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뱅크와 한국씨티은행의 이상한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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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티그룹이 한미은행을 인수하면서 투자한 자금 전액이 빠져나갔다. 중소기업 대출은 1조3천억원이나 줄어들었는데 그 돈을 부실계열사에 돌려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다. 씨티그룹은 지금 우리 정부와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금융산업노조 한미은행 지부 관계자의 말이다. 씨티그룹이 한미은행의 경영권을 가져가면서 단 한푼도 투자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기존 한미은행의 종잣돈까지 해외로 빼돌렸다는 이야기다. 기자는 제보를 받고 곧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한국씨티은행의 대주주 신용공여를 둘러싼 논란은 이미 몇몇 매체에 간단하게나마 소개된 바 있고 금융감독원도 보도자료까지 내면서 이를 해명했다. 그러나 아직도 숱하게 많은 의혹이 밝혀지지 않은 채로 남아있고 들춰볼수록 더 많은 의혹이 쏟아져 나온다. 기자는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9월 23일, 한미은행은 주주총회를 열고 은행의 이름을 한국씨티은행으로 바꾸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11월 1일 한국씨티은행은 금융감독위원회의 인가를 얻어 씨티은행 서울지점의 영업을 양수했다. 한국씨티은행은 씨티은행 서울지점의 영업을 양수하면서 자산평가액 9천억원과 영업권 프리미엄 4천억원을 합쳐 1조3천억원을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지급했다.

겉보기로는 옛 한미은행이 씨티은행 서울지점을 인수하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옛 한미은행의 돈이 씨티은행 서울지점으로 건너갔다가 미국의 씨티그룹으로 흘러들어간 셈이다. 자산평가액 9천억원은 아직 한국씨티은행에 예치돼 있는 상태지만 씨티은행 서울지점이 완전히 청산되고 나면 미국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놀라운 일은 더 있다. 한국씨티은행의 분기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11월 이후 무려 1조7128억원이 씨티그룹 계열사들에 흘러들어갔다. 한국씨티은행은 한미은행 시절인 지난해 7월 상장폐지됐기 때문에 구체적인 날짜는 공시되지 않고 분기마다 분기보고서와 사업보고서에서 큰 흐름만 볼 수 있을 뿐이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씨티뱅크NA가 외화콜론과 대여금 형태로 1조5158억원을 빌려간 것을 비롯해 씨티캐피털이 원화대출과 수입유산스 등으로 1969억원을 빌려간 것으로 돼 있다.

지난해 씨티그룹이 한미은행을 인수하면서 들어간 돈은 모두 4조원 규모에 이른다. 그런데 이번에 씨티은행 서울지점에 들어간 돈과 그동안 계열사들을 통해 빼내간 돈을 더하면 모두 3조원 이상이 옛 한미은행에서 씨티그룹으로 흘러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노조 박찬근 지부장는 “씨티그룹이 임시로 급전을 조달해 소액의 자본으로 한미은행을 사고 경영권을 확보하자 마자 그 돈을 갚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조는 계열사 대여금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조5949억원이었던 대여금이 올해 1분기 석달만에 1조7128억원으로 1179억원 늘어났다. 1월 31일에는 씨티그룹의 100% 자회사인 한국씨티그룹캐피털에 7350억원을 신용공여했다는 공시가 뜨기도 했다.

2002년 3월에 설립된 이 회사의 납입자본금 246억원에 자기자본이 49억원밖에 안되는 부실한 회사다. 지난해까지 누적 손실이 199억원에 이른다. 씨티파이낸셜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연 금리가 19%에 이르는 대부업체였는데 지난해 12월 씨티리스와 합병하면서 이름을 바꿨다.

결국 한국씨티은행을 통해 씨티그룹 계열사에게 빠져나간 돈은 3조7천억원을 훨씬 웃돈다. 인수대금 4조원이 옛 한미은행에 들어온 게 아니라 칼라일을 비롯한 주주들에게 모두 빠져나갔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3조7천억원은 모두 옛 한미은행의 자산인 셈이다. 노조 진창근 국장은 “한푼도 들어오지 않은 은행에서 3조7천억원이 빠져나갔다는 것은 한국씨티은행이 지금 깡통만 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대주주가 은행의 운영자금을 빼내가는 상황을 감독당국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금감원 신용감독국 이병화 부국장은 “한국씨티은행의 신용공여는 유휴자금을 최소화하기 위한 계열사간 자금거래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부국장은 또 “한국씨티은행도 미국 씨티뱅크에서 외화차입금 등 2조7천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조는 금감원의 이런 설명을 터무니없는 억지라고 반박한다. “먼저 한국씨티은행에 유휴자금은 없다. 3월말 기준으로 콜머니가 2조4천억원, 금융채가 5조1천억원으로 유휴자금은커녕 단기부채만 쌓여있는 상황이다. 만약 유휴자금이 있다면 빚부터 갚아야하는데 이걸 해외에 대여해준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

노조는 한국씨티은행이 4.3%의 고금리 특판예금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 은행에 유휴자금이 없다는 반증이라고 덧붙인다. 한국씨티은행은 이렇게 조달한 자금을 대주주에게 2% 수준에 대여하고 있다. 씨티뱅크 차입금의 경우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노조는 “국내 시중은행은 대부분 해외은행에서 외화를 차입하는데 그걸 씨티은행으로 단일화한 것일뿐”이라고 설명한다. 자회사가 대주주에게 대여한 자금과 대주주가 자회사에 대여한 자금은 성격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대주주는 언제든지 대금을 회수할 수 있지만 자회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민감한 문제는 은행법의 저촉 여부다. 은행법에 따르면 금융기관은 모은행과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에게 자기자본의 25%를 초과해 신용공여를 할 수 없도록 돼 있다. 3월말 기준으로 한국씨티은행의 자본총계는 3조7215억원인데 25%면 9304억원이 된다. 미국 씨티뱅크 등에 나간 대주주 신용공여는 1조7128억원으로 이를 훨씬 넘어선 상태다. 은행법만 놓고 보면 한국씨티은행의 신용공여는 명백히 불법이다.

그러나 씨티뱅크는 교묘하게 틈새를 찾아냈다. 은행업감독업무시행세칙에는 은행법과 달리 신용공여의 제한 대상으로 모은행과 대주주가 아니라 모은행만 지적돼 있다.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이라는 구절이 빠져있다는 이야기다. 상위법에서 규정한 내용을 하위법에서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씨티은행과 금감원은 은행법의 ‘모은행’이라는 개념은 국내에서 설립된 은행만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씨티뱅크는 국내에서 설립된 은행이 아니기 때문에 이 시행세칙의 신용공여 제한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로 따지면 국내에 있는 씨티뱅크캐피탈의 경우만 제한대상이 되겠지만 이것만 놓고 보면 25%에 훨씬 못미친다.

금감원 이병화 부국장은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적어도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말했다. 노조가 입수한 내부 문건에 따르면 한국씨티은행 경영진은 이미 이같은 내용을 충분히 검토하고 법률회사의 자문은 물론이고 금감원의 사전 확인까지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건에 보면 금감원 관계자가 “향후 법이 개정되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괜찮을 것 같다”고 답변한 부분이 있다. 자금유출이 사전에 계획적으로 이뤄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노조는 이와 관련, 법적인 검토를 의뢰해둔 상태다. 노조 박찬근 지부장는 “모은행이라는 구절의 해석을 해외 금융기관까지 확대해서 해외 유출금을 즉각 회수하고 향후 자금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지부장은 신용공여의 금리가 너무 낮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한국씨티은행에서 미국 씨티뱅크에 나간 대여금의 금리는 1.69%에서 3.56% 사이다. “이 돈을 국내에서 운영할 경우 최소 5~6%의 금리를 받을 수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상대적으로 540억원의 수입이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씨티은행이 최근 4% 이상의 특판예금을 판매하면서 자금을 조달하는 걸 보면 대주주에게 나간 1%대의 대출은 터무니없는 특혜다.”

이렇게 자금이 빠져나가던 지난 몇달 사이 이 은행의 기업대출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지난해 6월 말 16조원 규모였던 기업대출은 올해 6월 말 12조5천억원으로 3조6천억원이나 줄어들었다. 중소기업대출만 놓고 보면 10조3천억원에서 8조5천억원으로 줄어들었다. 노조는 이렇게 줄어든 자금이 미국 씨티그룹으로 빠져나가거나 ‘고리대금업’을 하는 씨티뱅크캐피탈에 흘러들어갔다고 보고 있다.

좀더 관찰할 필요가 있겠지만 한국씨티은행의 이같은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은 IMF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외국 자본의 실체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한다. 지난해 3월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 조찬간담회에서 이헌재 당시 부총리는 “세계적 명성이 있는 씨티그룹의 진출은 한반도가 북핵 문제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어서 외국인투자 유치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전 부총리의 그런 기대는 지난 1년 동안에도 숱하게 무너졌다. BIH를 비롯해 론스타나 칼라일 등 그동안 우리나라에 들어왔던 상당수 외국 자본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과 무관하게 단기 차익을 챙기고 빠져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씨티그룹이 그런 한갖 투기펀드나 다름없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이들은 이미 감독당국까지 휘어잡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씨티은행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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