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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없는 언론의 시대, 무너진 뉴스 비즈니스.

Written by leejeonghwan

January 11, 2023

이 글은 “저널리즘 생태계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7가지 키워드”라는 제목으로 쓴 글 가운데 1장이다. 전문은 지난해 10월 자유언론실천재단에서 펴낸 ‘한국 언론 직면하기’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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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두스에 가 봤어? 거기서는 정말 높이 뛸 수 있었는데.”

누군가가 허풍을 떨자 듣고 있던 사람이 말했다.

“그래? 여기가 로두스다. 여기서 그렇게 뛰어 봐라(Hic Rhodus, hic saltus).”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프리드리히 헤겔은 이 이야기를 비꼬아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을 춰라!(Hic Rhodon, hic salta).” ‘

Rhodus(로두스)’를 ‘Rhodon(장미)’으로, ‘saltus(뛰다)’를 ‘salta(춤추다)’로 철자만 살짝 바꾼 것이다. 이상과 관념을 넘어 현실을 바로 보고 성찰하라는 의미다. 이념이고 이상이고 뭐고 니가 지금 뭘 할 수 있는지 묻는 프레임의 전환이다.

“한국 언론 바로 보기”를 이야기하는 첫 번째 글에서 나는 이렇게 화두를 던지고 싶다. “여기가 우리의 바닥이다. 여기서 다시 뛰어야 한다.”

우리에게 장미는 없다. 영광도 없다. 무너진 신뢰를 딛고 처절한 반성과 혁신을 모색해야 할 때다.

이 글에서는 한국 저널리즘 환경의 변화를 7가지 키워드로 분석하고 해법과 전망을 모색한다. 첫째, 뉴스 비즈니스의 붕괴와 둘째, 온라인 공론장의 플랫폼 종속, 셋째, 공영 언론의 위기, 넷째, 취약한 지배 구조, 다섯째, 허위 조작 정보의 확산, 여섯째, 디지털 공론장의 진화, 일곱째, 무늬만 혁신, 뉴스 룸의 관성과 퇴행 순이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기 위해 현실을 냉정하게 들여다보고 본질과 사명을 고민해 보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

1장. 독자 없는 언론의 시대, 무너진 뉴스 비즈니스.

두어 달 전 한 기업 임원의 제보를 받았다. 아무개 언론사의 허위 왜곡 보도로 “회사의 존폐가 흔들릴 지경”이라는 하소연이었다. 미디어오늘은 이런 제보 또는 민원을 숱하게 받는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언론의 정당한 비판 보도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광고를 노리고 비슷비슷한 기사를 계속 내보내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경우도 있지만 일단 기사의 사실 관계가 잘못된 게 아니라면 섣불리 의도적이거나 악의적이라고 단정 지어선 안 된다. 설령 기자가 감정을 담아 기사를 썼더라도 결과적으로 공익적인 보도인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홍보 담당 임원들은 그래서 언론과 정면 대응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전면전으로 치달아 집요하게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낼 수도 있고 언론 중재나 소송까지 끌고 가더라도 이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약점이 없는 기업은 없고 언론사와 소송으로 가면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가치가 전가의 보도처럼 쓰일 때도 많다. ‘위법성 조각 사유’는 언론 보도의 의도성과 악의성을 크게 따지지 않고 입증하기도 쉽지 않다.

언젠가 다른 아무개 기업의 임원이 이런 말을 했다. “큰 개든 작은 개든 물면 아프죠.”

많은 기업들이 적당히 광고를 주고 기사를 막는 관행에 의존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무리 마이너 언론사라도 검색해서 기사가 뜨면 홍보 담당자 입장에서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런 거 하나 처리 못하느냐”고 문책을 당할 수도 있고 옷을 벗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렵게 미디어오늘에 제보를 하더라도 익명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언론사와 싸우는 것처럼 비춰지지 않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조금 달랐다. 한 언론사 부사장이 비판 기사를 삭제해 줄 테니 3억 원의 광고비를 달라고 요구해서 받은 사건이다. 현금을 일시불로 입금한 뒤 약속대로 기사는 내려갔지만 며칠 뒤부터 여러 언론사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들이 하나 같이 기사 삭제를 조건으로 광고를 요구했고 시달리다 못한 이 기업은 결국 첫 보도를 낸 언론사 부사장을 강요와 공갈 혐의로 고소했다. 제보자는 자신들의 실명을 드러내도 좋다고 말했다. 그만큼 절박했다는 이야기다.

이 글에 사례로 거론한 여러 언론사의 실명을 밝히지 않는 것은 특정 언론사만 문제가 아니고 좀 더 구조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궁금하시면 링크의 기사를 확인해 보시길.)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가 이 사건을 취재했는데, 고소장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다른 직원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한 뒤) 단 둘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한 손의 바닥을 펼치고 다른 손의 세 손가락을 펼친 손바닥에 가져다 댔습니다. 그러면서 ‘천만 원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소장에는 이들의 대화 녹취록이 첨부돼 있는데 언론사 부사장이 이런 식으로 업체를 회유한 정황도 있다.

“기사를 제가 먼저 확인할 것 아닙니까? 그러면 이 관련 내용은 좀 드라이하게 업체 명을 좀 빼고, A업체라고 바꿔버리든지, 이제 그런 식으로 해서 내용을 어느 정도 순화를 시켜요. 그렇게 정정을 좀 하고요.”

입금만 되면 이미 나간 기사는 빠질 것이고 후속 기사도 자기가 막을 것이란 이야기다. 게다가 후속 기사 계획이 잡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막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는다. 결국 이 기업 관계자는 “겁에 질려” 서둘러 입금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다음은 그 부사장이 실제로 한 말이다.

“(후속 기사가) 화요일 날 잡혀 있는 거에요. (기사를 빼려면) 다른 기사로 대체를 해야 하는데 이게 뭐 뚝딱해가지고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아이템을 뽑아내야 돼요. 엄청나게 힘들거든요.”

후속 기사를 다른 아이템으로 대체하도록 힘을 써줄 수 있다는 의미다. 힘드니까 그에 걸맞을 대가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만약 입금이 된다면) 그렇게 해서 친 프렌들리로 가는 거에요. 제가 앵커에게 지시를 해가지고 이걸 몇 개 아이템을 단신으로 쪼개요. 약간 다운을 시키는 거에요.”

손가락 세 개, “천만 원 아닙니다.”

그가 이야기하듯이 이런 식의 기사 거래는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인 데다 시스템으로 진행된다. 불편한 기사가 나오면 광고로 딜을 한다. 딜이 되면 기사가 사라지거나 톤 다운되고 후속 기사도 중단된다. 만약 딜이 안 되면 후속 기사가 계속 나오고 다른 언론사에서 받아 쓰게 되고 회사 평판에 스크래치가 나고 홍보 담당자가 문책을 당하게 된다. 현장 기자들은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그게 고과와 승진에 반영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그러니까 이게 만약에 협조가 되고 예를 들어서 우리하고 어떤 마무리가 됐다는 게 확인이 됐으면 그때는 (기자를) 불러야죠, 제가. 그리고 나서 그 친구들을 설득하는 거에요. ‘경영으로 풀었다’, ‘빠다쳤으니까’ 라고 하겠죠, 걔한데. ‘일단 서로 협조 관계로 하기로 했고, 이 건으로 인해서 상처를 많이 받았으니까, 추후에는 좋은 기사로 보답을 하자’, 이렇게 해서 ‘그 건에 대해서 이제 방향을 좀 틀자’, ‘어차피 보도를 할 거라면 좋은 기사로 좀 하고 이렇게 하자’, 이렇게 제가 조치를 취할 수는 있죠.”

물론 이 기업 역시 문제가 없다고 보긴 어렵다. 애초에 광고를 주고 기사를 빼려고 한 시도부터 문제였고 뒤늦게 태도를 바꿔 소송을 시작한 경위도 석연치 않다.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기사가 나갔다고 주장하면서도 기사를 바로 잡기보다는 기사 삭제에 목을 맸다. 당장 기사를 막아야 하는 홍보 담당자 입장에서는 입금만 하면 기사를 삭제해 주겠다는 데 달리 대안이 없었을 수도 있다. 다음은 녹취록에 담긴 부사장의 말이다.

“숙제가 해결이 되면 기사가 오늘 당장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삭제를 시키는 데 딱 하루가 걸립니다. 만약 삭제를 하더라도 영상 내리고, 보고서를 제가 또 만들어야 해요. 취재 방향이 우리가 지금 취재했던 내용하고 다른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삭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해서 이걸 어떻게 하느냐, 오너한테는 제가 스크랩 보고를 따로 하죠. 그렇게 하고 나서 네이버, 다음, 우리하고 연계돼 있는, 이제 포털들한테 보고서 형식은 아니지만 관련된 내용을 이제 요약해서 이렇게 됐기 때문에 삭제 요청한다, 우리가 삭제한다고 삭제가 되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이제 비공개로 하든지, 뭐 안 보이니까. 삭제는 안 하고 비공개로 하는 방식을 치죠. 아무도 못 보죠. 기사가 열리지 않으니까. 그런 식으로도 조정할 수가 있는 거고.”

이 사건은 결국 재판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 증거가 명확하기 때문에 공갈과 협박에 해당된다는 판결이 나올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돈을 받아 챙긴 게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광고 계약을 맺은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빠져나갈 가능성도 있다.

이 부사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해온 것이 다 허공으로 날아간 느낌”이라면서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광고를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특별히 이번 건이 문제가 됐지만 수십 년 동안 해오던 방식 그대로라는 이야기다. 원래 늘 하던 건데 왜 문제를 삼느냐는 불만이 깔려 있다.

다른 사례를 몇 가지 들어보자면, 소송까지 가지는 않았지만 한 신문사 기자가 “기사 삭제하고 싶으면 2000만 원 내라”고 요구한 사례도 있었다. 기사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취재원이 항의를 하자 기사 삭제를 조건으로 유료 서비스 가입을 요구했다가 입금이 되지 않자 삭제한 기사를 다시 노출해서 논란이 됐다.

미디어오늘 취재에 따르면 기업 관계자가 “잘 처리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기자가 “안 하는 걸로 알게요”, “신뢰를 주지 않네요”, “기사 다시 원상 복구 할게요”라고 답장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자는 “그쪽에서 (언론과의) 관계를 잘해보고 싶다고 해서 내린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삭제한 기사를 다시 굳이 노출한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에는 이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기사에 대한 제보가 숱하게 들어온다. 드러난 것은 일부일 뿐 알게 모르게 사라지는 기사 이면에서 온갖 거래가 오고 간다. 막상 취재에 들어가면 양쪽 모두 쉬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일로 구설수에 오르는 걸 원하지 않는 데다 무엇보다도 홍보 담당자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한 은행 간부가 언론사 부장에게 기사를 빼주면 2억 원을 주겠다고 제안한 사건이 드러나기도 했다. 다음은 명예훼손 소송에 증거로 제출된 녹취록 가운데 일부다.

은행 간부 : “서류 가지고 와서 정리하자, 이렇게.”
언론사 부장 : “정리는 나랑 어떻게 해야 돼요? 명확하게 다시 한 번.”
은행 간부 : “2개.”
언론사 부장 : “2개?”
은행 간부 : “앞으로 안 쓰는 걸로. 2억, 2억 줄게.”

이 언론사 부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멸감이 들었다. 우리 언론이 적폐라는 소리를 듣는데 이게 현실이고, 이렇게 언론을 핸들링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기자는 글로 쓰고 반론을 받으면 된다. 반론을 실어주겠다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 ‘마지막 카드’라는 말을 쓰며 협박했다.”

시민단체가 한 금융지주회사 회장을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실을 보도한 뒤 언론사 부장이 “지금 기사 내리자”, “국장한테 민원이 세게 들어왔다”며 기사 삭제를 지시한 사건도 있었다. 기사를 쓴 이 언론사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 부장은 참여연대 고발기사를 내리는 대신 하나금융에서 금전 대가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나 언론사와 금융지주회사는 모두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시민단체가 고발한 사건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기자들을 만나면 ○○은행에 대한 비판적 기사가 나올 때 ‘장이 섰다’라고 말할 정도”라며 “‘얼마를 주고 기사를 내렸다’라는 말이 파다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 기사 삭제와 관련해 언론사 부장이 “3개 받았다”고 말한 게 3억 원을 받았다는 의미인지 항의를 ‘세게’ 받았다는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

“니 이번에 큰 공을 세웠다.”

다른 한 신문사에서는 편집국장이 기사 삭제를 조건으로 기업에 5억 원의 협찬금을 요구해서 실제로 기사를 삭제한 사건도 있었다. 취재 기자가 사표를 던졌고 기자들이 항의해서 결국 편집국장과 광고국장, 사장까지 물러나는 것으로 끝났다.

당시 사장과 기자의 통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장 : “‘뭐든지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하길래 나는 거절의 의미로 ‘5억 바로 들고 오면 해준다 캐라’ 했거든. 못한다 할 줄 알고. 아, 그랬더니 ○○(광고국장)가 바로 전화하디만 ‘5억 바로 한다 캅니다’ 이러더라고.”
기자 : “한 10개 달라 하지 그러셨어요.”
(중략)
사장 : “니 이번에 큰 공을 세웠다. 요즘 이렇게 내겠다는 데도 없는데 수고 많았다. ○○(편집국장)이가 전화할 거다.”

이 기사는 지역 배달판에만 1면 하단에 실렸고 판 갈이를 하면서 다른 기사로 대체됐다. 온라인에는 아예 남아있지도 않다.

이에 앞서 이 신문사에서는 5개월 동안 취재한 기사가 갑자기 ‘킬’ 되면서 기자들이 “우리는 부끄럽습니다”라는 제목의 집단 성명을 낸 적도 있었다. 기사에 주요 대기업들이 등장하자 편집국장이 노골적으로 부담스럽다는 내색을 했고 결국 어렵게 취재해서 만든 시리즈 기사는 하나도 출고되지 않았다.

기자들은 편집국장이 “구체적 외압이 있기도 전에 우려만으로 국장이 먼저 기사 검열을 했다는 사실이 절망적”이라면서 “최근 3~4년 사이 기업에 기사 사전 정보가 새는 일이 늘고 기업 기사에 대한 내부 견제도 심해졌다”고 비판했다.

그나마 진보적인 성향의 신문사라 이 정도의 내부 비판과 반성이 있었지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많은 언론사에서 광고주의 영향력이 편집국에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편집권 독립의 문제면서 동시에 취약한 수익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기자들이 늘 옳지 않을 수도 있고 실수할 때도 많지만 멀쩡한 기사가 누군가가 불편해 한다는 이유로 사라질 때 그 이면에는 어떤 형태로든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 종이 신문이 위세를 떨치던 시절에는 오후 5시면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 기업 홍보 담당자들이 몰려들어 신문을 펼쳐 보는 게 일상이었다. 신문 초판을 확인하고 문제가 될 만한 기사가 뜨면 배달판 인쇄 전에 손을 쓰기 위해서다. 홍보실 직원이 전면 광고가 들어갈 필름을 말아 쥐고 있다가 언론사로 뛰어가 기사를 바꾸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때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도 했다. 기사를 들어내면 그 자리에 다른 기사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아예 한 면을 통째로 들어내는 것이다.

“회장님 관련된 기사는 1억 원 주고라도 빼야 한다”는 게 기업 홍보 담당자들이 공공연하게 하는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단가가 훨씬 뛰었다. 앞서 살펴 본 것처럼 기사 한 건에 5억 원 이상에 거래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랬던 신문 가판이 폐지된 게 2005년인데 2013년부터 일부 신문들이 ‘온라인 초판’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둘씩 가판 서비스를 부활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전국 단위 일간신문 가운데 온라인 초판을 안 내는 곳이 거의 없다. 애초에 가판이라는 게 지역 배달판을 먼저 찍어서 내려 보내고 이를 미리 받아보는 성격이었다면 ‘온라인 초판’은 다음날 신문을 PDF로 미리 받아볼 수 있게 폐쇄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성격이다. 심지어 가입자도 가려 받는다. (초판과 배달판 사이에 어떤 기사가 사라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몇몇 언론사에 초판 가입을 문의했으나 미디어오늘에는 계정을 열어줄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기업들이 최대 월 200만 원까지 내고 굳이 몇 시간 더 빨리 신문을 받아보는 건 결국 신문 인쇄 전에 부정적인 기사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신문사 입장에서는 기사를 미리 보내줄 테니 ‘바터’할 거 있으면 하라는 노골적인 거래 제안인 셈이다.

그 유명한 장충기 문자와 박수환 문자는 이런 현실에서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뉴스타파가 검찰 수사 자료를 입수해 공개했고 미디어오늘이 후속 취재로 실명을 밝히고 해명을 들었다.

한 언론사 편집국장이 삼성전자 장충기 사장에게 이런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올 들어 삼성의 협찬+광고 지원액이 작년 대비 1.6억이 빠지는데 8월 협찬액을 작년(7억)대비 1억 플러스(8억) 할 수 있도록 장 사장님께 잘 좀 말씀드려 달라는 게 요지입니다. (중략) 삼성도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혹시 여지가 없을지 사장님께서 관심 갖고 챙겨봐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앞으로 좋은 기사,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다른 한 언론사 사장이 이런 메시지를 보낸 사실도 드러났다.

“갤럭시6 폰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일전엔 공연 티켓도 보내주셨는데. 감사 인사도 못 전했네요. 늘 신세지고 삽니다. 삼성 갤럭시6로 또 한 번 지구를 흔들었으면 좋겠네요. 고맙습니다. 건강 챙기시고요.”

“천박한 기사, 다루지 않겠습니다.”

지금 같으면 명백히 부정청탁 금지법 위반이지만 장충기 문자에 등장한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다. 이건희 회장의 성 매매 동영상이 논란이 됐던 무렵 한 통신사 상무는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님. 천박한 기사는 다루지 않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정치적 위기 국면 때마다 뉴스타파나 디스패치가 센세이셔널 한 기사를 내놓는데, 그 배후가 더 의심스럽습니다. 배후의 정보가 나중에 입수되면, 그걸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은 뉴스타파와 한겨레, 미디어오늘 등을 제외한 대부분 언론사에서 언급조차 없거나 간단히 전달하는 데 그쳤다. 그 해 12월 구글코리아가 발표한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본 유튜브 영상” 1위가 뉴스타파 동영상이었다는 건 우습다 못해 서글픈 일이다. 언론이 외면한다고 해도 이슈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참담한 현실 인식.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이 언론사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 앞에 진실을 외면하는구나.

심지어 한 방송사에서는 보도국 간부가 이런 동영상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기자들에게 “기밀을 유지하라”고 지시하고 이를 삼성에 알려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들은 광고주와 연대하고 광고주에게 충성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상당수 언론사에서 그게 이들이 이 자리를 지키는 이유고 비결이다.

언론의 바닥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로비스트 박수환 씨와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기사 거래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두 사람은 그리스와 이탈리아로 요트 여행을 다녀온 사이인데 이 요트가 하루 빌리는데 3000만 원이 넘는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이 돈을 누가 댔을까. 박수환 문자에 이런 대목이 있었다.

송희영 : “대우 빼라 했음다.”
박수환 :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송희영 : “사회면 톱을 일단 2단 크기로 줄였음다.”

뉴스타파는 “실제로 이 문자가 오고 간 다음날 조선일보에는 문자 메시지 내용과 똑같이 대우조선해양 관련 기사가 배치됐다”고 보도했다. 송희영 주필은 배임 수재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 유예 2년을 선고 받았는데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대우조선해양뿐만이 아니라 부실기업에는 공적자금 지원보다 국민주 공모가 바르다는 방식의 견해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며 “부정한 청탁에 의해 썼다고 볼만한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박수환 씨는 이 신문사 사회부장에게는 에르메스 스카프를 선물로 보냈고 에디터의 딸을 아무개 기업의 인턴으로 채용하는 데 힘을 써주기도 했다.

박수환 씨와 동아일보 김재호 사장의 문자 메시지 대화에서는 “저희 클라이언트인 ○○와 동아일보가 작지만 1억짜리 프로젝트를 했는데 아주 프로패셔널하게 해줬다”면서 “○○가 아주 좋아해서 내년에는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뉴스타파가 확인한 결과 이 무렵 실제로 4차례 기획 기사가 게재됐다. 동아일보의 해명은 “동아일보 외에도 여러 언론사에서 비슷한 시기에 홍보 기사를 게재했고, 기업 후원이 있다는 사실을 지면에 명시했다”는 것이었다.

부끄럽지만 이게 우리 모두가 바로 봐야 할 한국 저널리즘의 현실이다. 나는 민주언론시민연합 기고에서 “길들여진 맹수와 무너진 신뢰 비즈니스”라는 표현을 쓴 적 있다.

산에 가면 “짐승에게 먹이를 주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 부스러기 따위를 먹다 보면 사냥을 하지 않고 영양 불균형으로 내성이 떨어져 병에 걸리기 쉽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 언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눈앞에 있는 달콤한 것들을 집어 먹다 보면 당장 주린 배를 채울 수는 있겠지만 더 이상 사냥을 할 수 없게 되는 건 물론이고 결국 먹이를 던져주는 누군가에게 계속 의존하게 된다.

한국의 뉴스 산업은 B2C가 아니라 B2B 모델로 바뀐 지 오래다. 뉴스 비즈니스는 언젠가부터 독자들에게 서비스하는 모델이 아니라 광고주만 잡으면 지속가능한 모델이 됐다. 독자들이 떠나고 언론의 영향력도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광고 시장이 살아 있기 때문에 한국의 주요 언론사들은 아직 제대로 위기를 경험한 적 없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레거시 언론의 생존 모델이다. 좋은 기사가 수익과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으니 내부적으로도 변화의 동력이 없고 당연히 위기 의식도 없다.

광고가 보험료라면 무엇을 위한 보험일까

나는 월간 신문과 방송에 언론의 신뢰를 주제로 기고한 글에서 변질된 신문 광고 시장을 이렇게 평가했다.

“공식적으로 집행되는 광고는 물론이고 지면의 이면에서 거래되는 협찬과 후원은 모두 부정적인 기사를 관리하기 위한 사적 보험의 성격이다. 광고 효과가 거의 또는 전혀 없는데도 기업들이 수천억 원의 광고 또는 협찬‧후원을 집행하는 이유다. 물론 사고가 터졌을 때 보험이 작동하지 않으면 보험료를 계속 납입할 이유가 없다. 2008~2009년 삼성 비자금 특검 이후 보험 시장이 더욱 확대됐고 아직까지 확실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광고는 광고로 끝나지 않는다. 어차피 광고 효과가 거의 없다는 걸 누구나 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데 효과 없는 광고를 돈 내고 실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기대하기 마련이다.

세상 모든 걸 다 재단하고 가장 정의로운 척 심판의 칼날을 휘두르지만 그 칼날은 광고주 앞에서 멈춘다. 현장 기자들의 위축 효과도 문제지만 뉴스 룸 내부의 충돌도 많고 무엇보다도 취재 시스템이 취재가 잘 되고 잘 팔리는 이슈에 집중돼 있다. 미국에서 ‘뉴스의 사막’이 사회적 문제라고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뉴스의 사막’은 주류 언론의 출입처 바깥에 있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다루지 않거나 다루지 못하는 이슈의 구멍이 커지고 있다. 자본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그 가운데 하나다.

나는 미디어오늘에서 미디어 전문 기자로 일하면서 언론과 자본의 관계가 두 차례 큰 변화를 맞는 걸 지켜봤다. 첫 번째는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고발로 시작된 삼성 특별검사 사건이고 두 번째는 2017년 국정 농단 사건이 촉발한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의 구속 사건이었다. 공교롭게도 10년 간격을 두고 일어난 두 사건은 언론의 자본 종속을 더욱 심화시켰다. 2007년 이전에는 비판 기사를 썼다가 광고를 받고 기사를 빼는 일이 흔했지만 2007년 이후에는 감히 기업을 건드린다는 건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이 됐다. 그러다가 2017년을 지나면서 언론이 기업에 얼마나 충성심을 보이느냐에 따라 광고 배정 물량이 달라지는 시대로 진입했다. 업계 용어로 말하자면 과거에는 ‘조지면서’ 광고를 받았는데 이제는 이렇게 열심히 잘 써줬으니 광고를 달라는 방식으로 권력 관계가 바뀌었다. 기업의 홍보 담당자들은 언론사가 너무 많아서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한 군데 광고가 뜨면 온갖 신문들이 광고를 달라고 아우성이라 어쩌다 원 턴 광고를 돌리는 것 말고는 대부분 협찬이나 후원으로 푼다. 이런 경쟁 구도에서는 감히 광고주를 ‘조진다’는 걸 엄두도 내기 어렵다.

한겨레 곽정수 기자에 따르면 언젠가 장충기 사장이 임원회의에서 “홍보팀은 기자들과 술이나 먹고 골프나 치면서 삼성에 안 좋은 기사가 나오면 뒤늦게 언론사 쫓아가서 이건희 회장의 이름 빼고 제목 조금 고치는 게 고작”이라고 불만을 터뜨린 반면, “기획팀은 홍보팀도 모르는 언론사들의 삼성 관련 취재 계획이나 동향을 보고해 홍보팀을 곤혹스럽게 만든 적이 자주 있었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이제 광고로 기사를 막던 시대를 지나 광고로 언론을 길들이는 시대로 진입했다. 기업 입장에서도 뒤늦게 기사를 수정하는 것보다 애초에 그런 기사가 나오지 않게 언론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전략이 바뀌고 있다는 하나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광고가 아니라 기사를 판다.

3~4년 전 한 언론사 중견 간부가 이런 말을 했다.

“언젠가부터 달마다 마지막 날에 광고가 한꺼번에 몰리는데 왜 그런지 아세요? 이번 달에 잘 봐줬으니 이만큼 광고를 드린다 이거죠. 지켜보고 있다, 이런 의미랄까요. 언론을 광고로 길들이는 거죠.”

이를 테면 7월29일에 어떤 기업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갈 경우, 이틀 뒤 7월31일로 예정된 광고가 집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아마도 “이번 달에는 예산이 부족해서 광고 집행을 못하겠네요” 정도로 설명하겠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모두가 안다. 위에서 불편하게 생각하니 광고를 못 주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언론사에 충분한 시그널을 주고 현장 기자들에게는 직간접적으로 위축 효과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그나마도 지면에 실리는 광고는 일부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협찬과 후원 성격으로 결국 기사에 반영된다. 홍보 담당자들을 만나면 “요즘 누가 신문에 광고를 하나요”라고 웃어넘기는데 그 이면에는 “어차피 광고 효과도 없잖아요”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기자들도 “삼성은 얼굴 없는 기부 천사인가” 반문하는 게 한국 언론의 현실이다. 광고가 실리지 않았는데도 광고비가 입금되는 기묘한 현실은 여전히 적응하기 쉽지 않다. “협찬으로 푼다”고 말하는 건 기사 하나 써주고(써달라고 하고) 광고비를 받았다(줬다)는 다른 말이다.

미디어오늘도 언젠가부터 많지도 않은 광고가 월말에 몰린다. 그나마 기사를 문제 삼아 광고가 중단되는 일을 지난 10여 년 동안 타협 없이 감당해 왔다. 미디어오늘은 특히 언론과 기업의 부적절한 거래를 비판하는 기사를 많이 쓰기 때문에 많은 기업들과 척을 져야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필요할 때 보험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보험료를 낼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미디어오늘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지 않고 광고 의존도가 낮기 때문에 버틸 수 있지만 2007년 삼성 비자금 특검 때 한 신문사는 신문 용지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

나는 2020년에 여러 언론학자들과 함께 쓴 단행본 ‘저널리즘 모포시스’에서 이렇게 진단한 바 있다.

“한국 언론이 신뢰를 잃게 된 여러 가지 역사적 배경과 요인을 짚어볼 수 있겠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언론이 더 이상 권력에 맞서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언론이 자기네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확증 편향, 정치 권력을 비판하지만 자본 권력을 비판하지 못하는 비참하고 고루한 현실을 독자들도 모두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임종수 세종대학교 교수 등은 2015년 언론정보학보에 게재된 논문, “뉴스와 광고의 은밀한 동거”에서 “언론이 헤드라인에서는 비판적 묘사를 하지만 본문에 들어가서는 비판적 표현을 줄이고 전체적인 맥락을 드러내는 프레임 구성에서는 우호적 태도로 기술하는 은밀한 보도공학을 구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신문사들이 광고주 보도를 할 때 우호적인 태도가 교묘하게 감추어 포장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언론의 이런 양태는 바깥으로는 언론의 공정성을 강조하지만, 안으로는 광고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은밀한 거래’를 염두에 둔 의례적 객관주의 보도 관행의 존재 가능성을 시사한다. 기사가 나간 후 광고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공격(예컨대 광고취소)을 최대한 방어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는 동시에 기사 전체를 읽은 독자가 전반적으로 해당 기업에 대해 동정의 여지를 갖도록 고도의 기법을 동원하는 회피전략을 구사한다고 볼 수 있다.적지 않은 현업 종사자들은 이러한 관행이 가능한 것은 취재기자-데스크-편집자로 이어지는 게이트 키핑과정의 폐쇄성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임 교수 등은 “광고주와 신문사 사이의 이런 은밀한 거래관계는 결국 신문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궁극적으로 사회적 공론장으로서 언론 본연의 저널리즘 가치를 훼손할 우려를 제기한다”면서 “언론이 사회적 공기로써의 역할을 하기 보다는 상업적 이익을 고려한 거래성 보도를 한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미디어오늘은 지금까지 숱하게 이런 기사를 내보냈지만 달라진 건 거의 없다. 기사와 광고의 경계가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는 건 그래야 팔리기 때문이다. 오히려 언론과 자본의 유착은 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다. 광고가 안 팔리자 아예 기사를 팔고 있는 상황이다.

조선일보는 800만~2500만 원씩 받고 병원 홍보 기사를 내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헬스 섹션을 전담하는 영업 직원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어차피 이거는 광고비”라면서 “우리가 지면 계획을 하면 협조 공문이 베스트클리닉 멤버에게 먼저 간다. 마감이 안 되면 그 뒤 일반 병원에 공문을 보낸다”고 설명했다. 베스트 클리닉 가입비는 연간 500만 원 수준인데 멤버가 되면 광고 협찬 단가가 낮아지고 광고 기사 지면을 우선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병원들이 멤버로 참여하고 있었다.

경비 용역 업체 컨택터스의 폭력적인 집회 진압이 논란이 됐던 2012년 8월, 이 회사 홈페이지에 버젓이 홍보 기사 목록이 떠 있어 화제가 된 적 있다. 경제신문들은 물론이고 MBC와 YTN 같은 방송사들과 연합뉴스와 뉴시스 같은 통신사들, 한겨레와 경향신문, 프레시안 같은 진보 성향 언론사들까지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나마 네이버가 홍보성 기사들을 관리하기 시작하면서 광고 단가가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아예 대놓고 업체 전화 번호나 구매 링크까지 띄워놓은 보도 자료가 버젓이 기사로 둔갑해 실리는 경우도 흔했다.

기사형 광고 2000건, 국가기간통신사의 민낯.

연합뉴스는 최근까지도 홍보사업팀을 꾸려놓고 기사형 광고를 팔아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역시 미디어오늘이 10년 전부터 지적했던 문제지만 그동안 달라진 게 없다. 2021년 7월,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문건을 보면 연합뉴스의 기사형 광고는 1회에 23만8000원부터 100회 900만 원 상품까지 있었다. ‘○○○ 종합시장, 스마트한 디지털 전통시장으로 탈바꿈’ ‘○○콘텐츠 코리아랩, 8일까지 2020 콘텐츠시제품제작 2차 지원사업 모집’ ‘○○익스프레스, 11·11 글로벌 쇼핑 페스티벌 진행’ 같은 기사들이 모두 돈을 받고 게재한 기사형 광고였지만 이런 사실을 기사에 명시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놀라운 사실 가운데 하나는 홍보사업팀에서 작성한 기사에 일관되게 ‘박○○ 기자’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정작 메일 주소도 없고 연합뉴스 홈페이지의 기자 명단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를 읽고 기시감이 들어서 찾아보니 2012년에 나간 미디어오늘 기사도 거의 비슷했다. 미디어오늘이 단독 입수한 연합뉴스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연합뉴스는 기자를 보내서 기사를 써주는 취재 상품을 200만~300만 원을 받고 팔았다. 기사 없이 사진만 찍어주는 취재 상품은 71만5000원이었다. 이렇게 만든 기사는 포털에도 그대로 전송됐다. 그때도 지금처럼 연합뉴스 관계자는 “홍보 수요가 있고 이런 요구에 답하는 것이 언론의 기능 중 하나”라는 식으로 해명했다. 보도자료를 연합뉴스를 통해 내보내는 것도 연합뉴스의 공적 역할 가운데 하나라는 논리지만 중요한 건 독자들이 그게 돈 받고 나간 기사라는 걸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10년 전에는 적당히 뭉개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2021년에는 제휴평가위원회의 제재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게 차이일 뿐이다. 제휴평가위원회가 다른 언론사들의 기사형 광고를 문제 삼아 퇴출시킨 전례가 있어 연합뉴스만 예외를 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연합뉴스는 10년 전과 같이 “언론을 통해 알릴 ‘기회의 창’이 제한됐던 이들에게 언론 접근의 기회를 확대 제공하기 위해서였다”는 해명을 반복했다.

연합뉴스는 미디어오늘 보도 이후 문제가 된 기사 2000건 이상을 한꺼번에 삭제하고 부랴부랴 꼬리를 잘랐지만 포털 제휴평가위원회에서 1년 노출 제한 조치를 받았다. 이후 재심의를 통해 다시 노출되긴 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형평성에 문제가 많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마불사인가. 다른 언론사들은 진작 퇴출되고도 남았을 제휴 위반이지만 연합뉴스는 살아남았다. 애초에 제휴평가위원회가 한 번 내린 결정을 뒤집은 건 연합뉴스가 유일했다.

포털 제휴평가위원회는 ‘기사로 위장한 광고 전송’과 ‘등록된 카테고리(보도자료 등) 외 기사 전송’ 등 부정행위에 5건당 벌점 1점을 부과한다. 누적 벌점이 4점 이상이면 포털 내 모든 서비스에서 최소 24시간 노출이 중단되고, 6점 이상이면 포털과의 계약 유지 여부를 다시 평가받게 된다. 연합뉴스의 기사형 광고 2000여 건은 벌점 129.8점에 해당하는 부정행위였다.

진짜 심각한 건 이렇게 기사와 광고를 거래하는 비즈니스가 연합뉴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미디어오늘이 30여 차례 기사형 광고 문제를 연속 보도하고 연합뉴스가 초유의 노출 제한 조치를 당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침묵했던 것은 이런 비판에서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다음은 KBS ‘질문하는 기자들’에서 김효신 기자의 발언 가운데 일부다.

“제가 취재 중에 만난 한 언론사, 디지털 팀의 직원이 무슨 이야기를 했느냐 하면요. ‘기자님, 지금도 경제 분야 관련 뉴스를 보세요. 포털에. 똑같은 제목이 30개, 50개씩 올라와 있습니다. 그러면 이거는 뭔가요?’ 결국은 업계에 만연돼 있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경제 보도 중심으로 해서 이런 것들이 많이 발견됐는데요. 아무래도 기업들이라든지 홍보 가능성이 높아서. 그래서 저희도 봤더니 예를 들어서 벌써 지난 6월에 네이버 포털 뉴스에 올라온 기사를 하나 소개를 해드리자면 새로 출시된 맥주가 편의점에서 인기라고 하면서 상품명, 가격까지 나와 있어요. 이것은 광고인가 기사인가 이 수준이거든요.”

김효신 기자가 지적했듯이 돈을 받고 쓴 보도자료 기사도 당연히 문제지만 일상적으로 언론이 받아 쓰는 기업의 보도자료 기사가 근본 원인일 수도 있다. 기사 한 건에 얼마 하는 식으로 돈을 받지는 않지만 그렇게 기업 보도자료를 꾸준히 소화해 주면 월말에 광고가 들어온다. 이것은 대가를 받는 것인가. 안 받는 것인가. 암묵적인 사인과 합의. 어디까지가 기사형 광고고 어디서부터는 아닌지 경계도 모호하다.

세금으로 신문 광고, 4년 동안 1조원 육박.

기업 뿐만 아니다. 언젠가부터 정부 광고도 기묘하게 기사형 광고로 변질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2021년 국정감사에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한 신문에 실린 “술도 발암물질… 아무리 소량이라도 무조건 해롭다”는 기사는 국립암센터에서 1000만 원을 받고 진행한 기사형 광고였다. 다른 신문사에 실린 “식품 산업 전문 인력 양성… 푸드테크·미래식품 계약학과 신설”이란 기사는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에서 2730만 원을 댔다. 한 경제신문에 실린 “부산 엑스포는 국가 역량 세계에 뽐낼 기회”라는 기사는 4500만 원짜리 기사였다. 모두 국민들이 낸 세금이다.

미디어오늘 정철운 기자가 지적했듯이 정부광고법은 “정부 기관 등은 정부광고 형태 이외에 홍보 매체나 방송 시간을 실질적으로 구매하는 어떤 홍보 형태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런 불법 행위가 관행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 양성자를 이용한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어린이 환자는 10년 완치율이 무려 80%에 이릅니다. 이 조그만 아이에게 어떻게 칼을 대서 암을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외과적인 처치로는 민감한 부위의 종양 세포를 완벽하게 제거하기가 힘듭니다.”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방귀남(유준상)이 세미나에서 한 발언인데 이 대사를 포함해 여덟 차례 원자력 발전의 홍보 메시지를 집어넣는데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 1억6500만 원을 방송사에 협찬했다. 방사선 치료와 원자력 발전이 무슨 관계인지도 의문이지만 이런 어설픈 메시지에 세금을 쓴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시사인이 보도한 농협중앙회의 기사형 광고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농협의 농축산물 유통 구조 혁신’을 내용으로 한 2회 기획 특집 기사에 1억1000만 원이 나갔다. 고재규 기자는 “돈을 주는 대가로 기획 기사를 만들어내는, 나쁘게 말하면 ‘청부 기사’”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농협중앙회 홍보실은 광고나 협찬이 아니라 ‘기획 보도’라는 항목을 두고 예산을 별도로 책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일보는 기사 여섯 건에 5660만 원, 중앙일보는 9건에 3억7500만 원, 동아일보는 13건에 6억2872만 원을 받았다. 경향신문은 인터뷰 한 건에 3300만 원, 한겨레에 실린 “농협, 출하 농산물 50% 책임 판매”란 기사는 1247만 원이었다. 농협중앙회 홍보실 관계자는 시사인과 인터뷰에서 “기획 보도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사화해 독자들이 오해 없이 판단하기 때문에 홍보효과가 커서 기사 협찬을 해왔다”라고 밝혔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이 한국언론진흥재단에 정보 공개를 요청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 5월까지 한국의 정부 부처와 공기업, 지방 정부가 언론사들에 집행한 광고가 9536억 원으로 집계됐다. 신문 매체만 분류한 것이고 방송은 포함돼 있지 않은 자료다. 개별 집행 내역을 보면 동아일보가 421억 원으로 가장 많고 중앙일보가 373억 원, 조선일보가 361억 원 순이었다. 광고주 순위는 중소기업은행이 545억 원으로 1위, 토지주택공사가 365억 원, 경북도청이 319억 원, 대구시청이 228억 원, 서울시청이 218억 원 순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이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거부 당하자 행정소송까지 해서 받아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자료는 신문 광고만 집계한 것이지만 방송 광고를 더하면 규모가 훨씬 늘어난다. 미디어오늘이 한국언론진흥재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7년부터 2021년 4월까지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 방송사들에 집행한 정부 광고는 676억 원에 이른다. 여기에는 지방정부와 공공기관, 공기업 광고는 빠진 집계다. 역시 정보공개 청구를 해야 전수 집계가 가능한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에서 집행한 광고비는 1조893억 원이었다. 제일기획이 추산한 국내 광고 시장의 광고비 규모가 12조 원 수준인데 정부 광고가 이 가운데 9.1%를 차지한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뉴스의 사막’은 어디일까.

프랑스의 언론학자 줄리아 카제가 “값싼 신문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했던 건 그동안 언론이 뉴스를 거의 공짜로 내보내면서도 도달률과 영향력을 상품으로 광고를 끼워 파는 모델로 성장했지만 이제 이런 모델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이른바 페니 페이퍼(penny paper)가 처음 등장한 게 1832년이라면 200년이 채 되지 않아 그 시대가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뉴스 시장이 다른 나라들과 다른 건 여전히 광고 시장이 살아 있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 시장이 시장의 원리로 작동하는 게 아니라 이면 거래로 굴러간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게 저널리즘이 무너지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다. 스스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누구를 비판하고 누구를 감시하겠는가. “우리는 기사와 광고를 엿바꿔먹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언론사의 기자라면 그게 진짜 불편한 기사를 쓰지 않았기 때문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한국 언론의 ‘뉴스의 사막’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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