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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노동자로 인정받고 싶다.”

건설운송노조 박대규 위원장은 파주레미콘이라는 회사 소속이다. 레미콘 운전기사였던 그는 10년 전에 월급 70만원에 상여금 400%를 받는 정규직 노동자였다. 그런데 1994년, 회사에서 레미콘을 사라고 제안해 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이나 마찬가지였다. 차를 안 사면 나가야 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결국 퇴직금에 빚까지 얹어서 차를 5천만원에 샀다. 회사에서 친절하게 돈까지 빌려줬다.

그날부터 그는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가 됐다. 회사와는 고용계약이 아니라 도급계약을 맺었다. 첫 달에 그는 450만원을 벌었는데 기름 값과 보험료, 차 유지비와 수리비에 할부금까지 내고 나면 겨우 70만원 정도가 남았다. 월급 받던 때나 수입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수입은 그대로였지만 노동 조건은 크게 달라졌다. 회사에서 호출을 하면 한밤중이든 휴일이든 언제든지 달려 나가야 했다. 물론 야근수당이나 휴일근무수당 같은 것도 없었다.

기름 값이 올라도 회사에서는 운임을 잘 올려주지 않았다. 열악한 조건을 요구해도 일방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차에 압류를 걸어뒀기 때문에 다른 회사로 옮길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만 두려면 차 값을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꼼짝없이 코가 꿴 거죠.” 그 차 값을 다 갚는데 꼬박 7년이 걸렸다고 했다.

더 어이없는 것은 그 다음부터다. 처음 살 때부터 원래 헌 차였던 데다 무리하게 굴리다 보니 차가 말을 잘 듣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1995년식 이상의 차는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새 차를 사든 중고를 사든 좀 더 신형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8천만원의 빚을 새로 지게 됐다. 회사가 사야할 차를 노동자들이 사고 그 때문에 평생 갚아도 못 갚을 빚까지 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도대체 그는 왜 다른 일을 찾지 않았던 것일까. 빚까지 얻어가면서 이 회사에 남아있었던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다른 할줄 아는 게 없어서”다.

레미콘 기사뿐만 아니라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AS기사, 애니메이터, 텔레마케터 등이 이런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서 노동3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당연히 노조도 결성하지 못한다. 파업을 하면 손해배상 청구는 물론이고 심할 경우 공갈협박이라는 혐의를 받기도 한다. 노동계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번 법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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