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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을 만나다.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27, 2006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12월 21일 금융경제연구소가 주최한 간담회에 참석한 조 전 부총리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해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대해 작심한 듯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대선을 1년도 채 안 남겨둔 무렵이라 그의 발언은 미묘한 파장을 남겼다.

조 전 부총리는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노태우 정부 시절 경제기획원 장관 겸 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고 민주당 공천을 받아 지방선거에 출마, 초대 서울시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 뒤 대권을 노리고 서울시장을 사퇴, 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을 주도했지만 이회창 후보에 밀려 결국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

조 전 부총리와 노무현 대통령과 엇갈린 인연도 눈길을 끈다. 서울시장 선거 때 조 전 부총리는 노 대통령에게 부시장 러닝메이트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은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가 패배했지만 5년 뒤 대권을 거머쥐었고 조 전 부총리는 한나라당 총재로 머물면서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도 했지만 재선에 실패, 결국 정계를 떠났다.

이날 간담회에서 조 전 부총리는 노무현 정부가 “근본적으로 경제가 뭔지도 모른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그는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를 성장의 둔화와 양극화로 정리하고 그 근본 원인을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부터 계속된 압축성장에서 찾았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문제의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 엔화 환율이 떨어지면서 우리나라 기업들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당연히 성장률도 크게 올라갔다. 우리 경제가 잘 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일본의 경쟁력 악화의 반사이익을 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압축성장의 부작용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조 전 부총리는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이데올로기도 압축성장의 연장선으로 보고 있다. 압축성장의 후유증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문제를 방치한 결과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를 맞게 됐다는 이야기다. 일차적인 원인은 물론 동남아시아의 외환위기였지만 본질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의 악화가 불러온 필연적인 위기였다는 이야기다.

조 전 부총리는 IMF가 요구한 경제 개혁을 크게 4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긴축정책. 성장률이 떨어지면 수입이 줄고 수출이 늘어 국제수지가 좋아지고 외채를 갚을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성장률을 떨어뜨려 빚을 갚게 만든다는 이야기다. 둘째는 외환시장과 무역, 금융, 전반의 경제 자유화.

셋째는 작은 정부.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서 철도와 통신, 체신, 국방까지도 민간부분으로 넘기라는 것이다. 넷째는 주주 이익의 극대화다. 상대적으로 이해관계자의 이익이 줄어들게 된다. 이런 신자유주의 경제 개혁은 언뜻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줄이고 부채 상환을 앞당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경제의 역동성을 위축시키는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김대중 정부는 IMF 요구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자유화와 개방화를 추구했다. 그 결과 잠깐 성장률이 올라가기도 했지만 2000년에는 2.3%까지 떨어졌다. 아르헨티나도 그랬고 특히 멕시코에서 그랬다.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양극화가 더욱 심화된다. 후진국에는 잘 맞지 않고 우리나라에도 맞지 않는 정책이다.”

김대중 정부가 내놓은 대안은 가계 신용을 늘려 내수를 키우는 것. 길거리에서 신용카드를 마구 뿌려댔고 소비가 늘어나면서 성장률이 잠깐 회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2003년 상반기에는 성장률이 다시 2.7%까지 떨어졌다. 조 전 부총리는 “고비용 저효율의 개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 결과 많은 금융기관이 구조조정을 당했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조 전 부총리는 금융의 종속을 양극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고 있다. IMF 이후 금융기관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고 가계대출 특히 손쉬운 담보대출을 늘리고 있다. 중소기업들이 잇따라 무너졌고 일자리도 줄어들었다. 당연히 양극화도 더욱 심해졌다.

“자기자본비율(BIS) 8%는 넌센스다. BIS가 9%나 10%, 15%가 돼도 상관없다. 기업 구조조정도 마찬가지다. 부채비율 200%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기준을 획일적으로 강요했고 많은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감행했다. 조기에 IMF 졸업 선언도 했고 외국 투자자들의 갈채를 받았지만 정작 우리 경제의 역동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조 전 부총리는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중심국가나 국토 균형발전 등의 정책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근본적으로 경제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짓”이라는 원색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압축성장이 가져온 부작용을 압축성장으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이 나라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이야기다.

“마치 유신 정부가 하는 것과 비슷한 정책 목표를 내걸고 있다. 이를테면 동북아 중심국가, 이게 참 아무런 근거도 없고 내용도 없는 것이다. 80년대 같으면 모르겠다. 이거 뭐 어떻게 하자는 건가. 기업도시나 혁신도시도 마찬가지다. 유동성만 늘려서 땅값만 올리고 있다. 금리를 낮춰서 유동성이 움직일 데가 없으니 다들 부동산에 매달리고 있다.”

한미 FTA나 금융허브에 대해서도 거센 비판이 이어졌다. 조 전 부총리는 유럽이 왜 농업을 끝까지 보호하려고 하는지 생각해 보라고 반문했다. 일본이 왜 일미 FTA를 서두르지 않는지 생각해보라고도 반문했다. IMF 때 경험에 미루어 봐도 한미 FTA는 정부의 장밋빛 전망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사람들 능력이 많다. 골프도 잘하고 축구, 바둑도 잘한다. 그러나 하나 마인드가 없는 것이 금융이다. 중국 사람들은 금융에 대한 마인드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없고 일본 사람들도 없다. 우리는 금융 허브 못한다. 가계부채가 500조인데 무슨 금융허브를 하나. 하면 외국인 투자자들 돈 쥐어주는 꼴 밖에 안 된다.”

조 전 부총리는 “노무현 정부가 해법을 제시하기는커녕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자유주의는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조 전 부총리는 “큰 정부는 아니지만 정부의 최소한의 역할은 유지돼야 한다”며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국민들의 신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 전 부총리는 “과거는 완전히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정희 모델도 소용없고 김대중 모델도 소용없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미국도 문제가 많다. 중산층이 몰락하고 경제는 성장하는데 소비는 줄어들고 있다. 양극화 문제도 우리 못지않게 심각하다. 조 전 부총리는 그런 미국을 따라 갈 것이냐고 반문했다.

“정부는 서비스 산업을 키우겠다고 하는데 무슨 서비스냐고 하면 아무런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 고용창출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부족하다. 제조업을 사양산업이라고 하는데 바로 그런 마인드가 문제다. 우리나라가 무슨 서비스 산업을 할 수 있나. 서비스 산업도 중국이 훨씬 잘 한다. 우리나라는 제조업을 갖고 있어야 한다.”

조 전 부총리는 쾌도난마로 경제를 살리는 방법은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신자유주의의 유토피아는 막강한 미국조차도 무너뜨리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견뎌낼 수 있느냐”고도 반문했다. 조 전 부총리는 “병의 역사가 길고 복잡하다”며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성과에 매달리지 말고 보약으로 몸을 달래듯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조금씩 고쳐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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