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그 위험천만한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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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스왑이라는 게 있다. 다른 통화에 대한 이자를 서로 교환하는 거래를 말한다. A라는 기업이 1억달러의 달러화 부채가 있을 경우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헤지하려면 이 1억달러를 원화로 통화스왑을 하면 된다. 환율이 1155원이고 달러화 이자가 4.875%, 원화 이자가 5.13%라고 하자.

A라는 기업은 미국에서 1억달러를 10년 만기로 4.875%에 빌려와 이를 다시 금융기관에 4.875%에 빌려주고 대신 원화로 1155억원을 5.15%에 빌려온다. 0.02%만큼 이자를 더 주는 셈인데 이게 바로 통화스왑의 거래비용이 된다. 이 거래를 통해 이 기업은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헤지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지난해 9월 금융감독원 국정감사에서는 ‘비정형’ 통화스왑이라는 게 논란이 됐다. 달러화와 원화의 이자를 교환하는 게 아니라 처음 5년 동안은 1.75%의 원화 이자만 내다가 나머지 5년 동안은 엔달러 옵션을 매도해 이 옵션에 따른 환차익을 지급하는 조건이다. 수출보험공사와 철도시설공단 등 9개 공기업이 도이체방크 등 외국계 금융기관들과 이런 거래를 체결했다.

문제는 통화스왑에 이렇게 옵션이 끼어들면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이 헤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험을 헤지할 수 없다면 굳이 통화스왑을 할 이유가 없다. 이번 통화스왑의 경우 만약에 엔달러 환율이 85엔 밑으로 떨어지면 이들 공기업들은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된다. 게다가 이런 조건에서 1.75%의 이자는 다른 금융기관들과 비교해 봐도 터무니없이 불리한 조건이다.

“생각해보세요. 5년 뒤, 10년 뒤 환율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습니까. 공기업들은 아무런 헤지 전략도 없이 이런 말도 안 되는 파생상품을 덥썩 받아들인 겁니다.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고 공기업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거죠.” 변석준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의 이야기다.

공기업들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거래는 파생상품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외국계 금융기관의 선진금융기법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도 한몫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97년 SK증권의 다이아몬드 채권 거래다. 이 한 번의 거래로 SK그룹은 대규모 분식회계를 하게 됐고 결국은 2003년 들어 심각한 경영권 위기까지 맞게 됐다.

해외투자가 유행처럼 번졌던 1996년 가을, SK증권은 JP모건이 팔았던 다이아몬드 펀드에 200억원을 투자한다. 언뜻 보기에 이 펀드는 굉장히 매력적인 파생상품이었다. JP모건은 SK증권 등으로부터 3400만달러를 끌어들인 다음 직접 5300만달러를 조성, 이 펀드에 주식 스왑 형태로 대출해준다. 그렇게 8700만달러 규모의 펀드가 만들어졌다.

SK증권이 보기에는 5300만달러를 빌려서 투자하는데도 이자를 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운용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이른바 마이너스 펀딩이던 셈이다. 문제는 이 펀드의 투자 포트폴리오였다. JP모건은 1990년대 중반 태국 바트화에 10억달러에 이르는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었는데 태국 경제가 급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게 선물과 옵션을 절묘하게 결합한 토털리턴스왑(TRS)라는 파생상품이었다. 바트화가 폭락하더라도 JP모건은 이 TRS에서 그만큼 돈을 벌게 된다. 그 위험부담을 떠안은 파생상품이 바로 이 다이아몬드 펀드였다.

이 펀드는 원금의 3배에 이르는 2억6100만달러를 대출받아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연동 채권을 샀는데 루피아화의 가치가 10%만 하락해도 원금의 90%가 날아가도록 설계돼 있었다. JP모건은 이런 위험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고 SK증권도 특별히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듬해 루피아화는 걷잡을 수 없이 폭락했고 원금 8700만달러 가운데 7700만달러가 날아갔다.

JP모건은 원금을 챙겨서 빠져나갔지만 SK증권은 무려 3억5천만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SK증권은 JP모건을 사기혐의로 제소했고 JP모건은 지급의무를 이행하라며 맞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1999년 이면계약을 통해 합의로 끝났고 SK가 그룹차원에서 손실을 다른 계열사에 떠넘기면서 SK사태의 단초가 됐다. 총수가 구속되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경영권 위기사태를 맞기까지 그 발단은 결국 JP모건이 던진 미끼를 잘못 집어 문데서 비롯했다.

윤창현 명지대학교 교수는 “당시 루피아화나 바트화의 폭락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에서 이 펀드에 뛰어든 국내 금융기관의 손실은 이미 예정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윤 교수는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사기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JP모건은 신의성실의 의무를 벗어났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적어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파는 쪽의 책임이 아니라 결국 사는 쪽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산업은행 금융공학실 윤만호 팀장은 “이제 금융기관들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들도 파생상품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기업들이나 SK증권처럼 모르면 뒤집어 쓴다는 것이다. 윤 팀장은 “위험을 헤지하려고 파생상품에 가입했는데 더 큰 위험을 떠안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공학실의 위험관리를 맡고 있는 양복승 팀장은 파생상품 투자를 복어 요리에 비교한다. 잘 요리하면 훌륭한 요리가 되지만 자칫하면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윤재근 팀장은 양날의 칼에 비유한다. 엄청난 이익의 기회와 동시에 그 위험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은 일반 기업을 상대로 환율이나 금리 헤지를 비롯해 여러 파생상품에 대한 무료 자문을 하고 있다.

변석준 교수는 SK증권의 사례와 관련, “경영진이 담당직원에게 모든 것을 위험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면서 “경영진이 항상 위기의식을 갖고 최소한 가격 구조나 최대 손실가능 금액(VAR), 스트레스 테스트 등의 보고서를 요구하고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 교수는 또 “경영진이 계산방법의 논리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보고서의 활용 정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야흐로 파생상품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시장 규모가 커지고 기회가 늘어나는 만큼 위험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복합금융감독실 임상규 팀장은 “파생상품의 개별거래를 규제할 방법은 없지만 금융기관들이 그 위험요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자기자본에 반영시키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베어링은행은 어떻게 파산했나.

주가지수 옵션은 미래의 어느 시점의 주가를 예측해 그 예측이 맞으면 돈을 버는 파생상품이다. 쉽게 생각하려면 복권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맞으면 돈을 크게 벌고 틀리면 복권 값만 날리고 끝난다. 문제는 복권을 파는 쪽이다. 복권이 당첨되지 않으면 복권 값을 벌겠지만 만약에 당첨이 되면 천문학적인 규모의 당첨금을 물어줘야 한다.

영국 베어링은행의 선물옵션 딜러 니콜라스 리슨은 1994년 일본의 닛케이 선물시장에 대규모 양매도 포지션을 걸어놓았다. 양매도 포지션이란 쉽게 생각하면 일정 범위를 정해놓고 떨어지는 쪽과 오르는 쪽, 양쪽에 복권을 팔았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 그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면 이익이 나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된다. 이걸 스트랭글(조르기) 전략이라고 한다.

리슨의 경우 스트랭글 포지션을 걸어놓고 그 범위를 벗어날 경우에 대한 헤지를 전혀 하지 않았다. 주가가 크게 출렁거리지 않았으면 복권 값을 벌고 끝났겠지만 마침 그 이듬해 1월 일본에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주가가 스트랭글 범위를 벗어났고 베어링은행의 손실은 천문학적으로 불어났다. 그해 2월 베어링은행은 결국 파산신청을 했다. 딜러의 파생상품 거래 하나가 223년 역사의 베어링은행을 문 닫게 만든 것이다.

베어링은행의 손실규모는 4천억원에 이르렀다. 옵션의 경우 15%의 증거금만 내면 100%까지 옵션 상품을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레버리지(지렛대) 효과라고 한다. 이익이 날 때는 크게 나지만 손실이 날 때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손실이 나게 된다.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고 헤지를 하는 게 기본이지만 리슨은 거듭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헤지 없이 위험천만한 모험을 했고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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