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 끊이지 않는 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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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씨티은행에는 아직도 한미은행 노조가 있다. 지난해 9월 씨티뱅크 서울지점과 한미은행이 통합하면서 한국씨티은행으로 이름이 바뀐 뒤 벌써 1년이 다 돼 간다. 그런데도 노조는 아직 한미은행이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씨티에 대한 노조의 거부감이 얼마나 큰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17일, 올해 2반기 실적을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이 은행의 2반기 당기순이익은 123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3.1%나 늘어났다. 총 자산은 49조3천억원으로 19.5% 늘어났고 대출금과 예수금도 각각 2.6%와 15.6%씩 늘어났다. 하영구 행장은 보도자료에서 “통합작업에 상당한 진전을 보였다”면서 “실적에 대해 만족한다”고 밝혔다. 몇몇 신문은 이날 은행이 낸 자료를 그대로 받아쓰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날 노조의 발표였다. 노조는 은행이 지난해 통합 전 한미은행의 실적을 올해 통합 은행의 실적과 비교해 실적이 크게 늘어난 것처럼 언론을 속였다고 주장했다. 노조의 계산에 따라 지난해 한미은행과 씨티뱅크 서울지점의 실적을 합산해 비교하면 이 은행의 올해 2분기 당기순이익은 113.1%가 아니라 19.3% 늘어나는데 그쳤다. 대출금과 예수금은 늘어나는 게 아니라 각각 -12.6%와 -9.8%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노조 박찬근 위원장은 “마치 대단한 실적을 거둔 것처럼 과대포장했지만 사실은 다른 기준을 적용해 실적을 의도적으로 부풀려 발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위원장은 “특히 대출금과 예수금은 과거 씨티뱅크 서울지점의 자산을 합산한 것일뿐 실제 통합은행의 자산 규모는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설명했다.

물론 한국씨티은행은 지난해 실적이 한미은행만의 실적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밝히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는 실적 공시에는 굳이 통합 은행의 실적을 합산해 계산할 필요가 없다. 해석하기 나름일뿐 의도적으로 실적을 부풀렸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다만 은행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안 좋은 실적을 잘 포장해서 발표하고 싶었을 것이고 노조는 이를 그냥 두고 보지 못했던 것이다.

궁금한 것은 이런 갈등의 배경이다. 오죽하면 노조가 나서서 회사의 실적을 깎아내리는 것일까. 심지어 회사의 부실을 파헤치거나 비리를 들춰내는데도 노조가 앞장서고 있다. 이용하 노조 부위원장은 “이런 식이라면 은행이 수익을 내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말할 정도다. 태업에 이어 파업까지 강행하겠다는 태도다. 도대체 노조가 이렇게 격렬하게 반발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달 17일, 노조는 부동산담보대출 관련 사기혐의로 은행을 검찰에 고발했다. 대주주인 씨티그룹에 1조7천억원 가량 신용공여가 나갔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도 노조다. 은행법은 자기자본의 25% 이상을 모은행에 신용공여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는데 이 경우는 7천억원 가까이 초과한 상태다.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씨티그룹의 한미은행 인수자금 4조원 가운데 3조7천억원 이상이 씨티그룹 계열사들에게 다시 빠져나갔다.

갈등의 원인은 무엇보다도 불평등한 인사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 4월 승진인사에서는 모두 159명이 승진했는데 한미은행 출신이 141명, 씨티뱅크 출신이 118명으로 숫자는 거의 비슷했다. 문제는 전체 직원 수가 한미은행은 2836명, 씨티뱅크은 847명으로 한미은행이 세배 이상 많다는데 있다. 승진 인사가 씨티뱅크 출신에 몰리면서 한미은행 출신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박탈감이 클 수밖에 없다. 이번 승진의 결과 전체 부서장의 58.2%를 씨티뱅크 출신이 차지하게 됐다.

인사 불평등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욱 심각하다. 한미은행 출신 5명의 부행장 가운데 두명은 임기를 채우고 물러났지만 나머지 세명은 모두 부행장보로 격하됐다. 그 자리는 씨티그룹에서 온 외국인들이 채웠다. 현재 상근감사위원을 제외한 7명의 부행장이 모두 외국인이다. 하영구 행장 역시 씨티뱅크 출신이다. 결국 부행장보 이상 간부 21명 가운데 한미은행 출신은 3명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다 달라진 근무환경도 반발을 불러왔다. 노조가 반발하는 것은 단순히 인사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씨티은행은 통합 이후 씨티그룹의 지침을 따라 이른바 매트릭스 시스템이라는 조직체계를 도입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사업부를 세분화하고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성하는데 있다. 각각의 사업부는 소은행이라고 불릴만큼 완벽하게 독립돼 있다.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부서가 59개에서 167개로 늘어났고 부서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만큼 직원들의 업무 강도도 높아졌다.

노조가 지난달 한국갤럽에 의뢰, 한미은행 출신 직원 14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직원의 63.1%가 한국씨티은행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통합 후 한국씨티은행에 대한 전반적인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16.8점, 조직 개편과 인력재배치 만족도는 12.8점으로 나타났다. 이직 및 퇴직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66.3%가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노조가 반발하는 것은 단순히 인사문제 때문은 아니다. 한국씨티은행은 통합이후 지금까지 세차례에 걸쳐 연 4%가 넘는 파격적인 금리의 특판 예금상품을 판매했다. 이 정도면 예대마진이 거의 남지 않게 된다.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이 은행은 이렇게 끌어들인 예금 고객들을 선취 수수료를 받는 투자상품으로 유인해 이익을 남기고 있다. 이를테면 투자상품으로 전환하는 것을 조건으로 만기 이자율을 적용하고 중도 해지를 권유하는 방식이다. 이자는 높게 지급하지만 한꺼번에 1.5% 이상의 선취 수수료가 들어온다.

이자 수익보다는 비이자 수익에 집중하는 전략인 셈인데 문제는 은행이 이익을 내는만큼 고객들 손실이 커진다는데 있다. 사실 고객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금리를 포기하면서 굳이 예금상품을 위험한 투자상품으로 전환할 이유가 없다. 이런 고객들을 유인하려면 결국 지점에서 영업직원이 거짓말을 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은행은 선취 수수료를 챙길 뿐이고 모든 부담은 영업직원들의 몫으로 남는다.

노조는 씨티그룹이 미국 본사의 업무관행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를테면 거래정보가 없는 비고객에게는 신분증 확인 뿐만 아니라 이름과 주소, 생년월일 등을 적도록 하거나 거래금액이 500만원을 넘을 때는 지점장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 국내 현실과 맞지 않는 업무관행이 많다. 기업 대출의 경우에도 자금세탁 위험도나 조세회피지역 신탁여부를 조사하도록 하는 등 국내 은행에 없는 절차가 많다.

직원 교육에서는 “마약상 또는 마피아와 거래하거나 돈 세탁을 하지 말 것”, “쿠바 등 적대국가의 금융거래는 불법”이라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업무지침이 내려오기도 했다. 미국에서 쓰던 업무지침을 그대로 번역해다 쓸만큼 이 은행이 국내 토착화에 실패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일부 전산업무를 씨티그룹의 관행에 따라 수기업무로 전환하기도 했다. 진창근 노조 홍보국장은 “통합 이후에는 사무용 기기까지도 모두 미국 제품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진 국장은 씨티그룹을 “점령군 같다”고 표현했다.

노조는 독립경영을 요구하고 있지만 100%에 가까운 지분구조에서는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다. 핵심은 결국 토착화다. 은행은 노조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아직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은행이라는 수사가 무색하게 실적도 형편없다. 박선오 한국씨티은행 홍보부장은 “여러가지로 해법을 고민하고 있다”면서 “갈등 해소와 통합의 시너지 창출을 위해 외부 기관에 컨설팅을 의뢰해둔 상태”라고 밝혔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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