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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이슈를 끌어올린 건 언론의 침묵에 맞선 독자들이었다.

Written by leejeonghwan

July 12, 2020

(월간 신문과방송 2020년 6월호 기고입니다.)

“이슈는 묻어가지만 단독 따라가긴 부담스러워”… 한국 언론 의제 설정 시스템에 던진 질문.

뉴스는 생물이다. 살아 움직이고 서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별 거 아닌 것 같은 뉴스가 다른 뉴스와 연결돼 엄청난 이슈로 확산되기도 하고 중요한 뉴스가 관심을 받지 못해 사그라 들기도 한다. 사건의 이면에는 수많은 변수와 맥락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전조가 있고 우연과 의도가 작동한다. 사건과 사건을 연결하는 패턴과 구조를 읽어야 본질에 다가설 수 있다.

N번방 조주빈의 얼굴이 처음 공개됐던 3월 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는 15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날 아침 “악마의 삶을 멈추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조주빈의 말을 인용한 기사가 순식간에 수백 건이 쏟아졌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했던 언론이 뒤늦게 악마 코스프레를 하는 가해자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추적단 불꽃’의 첫 보도 이후 6개월 동안 이 기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가 나타난 것일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을 알리는 것 뿐.”

N번방을 처음 세상에 드러낸 건 두 명의 대학생들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여름 뉴스통신진흥회에서 진행한 탐사 보도 공모전에 출품하려고 아이템을 찾다가 N번방을 알게 됐다고 한다. ‘추적단 불꽃’이라는 이름으로 두 달 가까이 취재를 해서 기사를 제출했고 지난해 9월 우수상에 선정됐다. “미성년자 음란물 파나요? 텔레그램 불법 활개”라는 제목의 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 홈페이지 ‘공모 사업 결과’ 게시판에 PDF 첨부 파일 형태로 올라 있다.

‘추적단 불꽃’의 A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남의 일 같지 않아서”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을 알리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다. 흘러 지나가는 수많은 사건이 그렇듯이 자칫 거기서 끝날 수도 있는 사건이었다. 아마도 기사를 읽은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 음란물이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정도의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몇 군데서 수상 소식을 알리는 기사가 나긴 했지만 별다른 파장은 없었다.

한겨레가 따라 붙기 시작한 건 추적단 불꽃 이후 석 달이 지난 지난해 11월이었다. 한겨레 김완 기자는 다른 경로로 제보를 받고 취재를 시작했다가 그 N번방을 만나게 됐다. 한겨레의 첫 보도는 11월10일 “청소년 텔레그램 비밀방에 불법 성착취 영상 활개”였다. 김 기자는 나중에 취재 후기에서 “구역질이 났다”면서 “최소한의 윤리나 수치심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털어놓았다.

한겨레 첫 보도의 비밀방은 놀랍게도 고등학생이 운영자였다. 무슨 과시욕인지 텔레그램에 학교 급식 사진을 올렸고 이를 근거로 꼬리가 잡힌 것이다. 김완 기자는 이 사건을 한겨레에 제보한 사람이 경쟁하는 비밀방의 운영자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사에는 구체적인 신상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 고등학생은 한겨레 보도 이후 이틀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아동과 청소년이 등장하는 불법 성 착취물 2만여 건을 유포한 혐의였다.

한겨레 후속 보도는 충격적이다 못해 참담하고 끔찍했다. 이들은 스폰 알바 등을 미끼로 피해자의 신상 정보를 확보한 뒤 나체 사진을 찍어서 보내도록 협박하고 한 번 걸려들면 수위를 높여가면서 자극적이고 가학적인 영상을 요구했다. 수천 명이 활동하는 이런 비밀 대화방이 수십 개씩 만들어졌다 사라졌다. 전체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한겨레가 11월 말부터 후속 보도를 쏟아냈지만 다른 언론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다.

김완 기자는 1월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사건의 규모가 너무 크다”면서 “함께 적극 취재해 공론화해서 디지털 성범죄를 뿌리 뽑았으면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취재 목적이었지만 끔찍한 착취 현장을 영상으로 지켜봐야 했던 기자들의 스트레스와 정신적 충격도 상당했다. 취재기자의 신상이 털려 텔레그램에 나돌고 “밤길 조심하라”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 N번방을 취재한 언론사들이 ‘특별 취재팀’이라는 크레딧을 내걸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겨레 보도 보고 찾아온 N번방 가입자들.”

올해 3월까지 N번방 사건을 다룬 언론은 한겨레와 여성신문, 미디어오늘 정도가 전부였다. 김완 기자는 PD저널과 인터뷰에서 “한겨레만 보도하니 오히려 대화방 유입이 늘었다”면서 “이들은 한겨레 보고 왔다면서 박사방을 찾으러 다녔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기자는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함이 커서 힘들었다”면서 “우리 보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나 하는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N번방 이슈를 다시 끌어올린 건 해가 바뀐 뒤 지난 3월, 국민일보 보도였다. 국민일보 특별 취재팀은 ‘추적단 불꽃’과 함께 “N번방 추적기”라는 이름으로 좀 더 적나라하게 N번방의 실태를 폭로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을 강간하는 실시간 영상을 보면서 환호하는 얼굴 없는 가해자들, “텔레그램에 강간 노예가 있다”는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가 나가자 비로소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국민일보는 “2차 가해를 우려해 극히 일부만 담았다”면서 “기사에 언급된 일부 사례는 N번방의 잔인성을 독자가 판단할 수 있는 수준으로 최소한도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특별취재팀은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표현이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이라는 비판은 충분히 알고 계속 고민하고 있다”면서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기를 누구보다 바랐고 100분의 1의 강도라도 범죄의 잔혹함과 교활함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사방의 운영자인 ‘박사(조주빈)’가 붙잡힌 것은 국민일보 보도 1주일 뒤인 3월17일이었다. 공동 운영자였던 ‘부따(강훈)’와 ‘이기야(이원호)’ 등도 잇따라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N번방을 처음 만든 건 ‘갓갓(문형욱)’인데 ‘갓갓’이 잠적하면서 ‘와치맨’이 N번방을 넘겨받고 ‘박사’가 이를 다시 넘겨 받아 판을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와치맨’이 이미 지난해 9월에 다른 건으로 체포된 상태였고 ‘갓갓’도 지난 5월11일 체포됐다.

사라진 이슈를 끌어올린 시민들의 분노.

많은 사람들이 N번방 사건이 지난해 11월 한겨레 보도 이후 한동안 잠잠하다가 올해 3월 국민일보 보도 이후 다시 이슈화된 것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았을 뿐 사건이 사라졌던 건 아니었다. ‘박사’ 패거리들은 적당히 때가 돼서 잡힌 게 아니라 언론 보도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제보하고 신고하고 강력한 수사와 처벌을 요구하면서 끌고 왔기 때문에 겨우 여기까지 온 것이다. 다만 언론이 그 과정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N번방 사건이 처음 올라온 것은 지난해 12월 29일이었다. “*** 가해자들을 강력 처벌하고 집중 단속해서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게 강하게 처벌해주세요.” 그러나 청와대가 게시판 가이드라인에 따라 ‘N번방’을 ‘***’로 수정하면서 이 게시물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이 실패한 청원은 N번방 사건 해결을 위한 시민들의 연대를 결속하는 계기가 됐다.

이에 앞서 12월 13일에는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리셋(ReSET)’이라는 트위터 계정이 등장했다. ‘리셋’ 팀은 ‘#n번방_사건’, ‘#n번방사건_이슈화’ 등의 해시태그를 반복해서 리트윗하면서 국민 청원 참여를 독려했다. 이들은 직접 텔레그램 채널을 모니터하면서 언론과 경찰에 제보를 쏟아냈다. 날짜를 정해 검색 폭탄을 터뜨리면서 ‘N번방 청원’이라는 키워드를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1월 2일에는 비슷한 내용으로 다시 국민 청원이 올라왔고 20만 명 동의 기준을 훌쩍 넘겼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3월 2일 공식 답변에서 “가능한 모든 수단을 강구, 끝까지 추적·검거하겠다”고 밝혔다. ‘박사’ 체포 이후에는 N번방 가입자들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청원이 쏟아졌다. 청원 5건에 500만 명 이상이 동의 서명을 했다. 역대 국민 청원 가운데 최다 기록이었다. 민 청장은 다시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N번방 사건은 한국 언론의 환경 감시와 의제 설정 시스템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던진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조주빈은 검거 한 달 전까지도 경찰을 조롱하며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확인됐다. 충격적인 보도가 쏟아졌지만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고 N번방 이슈를 다룬 언론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조주빈 뿐만 아니라 최대 26만 명으로 추산되는 N번방의 공범들은 아무리 언론이 떠들어 봐야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보통 이런 종류의 사건이 진행되는 패턴은 이렇다. 언론이 한바탕 훑고 지나가면 그 다음은 경찰의 시간이 된다. 기자들은 상을 받고 다른 이슈를 찾아 떠난다. 문제는 그대로 문제로 남아 있는데 독자들은 분노와 울분을 터뜨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조주빈이 붙잡히기까지 6개월의 시간, 언론의 외면과 침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뒤늦은 ‘단독’ 홍수, 그때는 왜 취재하지 않았을까.

일단 아무리 엄청난 사건이라도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기까지는 언론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조주빈이 붙잡히기 전까지 ‘추적단 불꽃’의 보도는 물론이고 한겨레 보도조차 접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추적단 불꽃’의 A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시간이 지나며 우리 기사가 사건이 아니라 단순한 기사로 소비되는구나 싶어서 낙담했다”면서 “언론들이 뒤늦게 앞 다퉈 단독 보도를 내놓는 걸 보면 그때는 왜 취재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첫째, 기자들은 관행적으로 다른 언론사가 쓴 단독 기사를 따라가는 걸 꺼린다. 굳이 따라가야 할 상황이 아니면 따라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한 일간신문 부국장급 기자는 “이번 사건의 경우도 한겨레가 몇 차례 기획 기사로 내보내고 끝날 거라고 생각한 기자들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조주빈이 붙잡히지 않았다면 그리고 청와대 국민 청원이 500만 명이 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그냥 한겨레의 좋은 기획 기사로 끝났을 수도 있다.

둘째, 언론은 태생적으로 새로운 것을 좇게 돼 있고 경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 쓰면 한겨레 좋은 일만 시킨다”고 생각한 기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다른 한 일간신문 사회부 기자는 “‘안타깝지만 늘 있는 사건’이라는 기시감에 지금 따라가 봐야 더 나올 게 없을 거라는 무력감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하지 않은 이슈여서가 아니라 결국 선택과 판단의 문제인데 거기서 더 나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셋째, 언론의 의제 설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다른 한 일간신문의 국장급 기자는 “대부분의 기자들이 날마다 쏟아지는 이슈를 따라가기에도 바쁜 상황이라 정작 진짜 중요한 이슈를 판단하는 능력을 잃은 것 같다”면서 “야성이 거세됐다”고 말했다.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해결할 능력이 없거나 문제라고 이야기해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누적된 패배주의가 언론을 짓누르고 있다.

탐사 보도 공모전을 주관하고 ‘추적단 불꽃’에 우수상을 시상했던 뉴스통신진흥회의 강기석 이사장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나 자신도 취재 현장을 떠난 지 너무 오래됐고, 디지털 성폭력 실태에 무지한 기성세대라는 걸 새삼 깨닫고 반성한다. 지난해 말 한겨레 보도를 보고도 (공모 사업의 결과란 생각에) 흐뭇하기만 했지, 그때까지도 이 사안이 무슨 맥락이고 얼마나 심각한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언론이 디지털 성 범죄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 태도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추적단 불꽃’의 후속 보도에 따르면 한 방송사 PD는 “피해자 취재를 못하면 방송이 못 나갈 수도 있다”면서 집요하게 피해자의 연락처를 요구했다. 정작 방송에서는 대역 배우들을 내세워 철창에 갇힌 피해자를 가면을 쓴 가해자들이 내려다 보는 상황을 재연하기도 했다. 아무개 여성 연예인이 N번방 피해자라는 사건의 본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단독’ 보도도 등장했다.

조주빈이 “학보사 편집장 출신”이었고 “학점이 4.17에 장학금까지 받았다”는 등의 가해자 서사도 넘쳐났다. 뒤늦게 조주빈을 겨냥한 단독 보도도 쏟아졌다. 범죄 사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가해자의 과거를 파헤치면서 가해자를 두 얼굴의 악마로 묘사하고 피해자를 앵글 밖으로 밀어내고 본질을 가리는 보도였다. 조주빈에 쏠린 관심은 만연한 디지털 성 범죄와 여기에 가담한 수많은 얼굴 없는 공범들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킬 수밖에 없다.

본질 호도하는 가해자 서사와 악마화.

한림대학교 디지털콘텐츠전공 김경희 교수는 “성을 대상화하고 상품화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 처벌 근거를 제대로 입법화하지 못한 국회의 문제, 사법부의 관대한 법 적용의 문제, 디지털 성폭력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일반인들의 인식과 문화, 그리고 이런 본질을 다룬 기사가 얼마나 있었는지 언론인들은 자사 보도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N번방 사건은 역설적으로 여전히 언론의 의제 설정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사건이었다. 이슈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슈를 끌고 가는 힘도 중요하다. 여전히 신문 1면은 강력한 힘을 갖는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움직일 때까지 계속 써야 한다. N번방 사건의 경우 언론이 외면한 사건을 시민들이 나서서 이슈로 끌어올리고 정부의 책임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500만 청원을 무시할 수 있는 정부는 없다.

언론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좇지만 언론의 존재감은 현실에 미치는 변화로 입증된다. 날마다 3만 건씩 쏟아지는 기사들은 새롭긴 하되 아무런 울림도 없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남들 모두 쓰는 뻔한 발생 기사를 우리만 안 쓰면 안 되지만 정작 다른 언론사가 먼저 치고 나간 이슈를 따라 가는 건 부담스러워하는 게 한국 언론의 기형적인 경쟁 구도다. 새로운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과 필요한 것을 우선 순위에 두는 가치의 전환이 필요할 때다.

언론이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관심을 놓지 않게 만들 수는 있다. 뉴스는 생물이고 사회의 의제는 수많은 참여 주체의 의사소통과 협업의 산물이다. 무엇인가를 바꿔야 한다고 믿는다면 목소리를 내고 참여해야 한다. 이 사건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추적단 불꽃’ 팀이 강조했듯이 이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관심의 불꽃은 대학생 두 명이 아닌 국가와 언론이 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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