 기자들이 기흥공장을 견학했지만 의혹을 제기한 언론은 미디어오늘과 프레시안 정도 밖에 없었다.

삼성전자는 심혈관계 질병 환자들이 발생한 것은 사실이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이 아니고 직무 연관성도 밝혀진 바 없다는 입장이다. 근로복지공단은 19명이라고 밝혔지만 반올림 집계로는 삼성전자에서만 73명, 이 가운데 사망자가 25명에 이른다. 20대 초반의 건강한 젊은이들이 입사 10년도 안 돼서, 그것도 특정 라인에서 집단적으로 발병하는 것과 전체 일반인 통계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말한다. 증거를 가져와라. 그러나 이들은 퇴사한 이후 공장을 방문할 수 없었고 일부 라인은 폐쇄되거나 대체됐다. 삼성전자는 영업비밀이라는 이유로 작업환경이나 약품 사용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 역학조사팀 보고서에는 국소 배기장치가 가동되고 있다고 적혀 있지만 한혜경씨는 “내 가까이에는 없었다”면서 “종일 납 냄새를 들이마시면서 일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삼성전자가 환자나 유가족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한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그때마다 산재신청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도의상 유감을 표명한 것일 뿐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고 연제욱씨의 동생 연미정씨는 “삼성은 자식을 잃은 부모님 앞에서 돈 이야기만 했다”고 증언했다. 지난 6월 황유미씨와 이숙영씨가 최초로 산재 인정을 받았으나 삼성전자가 항소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의 주장이 옳을 수도 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집단 백혈병의 직무 연관성이 밝혀진 바 없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제대로 된 실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반발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고통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있고 이들이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삼성전자의 작업 환경이 꾸준히 개선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런 변화를 끌어내기까지 이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절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안전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으며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장갑을 벗고 약품을 만지거나 알 수 없는 가스를 들이마신 적이 많았다고 증언한다. 반도체 생산라인의 방진복은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웨이퍼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노동부는 몇 차례 역학조사를 실시했지만 영업비밀이나 개인정보 보호 등의 이유로 원문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산재신청도 대부분 기각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매출액이 154조6303억원, 당기순이익이 16조1465억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기업, 삼성전자에서 벌어지는 이 끔찍한 비극은 황유미씨의 죽음 이후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삼성전자 뿐만 아니라 IBM과 페어차일드, 산요, 소니 등의 반도체 회사들에서 유해 화학물질 중독 사고가 보고된 바 있다. 집단 백혈병의 직무 연관성은 입증된 바 없지만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치명적인 위험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고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는 “내가 일했던 회사는 이익을 남기기 위해 노동자들의 건강 같은 건 안중에도 없었다”면서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는 “만약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내 딸은 안 죽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황씨는 “노동조합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병에 걸리게 놔뒀겠느냐”면서 “노동조합이 생길 때까지 노동자들이 안전할 때까지 파헤치고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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