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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친일, 진실과 명예훼손의 간격.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영씨가 월간 ‘말’ 전현준 전 사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올해 4월의 일이다.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박씨는 월간 ‘말’ 2004년 6월호에 실린 “독립군 때려잡던 박정희, 왜 거짓말하나”라는 기사가 허위 사실을 유포해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사의 내용은 박 전 대통령이 1939년 간도 조선인특설부대에서 중대장급 군관으로 복무했다는 것, 그리고 박씨가 지난해 3월, 이 내용을 담은 책, ‘일송정 푸른 솔에 선구자는 없었다’를 문제삼아 이 책을 낸 출판사 사장 등을 고발했다는 것이었다. 기사를 쓴 류연산씨는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 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으로 있다.

전 사장은 검찰에서 자신은 기사 게재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고 검찰은 기사 게재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해 기자들을 참고인으로 소환했다. 그래서 나도 불려 나갔다. 나는 류씨에게서 그 원고를 전자우편으로 받았고 기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책에 실었다고 진술했다. 마침 편집장이 공석이었고 취재부 차장이었던 내가 임시 편집장 역할까지 맡고 있던 무렵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신경육군군관학교 출신이라는 건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다. 논란의 핵심은 박 전 대통령이 어떻게 이 학교에 입학하게 됐느냐는 것. 더 구체적으로는 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간도 조선인특설부대에 복무한 사실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 부대는 조선인 독립군을 조선인이 토벌해야 한다며 만든 특수 부대였고 잔인하고 악랄하기로 악명이 높았다.

류씨는 박 전 대통령이 간도 조선인특설부대에 입대해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고 그 공을 인정받아 신경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류씨의 책은 박 전 대통령 뿐만 아니라 만주에서 활동했던 친일파들의 행적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있다. 증언과 근거 자료도 많다. 그러나 박씨는 박 전 대통령이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문경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1940년 시험을 쳐서 신경육군군관학교에 입학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신이 어떤 매체의 편집 책임을 맡고 있다면 판단을 해야 한다. 류씨의 원고를 실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때 나는 싣기로 결정했다. 이 기사가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을까. 논란은 여전히 진행중이고 확산되고 있다. 나는 오히려 진실이 명확히 밝혀져야 그의 명예도 지켜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려면 이런 방식으로 언론의 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 판단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한편, 김세균 교수를 비롯해 정현백, 정대화, 조희연 교수 등 진보적 학자들 152명은 “박 전 대통령의 친일 경력에 대해서는 앞으로 충분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며 “전직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공인에 대한 논란을 사적인 명예훼손 차원에서 다루는 것은 비역사적”이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 의견서는 최근 검찰에도 제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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