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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워너비가 만든 괴물, 테라노스의 야망과 함정.

Written by leejeonghwan

October 16, 2022

(학교 과제로 썼던 글입니다.)

‘배드 블러드’ 리뷰와 혈액 검사 기술의 현황과 응용 사례.

피 한 방울로 250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자렌지 크기의 진단 기기를 집집마다 보급하고 날마다 건강 상태를 체크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놀라운 발상. 한때 기업 가치가 90억 달러에 육박했던 메디컬 스타트업 테라노스(Theranos)의 이야기다. 이 글에서는 테라노스의 사기극과 몰락 과정을 취재한 월스트리트저널의 존 캐리루 기자의 ‘배드 블러드’를 기초로 혈액 검사 기술의 최신 동향과 응용 사례를 살펴볼 계획이다.

테라노스의 창업자인 엘리자베스 앤 홈즈(Elizabeth Anne Holmes)는 1984년생으로 스탠포드대학교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하다가 중퇴하고 2004년 테라노스를 창업했다. 홈즈는 대학시절 연구소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주사기 없이 팔목에 붙이는 접착형 패치로 혈액을 채취하고 마이크로 칩을 통해 분석 결과를 주치의에게 전달한다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지만 상용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홈즈는 원래 주사 바늘에 대한 공포가 심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만든 게 손 끝을 살짝 찍어 피 한 방울을 채취한 뒤 카트리지에 넣어 동시 다발적으로 검사를 진행하는 가정용 진단 키트였다. 스탠포드를 중퇴한 미모의 젊은 여성 과학자, 게다가 의도적으로 스티브 잡스를 연상하게 하는 터틀넥 스웨터와 청바지, 혁신과 성장을 갈망하던 실리콘 밸리는 홈즈의 등장과 메디컬 스타트업의 가능성만으로 열광했다.

테라노스는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을 조합해서 만든 단어다. 바야흐로 맞춤형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의 시대, 테라노스는 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혁신 기술처럼 보였다. 홈즈는 이런 진단 키트가 널리 보급되면 해마다 약물 부작용으로 죽는 수십만 명의 환자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헨리 키신저와 제임스 메티스, 루퍼트 머독 등 거물급 인사들이 돈을 싸들고 와서 테라노스에 투자했을 정도다.

우리가 흔히 건강 검진을 하면 주사기 가득, 때로는 주사기 두어 개 분량의 피를 뽑고 두어 주 뒤에서야 이런 저런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그런데 병원까지 가지 않고도 간단히 손끝을 톡 건드려 피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250가지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고 질병의 경과를 추적할 수 있다니, 실제로 월그린의 닥터 J는 “제약 업계를 뒤흔들 것으로 확신하는 회사를 찾아냈다”고 떠들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테라노스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홈즈는 정말 딱 한 방울만 피를 뽑되 카트리지를 신용카드 크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카트리지가 판독기에 삽입되면 혈액 샘플이 필터를 통과하면서 혈장을 분리하고 항체와 접촉하면서 화학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문제는 혈액 샘플이 턱없이 부족했고 검사 방법은 모두 제각각이어서 면역 분석을 하고 나면 혈액 분석을 할 샘플이 남아있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다.

테라노스는 휘스나(Fisnar)라는 회사가 만든 3000달러짜리 접착제 로봇을 개조해 시제품을 만들고 에디슨(Edison)이라는 이름 붙였다. 실제로 이 로봇은 혈액 샘플을 추출해서 희석제와 혼합하고 항체로 코팅된 피펫으로 옮기는 단순 작업을 할 뿐이지만 박스 안에 담겨서 뭔가 그럴 듯하게 보이게 만들어졌다. 홈즈는 에디슨이 의료계의 아이팟처럼 보이기를 원했지만 실제로는 매우 조잡한 형태였다는 게 직원들의 증언이었다.

미세유체(microfluidics) 역학은 원래 컴퓨터 칩 가공 분야에서 개발한 소량의 유체를 옮길 수 있는 기술이다. 테라노스의 에디슨은 애초에 혈액 샘플이 적다 보니 식염수를 희석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정확도가 크게 떨어졌다. 테라노스는 엄청난 과학적 성과를 자랑하면서도 정작 기밀 유지를 명분으로 학계에 관련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고 검증도 받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와 TV 광고로 이미지를 포장하는 데 급급했을 뿐이다.

홈즈는 투자자들을 모아놓고 테라노스의 채혈 기술이 메디케어가 청구하는 1300개의 혈액 검사 청구 코드 가운데 1000개의 코드를 수행할 수 있다고 허풍을 떨기도 했다. 제품 출시를 앞두고 직원들의 반발이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공개됐다. “왜 후속 제품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느냐”고 묻자 홈즈는 “나는 고객에게 무엇인가를 약속하면 꼭 지키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250개의 질병을 진단한다고 큰 소리쳤지만 에디슨은 실제로 서너 가지 면역 분석 밖에 할 수 없는 상태였다. 테라노스는 궁여지책으로 지멘스에서 아디바(ADIVA)라는 기계를 들여와서 에디슨으로 할 수 없는 분석을 했는데 정작 혈액 샘플이 한 방울 뿐이라 아디바에 집어넣을 샘플이 부족했고 희석에 희석을 거듭하느라 정확도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멘스 분석기를 고쳐 쓰고 있다는 것도 테라노스 직원들만 아는 비밀이었다.

나중에 월스트리트저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월그린 매장의 테라노스 웰니스 센터에서는 240가지 검사 가운데 80가지만 손가락으로 채혈했고 다른 검사를 하려면 주사기로 채혈을 해야 했다. 채혈한 혈액은 테라노스 본사로 보내는데 12가지 검사만 에디슨을 이용하고 나머지 60~70개의 검사는 지멘스의 분석기를 활용했다. 물론 이런 사실은 월그린이나 고객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일찌감치 뉴요커에 실린 홈즈의 인터뷰는 뭔가 이상했다. “화학을 수행하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시료와 화학적 상호 작용을 하여 신호를 형성하면 결과값이 생성됩니다. 그 결과를 인증 받은 실험실 직원이 검토하게 됩니다.” 존 캐리루의 평가를 그대로 인용하면 “‘타임머신’에 비유할 만큼 앞서가는 과학 기술을 보유한 회사 창업자의 말이라기보다는 화학 수업을 듣는 고등학생이나 할 법한 애매하고 우스꽝스러운 얼버무림에 가까웠다”.

우리가 테라노스 사기극으로 얻을 수 있는 교훈 가운데 하나는 정보기술(IT) 산업과 달리 바이오기술(BT) 산업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만으로 구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딩은 혼자 배울 수도 있고 인터넷 서비스는 차고에서도 만들 수 있지만 바이오 기술은 설령 독학을 하거나 차고에서 만들더라도 엄격한 임상 실험과 검증을 거쳐야 한다. 여전히 의료는 서비스 이전에 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의료 산업은 단순히 가능성과 확률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문제다. 테라노스는 피 한 방울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라는 콘셉트를 고집했을 뿐 의료기기에 필요한 정확도와 안전성에 대한 고려는 부족했다. 원격 의료의 시대가 올 거라고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

이 책에서는 몇 가지 충격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홈즈가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아요, 바늘을 제외한다면 말이죠”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들이 고객의 안전은 이미 뒷전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홈즈는 심지어 2012년 12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미니랩은 인류가 만든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발명”이라면서 “그렇게 믿지 않으면 당장 이 자리에서 나가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247개의 혈액 샘플을 검사했더니 첫 실험에서는 이 가운데 65%만 정확히 양성 여부를 판별했고 두 번째 실험에서는 80%를 판별했다. 그런데도 테라노스는 정확도가 95%에 이른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설령 95%라고 하더라도 5%의 오류가 있다는 의미다. 이 5%는 질병이 없는데도 추가 검사를 받거나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도 정상이라고 잘못 판정 받아 치료의 시기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5%도 문제인데 35%라면 심각한 수준이다.

혈액 샘플에 용혈 현상이 일어나 칼륨 수치가 높게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적혈구가 붕괴하면서 칼륨을 분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칼륨 수치가 너무 높게 나와서 환자가 이미 사망한 상태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다. 테라노스는 급기야 칼륨 검사 결과를 환자에게 공개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 정도면 공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를 송두리째 다시 점검했어야 했다.

심각한 문제도 몇 가지 있었다. 피 한 방울이라는 강박적인 캐치 프레이즈와 달리 한 방울의 피를 카트리지에 옮기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주사기는 정확히 피를 뽑아내지만 손가락 끝의 피 한 방울은 옮기는 과정에서 다른 데 묻거나 불순물도 많았다. 무엇보다도 여러 가지 검사를 하기에 한 방울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들은 이쯤해서 실패를 인정하거나 최소한 방향을 수정했어야 했다.

테라노스의 직원이었던 타일러 슐츠는 처음 에디슨의 내부를 들여다 본 경험을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에게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저 로봇 팔에 피펫이 고정돼 있고 지지대에 놓여 앞뒤로 움직이는 것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교한 미세 유체 시스템을 기대했는데 실제로 그들이 본 것은 중학생이 차고에서 만든 수준의 장치였다.”

테라노스의 한 직원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테라노스가 운영되는 방식은 버스를 운전하면서 동시에 버스를 만들고 있는 것과 같아요. 도중에 누군가는 죽고 말 거에요.” 실험 결과 조작에 참여했던 다른 한 직원은 “허위로 가득한 거짓 검사 결과를 고객에게 제공함으로써 잠재적으로 누군가의 삶을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어서 회사를 그만 뒀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테라노스는 FDA(연방보건국)의 승인을 받지도 않았다. 테라노스는 ‘실험실 자체 검사’라는 이유로 FDA의 승인을 우회하려 했으나 역시 쉽지 않았다. 임의로 실험 결과를 조작해 변동 계수가 낮게 나오는 경우만 정확한 검사로 간주했는데 이는 앞면이 10번 나올 때까지 동전을 던져서 이 동전은 언제나 앞면만 나온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 심각한 실험 윤리 위반이고 이런 제품을 시장에 내놓는다는 건 그야말로 미친 짓이었다.

테라노스는 심지어 지멘스를 비롯해 상업용 분석기로 돌려서 나온 결과를 에디슨의 검사 결과인 것처럼 내놓기도 했다. 직원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일부는 회사를 떠나거나 항의해서 잘리기도 했다. 실제로 막상 첫 번째 에디슨을 납품하고 보니 멀쩡한 고객을 환자로 분류해서 항의하는 일이 많았다. 정작 다른 병원으로 보내서 교차 검진을 받아보니 문제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존 캐리루의 평가는 이 사건의 핵심을 정확하게 짚는다. “마크 저커버그가 열 살에 아버지의 컴퓨터로 코딩을 배웠다고 하지만 의학은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다. 의학은 지하실에서 독학으로 배울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오랜 교육과 수십 년의 연구가 필요했다. 의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상당수가 60대에 업적을 인정받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테라노스의 몰락은 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드러내는 사례다. 아울러 바이오 테크놀로지의 연구와 활용 전반에 걸쳐 엄격한 과학 윤리와 상호 검증,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포츈 표지를 장식한 억만 장자 창업자라는 허상과 실제로 질병에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만능의 해법이라는 환상이 맞물려 희대의 사기극을 연출한 결과다.

테라노스의 몰락과 별개로 혈액을 활용한 질병 진단 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혈액 검사는 건강 검진의 기본이지만 백혈병과 당뇨, 고지혈증, 간염, 신부전, 매독 등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 임신부의 혈액에서 태아 세포를 추출해 다운증후군 등의 유전 질환을 조기에 진단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 연구에서는 혈액에서 프로틸렌이라는 단백질의 농도를 측정해 치매를 진단하는 기술도 공개된 바 있다.

하버드 대학 다나-파버 암 연구소(Dana-Farber Cancer Institute)는 최근 혈액 검사로 20가지 암을 진단하는 기술을 공개했다. 이 연구소는 3500건 이상의 혈액 샘플에서 DNA를 추출하고 유전자 발현 패턴을 분석해 특정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 물질의 작용을 분석했다. 89%의 정확도로 암을 진단하고 암의 위치까지 찾아낼 수 있지만 여전히 오진 확률이 꽤 높다고 할 수 있다.

암에 걸리면 종양은 특정 단백질을 분비하고 종양 주변 세포는 사이토카인을 분비한다. 혈액을 검사해서 이른바 ‘바이오 마커’의 농도가 높으면 암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조선일보 등의 보도에 따르면 전립선암과 폐암 등은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지만 유방암과 위암·대장암 등은 아직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유전자를 분석해 치매 발병 확률을 예측하기도 하고 백혈구 수치와 NK 세포 활성도를 보면 암을 진단할 수 있다.

피 한 방울에 이렇게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면 테라노스는 왜 실패했을까. 일단은 피 한 방울로 안 된다는 게 핵심이고 250가지 질병을 진단하려면 250가지의 진단 기술을 확보해야 하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피 한 방울이라는 마케팅 포인트가 없었다면 테라노스가 그렇게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을 것이고 기업 가치가 90억 달러까지 치솟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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