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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선.

철도 공사는 왜 늘 적자를 내는 걸까. 철도공사의 적자는 10조원, 해마다 1조원씩 더 늘어나고 있다.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 탓일까. 민영화와 구조조정이 해답이 될까. 영국 철도 민영화 실패 사례를 다룬 ‘탈선’은 이 문제를 파고 든다. 철도가 결국 적자를 낼 수밖에 없는 산업이고 민영화시켜 시장에 맡겨 두었을 경우 어떤 비극이 초래하는지 이 책에 잘 나와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실의 오건호 보좌관이 번역한 책이다.

영국 철도는 대표적인 공기업 민영화 실패 사례다. 영국은 1996년에 철도를 민영화했다가 6년 만인 2002년 다시 공영화했다. 철도시설을 인수한 공단의 이름은 네트워크 레일, 이 공단은 비영리 기구로 정해졌고 시민 100여명이 참여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철도총회가 설립됐다. 영국 정부는 이 공단에 210억 파운드, 42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 6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영국 정부는 경쟁을 극대화한다는 명분으로 철도산업을 철저하게 쪼개서 매각했다. 먼저 레일트랙이라는 회사가 설립돼 전국의 선로를 한꺼번에 넘겨받았고 선로의 유지보수를 맡는 3개 회사, 여객차량 임대를 맡는 3개 회사, 그리고 여객수송을 담당하는 25개의 열차운행사와 화물수송을 담당하는 3개 화물철도회사 등으로 쪼개져 민영화됐다. 레일트랙이 전국의 선로를 독점하게 된 것은 중앙관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문제는 레일트랙이 주식시장에 상장되고 주주가치 극대화에 나서면서부터다. 이 회사는 민영화 첫해인 1997년에 3억7천만파운드, 우리 돈으로 74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그 이듬해에도 4억3천만파운드, 85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영국 정부는 초과이윤세를 걷는 것 말고는 이 독점 기업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레일트랙이 과도한 이윤을 챙기면서 열차운행사들은 만성적자에 시달렸다. 원래부터 적자투성이였던 영국 철도는 민영화 이후 정부 보조금이 두배로 늘어났다. 민영화 초기에 최소 이윤을 보장해주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파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보조금은 늘어났는데 적자는 해결되지 않았다. 서비스는 훨씬 더 떨어졌는데 요금은 물가상승률을 웃돌았다. 승객들은 불만을 터뜨렸지만 상황은 갈수록 더 악화됐다.

더 큰 문제는 민영화 이후 안전사고가 부쩍 늘어났다는 것이었다. 레일트랙이 자동보호장치 등 안전운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설비조차 구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도 이를 강제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몇차례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고 뒤늦게 시설보수에 나선 레일트랙은 2001년 2억파운드, 1조원 이상의 적자를 내고 결국 파산했다. 영국 정부는 결국 철도를 다시 공영화할 수밖에 없었다.

탈선 / 앤드루 머리 지음 / 오건호 옮김 / 이소출판사 펴냄 /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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