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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콩’을 보다.

킹콩이 떨어져 죽었을 때 칼 덴힘 감독은 말한다.

“Oh, no, it wasn’t the airplanes. It was Beauty killed the Beast. (비행기가 아니야. 사랑이 이 괴물을 죽인 거야.)”

이상한 영화다. 킹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간 것은 앤 데로우 때문이 아니다. 킹콩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총을 맞고 떨어져 죽은 것도 역시 앤 때문이 아니다. 킹콩은 마취제를 뒤집어 쓰고 잡혀와 난동을 부리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킹콩이 사랑 때문에 죽었다고 억지를 부린다.

앤은 킹콩에게 제물로 바쳐졌다가 킹콩의 장난감이 됐다가 나중에는 킹콩을 유인하는 미끼가 된다. 나오미 와츠가 아니었다면 앤은 킹콩에게 잡아 먹히거나, 다른 등장인물들처럼 다리가 부러지거나 절벽에서 내동댕이쳐졌을지도 모른다. 나오미 와츠가 아니었다면 동료들이 그를 구하러 해골섬을 헤집고 돌아다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수십명의 남자들이 기꺼이 목숨을 걸고 앤을 구하려 나서는 것은 나오미 와츠가 금발의 매력적인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킹콩이 앤에게 갖는 감정도 이와 비슷한 것일까. 그렇다면 그건 굉장히 의인화된 환상이다. 앤은 살아남기 위해 킹콩 앞에서 서커스를 하고 다행히 킹콩의 호감을 산다. 킹콩이 앤에게 보이는 호감 또는 집착은 오히려 소유욕에 가깝다.

그 소유욕은 앤을 움켜쥐고 102층짜리 443.2미터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오를만큼 무모하다. 아마도 앤에게는 까무라칠만큼 끔찍한 공포였을 것이다.

나오미 와츠는 물론 매력적이다. 나오미 와츠의 매력에 빠져드는 순간 관객들은 킹콩의 소유욕에 동화된다. 관객들은 킹콩의 폭력성을 의식하지 못한다. 나오미 와츠를 욕망하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오미 와츠는 킹콩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소비된다. 앤은 주인공이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상화된다.

참고 : 영화가 여배우를 소비하는 방식. (이정환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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