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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클 다운’으로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을까.

‘트리클(trickle)’은 넘쳐흐른다는 말이다.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는 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신다는 의미다. 대기업의 성장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부자들이 돈을 써야 경제가 살아난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말로는 하방침투 효과라고도 하고 더 노골적으로는 ‘떡고물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 경제에 르네상스가 오는 것일까. 삼성전자를 비롯해 LG전자와 현대자동차, 포스코, KT 등 업계 1위 회사들은 이미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적어도 앞으로 3년 동안은 큰 위험요인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업들은 매출과 영업이익, 시가총액이 해마다 두자리 수 이상 오르고 있다. 한국 경제는 이제 수확기에 접어들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뒤를 이을 다음 대통령은 아마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도 부담이 적을 것이다.

통계의 오류를 경계해야겠지만 트리클 다운 효과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위 계층 실질소득이 조금이나마 늘어났고 소비도 조금씩 회복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문제는 트리클 다운 효과만으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중위 계층이 아니라 하위 계층이다. 일자리는 계속 줄어들고 노동 조건도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이들의 소득 증가율은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쳤다. 이들의 소득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게 바로 양극화 문제의 본질이다.

참고 : 통계 그래프로 본 양극화의 실상. (이정환닷컴)

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양극화 문제 해결은 필요하지만 세금을 올리지는 않겠다고 했다. 결국 이게 노 대통령의 한계다.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일은 대통령도 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런데 여기서 “국민들”은 중위 계층 이상의 국민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국민들이 만장일치로 원하는 정책만 할 수는 없다.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면 반발을 무릅쓰고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트리클 다운만으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통계가 이를 명확히 증명한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하위 계층 국민들은 계속 가난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에게 양보를 요구하거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주의를 탓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핵심은 사회적 합의와 연대의 틀을 정부가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허한 구호를 늘어놓지 말고 정책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최근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논의는 양극화 문제의 함정이 어디에 있는가 잘 보여준다. 무작정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국민들의 동의도 얻기 어렵고 실효성도 크지 않다. 나보다 더 부유한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낸다는 믿음이 있을 때, 내가 내는 몇 만원 가운데 단돈 몇 천원이라도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확신이 있을 때, 그때 이 제도는 정착될 수 있다. 양극화 문제의 해법도 마찬가지다.

정말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넘쳐나는 물로 적당히 바닥을 적시려 할 게 아니라 누군가는 바가지로 물을 퍼 담아내야 한다. 이제는 파이를 키우자고 말할 때가 아니다. 파이는 이미 충분히 크고 이제 파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파이를 더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겠지만 그 파이가 어떻게 컸는가 돌아봐야 한다. 대기업 성장의 이면,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과 눈물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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