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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5가지 오해.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13, 2020

(민주언론시민연합 기고입니다.)

소설가 김훈이 지난해 5월, “아, 목숨이 낙엽처럼”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한겨레에 썼다. 건설 현장에서 추락사하는 노동자가 해마다 270명 이상이라고 한다. 김훈은 “이 사태가 계속되는 한 4차 산업이고, 전기자동차고 수소자동차고 태양광이고 인공지능이고 뭐고 서두를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사람들이 날마다 우수수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져서 땅바닥에 부딪쳐 으깨지는데, 이 사태를 덮어두고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자는 것인가”하고 개탄했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11월,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는 기획 기사를 냈다. 1년에 1692명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는다고 한다. 경향신문 기사의 제목 그대로 어제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고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할 것이다. 김훈은 특별 기고에서 “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할 수밖에 없으니 더욱 참담하다”면서 이렇게 칼럼을 마무리했다. “땅을 치며 울고, 뒹굴면서 운다. 아이고 아이고.”

지난해 1월 김용균법이 통과됐지만 “김용균법에 김용균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구멍이 많다. 다단계 하도급을 근본적으로 차단하지 않는 이상 책임의 공백이 여전하고 근본적으로 ‘죽음의 외주화’를 막을 수 없다. 우리는 법을 바꾸고 제도를 만들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많은 문제들이 드러난 그대로 문제로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탄식하는 걸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절망을 공유하고 함께 분노할 수 있지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무엇인가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인도네시아의 암벽 등반 전문가 해리 슐리챠토(Harry Suliztiarto)도 그랬을 것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산재 사망 노동자가 하루 7명 꼴인데(한국보다 많다) 가장 큰 사망 원인이 추락 사고라고 한다. 인건비가 낮기도 하고 안전 장비를 보급하는 것보다 사망 보상금을 지급하는 게 더 싸다는 인식 때문이다.

슐리챠토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등반 장비를 개조해 산업용 안전 장비를 만들어 보급하고 인증을 받아 가격을 낮췄다. 안전 기준을 확보한 업체의 보험료를 깎아주도록 보험회사들과 협상을 벌였고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암벽 등반 대회를 열었다. 안전 장비가 작업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노동자의 아내들을 상대로 교육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안전을 희생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가족들이 나서서 설득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는 법을 만들거나 제도를 바꾸기 위해 싸우지만 법과 제도로 풀 수 없는 현장의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슈퍼맨이 지구를 지켜준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법을 만들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국회의원만 잘 뽑으면 된다. 시민들은 구경하고 박수만 치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삶에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은 국회가 잘 돌아가기를 기다려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운동화 깔창을 생리대로 쓴다는 학생의 이야기가 알려진 게 2016년이다.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고 정부가 부랴부랴 저소득 계층에 생리대 지원을 시작했지만 빈곤 가정이라는 걸 입증해야 받을 수 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생리대 지원을 신청해서 받는 비율이 62.6%에 그쳤다. 생리대가 없으니 생리대를 주자는 건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어떻게 주느냐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수백 건의 기사를 써도 바뀌지 않은 문제들.

솔루션 저널리즘은 언론에 해법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이미 해법을 찾았을 수도 있고 실패를 겪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을 수도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 못지않게 문제 해결의 과정에 집중하고 시행착오와 실패의 경험에서 배우자는 것이다. 현장을 대하는 태도뿐만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관점과 순서를 바꾸자는 제안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데이빗 본스타인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 대표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클리블랜드에서 저소득 계층의 납 중독 문제를 10년 동안 보도한 신문이 있었는데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를 이야기하는 기사는 많았지만 해법을 고민하는 언론은 많지 않다. 그래서 찾아보니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납 중독을 80%나 줄인 사례가 있었다. 변화를 만들고 있는 곳을 찾는 것이 솔루션 저널리즘의 출발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에 대한 몇 가지 오해가 있다

첫째, 감시와 비판, 의제 설정은 여전히 저널리즘의 핵심 사명이고 지금보다 더욱 강화돼야 한다. 언론이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의 과정에 참여하자는 제안을 감시와 비판을 소홀히 해도 된다거나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오히려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규정할 때 해법에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문제의 구조를 드러내고 본질을 파고드는 게 솔루션 저널리즘 방법론의 핵심이다.

둘째, “문제는 비명을 지르지만 해법은 속삭인다(problems scream, but the solutions whisper)”고 말하는 건 문제를 들춰내는 걸 그만두고 해법으로 넘어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평론가 박권일씨가 한겨레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질문을 버리고 해답을 찾자는 게 아니라 질문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최선의 해법을 찾기 위해서라도 좋은 질문이 필요하다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해법은 결국 좋은 질문에서 시작한다.

셋째, 솔루션 저널리즘은 기자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을 다루는 이야기도 아니다. ‘누가 했느냐’ 보다 ‘어떻게 했느냐’에 집중하되, 과정을 기록하고 변화를 추적하자는 제안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핵심은 확장성(scalability)과 복제 가능성(replicability)이다. 이러이런 사례가 있었다는 데 그치지 않고 이렇게 하면 바뀌겠구나 하는 확신을 주고 따라할 수 있는 매뉴얼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넷째, 언론이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라는 말이 아니다. 언론이 해법을 내놓을 수도 있겠지만 역할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솔루션 저널리즘은 해법을 찾는 과정에 집중하는 취재 방법론이다. 언론이 현실을 규정하고 결론을 던지기 보다는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답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변화를 추적하면서 최선의 해법을 모색하는 과정에 언론이 참여하는 것이다.

다섯째, 솔루션 저널리즘은 취재 프로세스의 변화를 요구한다. 사회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등의 원론적인 거대 담론이나 대학교수 인터뷰나 전문가 좌담으로 끝나는 기획 기사를 솔루션 저널리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데스크가 “이거 이 사람들에게 물어봤어?”, “이런 거 어디 좀 잘하는 데 없을까?”하고 묻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달라질 수 있다. 지금까지 만나지 않았던 취재원들을 만나야 하고 하지 않았던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를 테면 ‘지방 소멸’을 주제로 솔루션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면 소멸 위기에 놓인 여러 지방자치단체의 실험을 단순히 소개하거나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계와 성과를 기록하고 선택 가능한 다양한 해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해법을 중심에 두는 것만으로도 접근 방식이 달라지고 스토리텔링의 구조가 달라진다. 그래서 솔루션 저널리즘은 탐사 저널리즘이 돼야 하고 데이터 저널리즘과도 결합해야 한다.

우리는 목숨이 낙엽처럼 떨어진다고 탄식하는 걸 넘어 뭔가를 해야 한다. 정치가 할 일이 있고 시민 사회가 할 일이 있고 언론이 할 일이 또 있다. 생리대 살 돈이 없는 학생들이 10만 명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뿐만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했으며 무엇이 바뀌었고 무엇이 바뀌지 않았는지를 기록하고 아직 남아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추적해야 한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솔루션 저널리즘은 자칫 주창 저널리즘(advocacy journalism)이나 감상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 솔루션을 찾겠다는 시도 자체가 단순화의 위험을 안고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손쉽게 감동적인 미담이나 영웅 만들기에 빠질 위험도 경계해야 한다. 이런 접근 방식은 언뜻 해법처럼 보이지만 독자들을 더욱 냉소 또는 방관하게 만들고 해법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다.

기자들을 만나 보면 “그거 원래 우리가 하던 것 아니냐”거나 “솔루션 저널리즘을 너무 까다롭게 규정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세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우리가 해왔던 것들을 더 잘 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좀 더 엄격하게 문제뿐만 아니라 문제 이후의 과정에 집중하자는 것이다. 솔루션 저널리즘이 대안이라는 게 아니라 추락한 저널리즘의 신뢰를 복구하고 변화의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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