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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ISD, 깜깜이 대처에 원칙도 없었다.

Written by leejeonghwan

September 4, 2022

2022년 9월4일 기준으로 한국 정부가 피소됐거나 중재의향서가 접수된 ISDS 소송 사건은 모두 9건, 이 가운데 아직 남아있는 사건은 6건이다.

첫째, 론스타가 2012년 11월 한국 법무부를 상대로 낸 5조3000억 원의 소송은 법무법인 태평양과 미국 로펌 아널드앤드포터가 맡았다. 2022년 8월31일 한국 정부의 부분 패소로 끝났다. 한국 정부는 론스타에 2억1650달러와 이자를 배상해야 한다.

둘째, 이란의 가전제품 제조회사 엔텍합(Entekhap)의 최대 주주인 다야니 가문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730억 원의 소송은 한국 정부가 패소했다. 이 사건은 아래에 별도로 다룬다. 다야니 가문은 배상금을 지급하라며 2차 소송을 낸 상태다.

셋째, 2018년 7월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한국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은 법무법인 광장과 프레시필즈가 맡고 있다.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삼성물산 지분 7.1%를 보유하고 있었던 엘리엇매니지먼트는 한국 정부가 국민연금을 압박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하도록 강요해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8600억 원이 걸려있다. 엘리엇매니지먼트 사건도 아래에서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넷째, 메이슨캐피털매니지먼트라는 헤지펀드도 2018년 7월 한국 법무부를 상대로 2억 달러의 소송을 걸겠다며 중재의향서를 접수했다. 이 사건은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정확히 같은 사건이다. 메이슨캐피털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 지분 2.2%를 보유하고 있었다.

다섯째, 2018년 7월11일 쉰들러가 한국 법무부를 상대로 중재의향서를 접수한 사건도 있다. 세계 2위 승강기 제조업체인 쉰들러는 2013년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35%까지 늘리면서 인수합병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당시 현대엘리베이터가 대규모 유상증자를 실시해 현대그룹 지분을 50%까지 올리는 과정에서 금융감독원이 유상증자를 승인해서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영권 방어를 위한 유상증자는 불법이라는 주장이다. 쉰들러가 주장하는 피해 규모는 3000억 원. 쉰들러와 현대엘리베이터는 과거 여러 차례 소송을 주고 받은 바 있는데 대부분 쉰들러가 패소했다. 김앤장이 쉰들러를 대리하고 있고 태평양이 한국 정부를 대리하고 있다.

여섯째, 2015년 4월, 하노칼이 한국 국세청을 상대로 낸 2400억 원의 소송은 2016년 7월에 취하했다. 김앤장법률사무소가 한국 정부의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다. 하노칼 사건도 아래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고 2018년 7월12일, 한국계 미국인 서진혜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 신청을 한 사건도 있다. 서진혜는 2001년 서울시 마포구에 188 평방미터의 주택을 33만 달러에 매입했는데 2012년 이 주택 인근이 재개발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토지 수용 가격이 85만 달러로 책정됐다. 서진혜는 가격이 위법하게 책정됐으며 정신적 피해 보상까지 고려해 200만 달러의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홍콩 국제중재센터에 접수됐는데 1년 만인 2019년 9월30일, 서씨가 부동산을 사들여 임대한 행위를 한미 FTA가 정의한 ‘투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이 사건에 대해 관할을 갖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판정부는 서씨가 한미 FTA가 발효됐던 시점에 한국 국적자였기 때문에 한미 FTA에 의해 보호되는 ‘적용 대상 투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밖에도 중국 국적 투자자가 한국의 한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뒤 이를 갚지 못해 담보권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며 제기한 소송이 있고 미국 국적 투자자가 부산시 수영구 재개발 사업에 부동산이 수용돼 손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소송도 있다. 각각 1억5000만 달러와 537만 달러 규모다.

하노칼 사건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하노칼은 아부다비의 국영 석유투자회사 IPIC의 네덜란드 자회사다. 하노칼은 2010년 현대오일뱅크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매각 대금의 10%인 1838억 원을 원천징수로 납부했는데 이를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조세 조약에 따르면 네덜란드 소재 법인은 한국 정부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다는 게 하노칼의 주장이었다.

하노칼은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12월 현대오일뱅크 주식 50%에 해당하는 1억2254만 주를 6127억 원에 사들였다가 2006년 2월 이 가운데 4900만 주를 IPIC에 팔고 다시 2006년 3월 현대중공업 등으로부터 4900만 주를 사들여 50% 지분을 유지해 왔다. 하노칼과 IPIC 지분을 더하면 70%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11년이 지난 2010년 8월 현대중공업에 1조8381억 원에 되팔았다. IPIC가 거둔 7353억 원을 더하면 2조5734억원에 이른다. 11년 동안 IPIC와 하노칼이 거둔 차익은 2조 원이 훌쩍 넘는다.

현대중공업은 하노칼에 매매 대금의 10%인 1838억 원을 원천 징수해 국세청에 납부했는데 하노칼은 한국과 네덜란드 정부의 이중과세 회피 협약에 따라 세금을 면제 받아야 한다면서 국세청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으나 1심과 2심까지 모두 패소했다. 하노칼이 소송을 취하한 건 승소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노칼 사건은 론스타가 제기한 ISDS 소송 사건과 비슷한 대목이 많다. 한국 정부는 하노칼은 페이퍼 컴퍼니일 뿐 현대오일뱅크의 지분을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건 UAE 소재의 IPIC라는 입장이었다. 한국과 네덜란드의 이중과세 회피 협약과는 무관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하노칼과 별개로 현대오일뱅크 지분 20%를 IPIC는 법인세 582억 원과 증권거래세 21억 원을 냈다.

현대중공업과 IPIC는 2003년 현대오일뱅크의 지분을 싼 값에 넘기는 대신에 IPIC와 하노칼에 우선 배당권을 주는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덕분에 현대오일뱅크는 1999년과 2004년, 2005년, 2006년,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배당을 했는데 IPIC와 하노칼이 받은 배당금만 2120억 원에 이른다.

IPIC 입장에서는 11년 동안 현대오일뱅크의 경영을 맡으면서 실적을 호전시킨 결과 이 정도 시세 차익을 챙기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하겠지만 세금은 별개의 문제다. 하노칼이라는 네덜란드의 페이퍼 컴퍼니를 우회했을 뿐 실제로는 하노칼=IPIC라는 한국 정부의 주장을 뒤집기 쉽지 않겠다는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론스타와 달리 IPIC와 하노칼로 지분이 나뉘어 있었을 뿐 결국 실질적인 투자 판단을 IPIC가 했다는 게 너무나도 명확했기 때문에 승소 가능성이 낮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기도 했다. 하노칼 소송은 김앤장과 데비오이스앤드플림턴이 맡았다.

다음은 엘리엇매니지먼트 사건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2015년 9월1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부당한 조치로 주가가 떨어져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면서 후계구도의 중심에 있는 기업이다. 과거 이건희 일가가 삼성에버랜드를 지배하고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였는데 삼성에버랜드와 제일모직이 합병해서 제일모직으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을 흡수 합병하면서 삼성물산이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주회사로 부상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여 삼성전자의 최대 주주로 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었다. 이재용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0.6% 밖에 안 되는데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4.6%나 되기 때문에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입장에서 보면 2015년 9월 기준으로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남매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4.1% 밖에 안 되는데 제일모직 지분은 42.2%나 되기 때문에 제일모직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높이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삼성물산이 합병을 염두에 두고 건설 부문 실적을 의도적으로 미루는 등 주식 가치를 낮춰 잡았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를 앞두고 삼성물산 주주들은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책정됐다면서 거세게 반발했고 실제로 서스틴베스트와 ISS 등 국내외 의결권 자문회사들도 반대 의견을 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1 대 0.35, 제일모직 1주가 삼성물산 1주의 3배를 인정 받는 조건이라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심각한 손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삼성물산이 KCC에 매각한 899만 주의 의결권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며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기각됐다. 7월17일에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주주총회가 동시에 열렸는데 제일모직에서는 85.0%의 주주가 참석해 100% 만장일치로 찬성, 삼성물산에서는 83.6%의 주주가 참석해 69.3%로 찬성해 합병안이 통과됐다.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6%와 제일모직 지분 5.0%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합병 비율이 제일모직에 유리한 게 사실이라면 합병을 반대해야 한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는 국민연금이 반대했더라도 통과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애초에 국민연금이 합병 비율을 제일모직에 유리하도록 사실상 주가 조작에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왔다.

2018년 7월 국민연금 내부 감사 결과를 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세 차례 적정 합병 비율을 산정했는데 2015년 6월30일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비율이 1 대 0.64였다가 하루만에 1 대 0.39로 줄어들었다. 기금운용본부 주식운용실 실장 최준규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분 가치를 키워보라고 지시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심지어 최준규는 합병의 시너지 효과를 2조 원으로 잡고 매출 증가율을 역산해서 산출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결국 적정 합병 비율이 1 대 0.46이라는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3500억 원의 손실을 입게 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합병 이후 이건희와 이재용 등 총수 일가의 지분은 30.4%로 늘어났다. 합병 이전에는 이재용이 제일모직을 23.2%, 이부진과 이서현이 각각 7.8%씩 보유하고 있었고 이건희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각각 3.4%와 1.4% 보유하고 있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이 합병 계획을 밝힌 다음날부터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 6월4일에는 “제일모직의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이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 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으며 삼성물산 주주들의 이익에 반한다고 믿는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뿌리기도 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삼성물산 지분을 7.1% 보유하고 있었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낸 합병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됐고 항소심 역시 기각됐다.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비율은 적법하게 산정됐고 합병목적이 부당하다고 볼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당시 한국 언론은 투기자본의 공격에 맞서 국민 기업을 지켜내야 한다는 논리를 폈지만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악명 높은 기업 사냥꾼에 벌처 펀드인 것과 별개로 이들의 주장은 주주로서 당연한 권리였다. 오히려 국민 기업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감수하라는 사회적 압박이 거셌다고 보는 게 정확한 분석이 될 것이다. 오죽하면 합병 다음날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주식회사 대한민국이 총동원돼 삼성의 후계자 체제 안정을 도와준 셈”이라면서 “삼성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대한민국 전체가 삼성을 위해 뛰어줄 것이라고 낙관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주식매수 청구권을 행사해 지분 4.95%를 5만7234원에 처분한 뒤 나머지 지분도 모두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의 합병 계획이 발표된 뒤 주가가 뛰어오른 시점에 일부 지분을 매입한 것을 감안하면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손해 규모가 100억 원에서 최대 700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718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적정 합병 비율이라고 주장했던 1.6 대 1로 합병했을 경우 삼성물산의 가치를 4배 이상 높여 받을 수 있었을 거라는 가정에 근거한 것이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3년이 다 돼 가는 2018년 4월 한국 정부에 중재 의향서를 낸 것은 한국 정부에 귀책 사유가 있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앞서 살펴봤듯이 국민연금이 의도적으로 합병 비율을 낮게 추정하고 찬성 표를 던진 정황이 드러났고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수사 과정에서 삼성이 청와대를 상대로 뇌물을 건넨 사실도 확인됐다.

엘리엇매니지먼트 입장에서는 이재용이 박근혜에게 뇌물을 건네면서 삼성물산 합병을 도와달라고 부탁했고 청와대가 보건복지부를 통해 국민연금에 찬성표를 던지도록 압박해 결과적으로 엘리엇매니지먼트에게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할 근거를 충분히 확보한 상황이다.

실제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홍완선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을 찾아가 이재용을 8번이나 만난 사실이 드러났다. 홍완선이 투자위원회 결정 이틀 전에 인사 발령을 지시해 위원 12명 가운데 3명이 교체됐고 이들이 모두 찬성 표를 던진 사실도 확인됐다. 국민연금 역시 삼성물산 합병으로 5865억 원 상당의 손실을 봤다는 분석도 있었다.

특별검사 수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은 박근혜와 최순실에게 430억 원 상당의 지원을 약속하고 실제로 이 가운데 250억 원을 건넸다. 특검은 이재용이 코레스포츠에 건넨 210억 원에는 일반뇌물 혐의를 적용하고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 등에 건넨 230억 원에 대해선 3자 뇌물 혐의를 적용했다. 다만 법원에서는 삼성과 롯데 등으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요구하고 미르재단 등에 출연금을 강제 모금한 혐의는 유죄로 판단했지만 동계스포츠영재센터 등의 후원금은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보건복지부장관 문형표는 국민연금에 대한 직권 남용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았고 홍완선은 국민연금에 1387억 원의 손실을 초래한 업무상 배임 혐의로 역시 1심과 2심 모두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의 직권 남용으로 (압력을 받은) 국민연금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했다”면서 “(위법적 합병으로) 엘리엇에 발생한 손해의 책임은 법을 어긴 한국 정부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향후 ISDS 중재 과정에서는 한국 정부가 한국과 미국이 맺은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 보호 조항을 위반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이다. 엘리엇은 중재 의향서에서 “한국의 국민연금과 보건복지부,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이 한미 FTA 협정문에 포함된 내국민 동일 대우와 최소 대우 기준 조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자국의 투자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의 투자자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이야기다. 최소 대우 기준이란 외국인 투자자에게 국제 관습법에 따른 경제적 권리와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에 찬성 표를 던지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이익을 침해했는지 여부도 핵심 쟁점이다.

다만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손해를 정확히 추산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관측이 많다. 실제로 압도적으로 찬성 표가 많이 나왔기 때문에 국민연금이 반대했더라도 합병이 무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한국 정부와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다는 시그널을 주고 합병이 무산될 경우 주가가 하락할 거라는 우려 때문에 찬성 표를 던진 주주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주장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도 문형표와 홍완선이 유죄를 선고 받은 상황이라 한국 정부의 과실이 없다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편, 한국 정부는 이례적으로 8월17일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중재 신청에 대한 답변서를 공개했다. 승소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때문일까. 그동안 9건의 ISDS 소송 가운데 답변서를 공개한 것은 처음이었다. 법무부는 답변서에서 “한국 형사법원은 전직 대통령과 행정부 구성원, 국민연금 직원 등의 위법적인 행위 결과로서 합병이 제안되거나 합병이 통과됐다고 판단하지 않았다”면서 “이재용이 합병과 관련, 박근혜에게 명시적 또는 묵시적 청탁을 했다는 점을 검찰이 입증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엘리엇이 언급을 회피한 한국 민사 법원들은 삼성 합병 및 그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에는 합당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었고, 합병 비율이 현저히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며 합병의 적법성을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법무부는 “청구인의 중재 통보 및 청구 서면에는 한국의 행위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어떠한 증거도 없으며 손해액이 최소 7.7억 달러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전문가의 판단에 관한 증거도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한국 정부는 문형표와 홍완선의 잘못일 뿐 박근혜의 명시적인 지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이재용의 뇌물과도 무관하다는 주장으로 빠져나가려는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미 법원이 문형표 등이 국민연금에 손실을 초래했다는 판단을 한 뒤라 엘리엇매니지먼트 입장에서는 우리도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손실의 인과관계와 규모를 입증하는 게 핵심 쟁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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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ISDS 패소, 서류를 잘 못 내서 졌다고?

다야니와 한국 정부의 소송은 걸면 걸리는 성격의 ISDS 제도가 일방적으로 정부에 불리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드러낸 사례다. 단 한 번의 판정으로 끝나는 데다 재판 과정이 완전히 깜깜이고 3명의 중재인을 어떻게 선정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이란의 무하마드 레자 다야니(Mohammad-Reza Dayyani)는 이란 최대의 가전제품 제조회사 엔텍합(Entekhap)의 최대 주주다. 2010년 4월 캠코(KAMCO, 옛 자산관리공사)가 대주주인 대우일렉트로닉스를 매각 과정에서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가 탈락하면서 계약금을 날렸고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했다.

다야니는 한국 정부가 한국과 이란 정부가 맺은 투자보장협정(BIT, Bilateral Investment Treaty)에 명시된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를 한다는 원칙을 위반했다며 소송을 걸었다. 2015년 9월14일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United Nation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Trade Law) 중재 규칙에 따라 보증금과 이자 등 935억원을 배상하라며 국제 중재를 신청했고 중재판정부는 2018년 6월5일, 한국 정부가 청구금액 935억원 가운데 730억원 상당을 다야니에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다.

사건의 진행 경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IMF 직후인 2000년 1월, 당시 부실채권정리기금(지금의 KAMCO)가 금융기관들로부터 대우전자(이후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사명 변경)의 부실 채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채권 가운데 일부를 출자전환해서 대우일렉트로닉스 주식을 보유하게 됐다. 캠코는 2005년부터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을 추진했으나 몇 차례 실패 끝에 2010년 4월에서야 이란의 엔텍합을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2010년 11월에는 우리은행 등 대우일렉트로닉스 채권단이 다야니가 싱가폴에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인 D&A와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매매 대금은 5778억 원, D&A는 매매 대금의 10%에 해당하는 578억 원을 계약금으로 채권단에 지급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채권단은 나머지 금액 4174억 원에 대한 투자확약서(LOC)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는데 엔텍합은 환율 변동 등의 이유로 인수대금 가운데 500억~600억 원을 깎아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엔텍합은 1545억 원이 부족한 투자확약서를 제출했고 채권단은 이를 문제 삼아 계약을 파기하고 계약금을 몰수했다. 결국 계약 파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쟁점이었다.

D&A는 2011년 6월, 한국의 서울중앙지법에 매수인의 지위를 인정해 줄 것과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주식 및 채권의 제3자 매각절차를 중단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엔텍합에게 계약금을 돌려주는 대신 엔텍합이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외상물품 대금 3000만 달러를 갚으라는 조정 결정을 내렸으나 채권단이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됐다.

결국 법원은 엔텍합이 제출한 투자확약서에 문제가 있으며 계약 해지 역시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계약금 역시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이었다.

결국 2015년 9월14일, 엔텍합의 대주주인 다야니가 나서서 한국과 이란이 맺은 투자협정을 근거로 중재신청서를 냈다. 2015년 11월26일, 의장 중재인으로 벨기에 루뱅대학 교수 버나드 하너쵸우가 선정됐고 한국 정부는 호주 출신의 변호사 가반 그리핀을, 다야니는 스웨덴 출신의 미국 마이애미대 로스쿨 교수 잔 폴손을 선임해 중재 판정부가 구성됐다.

한국 정부의 대리인은 법무법인 율촌과 영국의 로펌 프레시필즈(Freshfields), 다야니의 대리인은 프랑스의 로펌 드레인앤가라비(Derains & Gharavi)와 이란의 로펌, 상라야인터내셔널(Sanglaj International Consultants)이 맡았다.

2017년 5월8일부터 5월12일까지 심리(Hearing)가 진행돼 1년 만인 2018년 6월5일, 판정 결과가 나왔다. 7년 가까이 끌고 있는 론스타 소송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한국 정부는 일련의 ISDS 소송과 관련해 언급을 꺼리고 있다. 당장 엔텍합과 중재 판정에서 패소해서 수백억 원의 세금이 들어갈 판인 데도 중재 신청서조차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국민들은 엔텍합의 요구 조건이 무엇인지, 한국 정부의 책임이 무엇인지, 중재 판정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등등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황이다.

애초에 채권단이 왜 법원의 조정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왜 굳이 계약금을 몰수 조치했는지 등도 전혀 확인된 바가 없다. 채권단에 포함된 은행들 가운데 일부에서는 깔끔하게 계약금을 돌려주고 새로운 매수자를 찾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캠코에서 배임이 될 수 있다며 반대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미국의 이란 제재 조치 때문에 돌려줄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역시 확인된 바는 없다.

결국 채권단의 의사 결정 과정에 한국 정부가 어느 정도 개입했느냐가 관건인데 입증이 쉽지 않은 문제다. 일단 투자확약서가 부실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파기하고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채권단과 엔텍합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고 한국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했는지 밝히지 않는 이상 진실을 알 수 없고 지금 상황에서는 중재 판정부의 판정이 옳은지 그른지조차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2018년 6월10일 국제 중재 사건을 다루는 글로벌아비트레이션리뷰(Global Arbitration Review) 보도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패소 이유는 중재 판정부가 요청한 서류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서다. 중재 판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관련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거듭 요구했으나 한국 정부가 애초에 그런 자료가 없다면서 제출하지 않자 중재 판정부가 ‘불리한 추론(adverse inference)’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금융위원회는 “‘불리한 추론’이란 어느 한쪽이 매우 불성실한 태도를 보일 때 일방적으로 패소를 선언하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해명했으나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판정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불리하게 추론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금융위원회가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은 것이다.

글로벌아비트레이션리뷰는 “다야니가 투자 확약서를 부실하게 작성했다는 게 한국 정부가 계약을 파기한 표면상의 이유지만 중재 판정부는 이는 단순한 구실일 뿐이고 실제로는 보쉬나 GE 등 대우일렉트로닉스와 거래하던 기업들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가격을 조정해 달라고 요청한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뒤 계약금을 몰수한 건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보도다.

다야니는 한국 정부가 채권단의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과정에 관여했다고 주장했고 중재 판정부는 채권단의 계약 해지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검토한 문서를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당시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워크아웃 상태였고 매각 등은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캠코 역시 채권단의 일원이었고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 사후 보고하도록 돼 있지만 사전에 보고한 문서는 없다는 게 한국 정부의 설명이었다.

결국 이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한 걸 입증하기는 쉽지만 하지 않은 걸 안 했다고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

금융위원회의 설명에 따르면 2016년 7월, 한국 정부가 다야니에게 13개 항목의 문서 제출을 요청했고 다야니도 한국 정부에 33개 항목의 문서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야니는 1999년 이후 대우일렉트로닉스와 관련된 정부와 채권단 등의 문서를 모두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고 중재 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보유하고 있지 않은 채권단 문서도 제출할 수 있도록 선의의 노력을 보여달라고(good faith efforts) 명령했다. 2016년 9월, 한국 정부는 21건의 정부 보유 문서를 자발적으로 제출했다는 게 금융위원회의 설명이다. 정작 다야니는 문서를 한 건도 제출하지 않았고 중재 판정부가 다시 문서 제출을 명령하자 다야니가 33건의 문서를 제출했고 한국 정부도 정부가 보유한 16건의 문서와 채권단이 보유한 11건의 문서를 추가로 제출했다.

금융위원회는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문서는 모두 성실히 제출했고 정부가 보유하고 있지 않는 채권단 내부 문서도 채권단에 공문을 보내 모두 제출했다”고 해명했다.

그래서 2016년 12월6일, 중재 판정부가 “한국 정부의 문서 제출에 만족하며 추가적인 문서 검색을 할 필요가 없다(The Tribunal is satisfied with the explanations provided by Respondent with regard to its efforts to comply with the Tribunal’s directions ….. and considers that no further direction is called for in the circumstances)”고 답변했다는 게 금융위원회의 설명이다.

금융위원회는 해명자료에서 “정부의 문서 미제출을 이유로 중재 판정부가 정부에 불리한 추론을 내렸다는 것은 수용할 수 없는 불합리한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재 과정 전체를 공개하지 않는 이상 금융위원회가 인용한 일부 문장을 근거로 중재 판정부가 한국 정부가 제출한 자료에 만족했다고 보기는 애매하다.
한국 정부는 이와 관련, 구체적인 설명을 꺼리고 있지만 엔텍합의 대리인을 맡았던 드레인앤가라비에 따르면 “중재 판정부는 한국 정부가 계약을 파기하는 과정에서 신의성실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고(short of good faith) 한국 정부가 작성을 지시한 문서를 공개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중재 과정에서 속임수를 썼다(cheated in the arbitration)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중재 판정부는 한국의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2010년 12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작성한 문건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으나 한국 정부는 그런 문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글로벌아비트레이션리뷰는 “중재 판정부는 납득할 수 없다(not convinced)면서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아무런 보고서도 만들지 않았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결국 중재 판정부가 말하는 ‘불리한 추론(adverse inference)’은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한국 정부의 입장과 달라서 공개하지 않았을 거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금융위원회는 글로벌아비트레이션리뷰를 인용한 중앙일보 보도가 나간 뒤에도 모든 서류를 다 제출했다는 해명만 반복했다.

글로벌아비트레이션리뷰는 또 “중재 판정부는 다야니가 지불 능력을 입증하는 공문을 여러차례 보냈는데도 한국 정부가 제출한 서류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논의되지 않았을 리 없고 결국 한국 정부에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은폐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린 이유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중재 판정부가 대우일렉트로닉스의 채권단 대표 우리은행과 매각 주간사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관계자들의 상반된 진술도 확인했다는 게 글로벌아비트레이션리뷰의 보도다.

중앙일보는 2018년 7월26일 “질 수 없는 싸움에서 졌다”는 국제 중재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인용했지만 한국 정부가 이기려면 계약금을 몰수할 만한 엔텍합의 귀책 사유를 충분히 입증해야 했는데 금융위원회 등은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중재 판정부가 요청한 문건이 없을 수도 있지만 실제 쟁점을 다퉈보지도 못한 채 거짓말을 했다는 의심만으로 패소한 것은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애초에 천문학적인 세금이 들어갈 사안인 만큼 좀 더 투명하게 핵심 쟁점을 공개하고 폭넓게 전문가들을 끌어모으고 여러 부처를 통합한 태스크포스를 만들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첨예한 소송을 앞두고 신중을 기할 필요는 있었겠지만 정부 부처가 논란을 피하기 위해 쉬쉬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졸속한 대응을 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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