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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국가 기업? ‘조선일보’의 억지.

‘조선일보’는 2월 14일자 기사에서 이른바 ‘초국가 기업’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삼성그룹의 매출이 싱가포르의 국내총생산보다 많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그룹의 매출액은 140조원으로 세계 180여개 나라 가운데 35번째로 큰 나라가 된다.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보다 크고, 이란이나 아르헨티나보다는 조금 작다. 같은 맥락으로 LG그룹은 세계 48번째, 현대자동차그룹은 51번째, SK그룹은 55번째로 큰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참신하고 언뜻 재미도 있지만 ‘조선일보’의 이 기사는 엉터리다. 먼저 국내총생산과 기업의 매출액은 전혀 다르다. 국내총생산은 단순히 매출액의 합계가 아니라 부가가치의 합계다. 국내총생산을 계산할 때는 기업의 매출액이 아니라 기업이 새로 만들어낸 부가가치를 더해야 한다. 50원어치 밀가루를 사다가 100원짜리 붕어빵을 만들었다면 매출액은 100원이지만 새로 만들어낸 부가가치는 50원이 된다. 나머지 50원은 밀가루 회사나 농부가 만들어낸 부가가치다.

그런데 ‘조선일보’의 기사는 붕어빵을 모두 삼성그룹이 만들어낸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50원을 100원으로 뻥튀기하면서 은근슬쩍 삼성그룹에게 한 나라 이상의 지위를 부여한다. 이건 도대체 밀가루 없이 붕어빵을 만드는 것처럼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삼성그룹의 매출액 140조원이 모두 이들이 맨 바닥에서 새로 만들어낸 부가가치란 말인가. ‘조선일보’ 주장대로라면 삼성그룹 혼자 우리나라 경제의 4분의 1 가량을 쥐고 흔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흔히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국내총생산의 17%, 삼성그룹의 매출액이 국내총생산의 25%에 이른다고 비교하곤 하지만 이건 크게 틀린 계산이다. 국내총생산은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삼성그룹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과 수많은 다른 크고 작은 기업들이 만들어낸 부가가치의 합계다. 삼성전자만 놓고 보면 이 회사의 부가가치는 2004년 기준으로 14조원,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에 기여하는 비중은 2% 밖에 안 된다. 삼성그룹의 계열사들을 모두 모아봐야 25조원, 국내총생산의 4%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일보’ 식으로 굳이 삼성그룹을 하나의 나라로 보고 비교하면 삼성그룹의 순위는 세계 60위 밖으로 밀려난다.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수단 등과 비슷한 수준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한 기업의 매출액을 한 나라의 국내총생산과 비교하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그런데 사실 우리 경제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를 푸는 해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흔히 기업의 매출과 국내총생산의 성장이 우리 경제의 성장이라고 믿어왔다.

문제는 이런 착각이 ‘조선일보’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분명히 크고 건실한 기업이지만 삼성전자가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삼성전자나 삼성그룹, 대기업 재벌 집단의 성장이 곧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무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들 기업들이 이익을 내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이익이 사회적으로 분배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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