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우리 시대 꿈과 상상의 프로토 타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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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백성현 명지전문대학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교수, 로봇 박물관 관장.

로봇 장난감을 수집하는 괴짜 교수. 그는 처음에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동안 몇 군데 언론과 인터뷰를 하기는 했는데 그때마다 엉터리 기사에 질렸다고 했다.

언젠가는 그런 일도 있었다. 방송국에서 불러서 나갔더니 다짜고짜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어보라고 했다. 그날 방송에서 그는 나이 먹고도 장난감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별난 사람으로 비춰졌다. 방송국뿐만 아니라 기자들은 그를 만나면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해달라고 한다. 가벼운 흥밋거리로 취급할 뿐, 그가 왜 로봇에 애정을 갖고 3500종의 로봇을 모으고 박물관까지 세우게 됐는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울 종로구 동숭동의 로봇 박물관에는 백성현 교수가 10년 동안 모은 40개국, 3500여점의 로봇들이 전시돼 있다. 2004년 4월에 문을 열어 개관 2년째를 맞는 이곳은 세계 최초, 그리고 세계 최대의 로봇박물관이다. 100여년에 이르는 로봇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세대를 넘어 이어온 꿈과 상상의 원천을 확인할 수 있다. 손 때 묻은 오래 된 로봇들은 언뜻 촌스럽지만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다.

“생각해보세요. 아이들은 장난감을 버리면서 비로소 어른이 됩니다. 장난감들이 쓰레기통으로 사라지고 아이들의 꿈과 상상도 함께 잊혀지는 것이죠. 로봇 박물관은 우리들 유년 시절의 꿈과 상상을 복원하는 공간입니다.”

그런데 이 박물관을 처음 찾은 어린이들은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들의 아버지 세대가 갖고 놀았던 구닥다리 장난감들이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골동품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 것 같은 초창기 로봇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마니아들 가운데서는 방과 후 틈만 나면 찾아와 진열창 앞을 떠나지 못하는 어린이들도 있다.

“이 꼬마 애들은 아는 것이죠. 여기 있는 로봇들은 단순히 옛날 장난감이 아니라 지금 유행하는 첨단 로봇의 원형, 프로토 타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로봇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첨단 로봇도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죠. 꼬마 애들은 이 오래된 로봇을 살펴보면서 사람들의 꿈과 상상이 어떻게 진화하고 구현되는가를 읽어내고 매력을 느끼는 것입니다.”

로봇은 흔히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지만 결코 형이상학적이거나 초월적인 존재는 아니다. 그 조물주가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로봇은 이를테면 현실을 넘어서려는 꿈과 상상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로봇이 매력적인 것은 그것이 마냥 꿈이거나 상상이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 가능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악당을 물리치고 정의를 구현하는 로봇은 그래서 단순히 장난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백 교수에 따르면 로봇의 역사는 1900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랭크 봄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양철 로봇을 본 떠 만든 인형이 현존하는 로봇으로는 가장 오래 됐다. 물론 1817년의 ‘프랑켄슈타인’이나 1881년의 ‘피노키오’도 로봇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냥 소설에 머물렀거나 실제로 만들어졌더라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은 없다.

로봇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한참 뒤인 1920년, 체코의 카렐 차페크가 쓴 ‘로섬의 만능 로봇’이라는 소설에서다. 로봇은 ‘강제 노동’이라는 뜻의 체코 말, ‘로보타’에서 나온 말이다. 이 소설은 나중에 춘원 이광수가 번역해 국내에 출간되기도 했다. 1933년 ‘신동아’ 5월호에는 영국에서 만든 ‘알파’라는 로봇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이에 앞서 1926년에는 독일 영화 ‘메트로폴리스’에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성 로봇이 등장한다. 독일의 영웅 잔 다르크의 이미지를 본떠 만든 마리아는 1차 세계대전 직후 실의에 빠진 독일 사람들에게 희망과 구원의 메시지를 던져줬다. 일본이 1951년 ‘아톰’을 만들어 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톰(원자)’은 원자폭탄이 남긴 끔찍한 기억의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사람들은 아톰으로 원자폭탄의 악몽에서 벗어났다.

로봇박물관에는 1900년 무렵에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로봇부터 1920년대의 마리아와 1950년대의 아톰, 최근의 최첨단 로봇까지 모든 종류의 로봇이 들어서 있다. ‘마징가제트’를 비롯해 이를 우리 식으로 응용, 재창조한 ‘로봇태권브이’ 그리고 ‘짱가’와 ‘그랜다이저’ ‘철인28호’ ‘메칸더브이’ 등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로봇들이 모두 망라돼 있다.

백 교수는 지난 10년을 로봇 수집에 거의 쏟아 붓다시피 했다. 지금도 학교보다 박물관에 있는 날이 더 많을 정도다. 그는 무엇보다도 어른들이 박물관을 찾지 않는 걸 안타깝게 생각한다. 백 교수는 로봇 박물관을 단순히 로봇이나 장난감을 모아서 눈요깃거리로 진열하는 곳이 아니라 문화 콘텐츠의 관점에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로봇 하나하나는 그냥 장난감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모아놓으면 역사가 되고 콘텐츠가 됩니다. 이 100년의 역사에서 우리는 앞으로 100년, 200년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죠. 문화라는 건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닙니다. 이 장난감들의 역사에 우리 시대의 문화가 녹아 있습니다. 로봇은 이를테면 우리 시대의 꿈과 상상의 프로토 타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회의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인간형 로봇 ‘휴보’가 첫 선을 보였다. ‘휴보’는 두 발로 걷거나 악수를 하는 것은 물론 사람의 말에 반응하고 다양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미국이나 일본에서 만들었던 인간형 로봇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기술력은 크게 앞섰지만 그 기술을 담아낼 아이디어가 빈약했기 때문이다. 백 교수는 우리가 유년 시절의 장난감을 버리면서 꿈과 상상까지 버렸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에게 로봇박물관은 그 꿈과 상상을 복원해내는 작업의 일환이다. 그가 엄청난 시간과 돈, 열정을 쏟아부어가며 이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것도 그런 사회적 책임감 또는 사명감 때문이다.

“로봇의 핵심 기술은 기계에서 전기, 전자, 그리고 이제 디지털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로봇 종주국이 유럽에서 미국, 일본으로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로 옮겨오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죠. 그럴수록 우리는 로봇의 역사, 로봇의 원형, 그 잃어버린 꿈과 상상에 다시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뉴스레터에 실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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