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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 모델은 대안인가 : 뉴스 유료화는 선택 아닌 당면한 현실.

Written by leejeonghwan

December 7, 2019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해보자. 신문 광고가 왜 매달 마지막 날에 몰릴까. 기업들은 왜 11월 29일까지 광고를 틀어쥐고 있다가 11월 30일에 광고를 쏟아낼까.

첫째, 언제 집행하든 어차피 광고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둘째, 광고를 쥐고 있어야 언론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고, 셋째, 마지막 날까지 어떤 기사가 나오는지 지켜보고 있다가 경우에 따라 광고를 집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를 주고 싶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이유로 기사를 문제 삼아 광고 집행을 미루거나 정작 금액만 집행되고 지면에 뜨지 않는 광고가 수두룩하다.

불편하지만 이게 한국 언론이 직면한 현실이다. 지난 한 달 동안 기사를 잘 써줘서, 또는 불편한 기사를 안 써줘서 고맙다고 집행하는 광고는 언론과 자본의 뿌리 깊은 유착을 드러내는 증거다. 보수 성향 신문이든 진보 성향 신문이든 광고 효과를 보고 집행하는 광고는 거의 없다. 그나마 관리 차원에서 집행하는 광고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고, 협찬과 후원 등 음성적인 거래가 늘어나면서 언론의 자본 종속을 가속화하고 있다.

냉정한 현실 인식을 위한 ‘팩트 폭행’.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몇 가지 ‘팩트 폭행’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첫 번째 팩트. 신문 발행 부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국ABC협회 부수공사 기준으로 상위 12개 전국 단위 일간지 발행 부수는 2010년 739만 부에서 2017년 595만 부로 19.7%나 줄어들었다.

두 번째 팩트. 종이신문의 열독률과 열독 시간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열독률은 같은 기간 58.5%에서 16.7%로, 열독 시간은 13.0분에서 4.9분으로 줄어들었다.

세 번째 팩트. 주요 신문사 매출은 그럭저럭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 같은 기간 이 신문사들의 매출은 1조 7,961억 원에서 1조 7,378억 원으로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 광고 효과도 없는 신문에 왜 여전히 광고가 붙는지 그 이유는 위에서 설명했다.

네 번째 팩트. 20대의 뉴스 이탈 속도가 매우 빠르다. 20대는 미디어 이용 시간이 주 413.2분으로 가장 긴데, 뉴스 이용 시간은 66.2분으로 가장 짧다. 전체 평균은 각각 330.9분과 79.7분이다. 10대는 더 짧을 것이고, 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쯤이면 뉴스 열독률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다섯 번째 팩트.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언론을 신뢰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한 사람이 23%밖에 안 됐다. 언론사 사이트를 직접 방문한다는 답변도 4% 수준이었다.

분명한 것은 뉴스 비즈니스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 광고는 답이 될 수 없고, 온라인 광고 역시 마찬가지다. 한때 네이티브 광고가 새로운 수익 모델이 될 것처럼 관심을 끌었지만 지난 몇 년 사이에 급격히 단가가 떨어졌고, 그나마 효과도 크지 않았다. 한동안 버틸 수 있겠지만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뉴스도 상품이다, 이렇게 말하면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좋은 뉴스를 만드는 것과 좋은 뉴스로 돈을 버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좋은 뉴스를 계속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뉴스로 돈을 벌어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뉴스를 거의 공짜로 뿌리면서 광고를 받아서 먹고살 수 있다면 그렇게 계속하면 된다. 한국에서 신문 광고는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지만 협찬과 후원이 줄어든 광고를 떠받치고 있고 적당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그럭저럭 파이를 지킬 수도 있을 것이다.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광고주와 타협하는 것과 독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 둘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독자가 없어도 광고로 먹고살 수 있다면 계속 이렇게 갈 것인가. 정의롭고 열정 넘치는 기자들을 먹고사는 문제와 타협하도록 내몰 것인가. 뉴스의 퀄리티와 저널리즘의 사명을 지킬 수 있는가. 뉴스 기업의 광고 중독과 언론의 신뢰 하락은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는 문제다. 선택의 문제면서 동시에 언론의 존재 이유를 묻는 질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미 2012년부터 구독 수입이 광고 수입을 넘어섰다. 프랑스의 독립언론 메디아파르트는 2012년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영국의 가디언은 2014년 멤버십 모델을 시작했다. 광고 시장이 무너지고 뉴스 비즈니스의 근간이 흔들리는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언론사들이 생존의 위기에 직면해 구독 비즈니스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뉴스가 공짜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광고 시장이 아직 살아 있으니 좀 더 버텨도 되는 것일까. 네이버와 다음이라는 거대 포털 때문에 한국에서는 어떤 실험도, 도전도 의미가 없는 것일까. 신문이든 방송이든 공짜 뉴스에 광고 끼워 팔기가 가능하려면 일단 충분한 독자를 확보해야 한다. 공짜 뉴스로 독자를 끌어모으고 충성도 높은 독자들이 광고 효과를 보장하던 시절은 이미 끝난 지 오래다. 한국에서 공짜 뉴스는 네이버와 다음에 차고 넘친다. 신문이든 방송이든 더 이상 광고 플랫폼으로 작동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네이버와 다음은 고정 변수라고 봐야 한다. 인링크냐 아웃링크냐를 두고 한동안 논란이 있었지만 애초에 포털이 뉴스를 다루지 못하도록 전면 금지하지 않는 이상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연합뉴스가 포털에서 탈퇴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게 없고 몇몇 신문사가 집단 탈퇴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포털이 뉴스를 포기할 이유가 없고 이용자들의 습관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포털과는 계속해서 싸워야 한다. 플랫폼으로서 공적 책임을 다하도록 압박하고 포털에 빼앗긴 독자들을 되찾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동시에 포털 외부에서 뉴스 생태계를 구축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확보하려는 실험을 멈춰서는 안 된다.

실패 없이는 변화도 없다.

고무적인 현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 또는 푹과 옥수수, 멜론과 벅스 등에 돈을 내는 것처럼 뉴스 콘텐츠를 스트리밍 방식으로 소비하는 새로운 습관이 만들어지고 있다. 더 이상 영화나 음악 파일을 다운로드하지 않는 것처럼 뉴스도 이제 필요할 때마다 접속하고, 낱개의 콘텐츠가 아닌 콘텐츠 패키지와 브랜드에 비용을 지불하는 모델로 바뀌고 있다. 지금의 30대보다 20대가, 20대보다 10대가 디지털 지불 문화에 익숙하다. 한 번도 종이신문을 구입해보지 않은 세대가 디지털 콘텐츠에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이들이 사회에 나오는 10년 뒤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달라진 세상을 따라잡을 준비가 돼 있는가. 아니면 늙어가는 독자들과 함께 늙어가면서 도태할 것인가.

지금이야 뉴욕타임스가 디지털 유료화의 벤치마킹 모델로 꼽히지만 2005년에 도입한 ‘타임 셀렉트(Time Select)’는 참담한 실패였다. 구독 수입은 일부 늘었지만 트래픽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가장 좋은 기사가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뉴욕타임스는 2년 만에 유료화를 전면 중단했다가 5년 뒤인 2011년 1월에서야 다시 미터드 페이월(metered paywall) 방식의 유료화를 시도했다.

만약 월스트리트저널이나 파이낸셜타임스처럼 강력하게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면 하드 페이월(hard paywall) 방식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어떤 기사를 쓰고 있는지는 대부분 안다. 월 19.5달러(약 2만 원)를 내면 기사를 볼 수 있고 회원이 아니면 제목과 첫 몇 줄만 볼 수 있다. 철벽을 치더라도 충분한 독자를 확보할 수 있다면 검토해볼 만한 모델이지만 한국 언론사 가운데 하드 페이월로 성공할 수 있는 언론사는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뉴욕타임스처럼 훌륭한 명성과 신뢰를 확보한 언론사라면 미터드 페이월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과 파이낸셜타임스는 꼭 봐야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뉴욕타임스는 워싱턴 포스트나 가디언이 대체재가 될 수 있다. 굳이 이 신문이 아니라도 읽을 수 있는 뉴스라는 인식을 뒤집지 못한다면 독자들을 붙잡기 어렵다. 뉴욕 타임스는 월 20건까지 무료로 볼 수 있는 느슨한 페이월로 시작했다가 10건으로 줄이고, 다시 5건으로 줄였다. 뉴욕타임스에 처음 접속하면 ‘당신에게는 4건의 기사가 남아 있다(You have 4 free articles remaining)’는 문구가 뜬다. 뉴욕타임스 독자들은 여섯 번째 기사를 읽기 위해서 돈을 내는 게 아니라 무료로 읽은 5건의 기사가 충분히 돈을 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원 성격으로 구독료를 지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멜론의 ‘Hi-Fi 스트리밍 클럽’은 이용료가 월 1만 3,200원이다. 1곡을 듣든 10곡을 듣든 1,000곡을 듣든 같은 금액이다. 언제든 접속해서 듣고 싶은 만큼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소속감과 안정감이 달마다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이용료를 큰 부담 없이 받아들이게 만든다. 뉴욕타임스 역시 마찬가지다. 뉴욕타임스 유료 회원이라는 자부심과 남은 기사 건수에 신경 쓰지 않고 언제든 들어가서 이것저것 클릭해서 읽을 수 있다는 편리함이 월 8달러(약 9,000원) 이상의 만족감을 가져다준다. 단순히 좋은 기사가 많아서 구독이 늘어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미터드 페이월 역시 한국에서 도입할 수 있는 언론사는 거의 없다. 일단 포털에 뉴스를 보내는 언론사는 페이월 자체가 의미가 없다. 공짜 뉴스가 넘쳐나는데 누가 돈을 내고 뉴스를 보겠는가.

독자를 분석하라.

뉴스 콘텐츠 유료화를 고민하는 언론사라면 먼저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포털에 뉴스를 보내지 않을 수 있는가. 둘째, 포털에 쏟아지는 하루 3만 건의 뉴스와 다른 뉴스를 만들 수 있는가.

포털에 보내지 않는 콘텐츠가 있다면 프리미엄 모델을 검토해볼 수 있다. 공짜 콘텐츠로 평판과 신뢰를 확보한 뒤 유료 콘텐츠 구독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포털에 뉴스를 공급하고 있더라도 일부 콘텐츠를 포털에 송고하지 않고 유료 독자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문제는 비용을 지불할 만큼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다.

덴마크의 미디어 전략가 토마스 백달(Thomas Baekdal)은 “어디에나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갖고 싶어 하는(nice to have) 콘텐츠에 비용을 지불하라고 설득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사람들은 가질 필요가 있는(necessary to have) 콘텐츠에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고 설명했다.

“신문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은 더 이상 새로운 섹션을 만들거나 모바일 앱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시장의 수요를 충족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고, 그 제품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소비할 수 있는 수백만 가지의 다른 것들보다 돋보이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11월 2일 제주도 서귀포칼호텔에서 열린 관훈클럽 세미나에서 우병현 조선일보 디지털전략실장이 ‘한국 언론은 콘텐츠의 함정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는 발제에서 강조한 말이다. 이 말은 바라트 아난드(Bharat Anand)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의 저서 ‘콘텐츠의 미래’에서 인용한 대목이다. 콘텐츠는 귀신이다.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처럼 우리를 홀린다. 이 함정에 갇히는 순간 패망의 길로 간다. 좋은 콘텐츠가 돈을 벌어다줄 거라는 믿음에서 벗어나라는 이야기다.

조선일보는 2013년 11월 ‘프리미엄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프리미엄 콘텐츠 유료화를 시도했다. 심층 분석 기사를 유료로 묶었고 한비야, 엄홍길, 정운찬, 박경림 등의 필진을 확보하고 수준 높은 칼럼을 게재했다. 기자들에게 직접 질문할 수 있는 양방향 서비스도 선보였다. 그러나 트래픽 감소 등의 우려로 유료 전환을 미루다가 결국 2017년 12월 프리미엄 관련 부서를 해체하면서 전면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한겨레는 가디언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뉴스는 얼마든지 공짜로 봐라. 다만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와 저널리즘 철학을 지지한다면 후원을 해달라. 한겨레는 콘텐츠 판매가 아니라 후원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이 기사를 단독 취재한 ○○○ 기자에게 아메리카노를 한잔 쏘겠습니다”와 같은 문구가 기사 하단에 붙었다. 임석규 한겨레 디지털미디어국장에 따르면 2017년 2월부터 2018년 1월까지 1,286건의 기사에 1,543만 원의 후원이 들어왔다. 1,286건 가운데 532건(41.3%)에는 후원이 전혀 없었다. 달리 말하면 1,286건 가운데 58.7%는 적은 액수일지라도 독자들이 지갑을 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한겨레는 6월 1일부터 후원 배너를 편집국에서 생산한 모든 기사로 확대했다. 6월 한 달 동안 2,349개의 기사 가운데 157건(6.7%)에 후원이 붙었다고 한다.

임 국장은 “가디언은 뉴스를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상품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누구나 무료로 향유할 수 있는 공공재로 접근하고 있다”면서 “안정적인 후원 모델을 구축하려면 매체와 후원자 사이에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긴밀하고 장기적인 연결, 유대관계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접촉과 연결이 필수이며, 언론이 끊임없이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 소통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조선일보 모델도, 한겨레 모델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조선일보는 고급 콘텐츠에 대한 적극적인 수요를 끌어내는 데 실패했고, 한겨레는 태생부터 가디언 모델에 가깝지만 후원 모델로는 아직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둘 다 포털의 공짜 뉴스와 차별화하고 독자들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다.

사명과 가치, 연대와 소속감.

미국신문협회는 뉴스 구독자의 유형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깨어 있는 시민(The Civically Committed) 유형. 이들은 저널리즘을 지지하는 게 민주주의 시민의 도덕적 책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잘 읽지 않으면서도 기꺼이 구독료를 낸다. 이들에게는 언론의 사명과 가치, 지역 공동체에서의 역할을 강조하고 연대감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상호작용을 강화하는 게 훌륭한 구독 전략이 된다. 감사 편지와 함께 후원금 영수증을 챙겨주는 것은 기본이고, 기자들이 진행하는 취재발표회도 독자들의 충성도를 높이는 이벤트다. 뉴스타파가 후원 회원들의 사진을 담아 달력을 만드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사례다.

둘째는 검소한 거래자(Thrifty Transactors)고, 셋째는 까다로운 참여자(Elusive Engagers) 유형이다. 검소한 거래자는 구독을 할 만한 명확한 이유와 목적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조직의 관리자가 됐을 때 해야 할 질문 8가지’라는 하버드비즈니스 리뷰의 기사는 누군가에겐 30달러(약 3만 4,000원)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미국에서는 전국 단위 뉴스보다는 지역 뉴스가 좀 더 직접적인 수요를 만들어낸다. 까다로운 참여자들은 무료 기사만 읽고 빠져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에게는 정기 구독보다는 일회성 후원을 유도하는 게 더 효과적이고, 구독을 하더라도 언제든 중단할 수 있다는 안내사항을 충분히 강조하는 게 좋다. 구독보다는 기념품 판매나 쇼핑, 이벤트 참석 등 지갑을 열게 만들 다른 방안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가격이 적당한지에 대해서도 정해진 답은 없다. 독일의 디벨트(Die Welt)는 월 구독료를 3유로(약 4,000원) 낮췄고, 프랑스의 피가로(Le Figaro)는 구독료를 올리려다 실패했다. 뉴욕 타임스는 가장 낮은 번들 가격을 주 0.25달러(약 280원) 인상했는데, 태블릿을 포함한 비용이다. 몇몇 신문사들은 과감하게 가격을 올리고 장기적으로 디지털로 옮겨가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UK타임스(UK Times)는 2010년 구독료를 주 2파운드(약 3,000원)로 두 배 올린 데 이어 2012년에는 주 4파운드(약 6,000원), 2014년에는 6파운드(약 8,000원)로 높였다. 보스턴글로브(The Boston Globe)도 비슷한 전략으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낮은 가격으로 시작해서 독자를 충분히 확보한 다음 프리미엄 콘텐츠를 중심으로 가격을 높여가는 전략도 있고, 아예 높은 가격으로 시작해서 충성 독자를 중심으로 로열티를 강화하는 전략도 있다. 영국에서도 가디언과 타임스, 텔레그래프의 전략이 각각 다르다. 타임스는 2010년부터 하드 페이월을 도입했는데, 방문자가 급격히 줄어들자 2016년부터는 일주일에 2건까지 무료 기사를 허용하고 있다. 타임스의 구독료는 2012년 이후 세 배가 늘어 일주일에 6파운드, 2017년 기준으로 구독자가 62만 명에 이른다. 가디언은 30만 명의 정기 후원자와 20만 명의 종이신문 구독자, 연간 30만 명의 일회성 후원자를 포함해 80만 명의 후원자를 확보하고 있다. 텔레그래프는 미터드 모델을 실험한 뒤 프리미엄 모델로 전환했다. 정기 결제의 경우 기본 구독료가 주 2파운드다. 가디언과 텔레그래프 모두 1,000만 명의 후원 또는 구독자 확보가 목표다.

실력 있는 개발자를 확보하고 있고 기술 투자가 가능하다면 다이내믹 페이월을 검토해볼 수도 있다. 100명의 독자에게 똑같은 페이지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100명의 독자에게 100개의 다른 페이지를 보여주라는 이야기다. 정치 기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정치 기사를, 문화 기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문화 기사를 좀 더 많이 노출해주고, 한 기사를 읽고 나면 관심 있어 할 만한 다른 기사를 계속 추천해서 1회 방문당 페이지뷰와 체류 시간을 늘리면서 구독 전환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무엇을 팔 것인가.

독자와 그의 행동 패턴을 분석하고 계속해서 A/B 테스트를 하면서 효율을 높여가지 않으면 변덕 심한 뜨내기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없다.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뉴스레터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정보가 넘쳐나면서 역설적으로 진짜 정보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나 있는 뻔한 기사를 만들지 않고,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잠재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마스 백달은 이런 이야기도 했다.

“신문 구독을 부탁하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나는 왜 이 신문을 구독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마치 내가 진공 상태에 살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 위대한 뉴스를 가져다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뉴스 생산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사람들이 더 많은 뉴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다른 뉴스를 줄 수 있는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뉴스와 함께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뉴스가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 아니고, 저널리즘의 역할이 덜 중요하게 된 것도 아니다. 가짜뉴스가 범람하고 언론의 신뢰도가 급락하는 지금, 저널리즘의 사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더 많은 소음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더 나은 뉴스다”라는 백달의 지적처럼, 구독 모델이 실패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우리가 충분히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거나 제대로 팔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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