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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권 독립이라는 과제, 만연한 관행과 타협.

Written by leejeonghwan

November 16, 2022

(최근 출간한 ‘한국 언론 직면하기’에 실린 한 챕터입니다.)

언론이 정치권력이나 자본권력의 압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문제의식과 별개로 언론사 내부에서 편집권을 흔드는 구조적인 요인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광고와 기사를 맞바꾸자는 건 광고주의 달콤한 제안이기도 하지만 이들과 타협하고 편집국에 이를 강요하는 건 언론사 내부의 의사 결정권자들이다. 단순히 기사 한 건을 살리느냐 날리느냐의 문제를 넘어 저널리즘의 원칙 위에 군림하는 힘의 논리의 문제고 결국 뉴스 룸의 조직 문화의 문제다.

언론사에서는 언제나 의견 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인사권을 쥐고 있는 최종 의사 결정권자가 어느 쪽에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언론의 논조와 색깔이 바뀌게 된다. 문제는 의사 결정권자가 외부의 압력에 흔들리거나 현장 기자와 데스크의 판단을 힘으로 꺾으려 할 때 발생한다. 누군가가 최종 판단을 해야 하지만 그게 다른 종류의 이해관계와 얽혀 있을 때 저널리즘 원칙을 희생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사장을 잘 뽑는 문제 이상이다.

몇 년 전 한 언론사에서 사장이 시사 주간지 커버스토리의 기사 가치를 문제 삼아 기사를 교체할 것을 지시하자 편집장이 사표를 낸 사건이 있었다. 사장은 커버스토리로 내기에는 기사의 함량이 부실하다고 주장했는데 알고 보니 이 기사에서 다루는 기업의 임원이 편집인을 만나고 간 사실이 드러났다. 직접적으로 광고를 거래한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기자들 입장에서는 광고주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이 편집인은 “이 사건은 ‘사장의 편집권 침해 사건’이 아니라 ‘함량 미달 기사 고집 사건’”이라고 주장했지만 함량의 기준이 광고주를 의식해서 높아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었다. 기사의 출고 여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릴 때 최종 판단을 누가 하느냐를 두고 격론이 오갔다..

이 언론사의 경우 사장은 발행인이고 편집인을 따로 두고 있다. 경영과 편집을 분리하고 있기 때문에 사장이 편집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편집권의 주체인 편집인이 기사 수정 또는 보류를 지시했을 경우 그게 편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애초에 사장과 편집인이 의견이 다르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서 있는 곳에 따라 풍경이 다르기 마련이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지시를 거부하거나 최소한의 논쟁과 토론이 살아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론사 내부에 의견 대립이 없을 수는 없다. 실제로 취재가 부실한 기사라면 보완을 지시할 수 있고 취재 대상이 광고주라고 하더라도 반론의 권리를 보장하는 게 맞다. 다만 문제가 되는 건 상당수 언론사에서 이런 권리가 유독 광고주들에게 더 열려 있고 그걸 전제로 광고를 거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 모순에서 자유로운 언론사는 많지 않다.

한국의 대표적인 시사 주간지로 자리 잡은 시사인의 출발이 시사저널이란 걸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시사저널 사태는 2006년 6월 19일 금창태 당시 시사저널 사장이 이학수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을 다룬 기사를 삭제한 사건을 말한다. 데스킹과 편집을 다 끝내고 윤전기가 돌기 직전에 사장이 기사를 바꿔치기 한 것이다. 이에 반발해 사표를 낸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기자들을 징계하면서 파업에 돌입했고 대체 인력을 투입하면서 파행을 계속하다가 23명의 기자 전원이 사표를 던지면서 일단락됐다.

금 사장은 기자회견까지 열면서 “기사를 싣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 더 검증하고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고 당사자의 반론도 보장해 추후에 다시 다루자고 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기자들은 “금 사장이 기사 작성 전에 삼성 쪽의 전화를 받고 사장실로 불러 이학수 부회장과의 친분을 거론하며 기사를 빼줄 것을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금 사장은 자신에게 기사를 빼라고 지시할 권한이 있다고 판단했고 기자들에게 복종을 요구했다. 최종 판단은 사장이 한다는 생각이었겠지만 그게 구성원 전체의 의견을 거스를 정도로 중요한 판단이었을까.

한겨레는 “한국 언론계의 불행, ‘시사저널 사태’”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사태가 진정 걱정스러운 것은, 편집권이 발행인의 사유물처럼 다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편집권은 발행인의 전유물이 아니라 편집과 제작에 참여하는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는 것이어야 한다. 편집권이 일부의 전유물로 전락하면, 언론의 공공성과 신뢰는 땅에 떨어진다. 시사저널 경영진과 그들을 도와 잡지를 만들고 있는 언론인들은 이제라도 무엇이 시사저널과 한국 언론을 위한 일인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진정한 언론인이라면, 더 늦기 전에 사태 해결에 나서는 게 도리다.”

“편집권은 위임되는 것, 누구도 독점해선 안 된다.”

금창태 사장은 “편집권은 경영권의 핵심”이라고 주장했지만 시사저널 사태를 계기로 편집권의 범위를 두고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졌다. 이승선 충남대학교 교수는 한국언론정보학회 포럼에서 “편집권의 귀속 문제를 넘어 다른 관점의 논의가 필요한 것 같다”며 “편집권이라는 기존의 개념에 △편집국 종사자와 경영진의 약속 △편집국 종사자가 경영진에 거는 기대가 함께 포함된 ‘편집 규범’의 개념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설령 금창태 사장이 편집을 총괄하는 편집인이라고 하더라도 현장 기자들과 다른 판단을 일방적으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그게 편집인과 친분이 있는 인사와 관련된 기사거나 유력 광고주와 관련된 기사라면 기사 삭제의 명분을 충분히 구성원들에게 설득해야 한다는 게 시사저널 사태로 한국 사회가 다다른 결론이다.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KBS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편집인이 최종 책임을 진다고 하는 것은 편집에 관여하는 사람들끼리 편집 내용에 관한 갈등이 발생한다고 했을 경우에 그런 것들을 특정인의 주장대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조율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고 그 공동의 결정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 결론을 통해서 책임을 진다 이런 의미로 해석해야 마땅하죠.”
시사인 이종태 국장은 700호 데스크 레터에서 “편집권이란 것이 뭔지 헷갈리지만 권력이나 자본의 압박·유혹에 굴하지 않는 자세가 이른바 ‘편집권 독립’의 일부라는 것은 분명하다”면서 “나의 잠정적이고 편의적인 ‘실무지침’은, 기사가 팩트에 근거해서 논리적으로 작성되었다면 세상으로 내보낸다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의견이 다를 때 국장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다는 의미 보다는 정당한 기사가 외부의 압력과 공격에 직면할 때 이 기사가 발행될 수 있도록 지키는 게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는 이야기다.

이충재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2015년에 주요 신문사 편집국장들을 인터뷰해 작성한 논문에 따르면 이들은 “경영진의 편집권 침해가 심각하지만 현재 신문 위기를 감안하면 불가피하고 어느 정도는 용인할 수밖에 없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한국에서는 신문법에 따라 편집인이 편집권을 행사하게 돼 있지만 상당수 언론사들이 편집권을 편집국장과 기자들에게 위임하고 있기 때문에 편집국장이라고 하더라도 독단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는 없다. “편집국장은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을 뿐”이라고 보는 편집국장도 있었다.

한 신문사 편집국장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편집권은 당연히 발행인 또는 편집인에게 있다. 법적 분규가 발생했을 경우 최종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편집인이 1면 톱을 바꾸라면 바꿔야 한다. 다만 그 권한의 일부를 편집국장에게 위임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다른 신문사 편집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신문사의 경우는 회장이 편집인을 겸임한다. 그러나 회장은 편집에 관여하지 않고 편집국장이 핵심 롤을 수행한다. 회장이 사실상 신문 제작에 관한 전권을 일임한 걸로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장이 임의로 난도질할 수는 없다.”

편집국장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기자들.

편집권의 개념 정의와 현장에서의 인식의 차이와 관련해서는 남시욱 문화일보 사장이 관훈저널에 쓴 글에 잘 정리돼 있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등은 편집권이 편집 책임자에게 귀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앙일보와 한겨레, 국민일보 등은 편집권을 편집국 구성원들이 공유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되, 최종적인 편집 권한과 편집권 수호의 책임이 편집국장에게 귀속된다는 입장이다. 조선일보나 한국일보 등은 편집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 규정하지 않고 있다. 2001년 상황이지만 2022년 기준으로도 여전히 이 세 가지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한창 끓어올랐던 2019년과 2020년 한겨레에서는 여러 차례 편집권 논란이 있었다. 2019년 9월 5일 한겨레 강희철 기자가 “‘우병우 데자뷰’ 조국, 문 정부 5년사에 어떻게 기록될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는데 이 기사가 온라인에 출고됐다가 4분 만에 삭제된 것이다. 미디어오늘이 알아 봤더니 담당 데스크는 “이 시기에 나갈 기사가 아니라 무기한 보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겨레 기자 31명이 모여 “박용현 편집국장 이하 국장단은 ‘조국 보도 참사’에 책임지고 당장 사퇴하라”는 제목으로 성명을 내고 “현재 한겨레 편집국은 곪을 대로 곪았다”고 비판했다.

2020년 1월에는 기사 제목을 두고 갈등이 폭발했다. 에디터석 편집기자 19명이 “박용현 편집국장의 독단적 편집권을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편집 에디터가 사표를 던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문제의 기사는 처음에 제목이 “검찰, 유례없는 넉 달 과도한 수사, 조국 거짓 해명 얽혀 여론 양극화”였는데 편집국장의 지시로 “검찰, 유례없는 넉 달 ‘먼지털기 수사’ ‘태산명동 서일필’ ‘검 칼날 무뎌져’”로 바뀌었다. 이 기사의 제목은 다시 “검찰, 조국 수사 어땠나?… ‘태산명동 서일필’ ‘조국 부적격 드러나’”로 바뀌었다.

첫 번째 제목이 조 전 장관의 거짓 해명에 좀 더 무게를 두는 반면 두 번째 제목은 따옴표를 치긴 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별거 없더라는 단정적인 판단이 담겨 있다. 첫 번째 제목에서는 ‘과도한 수사’와 ‘거짓 해명’이 대립하지만 두 번째 제목에서는 ‘먼지털기 수사’가 ‘서일필(나온 건 쥐 한 마리 뿐)’과 인과 관계를 이룬다. 세 번째 제목은 가장 중립적인 제목이지만 판단을 유보하는 밋밋한 제목이다.

이 일련의 논란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같은 사건을 두고 해석이 다를 경우 최종 판단을 누가 내리느냐다. 편집국장이 마지막 단계에서 판단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걸 존중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반면, 판단과 결정은 편집국장이나 데스크가 하더라도 편집국 기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에 항의하거나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애초에 편집권이라는 개념이 기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냐 아니냐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도 있다.

유독 한겨레에서 이런 논란이 많았던 건 그나마 한겨레라는 조직이 건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22년 3월에는 열심히 취재한 기사가 출고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기자가 사표를 던지는 일도 있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에게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는 보도였지만 취재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았다. 한겨레 데스크들이 윤석열 후보의 눈치를 봐서 기사를 킬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동안의 한겨레 기사들과 비교해도 특별히 더 나간 기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논란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당시 정은주 한겨레 부국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회의를 거듭하고 거듭했다. 이 절차를 안 밟을 수 없었다. 이게 사실은 데스크라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현장 기자는 기자의 몫이 있고, 데스크의 몫이 있다. 이 같은 절차는 데스크의 몫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기사의 완결성의 문제였고 누구에게 더 유리한가를 따지지 않고 데스킹의 문제로 접근했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는 외압이나 눈치 보기라기보다는 일상적인 게이트 키핑의 과정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다만 취재 기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문제 제기를 할 수 있고 데스크들은 설명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이처럼 외부로 공론화된 경우라면 독자들에게도 상황과 맥락을 설명해야 한다. 편집권이 데스크뿐만 아니라 기자들과 공유하는 가치라고 이해한다면 이런 과정이 자연스럽다.

2018년 기자협회보 보도에 따르면 주요 언론사들이 대부분 편집국장과 보도국장에 대한 임명 동의 제도를 두고 있다. 경영진이 뉴스 룸의 최고 책임자를 선임할 때 구성원들의 동의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는 의미다. 노사 갈등의 골이 깊었던 SBS는 2017년 보도본부장은 물론이고 사장까지 임명 동의제를 도입했다. 당시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 본부장은 “지난 10년 동안 방송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편성규약, 보도준칙을 제정했지만 결국 어떤 사람이 권한을 쥐고 있느냐가 중요하더라”고 말했다. 아무리 규약이나 준칙이 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대주주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경향신문과 동아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이 임명동의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세계일보와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사주가 있는 언론사들은 여전히 사주가 선임하면 그대로 임명된다.

“사장님 힘내세요”, 부끄러움은 왜 기자들의 몫인가.

우리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대검찰청 로비에 도열해서 “사장님 힘내세요”를 외쳤던 낯 뜨거운 장면을 기억한다. 1999년 9월 30일,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탈세 혐의로 검찰에 조사 받으러 가던 날이었다. 중앙일보 기자들은 “사태의 본질은 중앙일보 흠집 내기를 통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치적 음모”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치적 탄압을 받고 있다고 느꼈을 수도 있지만 한국 언론사에 남을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장자연 사건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혔던 2012년에는 조선일보가 방상훈 사장을 대신해 다른 언론사들을 대상으로 수십억 원 규모의 소송을 남발하기도 했다. 미디어오늘이 인터뷰한 조선일보 출신의 한 기자는 “상층에서 기사 제목이 내려왔다는 말이 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방 사장은 장자연 사건과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기자들이 방패막이로 나섰다는 건 조선일보라는 신문사의 성격과 한계를 드러낸다. 왜 부끄러움은 기자들의 몫인가.

편집권을 둘러싼 최근의 가장 드라마틱한 사례는 2021년 서울신문의 호반건설 기사 삭제 사건이다.

호반건설이 2019년 포스코 지분 19.4%를 넘겨받은 데 이어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 지분 29.0%를 넘겨받아 대주주가 된 게 2021년 9월의 일이다. 호반건설은 지분 인수와 별개로 210억 원의 특별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했고 발행인과 편집인을 분리하는 등 편집권 독립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를 마련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서울신문이 3년 전에 내보냈던 “호반건설 대해부” 기획 기사를 한꺼번에 삭제하면서 허망하게 무너졌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결과, 황수정 편집국장이 부장단 회의에서 “호반 측이 삭제를 요구해왔던 호반건설 그룹 대해부 기사를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공지했고 다음날 57건의 기사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황수정 국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편집권 관련된 부분이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김상열 회장이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반론 기회조차 없이 지속된 기사들로 호반그룹은 큰 상처를 입었다”며 “기사의 진실성이 밝혀진다면 회장 직권으로 다시 게재하겠다”고 밝혔지만 논란에 불을 지폈다. 애초에 기사의 게재 여부를 회장이 ‘직권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대목에서 이 사건의 본질을 읽을 수 있다.

당초 이 기획 시리즈는 2019년 6월, 호반건설이 갑작스럽게 포스코 지분을 인수하면서 2대 주주로 떠오른 뒤 작성된 기사들이다. 서울신문은 이례적으로 “호반건설에 대한 제보를 받는다”는 공지까지 띄워가면서 호반건설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이런 대응이 적절했느냐를 두고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실제로 서울신문 기자들이 지면을 사유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일부에서 있었다. 그러나 공영 언론의 대주주 자격을 묻는 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이미 발행된 기사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그것도 이제는 직접적인 이해 관계자인 최대 주주에 관련된 기사다. 잘못된 기사라면 바로 잡고 정정 보도를 냈어야 하고 설령 기사를 삭제해야 할 정도로 사실 관계가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면 역시 독자들에게 이를 알리고 사과하는 게 순서다. 기사 내용에 문제가 없는데 단순히 대주주가 불편해 한다는 이유로 기사를 삭제한 거라면 이 신문의 신뢰와 평판에 엄청난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편집국 기자들과 어떤 논의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자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대주주의 전횡도 문제지만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양보한 서울신문 데스크들의 대응도 안타까운 대목이다. 설령 대주주가 기사 삭제를 요구했더라도 이를 거부하거나 설득하는 것이 데스크의 권한이면서 책임이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면 최소한의 의견 수렴과 토론의 절차가 필요했을 것이다. 일련의 사건을 거치면서 서울신문 기자들의 자긍심과 120년에 육박하는 서울신문의 역사에 큰 상처가 났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됐다.

주식회사 언론사의 딜레마.

서울신문 기자들은 성명을 내고 “동의할 수 없다. 현 상황을 경영진에 의한 편집권 침해로 보고 엄중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들은 “기사 삭제는 부끄러운 일”이고 “사주와의 관계를 고려해 기사 게재 지속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부당할 뿐더러 그 자체로 자본 권력에 의한 편집권 침해”라고 거세게 반발했지만 기사는 끝내 복구되지 않았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서울신문 사태는 소유자가 편집권을 맘껏 휘두르고, 경영권자가 소유권자에 편집권을 갖다 바친 굴욕적인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신문은 원래 정부와 공기업이 과반 지분을 보유한 공영 언론이었다. 2002년부터 우리사주조합이 지분을 인수하면서 독립 언론의 열망을 키워왔지만 몇 차례 증자를 거치면서 다시 정부 지분이 늘어났고 20년 가까이 정부가 낙하산 사장을 내려 보냈다. 이명박 정부 때는 신재민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당시 노진환 사장에게 “망신당하는 것보다 자진 사퇴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며 퇴진을 종용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고광헌 사장이 “청와대에서 제안을 받았다”고 밝혀 논란을 키웠다. 정권을 잡으면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관여할 수 있는 자리가 7000개 정도 된다고 한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역대 대통령들에게 서울신문 사장 자리도 그런 자리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우리사주조합이 호반건설에 지분을 넘기기 직전까지 서울신문 기자들 사이에서는 호반건설의 지분을 사들여서 독립 언론으로 가자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다. 조합원 419명이 180억 원을 대출 받아 호반건설의 지분을 모두 인수하고 월 51만 원 상당의 이자 비용을 부담하자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투표 결과는 호반건설에 지분을 넘기자는 안이 56.1%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나는 서울신문 사태와 관련해 월간 신문과방송 기고에서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서울신문 구성원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선택에 따른 결과는 그들이 감당할 몫이다. 중요한 판단 기준은 저널리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이를 보호하고 보장하기 위한 소유와 경영, 경영과 편집의 분리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줄리아 카제가 말한 것처럼 공공재로서의 저널리즘이라는 가치와 주식회사 언론사라는 현실이 부딪히는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이 과제다.”

일련의 사건을 돌아보면 ‘오너’가 있는 언론사와 그렇지 않은 언론사의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오너’는 실질적으로 언론사를 지배한다. 편집국장을 비롯해 임원을 임명하거나 갈아치울 수 있고 승진에 목매는 간부급 언론인들을 줄 세울 수 있다. 그래서 데스크들은 마지막 선택의 순간이 되면 ‘오너’를 지키기 위해 기사를 뒤집기도 하고 이미 내보냈던 기사를 삭제하기도 한다. 심지어 기사가 잘못된 게 없는 데도 경쟁 언론사에 굴욕적인 사과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매일경제신문(매경)과 한국경제신문(한경)이 전면전을 벌이다가 매경 편집국장이 한경에 찾아가 사과를 한 사건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건 한경이 매경 회장의 약점을 잡았고 서슬 푸른 매경이 꼬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언론에 권력이 있다면 그 권력은 불의에 맞설 때 발휘된다. 언론의 본령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너’ 리스크는 진실에 복무하는 언론의 아킬레스건이다. 정의를 위해 싸우는 기자들이 사주의 이해에 복무하기 위해 저널리즘 원칙을 포기해야 한다는 건 정말 참담한 일이다. 권력에 맞서라고 우리가 언론에 언론 부여한 공적인 권력을 언론 위에 군림하는 ‘오너’가 휘두르고 있는 꼴이다. 기자들의 부끄러움은 저널리즘을 잠식한다.

중요한 것은 ‘오너’가 누구든 편집인이나 편집국장이 누구든 편집권 독립을 위한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많은 언론사들이 현실적인 제약 조건을 갖고 있다. 대통령이 사장을 임명하는 언론사도 있고 창업자가 과반 지분을 확보하고 대대로 지배하는 언론사도 있다. 건설회사나 사모펀드가 대주주가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사주조합이 소유하고 있는 언론사도 있고 협동조합으로 운영되는 언론사도 있다.

지배구조가 어떻든 편집권을 둘러싼 갈등은 모든 언론사의 숙명과도 같다. 광고주가 기사를 빼달라고 요청할 때, 또는 사장이나 회장이 친분이 있는 누군가의 부탁을 받고 기사를 마사지해달라고 요청할 때, 이를 방어하는 것이 데스크의 역할이고 이게 바로 편집권 독립이 필요한 이유다. 편집국 내부에서 정치적 견해가 충돌할 때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도 편집권을 위임 받은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지만 나를 뽑아준 사람을 배신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편집권 독립이란 결국 나를 뽑아준 사람에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펜타곤 페이퍼 사건을 다룬 실화 영화 ‘더 포스트’에서 워싱턴포스트 캐서린 그레이엄 회장은 한참을 고민하다 “Let’s go. Let’s publish. (갑시다. 발행하죠.)”라고 말한다. 정부와 소송을 벌이면 증권거래소 상장이 무산되고 자칫 회사의 경영권까지 뺏길 수 있는 상황에서 기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캐서린은 자서전에서 편집권이란 개념을 이렇게 정리한 바 있다. “에디터(편집자)에게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는 것은 발행인의 권리가 아니다. 발행인의 분명한 책임은 신문이 완벽하게, 정확하게, 공정하게, 탁월하게 발행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다.”

그랬던 워싱턴포스트도 발행인과 편집인의 사이가 계속 원만했던 것은 아니다. 스타일 섹션의 편집에 불만을 이야기하자 편집국장이 “당신이 여기서 손을 떼지 않으면 편집과 발행을 할 수 없다”고 맞서 물러나게 한 일화도 유명하다. 애초에 펜타곤 페이퍼 기사가 회장의 결단 때문에 가능했다기보다는 저널리즘 원칙을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끊임없이 충돌과 갈등, 대립을 겪으면서 합의에 이르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봐야 한다.

편집권은 회장이나 사장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투쟁의 결과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공영 방송의 지배구조 이슈도 마찬가지였지만 저널리즘의 원칙이 누군가의 선의로 가능하다면 정작 필요할 때 얼마든지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편집권을 행사하는 자가 무슨 가치를 위해 그 권한을 행사하느냐, 그리고 그 권한이 충분히 감시와 견제 위에서 작동하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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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주주총회를 끝으로 미디어오늘에서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오후에는 자유언론실천재단에서 “ChatGPT와 저널리즘의 책임”을 주제로 특강이 있는데 이게 제가 미디어오늘 대표로 나서는 마지막 대외 행사가 되겠네요. 끝나고 선배들 저녁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습니다. 다음 주부터 몇 가지 계획이 있는데요. 1. 4월부터 슬로우뉴스 대표를 맡기로 했습니다. 유한회사 슬로우뉴스를 주식회사로 전환하고 제가 100% 지분을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기자들도 뽑고 콘텐츠도...

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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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날 때마다 만들었던 라즈베리파이 오디오. 드디어 완성. 사실 별 거 없는데 여기저기서 부품 조달하고 거기에 맞춰 도면 만드는 게 힘들었습니다. build log는 영어로. This is my new network audio system. All in one Integrated Amplifier. 1. Raspberry Pi 4B. 2. Hifiberry DAC+DSP. 3. 7 inch touch screen for raspberry pi. 4. Chromecast...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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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에 경력 기자로 입사해 편집국장으로 3년, 사장으로 6년을 지냈습니다. 다행히 월급날을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요. 열심히 벌어서 금융 부채를 모두 정리했고 만성적인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언론사 경영이라는 게 날마다 전쟁 같았지만 한 번도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속가능한 미디어오늘을 위한 성장 엔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지난 15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오늘 지면에 대해서는 자부심과 아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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