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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콘텐츠 기획자가 고민해야 할 것들.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30, 2011

요즘 기사도 많이 못 쓰고 블로그에도 소홀했던 건 아무개 회사 웹 사이트의 리뉴얼 작업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달 가까이 작업을 하면서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그 콘텐츠를 독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국내외 여러 뉴스 사이트를 벤치마킹하고 분석하면서 느낀 것 가운데 몇 가지를 정리해 봅니다.

우선 대부분 언론사들이 상단 메뉴 바의 활용도가 매우 낮습니다. 내비게이션 인터페이스가 친절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섹션을 타고 들어가 봐야 볼 게 많지 않다는 걸 독자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상당수 언론사들이 섹션 페이지를 거의 방치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편집 없이 시간 순으로 자동 정렬해서 늘어놓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그렇지만 첫 페이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보는 종이신문과 달리 온라인에서는 첫 페이지 상단의 기사 대여섯개만 훑어보고 창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든 독자들의 시선을 붙잡아 두고 한번이라도 더 클릭을 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오히려 군데군데 지저분한 배너 광고가 시선을 흐트러뜨립니다.
 
온라인에서는 가뜩이나 기사의 경중이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종이 신문에서는 어느 지면에 얼마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느냐로 중요한 기사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기사를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온라인 판에서는 링크가 걸린 제목 글씨의 크기와 굵기, 그리고 얼마나 톱에 가깝게 걸려 있느냐 정도의 차이밖에 없습니다.
 
독자들의 시선은 상위 기사 일부와 눈길을 끄는 썸네일 이미지, 그리고 가십성 기사 서너 개 정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중요한 기사라도 지나간 기사들까지 찾아 읽을 여유가 없는 거죠. 기사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 가운데 어떤 기사가 중요한 기사인지 구분하기도 쉽지 않고요. 아래쪽까지 스크롤링을 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뭔가를 찾아보려고 검색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 언론사들이 검색어가 들어있는 기사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는데 그칠 뿐 유의미한 검색 알고리즘을 도입하고 있지 않습니다. 차라리 구글 검색 등을 끌어다 쓰는 게 나을 텐데 애초에 관심이 없는 거죠. 외부 검색 역시 제한적입니다. 검색 API(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만 적용해도 훨씬 달라질 텐데 말이죠.
 
온라인은 뉴스를 파편화합니다. 관련 기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하루만 지나도 아예 읽히지 않게 돼 버리죠. 안 읽히는 수많은 기사들 가운데 의미 있는 기사를 찾아내는 건 결국 독자들의 몫으로 남게 됩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뉴스 추천 기능이 돋보이는 것도 이처럼 기존 언론의 어젠더 설정 기능이 크게 약화된 때문일 겁니다.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 뉴스는 휘발성이 큽니다. 종이신문의 1면 머리기사는 역사적 기록으로서 의미를 갖지만 온라인 톱 기사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계속 바뀌고 기록으로 남지도 않습니다. 어떤 기사가 중요한 기사였는지 알아볼 수가 없게 되는 거죠. 늘 현재를 기록하지만 인과관계가 배제되고 여기에서 뉴스의 왜곡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뉴스 편집자들은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더 많은 기사를 읽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떻게 좋은 기사를 찾아서 읽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페이지 뷰도 양보다 질을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1회 방문당 페이지뷰와 체류시간을 늘리는 방향을 고민해야 합니다. 포털 의존도를 낮추고 고정 방문자를 늘려야 하고요.
 
그래서 저는 뉴스를 구조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뿔뿔이 흩어진 기사 링크들 가운데 상호 보완 관계에 있는 것들을 서로 묶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상당수 독자들이 포털에서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에 언론사들이 살아남으려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어젠더 셋팅 기능을 부각시키고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때 웹 2.0 열풍이 몰아치고 난 뒤 언론사들이 앞 다퉈 태그 기능을 도입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무실하게 됐죠. 너무 많은 태그를 남발한데다 제대로 정리도 안 됐고 그렇게 만든 태그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도 부족했기 때문이죠. 애초에 참여 기반의 태그와 편집자에게 막강한 권한이 주어지는 언론사 편집 시스템은 다를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뉴스 구조화의 핵심은 카테고라이징과 밸류에이션입니다. 대부분 언론사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등의 형식적인 카테고리를 두고 있지만 이보다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카테고리와 주제별 분류가 필요합니다. 앞으로는 그런 카테고리를 지정하고 관리하는 게 온라인 뉴스 편집자의 역할 가운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지난 일주일 동안 이집트 시위와 관련한 기사가 수백수천건이 쏟아져 나왔지만 뉴스를 처음부터 꼼꼼히 살펴보지 않은 사람은 도대체 이집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찾아보려면 한참을 헤매야 합니다. 사건의 발단과 진행과정, 의미, 그리고 향후 전망 등이 일목요연하게 제대로 정리된 페이지가 없기 때문이죠.
 
소말리아 해적 소탕이나 최근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 논쟁, 더 거슬러 올라가면 슈퍼슈퍼마켓(SSM)이나 이마트 피자,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을 둘러싼 논란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스가 쏟아져 나오지만 오히려 너무 많은 뉴스 때문에 핵심을 제대로 짚고 분석하는 기사가 파묻히거나 적당히 표면만 훑고 지나가는 가십성 뉴스로 흐르기 쉽죠.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그날그날 뉴스를 쏟아내기에 바쁠 뿐 정작 이미 만들어 내보낸 뉴스를 관리하는 데는 취약한 것이 현실입니다. 오프라인에서는 편집자의 역할이 막강했지만 온라인에서 편집자의 역할이 크게 축소돼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편집자들이 역할을 찾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변화에 저항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되겠죠.
 
저는 오히려 온라인에서 편집자들의 역할이 더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프라인에서는 뉴스 가치를 판단하고 제목을 뽑고 지면에 배치하는 역할을 했다면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뉴스 링크에 의미를 부여하고 유기적으로 엮고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해야 합니다.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죠.
 
오늘 발생한 사건은 지난주 발생한 사건의 연장선이며 지난달, 길게는 1년 전 벌어진 사건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현재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현재의 시선으로 통시적으로 과거를 재해석하고 현재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시스템을 만들고 편집국 내부에 새로운 동기를 부여하는 게 편집자의 역할이고요. 

복수의 카테고리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하고 각각의 뉴스 밸류를 차등 부과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도 있습니다. 카테고리에 따라 뉴스가 다시 배열돼 새로운 의미를 끌어낼 수 있도록 말이죠. 링크 저널리즘 형태를 도입할 필요도 있고 소셜 네트워크의 평판 시스템을 연계하는 것도 효과적일 겁니다. 

“모든 고급 정보의 99%는 신문에 있다”는 지난번 포스트를 기억하실 겁니다. 적당히 껍데기를 바꾸는 작업 뿐만 아니라 새로운 수요에 맞는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거라고 봅니다. 콘텍스트를 드러내는 뉴스 편집이 필요할 거라는 말이죠.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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