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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의 실체, 그들은 알고 있었다.

Written by leejeonghwan

September 1, 2022

론스타 패소 어떻게 볼 것인가. 오늘 KBS 라디오에 가서 송기호 변호사님과 함께 1시간짜리 방송을 하고 왔습니다. 소송은 졌지만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게 송 변호사님과 함께 했던 이야기입니다.

통상 전문인 송기호 변호사님 말씀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몇 가지 추려보면,

– 애초에 6조 원 소송이 아니라 6000억 원 소송이었다. 론스타가 이것저것 때려 넣었고 중복도 많았다. 론스타가 벨기에에 내야 할 세금까지 달라는 것이라 이건 의미가 없고, 결국 6000억 원 소송에서 절반을 이기고 진 것이다.
– 론스타의 비금융 주력자(산업자본) 여부를 비롯해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이 있었는지 등의 쟁점은 중재 심판에서 거론도 안 됐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소송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엎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게 정부가 판정문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 만약 정부가 소송 비용을 줄이려고 했으면 애초에 6000억 원에 대해서만 성공 보수를 책정했을 텐데 실제로 소송 금액을 크게 보이게 만들려고 6조 원 전체를 소송 금액으로 잡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일부 승소만 해도 성공 보수가 크게 늘어난다. 추측이지만 정부가 지금 쇼잉하는 것처럼 나름 선방했다는 포장을 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크다.
– ISDS 판정은 그것 자체로 최종적이고 구속적이다. 만약 한국 정부가 돈을 안 내겠다고 버티면? 강제 집행도 할 수 있다.
– 애초에 2003년에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자격이 안 됐고 그래서 소송을 낼 자격이 없으므로 이 소송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어야 했지만 한국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 피 같은 세금 한 푼도 쓰지 않겠다는 한동훈 장관의 말은 거짓말에 가깝다. 판정이 취소될 가능성은 0%다. 취소 사유는 다섯 가지가 가능한데 첫째가 원고의 자격 여부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론스타의 자격 여부를 따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나머지 네 가지는 판정부가 구성이 잘못됐거나 뇌물을 받는 등 부정행위가 발견됐거나 판정 이유가 적혀있지 않거나 심각한 규정 위반이 있거나 등등이다. 판정 결과에 이의가 있을 수는 있지만 취소 사유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 판정문을 공개해야 한다. 정보 공개 청구를 할 거고 모든 수단을 동원할 계획이다.

– (변양호 등 일부 공무원들이 구국의 결단을 내린 게 이 사건의 실체라고 보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 수천억 원이 움직였을 거라고 본다.

제가 오늘 이야기했던 가운데 몇 가지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사건을 간단히 요약해 보자.

론스타는 원래 정부 소유 은행이었습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51%를 인수하는데 1조3834억 원을 썼죠. 추가로 콜옵션 행사로 들어간 돈을 포함하면 2조1549억 원을 들여서 7조3085억 원을 챙겨서 나갔습니다. (단순 총 수익률은 216.4%, 연간 내부 수익률로 환산하면 23% 수준입니다.)

이게 외환은행 하나만 보면 안 되는 게 IMF 직후인 1999년에 제일은행이 뉴브리지캐피털에 팔려나갑니다. 2000년에는 한미은행이 칼라일 펀드에 팔려나갔죠. 그리고 2003년에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팔려나갑니다. 셋 다 외국계 사모펀드였고 한국에서 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는데 편법으로 사들였습니다. 짧게는 5년만에 팔고 나가면서 수천 억원을 챙겨 나갔고요. 글로벌 투기자본이 한국에서 헐값 쇼핑을 했던 거죠.

이들을 도와준 게 누구냐가 핵심일 거고요. 그게 과연 합법적인 절차를 거친 것이냐를 따져봐야 합니다.

2003년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문제가 있었는데 그걸 적당히 덮고 지나가려 했죠. 2005년부터 론스타가 5조원 정도 챙겨서 나가려고 하니 정부가 이걸 승인해주지 않고 버텼습니다. 론스타 관련 재판이 두 건 있었죠. 이게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게 한국정부의 명분이었습니다. 헐값 매각 사건은 무죄로 결론 났고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이 유죄 판결을 받자(2011년 11월) 그때서야 매각 명령을 내렸죠. 그런데 이게 매각 명령이라는 게 울고 싶은데 뺨때려준 거나 마찬가지죠. 팔겠다고 하는데 못 팔게 하다가 5년 뒤에 너희들 유죄니까 팔고 나가 한 겁니다. 론스타는 이 과정에서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면서 투자자 분쟁 소송(ISDS)을 낸 거고요.

2. 산업자본 여부가 왜 쟁점이 되지 않았을까.

론스타의 자격 논란과 관련한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외환은행이 부실 금융기관이라 매각해야 했느냐,
둘째, 론스타가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라면 애초에 자격이 안 되는데 왜 팔았느냐,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을 보면 일단 론스타가 2006년에 산업자본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이미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부터 산업자본이었을 가능성도 있고요. 2003년에는 이걸 알면서도 뭉갰을 수도 있고 애초에 조사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006년에는 알고 있었고요. 그렇다면 론스타 너네 우리에게 거짓말한 거 아니냐, 너네 2003년 인수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 같은데 계약을 무효로 해야겠다 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쳤던 거죠. 론스타에 귀책 사유만 있으면 원금에 이자 정도만 주고 내쫓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않았죠.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당시 정책 결정권자들이 자신들 책임을 피하려고 했을 수 있습니다.

당시 정책 결정권자들이 산업자본 여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금감원에서 “산업자본은 예외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 분이 있었는데요. 2007년 한창 검찰 조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뇌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분이 6.2% BIS 비율을 산정하는데도 참여했다고 합니다.

3. BIS(자기자본비율) 조작 논란도 있지 않았나.

외환은행의 BIS 비율 전망이 오락가락했고 최악의 경우 외환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이 6.16%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이 외환은행 매각에 결정적인 근거가 됐던 것은 사실입니다. 일부 보고서에서는 더 안 좋은 시나리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망은 전망이고요. 일어나지 않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망할 수도 있으니 팔아야 한다, 이런 논리는 억지스럽죠. 실제로 외환은행이 보유하고 있던 하이닉스반도체 주식 등이 있었는데 100% 손실 처리될 가능성 등을 고려한 시나리오였습니다.

실제로 론스타에 넘어간 다음해 곧바로 522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습니다. 자기자본 비율은 11.5%까지 올랐고요. 론스타가 경영을 잘 해서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건 결과론이고, 굳이 팔지 않아도 될 은행을 자격 없는 사모펀드에 팔아넘긴 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감사원 조사에서는 헐값 매각이 맞다는 결론이 났고 검찰도 배임 혐의로 기소했는데 법원에 가서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검찰은 외환은행의 기업 가치가 3400억에서 최대 8200억 원 정도 기업 가치를 낮게 잡혔다고 분석했습니다.

제가 변양호씨를 만나서 물어본 적 있습니다. “그때 론스타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외환카드부터 부도가 났을 거고 20~30조 원 가까이 금융 비용을 지불해야 했을 거다. 그게(매각이) 맞다 고 생각해서 한 것이다.” 이게 이 사람들 논리인데요.

결국 법원은 몇 가지 부적절한 행동을 한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변양호씨는 결심 공판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대문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기와를 뜯 고 살수를 해 진화에 성공했더니 기와를 뜯어낸 행위가 잘못이라고 꾸짖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변양호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나왔죠. 공무원이 소신을 갖고 추진한 일의 책임을 물으면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논리였는데요.

극단적인 가정을 하면 론스타가 인수하지 않았으면 외환은행이 망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이 론스타의 불법적인 외환은행 인수를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설령 망하더라도 론스타는 국내에서 은행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안 된다는 게 은행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어떻게 이렇게 잘못된 결정이 내려졌는지를 검증하고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합니다.

4. 이번 소송의 쟁점은 뭐라고 보나.

안타까운 건 한국 정부는 애초에 2003년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다는 거죠. 이놈들이 우리를 속였다, 산업자본이면서 지분 구조를 밝히지 않아 결과적으로 불법 매각이 됐다, 이런 주장을 했어야 했는데, 스스로를 부정할 수 없는 모순에 빠져있었습니다. 당신들이 제대로 검증을 안 한 거 아니냐고 반문했겠죠. 론스타가 사기를 쳤다고 주장하려면 그 사기를 받아준 사람들이 한국 정부에 있고 한국 정부가 그걸 처벌하지 않은 것이 문제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그걸 뭉개려다가 매각을 지연시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게 된 거고요.

5. 앞으로 남은 쟁점은 뭔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복기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론스타가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외환은행 매각이 문제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론스타가 먹튀를 할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고요.

매각을 결정하기 직전, 금감위 이사록에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 2년의 유예기간을 달라고 했다는데 2년 안에 팔고 떠나겠다는 거 아닌가.
“투자계약서에 2년동안 팔지 말라는 조항을 넣었다.
– 론스타는 투자구조가 왜 이렇게 복잡한가.
“조세회피 목적이라고 한다.”

론스타는 버뮤다에 본사를 두고 델러웨이와 룩셈부르크 벨기에 등을 7단계를 거쳐서 한국에 투자했습니다. 먹튀할 게 뻔하고 세금도 안 낼 거란 걸 알면서 외환은행을 갖다 바친 것이죠. 여기 참여했던 사람들은 정권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좋은 자리를 다 챙겼습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도 있습니다.

첫째, 외자 유치를 한다는 게 명분이었지만 실제로 인수 대금 가운데 상당 부분이 한국에서 조달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화로 100억원 단위로 입금된 정황이 있고 환전도 되지 않았습니다.

둘째, 김석동의 처조카가 론스타 직원이었고 투자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죠.

셋째, 투자자 바꿔치기 논란도 있었습니다. 9개 펀드가 나눠서 들어왔는데 이 가운데 3개가 나중에 인수 승인 뒤에 입금 직전에 바뀝니다. 이게 한국인 펀드라는 의혹이 있었죠. 사실 투자자가 달라지면 법적으로 동일인이 아니기 때문에 승인 심사를 다시 받아야 하는데 이런 절차도 건너 뛰었죠.

넷째, 론스타가 산업자본이라는 사실을 한국 정부가 언제 알았느냐도 중요합니다. 2006년에 전성인 교수 등이 문제제기를 하면서 공론화됐지만 그때라도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을 박탈하고 책임을 물었어야 했습니다. 모피아들이 론스타에 속았는지 아니면 론스타와 짜고 정부와 국민들을 속였는지는 밝혀져야 합니다.

다섯째, 변양호의 단독 범행이었을까요? 변양호 혼자 청와대와 금감위를 설득하고 밀어붙였을까요? 총리는 보고를 제대로 받았을까요? 김앤장의 수많은 고문들, 얽히고 설킨 모피아의 인맥, 곳곳에서 발견되는 검은 돈의 흔적, 제대로 조사가 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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