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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 공영방송의 힘과 존재의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Written by leejeonghwan

August 20, 2020

지난해 불거진 언론개혁 화두가 무르익기도 전에, 코로나19 확산으로 올해 언론은 또 다른 위기를 맞았습니다. 우리 삶의 근본적 변화를 초래할 위기의 시대에 언론, 특히 공영방송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보게 되는데요. KBS1 라디오에서 준비한 방송의 날 기획 대담 ‘위기의 시대를 묻고 답하다’, 50분간 위기의 시대 언론의 역할에 대해 얘기 나눌 두 분 함께 자리했습니다.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 안녕하세요! (인사)

Q1) 사회적 위기 상황 발생 시, 방송과 언론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 올해 상반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위기 국면이 지속됐다. 코로나19와 재난 상황에서 방송의 역할이 중요한데, 어떻게 지켜봤나?

위기 상황에 믿고 의지할 만한 언론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뉴스를 읽으면 두렵고 피곤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늘어났습니다. 뉴스 피로감이죠.

미국에서는 코로나 범프라는 게 있었다고 합니다. 3월 들어 뉴스 소비가 폭발했고 뉴스에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죠. 뉴스 트래픽이 갑자기 크게 늘었다가 줄어드는데 그 중에 일부는 충성 독자로 계속 남는다는 것이죠.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사람들이 이럴 때는 그래 진짜 진실이 뭔가, 그래서 우리가 뭘 해야 하는가에 대한 갈증과 열망이 있습니다. 언론이 불안과 공포를 넘어 맥락과 본질을 이야기할 때, 뉴스에 열광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 이 신문은, 이 방송은 믿을 수 있어 그렇게 말이죠. 위기 상황에서 실력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브랜드 뉴스의 컴백이라는 이야기도 합니다.

최근에 KBS 신뢰도가 크게 올랐죠. 어떤 조사에서는 1위를 하기도 하고 며칠 전 시사인 조사에서는 KBS가 2위였지만 1위인 JTBC와 격차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모든 언론이 정파적 편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KBS가 그나마 균형을 잡고 있다는 인식이 있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이럴 때는 정확한 사실과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게 KBS에 기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Q2) 위기나 갈등을 조장하는 게 미디어의 속성이기도 한데, 위기의 시대 공영방송 특히 KBS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나?

목숨을 걸고 현장에서 바이러스와 싸우는 의료진이 있습니다. 임종도 지켜보지 못하고 격리 상태에서 가족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사연도 있고요. 그 어느 때보다도 연대와 공존의 가치가 중요한 때죠.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고요.

최근 일부 교회에서 바이러스가 급격히 확산되고 일부에서는 음모론이 득세하고 있는데, 심지어 북한의 소행이라느니, 확진자 수를 못 믿겠다느니 방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느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나오는데, 혼란할 때는 이런 허위조작 정보가 넘쳐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바로 잡는 게 언론의 역할이고요.

공공의 이해를 강조하고 마스크도 중요하지만 손 씻는 걸 강조하고, (데이터와 사례로 설득력 있게 설명해야겠죠.) 어떤 경우에도 혐오와 차별은 안 된다, 철저하게 과학으로 접근하고, 이럴 때일수록 정치적인 중립과 공정성에 대한 평판이 중요합니다.

코로나는 정치와 무관한 안전과 생명의 문제다, 이런 메시지. 아울러 코로나 이후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토론을 제안해야 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고, 무너진 시스템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고, 단절된 관계를 어떻게 다시 구축하고, 취약한 계층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게 남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라는 걸 깨닫게 만드는 게 언론의 역할입니다.

정부가 자꾸 방역의 긴장을 놓으려고 할 때 경고하는 것도 언론이 해야 할 일이고요. 코로나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앞으로 1년 동안 이렇게 살아야 할 수도 있다, 희망이 아니라, 고통스럽지만 냉정한 상황 판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확한 해법이 나오겠죠.

Q3) 공영 방송하면 재원이나 지배구조를 가지고 설명하곤 하는데, 청취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개념 설명을 부탁드린다…

나이 드신 분들은 어릴 때 아버지가 옥상에 올라가서 안테나를 이리저리 옮기면서 방송을 잡았던 기억 나실 겁니다. 2012년 디지털 전환을 하면서 수신 감도가 정말 좋아졌스비다. 이제는 세탁소 옷걸이를 구부려서 안테나를 만들어도 실내에서 방송이 잘 잡힙니다.

그런데 한국은 지상파 직접 수신 비율이 5%가 채 안 되는 걸로 추산됩니다.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보는데요. 이제는 방송을 SK텔레콤이나 KT, LG유플러스로 보는 시대죠. 뭘 보려면 돈을 내야 하는 시대, 방송이 더 이상 공짜가 아닌 거죠. 아무도 무료 보편적 서비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상파라는 공적 인프라를 쓰는 대가로 공적 책임을 부과하는 건데, 그 지상파라는 플랫폼이 무너진 것입니다. 1차적으로 이건 방송사들이 플랫폼에 대한 인식이나 투자가 부족했기 때문이고, 방송이 통신에 종속되는 과정에 국가적으로 전략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KBS가 종편과 경쟁하고 CJ와 경쟁하고 이제는 넷플릭스와 유튜브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인데요. MMS라거나 8VSB나 풀 수 있는 규제는 풀고, 산업을 키울 수 있으면 키워야 합니다. 재원 마련이 필요하고 수신료를 인상해야 한다면 중간광고도 마찬가지고요. 단계적 전략을 제시하고 설득을 시작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혁신 계획이 나와야겠죠.

재원 구조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방송 광고는 더 줄어들 것이고 공영방송의 존립 기반도 위축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KBS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할까요? 질문을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TV를 틀면 KBS MBC가 나오던 시대가 아니라, 수천만개의 채널과 경쟁하는 시대, 공영방송은 무엇으로 승부할 것인가.

수신료 인상도 신뢰 회복과 공적 책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할 것이고요.

지배구조 문제도 쉽지 않지만 제가 늘 이야기하는 건 대통령이 나서서 어떤 형태로든 청와대가 공영방송 사장 선임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다시 밝히는 게 필요하고요. (실제로 이번 정권에서는 완벽하게 거리를 둔 것으로 여러 경로로 확인했습니다.) 잘 하고 있는데요. 그게 의지나 선언으로는 안 되고, 그래서 입법을 준비해 달라고 요청하고 제도를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지난해 KBS 사장 선임 때 국민 청문회를 하기도 했지만, 이런 제도를 선한 의지가 아니라 명시적인 규정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지금 11명인 이사회 이사 수를 100명 정도로 늘리고 이사의 보수나 혜택을 크게 줄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지금은 청와대와 여당이 7명, 야당이 4명을 지명하는데, 이런 구조에서는 독립성 논란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잘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 잘하고 있을 때 제도로 못 박아야 한다는 것이죠.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에 KBS 사장 임면권을 임명권으로 바꿨습니다. 임면은 임명과 면직인데요. 그러니까 대통령이 임명은 하지만 임기 안에 그만 두도록 하지 못하게, 면직은 하지 못하게 한 것이죠. 그때부터 공영방송 사장의 임기가 법적으로 보장됐습니다. 좀 더 나가서 대통령이 임명하지 않겠다, 공정하게 임명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청하는 결단을 내린다면 좋겠습니다.

Q4) 미디어 환경이나 생태계가 급격하게 변하면서 방송의 위기를 거론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드라마는 넷플릭스에, 볼거리는 유튜브에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아마도 지상파 방송사들이 드라마로 경쟁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로 돈을 벌어 뉴스를 지원하는 시대도 지난 것 같고요. 사실 이건 방송 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이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전통적인 수익 구조가 다 무너지고 있는 것이죠.

독자들은 달라진 세상의 문법에 적응하고 또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데, 언론은 하던 대로 하는 관행에 매어있는 것입니다. 제가 언론사 데스크나 전략 담당자들을 만나서 물어보면, 이게 아니면 자신이 없으니까 변화를 꺼린다는 겁니다. 윗 사람들이 말이죠.

JTBC가 잘 나가던 시절 손석희 앵커가 기자들을 괴롭히면서 물어보잖아요. 기자들이 생방송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리면서 망신 당하고. 그래서 더 준비해 오고 더 깊이 들어가는 뉴스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지금 한국 언론에는 힘들고 불편한 실험과 도전,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과 새로운 플랫폼에 적응하면서 독자들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포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KBS 송현정 기자가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를 했다가 엄청난 비판을 받은 적 있었죠. 기자의 태도가 건방져서가 아니라 기자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것입니다. 조국 전 장관 기자회견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독자들이 이제 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관심을 갖고, 직접 판단을 하는 시대입니다.

Q4-1) 최근에는 유튜브 영향력이 커지면서 언론의 영역으로 확장..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시나? 지상파 매체 역시 유튜브 채널에 관심을 갖고 역량을 모으고 있지 않나?

언론의 외연이 확장. 영역이 불분명해지고. 영향력 있는 언론인 순위가 손석희 전 JTBC 사장이 1위, 김어준 2위. 유시민 3위. 주진우 4위. 진중권 6위. 손 전 사장은 현역이 아니고, 유시민 이사장은 본인이 유튜브 언론인이라고 말하는 분입니다. 실제로 알릴레오의 영향력이 엄청났죠. KBS와 진실 공방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시사 유튜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신의한수, 팬앤마이크 같은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도 늘어났고요. 나는 꼼수다의 계보를 잇는 방송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김어준씨 방송도 사실 TBS 보다는 유튜브에서 훨씬 더 많이 보고 듣는 방송이고요.

분명한 것은 이 분들이 모두 넓은 의미에서 언론인들 맞습니다. 독자들 오디언스들은 언론과 언론이 아닌 채널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거나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뉴스가 제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뉴스의 대안으로 선택하는 것이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데요. 그렇다고 언론이 유튜버 문법을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방송과 주류 언론의 입지가 좁아진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명확해졌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들이 할 일을 제대로 해라. 유튜브는 유튜브의 역할이 있고, 그게 저널리즘 본연의 의제 설정과 진실을 향한 질문과 추적, 맥락을 파고 들고 독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부단한 투쟁을 유튜버들이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죠. 물론 유튜버들도 뛰어난 전문성과 열정이 있는 분들 많습니다. 언론사가 잘하는 것, 기자들이 잘하는 것은 무엇인가, 거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잘 해야 하고요.

Q4-2) 내년이면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한 지 10년이 된다. 종편이 미디어 시장에 가져온 변화.. 기대감과 피로감은?

어쨌거나 채널이 늘어난 건 사실이고요. 지상파의 과점이 무너진 것도 의도했던 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의하든 하지 않든 다양성이 확보됐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종편을 4개나 만든 의도가 통제가 잘 안 되는 지상파의 힘을 빼고 보수 성향 언론사들의 힘을 키우기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았죠. 실제로 그렇게 됐고요. 이른바 정치 시사 토크쇼의 영역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애초에 특혜가 아니면 생존할 수 없는 괴물을 키워왔다는 것입니다. 황금채널을 강제로 배정했고 광고 시간도 대폭 늘려줬습니다. 방송발전기금도 안 내고요. 직접 광고 영업을 허용했습니다. 케이블 방송사들이 종편을 의무전송하게 돼 있는데 송출 수수료도 받습니다. KBS는 의무편성 채널이라 CPS 수수료를 못 받죠. KBS와 MBC는 광고를 코바코에 대행하게 돼 있는데, 종편은 모두 1사1렙, 사실상 직접 광고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비리도 끊이지 않고요. 만약 이런 것들을 다 철회하고 공정한 경쟁을 하게 했다면 종편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KBS와 MBC가 지금보다는 좀 더 나은 상황에서 경쟁을 하지 않았을까.

종편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많지만 방송도 정치 논리와 무관하게 시스템을 바로 잡으면 됩니다. 검언유착이라 승인을 취소한다는 것은 부담이 클 거고요. 특혜를 거두고 공정하게 경쟁을 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을 거라고 봅니다. 공영 언론을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두고 이에 걸맞는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전제돼야 하고요.

Q5) 그렇다면, 공영방송, 공영 미디어가 과연 지속가능할까?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나?

건강한 저널리즘이 민주주의의 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신문 시장만 놓고 보면 먹고 사는 문제. 광고를 받기 위해 기사를 팔았죠. 많은 사람들이 언론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가 삼성이 아킬레스 건이라는 걸 이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거죠. 공짜 뉴스에 광고 끼워팔기 모델, 그게 좀 더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독자 없는 신문의 시대입니다. 180년 가까이 이어져 왔던 뉴스 비즈니스 모델이 끝나가고 이쓴 것이죠.

공영방송의 생존을 이야기하려면, 존재 이유를 입증해야 합니다. 믿고 볼 만한 뉴스가 없다는 건 정말 서글픈 일. 이제 많은 사람들이 네이버 뉴스도 안 본다. 디씨에서 놀고 클리앙에서 놀고 보배드림이나 뉴스는 어디에나 있고 링크로 돌아다니니까요.

공동의 의제, 우리가 읽어야 할 뉴스, 이런 것들은 완전히 공론의 장에 진입도 못하는 느낌입니다.

검언유착 기사를 누가 제대로 읽었을까. 우리의 설명이 불친절하거나 여전히 공급자 마인드로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워서 못 읽겠다면 더 쉽게 풀어야 하고 계속해서 과거의 기사를 소환하면서 맥락을 복원해야 합니다.

Q6)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시장논리만으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영역들에 대한 고민이나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됐다. 미디어 영역에서도 같은 고민들을 할 수 있었는데, 수많은 매체 중에 공영방송은 어떻게 자리 매김 할 수 있겠는가?

방송통신위원회가 플랫폼 주권론이니 한국형 OTT니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현실성도 없고 대안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공 부문에 대한 공격에 맞서려면 공적 가치를 입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 논리로는 작동하지 않으니까 최소한의 보호와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명분을 만들고 설득해야 하고요. 하지만 지금 공영방송이 내세우는 가치들이 낡고 식상하거나 새롭지 않거나 독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Q7) 공영방송이 자본과 권력에서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을 하는 이유가 언론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과 견제의 기능이라고 보기 때문인데, 공영방송이 이 부분에 대한 비판에서 늘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양대 공영방송 중에 요즘은 MBC가 더 위태로워 보이는데요. 드론을 띄웠더니 딱 100만 이더라, 이 말씀을 하신 분이 사장이 되셨습니다. 해직 기자 출신이고 관점이 좋은 훌륭한 언론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공영방송 MBC가 왜 친정부 편향이라는 비난을 받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MBC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극단을 오가느냐는 냉소적인 시선도 있고요.

MBC나 KBS가 만약 특정 정파의 편에 서서 일부 시청자들에게 박수를 받으려고 한다면 그건 매우 위험한 일일 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의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될 거라고 봅니다. 불편하지만 옳은 소리, 어렵게 지켜낸 방송 독립이라는 가치에 걸맞는 방송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게 국민들이 공영방송을 지켜야 할 명분이 될 거고요. KBS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Q8) 최근에는 검언유착이냐 권언유착이냐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논란이 일어나게 된 배경은 어떻게 보는지? 우리 언론과 방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고 이를 개선할 방안을 생각해 본다면?

검언유착과 권언유착, 냉정하게 말하면 둘 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명확하게 입증되지는 않았습니다. 한쪽에서는 유시민을 공격하려 했고(이건 사실입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이를 계기로 윤석열을 공격했습니다. 일단 기자의 취재 윤리 위반은 드러난 사실이고, 여기에 검찰에 어디까지 개입했느냐, 이건 아직 확인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카톡을 300번 이상 주고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요.) KBS와 MBC 보도 역시 완결성에 문제가 있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정치권이 개입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채널A 기자는 취재원을 협박해서 정치에 개입하려 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고 KBS는 녹취록의 일부를 잘못 해석해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검언유착 권언유착, 둘 다 없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언론 보도를 믿지 못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다들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시대, 그래서 조국 사건이 1년을 끌고 왔고,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언론이 섣부르게 단정하고 부족한 팩트로 현상을 규정하고 독자들에게 이게 정답이라고 던져주는 그런 시대가 아닌 것이죠.

Q9) 이 시기 과연 시청자, 청취자들이 원하는 공영방송은 무엇일까?

사실 답은 명확합니다. 언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죠.

독자들이 우리를 안 믿어, 뉴스를 제대로 안 봐, 우리를 편파적이라고 비난해, 이건 결국 독자들의 기대 수준을 우리가 맞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워싱턴포스트 마티 배런 편집국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러 온 것입니다. (We’re not at war, but work).”

더 중요한 것은 사실 보도와 의견 보도를 섞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상처 받는 댓글 중에 하나가 “기자야, 그건 니 생각이지.”라는 건데요. 독자들은 더 이상 생각을 강요당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실 이건 손석희 효과이기도 하고 종편의 영향이기도 한데요. 방송에서 논평형 뉴스가 늘어나고 종편이 시사 토크쇼 스타일의 방송을 늘리면서 사실과 의견의 경계가 많이 무너졌습니다. 독자들은 언젠가부터 뉴스는 원래 그래, 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냥 내가 듣기에 좋은 나의 정치적 편향에 맞는 채널을 골라 보게 되는 것이죠.

당장 할 수 있는 해법으로 뉴스 보도에서 사실 보도와 의견 보도를 구분하고, 신문 같으면 박스를 쳐서 편집을 달리 한다거나 방송은 아예 의견이라는 박스 자막을 내보낸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의식적으로 경계를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맥락과 과정에 대한 보도입니다. 이것은 검언유착이다, 이렇게 규정해야 할 때도 있지만 더 친절하고 정확하게 시스템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취재를 보완해야 하고요.

위기 상황이 되면 속보가 쏟아집니다. 오늘 확진자 몇 명, 이런 건 저널리즘이 아니죠. 세월호 전원 구조, 이런 것과도 같습니다. 압수수색 나온 검사들이 짜장면을 먹었다, 속보는 당연히 중요하지만 독자들이 원하는 건 그 너머, 지금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 사건의 본질은 무엇인가. 기자들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야기해줘야 한다는 거죠. 언론이 전체를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고 있고, 여기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플랫폼 주권론이니 한국형 OTT니 이런 이야기를 하지만 현실성도 없고 대안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공 부문에 대한 공격에 맞서려면 공적 가치를 입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 논리로는 작동하지 않으니까 최소한의 보호와 지원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명분을 만들고 설득해야 하고요. 하지만 지금 공영방송이 내세우는 가치들이 낡고 식상하거나 새롭지 않거나 독자들이 외면하고 있는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Q10) 사람들은 이미 디지털이나 SNS로 떠났는데, 방송은 여전히 하던대로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스브스뉴스가 유행 비슷한 것 많이 만들고, MBC 14F, KBS 크랩 등등 이런 게 저널리즘의 미래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새로운 실험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디지털과 소셜의 포맷을 흉내내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메시지가 달라지지 않는데 포장만 바꾸는 것이죠. 디지털 혁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대단한 거 아닙니다. 뉴스 소비자들의 변화와 새로운 필요에 맞춰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바꾸는 것입니다.

바이럴 콘텐츠 스내커블 뉴스, 그런 건 당신들이 해라,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것을 더 잘하겠다는 프로패셔널 의식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전문 영역을 더 강화해야 하고요. 역설적으로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쏟아지는 시대지만 오히려 더 진짜 뉴스에 대한 갈망이 큽니다. 좋은 뉴스에는 사람들이 돈도 내고 팬덤도 형성됩니다. 수신료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Q11) 공영방송이 공공 서비스 영역을 확장하면서 사회적으로 더 필요한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일까? (법 제도적 개혁이나 개선이 당장 시급하다고 보나? 정부가 나서야 하는 건지? 방송, 언론인의 자세 변화는?)

미디어 생태계 재편, 시장의 왜곡된 경쟁 원리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먼저 신문은 발행부수 공사를 정확하게 하고 정부 공공부문 광고를 정상화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일부 신문사들은 큰 타격을 받겠지만 지금까지 부풀려져 있던 것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종편을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많지만 방송도 정치 논리와 무관하게 시스템을 바로 잡으면 됩니다. 검언유착이라 승인을 취소한다는 것은 부담이 클 거고요. 특혜를 거두고 공정하게 경쟁을 하게 하면 자연스럽게 균형을 찾을 거라고 봅니다. 공영 언론을 보호하는 안전장치를 두고 이에 걸맞는 책임을 부과하는 것이 전제돼야 하고요.

언론 개혁이 대단한 것 없습니다. 세무 조사 같은 거 할 수 없고 방송사 문닫게 할 수 없습니다. 정부는 최소한의 원칙만 확인하되 그 원칙을 단호하게 밀어붙일 수 있도록 독립적인 판단을 하도록 해야합니다. 정쟁화될 소지를 줄여야 하고요.

마지막으로 저는 저널리스트들이 자부심과 자존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조급해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결국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실력으로 인정 받는 것, 이게 위기의 해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도 솔루션 저널리즘 방법론을 고민하는 분들이 늘었는데요. 이제 문제가 아니라 과정과 해법, 실제로 변화를 끌어내는 저널리즘에 대한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게 저널리즘의 질적 진화에 대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Q12) 끝으로 위기의 시대, 앞으로 공영방송이 가야할 길은 무엇인지 정리 말씀 부탁드린다…

민간 방송과 영리적 목적의 언론사들이 하지 못하는 보도가 있습니다. 그런 사회적 역할을 하라고 전파를 내주고 수신료를 주면서 보호해 왔던 거죠.

한때는 모든 사람을 위한 모든 뉴스를 다 만드는 시대가 있었지만, 그리고 여전히 뉴스의 다양성은 매우 중요합니다만, 공영방송이라고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지금이 위기라면 경쟁력 없는 상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인 것이죠.

한국에도 솔루션 저널리즘 방법론을 고민하는 분들이 늘었는데요. 이제 문제가 아니라 과정과 해법, 실제로 변화를 끌어내는 저널리즘에 대한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게 저널리즘의 질적 진화에 대한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바라트 아난드가 콘텐츠의 함정이라는 책에서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연결과 관계가 콘텐츠 기업의 성장과 지속가능성을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시청자들과 어떤 연결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여전히 공급자 마인드에 갇혀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뉴스가 상품이라면 우리의 충성 고객은 누군가, 그 사람들이 열광할 상품은 어떤 것들인가 생각해 보면 지금의 방식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저널리즘의 미래가 저는 어둡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이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KBS가 공영방송의 힘과 존재 이유를 보여주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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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베리 파이 오디오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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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날 때마다 만들었던 라즈베리파이 오디오. 드디어 완성. 사실 별 거 없는데 여기저기서 부품 조달하고 거기에 맞춰 도면 만드는 게 힘들었습니다. build log는 영어로. This is my new network audio system. All in one Integrated Amplifier. 1. Raspberry Pi 4B. 2. Hifiberry DAC+DSP. 3. 7 inch touch screen for raspberry pi. 4. Chromecast...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을 떠납니다.

미디어오늘에 경력 기자로 입사해 편집국장으로 3년, 사장으로 6년을 지냈습니다. 다행히 월급날을 한 번도 밀리지 않았고요. 열심히 벌어서 금융 부채를 모두 정리했고 만성적인 자본잠식에서 벗어났습니다. 언론사 경영이라는 게 날마다 전쟁 같았지만 한 번도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속가능한 미디어오늘을 위한 성장 엔진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면 지난 15년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디어오늘 지면에 대해서는 자부심과 아쉬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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