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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을 보다.

영화가 끝나자 마자 일어서는 관객들은 이 영화 끝 무렵에 당황했을 것이다. 자막이 올라가고 천정에 불이 들어오고 우루루 일어서서 출입문 앞까지 몰려간 뒤에도 영화는 끝나지 않는다. 특별히 의미있는 장면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나가면서 또는 나가다 말고 엉거주춤 선 채로 마지막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아마 관객들은 이 끔찍한 영화에서 서둘러 벗어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래는 이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거나 앞으로 볼 생각이 있다면 읽지 말 것.)

탈북자 씬은 핵 폐기물을 쏟아부어 남한을 날려버리려고 한다. 해군 대위 강세종이 그를 막기 위해 투입된다. 강세종은 씬의 누나 최명주를 인질로 잡고 씬을 끌어들이지만 둘다 놓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최명주는 총을 맞는다.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여기까지는 좋다.

핵 폐기물을 실은 배가 태풍을 따라 남한으로 북상하고 강세종과 그 친구들은 헬기를 타고 그 배에 잠입한다. 누군가 한쪽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씬은 남한을 날려버리겠다던 계획을 막판에 포기한다. 그리고 최명주를 죽이고 자살해 버린다. 정의가 승리하고 평화가 찾아왔지만 관객들은 어리둥절한 채로 극장을 나서야 한다.

씬과 강세종이 맞닥뜨린 가장 큰 문제는 결국 상상력의 부족이다.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 한 가운데서 만난 이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지 못한다. 강세종은 씬을 죽일 수도 없고 놓아줄 수도 없다. 씬 역시 마찬가지다. 일을 벌이기는 했는데 막상 풍선을 날릴 수는 없다.

결국 씬과 강세종은 어설프게 맞서다가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것으로 이 답답한 이야기를 서둘러 끝낸다. 상상력의 바닥은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다. 사상 최대의 제작비와 초호화 캐스팅으로도 그 초라함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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