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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는 과학이다… 티본 스테이크 잘 굽는 방법.

Written by leejeonghwan

May 31, 2021

유튜브에 뒤져보면 온갖 비법이 넘쳐나는데 전문가들도 조금씩 스타일이 다르다. 스테이크를 잘 굽는 모든 노하우는 결국 안쪽까지 온도가 잘 전달되게 만드는 것이 전부다. 자칫 겉은 타고 안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황을 피하려면 최적의 온도와 시간을 맞춰야 한다. 이게 다 고기가 두꺼워서 생기는 문제다.

몇 가지 기본만 갖추면 된다.
첫째, 겉면을 굽고(시어링),
둘째, 버터를 끼얹으면서 안쪽까지 열이 전달되도록 하고(베이스팅),
셋째, 꺼내서 적정 시간을 식힌다(레스팅).

핵심은 겉을 확실히 굽고 안을 익힌다는 것. 불이 너무 세면 겉면을 태우게 되고 겉면이 타면 안쪽까지 제대로 열이 전달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불이 너무 약하면 고기를 굽는 게 아니라 삶게 된다. 겉면을 빨리 굽되 안쪽을 취향에 맞게 익히는 것이 핵심이다.

0. 두어 시간 전에 고기를 꺼내서 소금을 충분히 뿌린 다음 다시 냉장 보관한다. 소금이 수분을 빨아들이고 고기 안으로 스며들게 된다. 30분 전에 꺼내서 올리브유를 충분히 바른 다음 상온에 보관한다. 고기가 너무 차갑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1. 팬을 충분히 달군 다음 올리브유를 충분히 두른다. 세 스푼 정도. 겉면을 바삭바삭하게 살짝 튀긴다는 느낌으로 올리브유가 충분해야 한다.

2. 팬에서 연기가 나면 올리브유를 한 스푼 더 넣는다. 기름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다. 고기를 굽는 동안에도 연기가 나지 않게 하는 게 포인트. 연기가 나면 고기가 타고 있는 것이다.

3. 고기를 올렸을 때 지글지글 소리가 나야 한다. 지글지글 소리가 나지 않으면 기름이 충분히 뜨겁지 않은 것이다. 충분히 뜨거울 때 집어넣고 겉면을 코팅하듯 굽는 게 핵심이다.

4. 고기를 계속 뒤집어 준다. 센 불에서 30초 마다 뒤집으라는 레시피도 있고 좀 약한 불에서 2분 정도 충분히 굽고 난 다음 뒤집으라는 레시피도 있는데 선택하기 나름이다. 중요한 것은 충분히 갈색이 될 때까지 구워야 한다는 것이다. 고든 램지가 “no colour no flavour”라고 했던 걸 떠올릴 것. 마늘을 같이 굽는 것도 좋다. 타임이나 로즈마리 같은 게 있다면 취향에 따라 올려두는 것도 좋다.

5. 이렇게 태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짙은 갈색이 나게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을 시어링(searing)이라고 하는데 빨리 구워서 육즙을 가둔다는 건 잘못 알려진 상식이라고 한다. 육즙은 어차피 굽는 동안 빠져나가는 것이고 겉면을 태우듯이 굽는 것은 그래야 맛있기 때문이다. (갈색이 되면서 맛있어 지는 걸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한다. 소고기는 한 번만 뒤집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건 너무 바짝 익히지 말라는 의미일 뿐 두꺼운 스테이크에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얇게 썬 고기는 굽는 정도에 따라 미디움이나 웰던까지 맞출 수 있지만 스테이크 덩어리는 한 번에 최적의 온도로 구워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6. 겉면이 충분히 갈색이 됐으면 이제 안쪽을 익혀야 할 차례다. 버터를 서너 조각 올려서 버터가 녹으면 팬을 살짝 기울이고 버터 국물을 떠서 고기 위에 끼얹는다. 겉면의 열기가 안쪽까지 충분히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다. 이걸 베이스팅(basting)이라고도 하고 아로제(arrose)라고도 한다. 아로제는 ‘적시다’, 베이스팅은 ‘마르지 않게 하다’란 의미라고. 역시 30초~2분 마다 뒤집어 준다.

7. 두께에 따라 다르지만 3cm 정도라면 2분씩 앞뒷면을 두 번 구우면 충분하다(8분, 30초씩이라면 여덟 번). 온도계가 있다면 안쪽이 55도까지 올랐을 때 꺼내면 미디움으로 맞출 수 있다. 꺼내고 난 다음에도 내부 온도가 계속 올라가기 때문에 이걸 감안해서 조금 일찍 꺼내는 게 좋다.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

8. 꺼내놓고 기다린다. 불을 끄고 난 뒤에도 한동안 온도가 오르기 때문에 뚜껑을 덮어두거나 호일로 감싸두고 3~4분 정도를 기다린다. 온도계를 찔러두고 온도가 오르는 걸 지켜보다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 고기를 썰어야 할 때다. 레스팅(resting) 단계에서 고기 안의 육즙이 제자리를 찾는다고 한다. 그러니까 레스팅은 고기를 식히는 게 아니라 고기가 안정되기를 기다리는 과정이다. 이왕이면 고기가 식지 않도록 최대한 온도를 유지하는 게 좋다.

9. 레스팅하는 동안 팬에 남아있는 올리브유에 감자와 양파, 당근, 버섯, 아스파라거스 등등 냉장고에 남아있는 채소 비슷한 것들을 모두 넣고 볶는다. 이렇게 곁들이는 채소를 가니쉬(garnish)라고 한다.

10. 고기 온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고기를 썬다. 도톰하게 써는 게 좋다. 얇게 썰면 금방 식고 식감도 떨어진다. 서빙도 타이밍이다. 최적의 순간에 바로 먹을 수 있도록 테이블 셋팅을 끝내둬야 한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충분한 온도에서 시작하는 게 좋고, (기름에 연기나는 게 신호, 그리고 연기 안 나게 굽는 게 관건.) 적당히 뒤집으면서 굽되, 너무 일찍 꺼내거나 너무 늦게 꺼내지 않는 게 좋다. (그래서 온도계가 필요.)

대단한 장비가 필요한 건 아니다. 그냥 막 쓸 수 있는 프라이팬이면 된다. 어차피 기름 잔뜩 붓고 튀기듯이 구워야 한다. 어차피 센 불로 구울 게 아니라 화력 좋은 불판 같은 것도 필요 없다.

탐침 온도계를 장만할 것을 강력 추천한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몇 천 원에 살 수 있다. 백종원 정도 되면 대충 고기 두께나 지방 상태를 보고 대략 몇 번 뒤집고 어느 정도 되면 다 익었다 감이 오겠지만 그 정도 되려면 수백 번 구워봐야 한다. 언제 불을 끄고 언제 꺼낼 것인지 판단하려면 온도계가 필요하다. 손가락으로 눌러 보고 얼마나 익었는지 확인해 볼 수 있다는 팁도 도는데, 실제로 해보면 거기서 거기다. 온도계가 가장 확실하다.

요즘은 수비드(Sous vide, 진공 저온) 방식으로 먼저 고기를 충분히 익힌 다음에 굽기도 하고 에어프라이어로 익힌 다음 리버스 시어링(reverse searing)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다. 너무 두껍지 않은 고기라면 팬으로도 충분하다.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이란 아미노산이 포도당과 결합해 멜라노이덴(melanoidin)을 만드는 현상을 말하는 데 이게 구운 고기의 맛을 결정하게 된다. 고기는 180도에서 최적의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는데 200도가 넘어가면 타게 된다. 그래서 스테이크를 구울 때는 타지 않으면서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는 최적의 온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삼겹살을 구울 때도 마찬가지다. 수육이나 고깃국은 마이야르 반응이 없는 조리법이다.

고기 중심부 온도가 50도 정도면 레어, 55도는 미디엄 레어, 60도는 미디엄, 65도는 미디엄 웰, 그 이상은 웰던이라고 본다. 파이브서티에잇이 2017년 미국의 롱혼스테이크하우스의 자료를 인용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미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굽기는 미디움이 37.5%로 가장 많았고, 미디움웰던과 미디움레어가 각각 25.8%와 22.5%, 웰던은 11.7% 밖에 안 됐다.

도널드 트럼프는 웰던을 좋아했다는데 정당 지지자들을 분석한 조사에서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웰던 비율이 좀 더 높게 나타났고 위험 선호도와 비교한 조사에서도 의미있는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티본 스테이크는 왼쪽이 안심, 오른쪽이 채끝등심인데 안심이 지방 함량이 적어서 좀 더 살짝 굽는 게 좋다고 한다. 한 불판에서 구우려면 이왕이면 등심 쪽을 불판의 가운데에 오게 하는 게 좋다. 뼈에 붙은 쪽이 잘 익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칼집을 내두는 것도 좋고, 비주얼은 포기하고 아예 분리해서 굽는 것도 방법이다. 설로인에서는 처음에 뼈가 붙은 부분을 수직으로 세워서 5분 정도 굽는 걸 추천하기도 한다.

(사진은 CC0, 내가 찍은 것 아니다. 그래프는 파이브서티에잇 자료를 기초로 내가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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