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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들은 닭장 밖의 세상을 꿈꾼다.

사람들은 우리를 병아리라고 부른다. 노란 털이 보슬보슬, 통통하고 동그란 몸매에 초롱초롱한 눈망울, 아장아장 앙증맞은 걸음걸이. 우리 병아리들은 자라서 모두 닭이 된다. 축구장 절반 정도 크기의 이곳에는 3만마리가 넘는 병아리와 닭이 있다.


이곳을 사람들은 닭장이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24시간 내내 불이 켜져 있다. 시간이라는 게 아무 의미가 없다. 하루 종일 낮이고 몇일이 지났는지 조차 알 수 없다. 나는 한 번도 닭장 밖을 나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둠이란 게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다.

이곳은 크게 우리 병아리들이 사는 곳과 산란용 닭들이 사는 곳, 고기용 닭들이 사는 곳으로 나뉜다. 늘 불을 켜두는 것은 우리가 더 빨리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다. 닭이 되면 우람한 몸집과 매서운 부리, 강인한 발톱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빨리 닭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닭이 되면 두 가지 기회가 있다. 하루에 하나씩 알을 낳는 닭을 산란용 닭이라고 부르고 하루 종일 먹고 피둥피둥 살이 찌는 닭을 고기용 닭이라고 부른다. 살이 충분히 찌면 고기용 닭은 닭장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나는 산란용 닭보다는 고기용 닭이 되고 싶었다.

고기용 닭이 되려면 무엇보다도 살이 쪄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많이 먹고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어떤 닭들은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살이 찌기도 한다. 우리 병아리들은 모두 그런 닭을 부러워했다.

나에게 닭장 밖의 이야기를 해준 것은 닭장을 지키는 늙은 개였다. 늙은 개는 닭장을 싫어했다. 그는 이곳이 무지막지하게 시끄럽고 공기도 좋지 않다고 했다. 닭들도 그를 싫어했다. 그는 어쩌다 가끔 찾아와 구석에 축 늘어져 낮잠을 자다가 나가곤 했다.

“늙은 개님. 궁금한 게 있어요.” 늙은 개가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귀찮다는 듯이 다시 눈을 감았다. “닭장 밖에는 뭐가 있나요?” 그러자 늙은 개가 대답했다. “괜한 걸 알려고 하지 마. 그냥 사료나 듬뿍 받아먹고 살이나 피둥피둥 찌라고.”

나는 늙은 개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그는 새로운 친구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냥 계속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저도 이제 곧 닭이 돼요. 살도 많이 찐 것 같지 않아요? 조금만 있으면 닭이 되고 살이 더 찌면 닭장 밖으로 나갈 수도 있다고요.”

늙은 개는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더니 고개를 살레살레 흔들고 나가버렸다. 그 뒤로 한동안 늙은 개는 닭장을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닭장 밖이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다른 병아리나 닭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관심조차 없었다.

늙은 개가 닭장을 다시 찾은 것은 산란용 닭들이 알을 10개쯤 더 낳고 난 뒤였다. 그는 곧바로 나를 찾아와서 말했다. “이봐 병아리, 그거 알아? 닭장 밖을 나간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잡아먹힌다는 거야.”

“아, 잡아먹힌다는 게 뭐죠?”
“네가 날마다 먹는 사료 있잖아. 네가 사람들에게 사료가 된다고 생각하면 돼. 통닭이 될 수도 있고 삼계탕이 될 수도 있어. 그게 끝이야.”

잡아먹힌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닭장 밖을 나가면 신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에게 잡아먹히는 걸로 끝난다니 나는 혼란스럽기도 했고 괜히 우울하기도 했다. 날마다 잔뜩 먹고 이렇게 피둥피둥 살이 쪄서 결국 잡아먹힌다니.

늙은 개는 그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나는 건너편의 닭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잡아먹힌다는 게 뭐죠?” 닭들은 먹느라 한눈을 팔 틈이 없었다. 먹지 않으면 닭들은 잤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미래 역시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곳에는 수많은 병아리와 닭이 있지만 다들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다. 우리는 누군가가 낳은 알에서 깨어나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낸다. 가로 세로 20cm의 비좁은 공간.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도 없고 걷거나 날개를 파닥거릴 일도 없다. 닭들은 늘 신경질을 부린다.

24시간 내내 불을 켜두는 것은 우리가 더 빨리 자라기 위한 것이고 비좁은 공간에 집어넣는 것은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 살을 찌우기 위한 것이다. 닭들은 날마다 860g의 사료를 먹는데 여기에는 성장촉진제와 항생제가 듬뿍 들어있다.

우리 병아리가 어미 닭이 되려면 6개월은 돼야 하는데 이곳의 닭들은 성장촉진제 덕분에 한 달밖에 걸리지 않는다. 짧게는 알에서 깨어난 지 28일 만에 잡아먹히는 닭들도 있다. 전염병에는 잘 걸리지 않지만 열악한 환경 탓에 정신 질환에 시달리는 닭들이 많다.

산란용 닭들은 날마다 하나씩 알을 낳는데 낳은 알을 품으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알을 가져다가 팔거나 기계에 넣고 부화시킨다. 닭의 수명은 15~20년이지만 이곳의 닭들은 2년을 채 넘기지 못한다. 고기용 닭들은 그 전에 잡아먹히고 산란용 닭들은 알을 조금씩 덜 낳다가 시름시름 병이 들어 죽는다.

나는 사람들에게 잡아먹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날부터 나는 사람들을 좀 더 유심히 살펴보게 됐다. 내가 사료를 먹고 살이 피둥피둥 찌는 것처럼 사람들도 나를 잡아먹고 살이 찌고 아마도 행복해 할 것이다.

늙은 개는 닭장 밖 이야기를 해줬다. 그곳에는 해가 있고 흙이 있고 바람이 있고 꽃이 있고 넓은 공간이 있다. 넓다는 게 무슨 말인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늙은 개는 “지금보다 훨씬 멀리 내다볼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그곳까지 가 닿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늙은 개님은 어디까지 가봤어요? 끝까지 가봤어요?”
“아니, 가봐야 별거 없다는 걸 알게 돼. 결국은 그냥 현실에 만족하게 된다고. 밥도 주고, 잠 잘 곳도 있고. 다들 그렇게 사는 거야.”

나는 멀리 내다본다는 것, 그리고 내다보는 그곳까지 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상상하곤 했다. 사람들에게 잡아먹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지만 지금과 다른 새로운 무엇인가에 맞닥뜨린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설렜다.

늙은 개는 나의 그런 상상을 “꿈”이라고 말했다. “이곳의 닭들은 꿈이 없어. 닭장 너머를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지. 물론 꿈을 꾼다고 달라지지는 않아. 오히려 현실이 더 고통스러울 수도 있어. 너는 사람들에게 잡아먹히기 전까지는 닭장 너머로 절대 가지 못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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