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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색깔.

우리는 누구나 거짓말을 합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처음 만난 사람과 10분 대화하는 동안 평균 세 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하얀 거짓말’이라고 부르는 건 상대방이 듣기 좋으라고 하는 거짓말을 말합니다. 살 수 있는 날이 석 달 밖에 남지 않은 시한부 환자에게 사실을 숨기는 것도 ‘하얀 거짓말’입니다. 언젠가는 알려줘야겠지만 희망을 버리는 순간 빠른 속도로 체력을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너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인다”는 것도 ‘하얀 거짓말’일 수 있겠죠. “선생님, 그 옷 입으니까 대학생처럼 보여요.” 이런 노골적인 아부도 ‘하얀 거짓말’이죠. 산에서 내려오다 이제 올라오는 사람들을 만나면 “거의 다 왔어요”라고 말하죠. 의사 선생님은 주사 놓으실 때 “하나도 안 아프다”고 말하고요.

‘노란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부끄럽거나 창피해서 또는 겁이 나서 하는 거짓말입니다. “전철에 펑크가 나서 지각을 했다”거나 “컴퓨터에 불이 붙어서 숙제를 다 하지 못했다”는 등의 거짓말이죠.

거꾸로 ‘파란 거짓말’은 겸손해서 하는 거짓말입니다. “대충 왼손으로 그린 거야.” “17대 1로 싸우다가 살짝 다쳤어.” 이런 느낌이랄까요? 실제로는 밤샘해 가면서 시험을 치렀으면서 “이번에는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야.” 이렇게 말할 수도 있고요.

영어에는 ‘빨간 거짓말’이란 것도 있다고 하는데 이건 좀 복잡합니다. 말하는 사람도 거짓말이란 걸 알고 있고 듣는 사람도 거짓말이란 걸 알고 있는 경우, 딱히 속이려는 의도가 있다기 보다는 그냥 대놓고 말하기 어려우니 알고도 속는 것이죠. 이건 사례를 들기 어렵네요.

이상 톰 필린스, 진실의 흑역사에서 일부 인용. (사실 한국어에서는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하면 너무나도 명확하게 거짓말인 경우를 말하죠.)

캘리포니아대학교 철학과 교수 제럴드 드워킨(Gerald Dworkin)이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거짓말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테스트한 적 있습니다.

이를 테면,
– 승용차가 강물에 뛰어들어 죽었는데, 차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끔찍한 고통을 겪은 것으로 확인됐다. 의사가 피해자의 아내에게 “그는 사고 직후에 사망했습니다. 고통이 크지 않았을 거에요.”라고 말하는 것.
– 취업 면접에서 “임신할 계획이 있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아뇨, 저는 독신으로 살 생각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
–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에 있는 아버지에게 “내일 또 올게요”라고 말하는 것. 어차피 아버지는 내일이면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한 달 뒤에 올게요”라고 하면 너무 슬퍼하실 것이기 때문.
– 흑인 부부가 집을 빌리려고 했다가 거절 당할 경우 같은 조건으로 백인 부부가 집을 빌리겠다고 거짓 제안을 해보는 것. 두 부부 모두 가짜 부부고 인종 차별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실험.
– 중고차 판매원이 예산이 얼마냐고 물을 때 1500만 원이라고 답하는 것. 실제로는 2000만 원까지 쓸 생각이 있지만.

1만 명 정도가 답변을 보내왔는데, 각각 동의 정도가 위에서부터, 51%, 62%, 89%, 89%, 94%.

거짓말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스펙트럼이 넓고 경계가 모호하죠. 사람들이 어떤 거짓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중요한 이유는 거짓말이 상대방의 자율성이나 선택 의지를 방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번 문제의 경우, 아내는 남편의 죽음에 대해 정확하게 알 권리가 있고 그걸 의사가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도 이런 이유죠.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믿음을 무너뜨릴 만한 충분한 명분이 있느냐가 판단 기준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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