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만 크게 해먹고 손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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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탕만 크게 해먹고 손 털자.” 삼원정밀금속 이학수 사장의 심정은 그랬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주가는 얼마든지 흔들 수 있다. 걸리지만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삼원정밀금속은 지난해 매출 321억원에 23억원의 적자를 냈다. 스테인레스 제품 가격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설비 투자가 필요한데 돈은 돌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었다. 빚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주가는 늘 바닥을 맴돌았다. 이 사장이 위험한 장난에 손을 댄 것도 이런 회사 상황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사장은 지난 5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작전을 거든 증권사 영업직원 최아무개씨 등 10명도 함께 걸려들었다. 그들은 지난해 두차례에 걸쳐 삼원정밀금속의 주가를 조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서로 짜고 주식을 조금씩 더 비싼 가격에 사고 팔면서 주가를 끌어올리다가 투자자들이 몰려들면 재빨리 털고 나오는 수법을 썼다. 이를 테면 A가 7210원에 주식을 내다팔면 B가 사들이고 다시 C가 7215원에 주식을 내다팔면 D가 사들인다. D가 7220원에 주식을 내다팔면 다시 A가 사들인다. A, B, C, D는 모두 한통속이다. 주식이 네 사람 사이를 오가는 동안 주가는 야금야금 뛰어오른다. 서로 호흡만 잘 맞으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주가를 마음껏 끌어올릴 수 있다. 이른 바 ‘통정매매’라는 고질적인 작전 수법이다. 물론 실제로는 한 사람이 여러 사람 이름으로 된 계좌를 한꺼번에 움직이기 때문에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이 사장은 자신의 주식 50만주를 ‘주포(작전주도세력)’ 최아무개씨에게 맡겼고 최아무개씨는 다시 전직 증권사 직원 이아무개씨를 비롯한 주포 세명과 ‘부포(작전지원세력)’ 5명을 끌어모아 작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장은 이들에게 작전에 서 얻은 시세차익의 50%를 주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 사장의 주식을 담보로 맡기고 사채업자에게 주식살 돈을 빌렸고 현직 증권사 영업직원인 부포들은 자신들이 관리하고 있는 여러 고객의 계좌를 동원해 주식을 사고 팔았다.

삼원정밀금속의 주가는 지난해 4월 7210원에서 6월 2만150원까지 껑충 뛰어올랐다가 빠졌다. 그리고 다시 지난해 10월 1만4270원에서 11월 2만7010원까지 뛰어올랐다가 빠졌다. 두번의 작전에서 이들이 거둬들인 시세차익은 모두 50억원에 이른다.

삼원정밀금속은 자본금 91억원에 주식 수가 1820만주(액면가 500원) 밖에 안되는 작은 회사다. 이 정도 회사는 마음만 먹으면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주가를 마구 흔들 수 있다.

“성공하는 작전은 없습니다. 주가를 어느 정도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반드시 잡힙니다.” 금융감독원 조사1국 박광철 실장의 이야기다. 박 실장이 보기에 삼원정밀금속 이 사장 일당의 작전은 너무 어수룩했다. 사실 작전이 다 그렇다. 금융감독원 앞에서는 모두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나 다름 없다.

삼원정밀금속처럼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는 회사의 주가가 갑자기 세배 가까이 뛰어오르면 당연히 시장의 눈길을 끌게 된다. 금융감독원은 이런 주식을 매매 분석시스템에 집어놓고 돌리는데 결과가 나오기까지 짧으면 보름에서 길게는 반년 가까이 걸린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그렇지 왠만한 작전은 여기서 다 잡힌다.

작전 세력이 들으면 깜짝 놀랄 일이지만 그들의 모든 움직임은 하나하나 자료로 남는다. 이를테면 당신이 사고 파는 주문을 낼 때마다 당신 컴퓨터의 IP(인터넷 프로토콜) 주소가 기록으로 남는다. 어디에 있는 어떤 컴퓨터에서 언제 어떤 주문을 냈는지 자료를 찾아보면 금방 알아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작전을 한답시고 한대의 컴퓨터에서 여러 사람 이름으로 같은 주문을 내거나 한 사무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여러 계좌를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몇달안에 금융감독원에 불려가게 될 것이다. IP 주소를 매번 바꾸거나 심지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사방곳곳에 떨어져 여러명이 작전을 벌이더라도 마찬가지다. 시장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합리적이지 못한 매매는 조금만 들여다 보면 쉽게 튀어나온다. 아무리 날고 기는 작전 세력들도 사고 파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도를 완전히 숨기지는 못한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 아닌가. 슈퍼컴퓨터를 속일만큼 완벽한 작전은 없다고 봐도 좋다.

혐의가 잡히면 금융감독원은 곧 상황 재연에 들어간다. 이를 테면 지난해 10월17일 오전 10시47분의 상황을 그대로 모니터에 띄워놓고 꼼꼼히 살펴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때 A는 왜 7210원에 주식을 내다팔았다가 10분 뒤에 다시 7220원에 사들였을까. B가 주식을 파는 때와 C가 주식을 사는 때는 왜 매번 맞아 떨어지는 것일까. 금융감독원은 이런 의문을 하나하나 정리해 증거로 제시한다.

왜 당신은 오전 11시13분 상한가에 매수 주문을 냈나. 7350원이면 살 수 있는데 7500원에 주문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 주문을 냈다가 다시 취소한 건 또 무슨 이유 때문인가. 이 정도면 왠만한 작전세력들은 더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는다.

금융감독원 조사국 조사실은 경찰서 취조실만큼이나 살벌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조금이라도 찔리는 짓을 했으면 좀처럼 긴장을 풀기 어렵다. 그때 상황을 그대로 다시 보여주면서 캐물으면 대부분 할말을 잃기 마련이다.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진,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말이다.

물론 가끔은 끝까지 우기면서 버티는 작전세력도 있다. 사고 싶어서 사고 팔고 싶어서 팔았는데 뭐가 문제냐. 주가 조작 같은 것 나는 모른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 아닌가.

금융감독원은 이들의 전화 통화 내역까지 샅샅이 훑는다. 휴대폰도 물론 마찬가지다. 서울에 있는 A와 대전에 있는 B가 그 시간에 통화를 하고 있었다면 더 이상 발뺌을 하기 어렵다. 같은 주식을 악착같이 사고 파는 두 사람이 서로 아는 사이라면 작전의 의심을 벗기 어렵다. 대부분은 같은 증권사 직원이었거나 친구나 선후배 관계기 쉽다. 여기에다 필요하다면 계좌까지 추적한다. 같은 계좌에서 돈을 받은 기록이 있다면 바로 검찰로 직행이다.

뒷돈을 댄 ‘전주’를 찾아내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삼원정밀금속의 작전에 서는 이 사장이 전주였다. 잡일을 도맡았던 부포를 하나 잡아내면 나머지는 줄줄이 딸려 나오기 마련이다. 가끔은 전주를 잡아내긴 했는데 처벌이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금융감독원은 보통 국세청에 명단을 통보해서 세무조사를 의뢰하는 방법을 쓴다. 금융감독원과 국세청은 작전의 배후세력이 되고 있는 사채업자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작전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잠깐 주가를 움직일 수는 있지만 결국 잡히게 돼 있다. 슈퍼컴퓨터를 속일 자신이 있으면 작전에 뛰어들어라. 짜릿한 범죄의 쾌감은 잠깐이고 결국 몇달 뒤 금융감독원 조사국 조사실에 불려가게 될 것이다. 이달부터 시행된 개정 증권거래법에 따르면 이같은 불공정 거래행위는 최고 무기징역까지 받을 수 있다.

삼원정밀금속은 지난 6일 이 사장의 구속 소식과 함께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 9일 주가는 액면가 5천원 기준으로 6200원까지 빠졌다. 결국 주가는 제자리를 찾아온 셈이지만 사장까지 나서서 시장의 믿음을 저버린 이 회사 주식은 다시는 빛을 보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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