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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맡의 책. 스콧 니어링 자서전.

녹색연합에서 만드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월간지가 있다. 그 잡지에 ‘내 머리맡의 책’이라는 시리즈가 있는데 거기에 원고를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른 책이 바로 스콧 니어링 자서전.

스콧 니어링 자서전.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함 옮김, 실천문학사 펴냄, 1만2천원.)
자본주의의 탐욕과 맞서 싸우기.

스콧 니어링의 글을 읽는 것은 불편하다. 그는 평생에 걸쳐 자본주의의 탐욕과 맞서 싸웠다. 처음에 그는 약탈과 불로소득을 없애고 좀 더 평등하고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목표를 뒀다. 그는 진보진영이 나서서 사회의 생산과 분배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대안으로 공동체의 부활과 사회주의를 제안했다.

누구나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는 있지만 그가 살았던 방식으로 살기는 어렵다. 그의 글이 불편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사회의 분배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당연히 기득권 계층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가뜩이나 1차 세계대전과 함께 색깔 논쟁이 한창이던 무렵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쫓겨났고 어느 언론 매체에서도 그의 글을 실어주지 않았다.

그는 문제의 핵심이 사회의 윤리, 이를테면 시민의식에 있다고 보고 교육운동에 뛰어들었지만 성과는 없었다. 그는 자서전에서 그 무렵의 절박한 상황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극도로 긴박한 시대를 살고 있으므로 우리는 일반 시민들을 억지로 간섭하고 통제해야 하며 강제로라도 우리 생각을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가 톨스토이의 개인적 급진주의에 빠져든 것은 숱한 패배를 겪고 나서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급진주의자가 되고 사상가가 되며 이상을 가지고 스스로 터득해 행동하는 것이 급진주의를 위한 유일한 길이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질서가 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다.”

그는 스무살 연하의 두 번째 부인과 산골 마을에 내려가 노동과 자급자족, 반자본, 반문명 주의를 직접 몸으로 실천했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야 사회가 바뀐다던 그는 이제 스스로 터득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의 삶은 건강했고 늘 기쁨과 활력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해피 엔딩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탐욕에 맞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가. 그는 말한다. 첫째, 부르주아 소수 독재자들이 발전시키고 통제하는 대중 매체의 시사 프로파간다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둘째, 자본주의 사회에 복무하는 답례로 제공되는 물질적 보상을 거부하는 것이다. 셋째, 독점 자본주의 정책들을 용인하거나 정책결정과 실행에 참여, 협력하기를 거부해야 한다. 넷째, 기성 부르주아 체제와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관계를 끊어야한다. 다섯째, 기존 사회 질서에 강력하게 맞서는 것과 더불어 뚜렷한 목표를 가진 의식 있는 사회집단의 자제력 있는 구성원으로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스콧 니어링은 사회를 바꾸는 데는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결코 타협하지도 않았다. “결국은 일상적으로 대안적인 삶의 주체로 거듭나야 하고 그것이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사회적 실천을 해야 한다. 변화는 결코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적 실천을 꾸준히 하는 한, 역사의 변화는 오기 마련이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스스로 반문하게 된다. 나는 과연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그 중간 어딘가에서 어설프게 포기하거나 타협하고 있지는 않은가. 스콧 니어링은 나를 깨어나게 만든다. 나도 그처럼 건강하게 살고 싶다.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들을 평생에 걸쳐 몸으로 실천하며 살고 싶다.

“치열한 싸움은 계속된다. 삶이 있고 열정이 있고 목적과 기능과 경험이 있는 한 진보는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 인간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일부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이 명백한 사실을 피할 수 없다. 한 개인은 인류 전체의 일부이자 그가 살고 있는 당대 사회적 자연적 환경의 일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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