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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2표제의 함정 : MBC 사장 선거의 경우.

Written by leejeonghwan

February 22, 2023

극단적인 시나리오를 가정해 보자.
후보는 셋이고 이 가운데 둘을 최종 결선에 내보내야 한다. 선거인단이 150명이라고 치면,
A 후보가 70표를 얻고 B 후보가 50표, C 후보가 30표를 얻을 경우 A와 B가 결선에 진출한다.

그런데 가장 선호하는 후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을 선택하게 한다면(1인2표) 어떤 변수가 발생할까. 이런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1순위에서 A=70, B=50, C=30인데,
2순위에서 A=20, B=60, C=70이면,
합산해서 A=90, B=110, C=100으로 A가 컷오프 된다. (B와 C가 결선에 올라간다.)

심지어 1순위 선호도에서 A가 B와 C보다 세 배나 앞서더라도,
이를 테면,
1순위에서 A=90, B=30, C=30인데,
2순위에서 A=9, B=71, C=70이면,
합산해서 A=99, B=101, C=100으로 A가 컷오프 된다.
1인1표라면 압도적인 1위가 됐을 후보가 1인2표에서 탈락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A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다수와 A만은 안된다고 생각하는 소수가 대립할 때 이런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1인2표 시스템에서 A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상대 진영의 후보에게 1표를 내줘야 하지만 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A가 아닌 다른 후보에게 2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가뜩이나 이건 세 명 가운데 두 명을 뽑는 투표다.

A가 돼야 한다는 사람이 90명이고 A가 되면 안 된다는 사람이 60명이라면 1인2표를 줬을 때 A가 탈락하고 B와 C가 결선에 올라가게 된다. 2명을 뽑는 선거니까 2표씩 행사한다는 룰이 언뜻 그럴 듯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맹점이다.

좀 더 극단적인 가정을 해보면 이런 시나리오도 가능하다.150명이 2표를 행사하면 모두 300표다. A를 지지하는 사람이 99명이고 A를 반대하는 사람이 51명인 경우, 거의 두 배의 차이인 것 같지만 300표 가운데 A가 일단 99표를 확보하고, A 반대파가 B와 C에게 1표씩 나눠줘서 B와 C가 51표씩 나눠가졌다 치면, 문제는 A를 지지하는 사람의 두 번째 표다. 99명이 각각 B와 C에게 50표와 49표를 나눠준다면 결과적으로 A는 99표. B는 101표, C는 100표로 A가 탈락하게 된다.

(결국 이 투표의 성격은 두 명을 뽑는 투표라기 보다는 한 명을 떨어뜨리는 투표였다. 그렇다면 1인2표가 과연 최선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몇 가지 해석이 가능할 텐데,

– A를 1순위로 선택하지 않은 유권자들이 2순위로도 선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고.
– 원래 A가 싫었기 때문에 B를 1순위로 선택한 사람은 C를 2순위로 선택했을 것이고 같은 이유로 C를 1순위로 선택한 사람은 B를 2순위로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 A를 1순위로 선택한 유권자들은 2순위로 B나 C를 선택해야 하는데 전혀 뽑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표를 줘야 하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상당수는 1순위만 적고 기권했을 수도 있다.)
– 결국 어떤 사람들의 표가 결집되느냐가 관건인데 이 경우 맹점은 첫 번째 표와 두 번째 표에 경중의 구분이 없다는 것. 자칫 누가 좋은가보다 누가 싫은가가 더 과다 대표될 위험도 있다.
– 애초에 1인 2표를 주면서 1순위와 2순위의 배점에 차등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호오가 엇갈리는 후보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당연히 인기도도 중요하지만 적이 많지 않은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 유권자들 중에는 누군가를 당선시키기 위해 투표한 사람도 있었겠지만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투표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결과는? A를 당선시키려는 사람들의 표는 분산됐고 A를 떨어뜨리기 위한 표심이 강하게 결집했다.
– 세 명의 후보 중에 누가 좋은가 물으면 A가 가장 많은 표를 얻지만 죽어도 A가 되는 꼴을 못 보겠다는 사람들이 결집하면 극단적으로 3분의 2의 지지보다 3분의 1의 반대가 더 큰 득표율을 만들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1인2표 시스템이 다수결의 원칙이 위배된다고 할 수 있을까? 경우에 따라 민주주의에 더 부합하는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선택하기 나름이다. 반대하는 사람들도 국민들이고 공영방송 사장을 뽑는 투표라면 단순히 인기 투표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어차피 득표율과 무관하게 두 명을 뽑는 중간 투표에서 두 명씩 투표하게 하는 시스템은 결과를 왜곡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국회의원 선거가 중대선거구제로 바뀌면 2명 이상에게 투표하는 연기명 투표가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건 수십 명의 후보들 가운데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5~6명까지 선출하는 방식이다.)
과연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을까. 아니면 철저하게 계산된 시나리오였을까.

아마 A는 1인2표의 함정을 간과했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그 누구도 뚜껑을 열기 전까지 룰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A는 압도적인 지지율만 보고 반대 여론을 끌어안는데 소홀했을 수도 있다. 물론 면접 심사 결과, 실제로 B와 C가 기대 이상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세 명의 후보 중에 두 명을 뽑는데 투표 용지를 두 장씩 주는 이런 선거는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이상, 결과에 대한 평가라기 보다는 룰의 취약성에 대한 문제 제기다. 위의 숫자들은 모두 실제 그렇다기 보다는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일 뿐.

– 156명의 시민평가단은 지역과 연령, 성별 등의 비율을 맞춰 외부 조사업체에서 선정했다. (한국의 평균적인 성인 남녀의 여론을 반영했다는 의미.)
– 1인2표. 시민평가단은 세 명의 후보 가운데 두 명을 투표했다.
– MBC의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오는 21일 최종 면접을 통해 두 명의 후보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한다.
– 방문진의 9명 이사들은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들이고 대략 박성제에 우호적인 이사들이 9명 가운데 6명 정도 된다. 이들이 룰을 만들었다는 게 아이러니한 일.
– 좀 더 보완하고 확대해야겠지만 국민선거단은 어쨌거나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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