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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원이 한국투자공사 사장으로 부적격한 이유.

Written by leejeonghwan

June 24, 2005

외환위기를 맞아 파산 직전까지 갔던 나라에 외환보유액이 넘쳐나고 있다. 정부는 넘쳐나는 외환보유액을 굴려서 돈을 벌어보겠다고 나섰다. 이를 계기로 금융허브로 가는 발판을 다지겠다는 야심찬 목표까지 세웠다. 자본금 1조원에 자산규모가 200억달러에 이르는 초대형 투자회사, 한국투자공사(KIC)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그 초대 사장으로 이강원 전 굿모닝신한증권 사장이 내정됐다.

투기자본에 외환은행 팔아 넘긴 사람이 국영 투자회사 사장을 맡는다고?

7월 1일 공식 출범하는 한국투자공사(KIC, the Korea Investment Corporation)는 듣기에도 낯선 국영 투자회사다. 한국은행이 관리하고 있는 외환보유액 170억달러와 외국환평형기금 30억달러 등 200억 달러를 위탁 받아 해외 자산에 투자하게 된다. 정부의 입김에서 독립돼 있다고는 하지만 그 운용자산은 모두 국민들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200억달러는 환율 1천원 기준으로 20조원. 4600만 국민으로 나누면 한 사람 앞에 각각 43만5천원씩 부담하는 셈이다.

물론 운용실적에 따라 외환보유액이나 외국환평형기금의 위탁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게다가 2007년부터는 국민연금 등 기금자산을 위탁받아 운용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최대규모의 자산운용사는 대한투자신탁운용과 하나알리안츠의 합병회사였다. 이 회사의 수탁자산은 26조원 규모다. KIC는 이를 뛰어넘는 그야말로 국내 최대규모의 투자회사가 될 전망이다.

정부가 온갖 반발을 무릅쓰고 KIC를 만든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는 외환보유액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서 어떻게든 이를 줄이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고 둘째는 이를 미끼로 외국의 잘 나가는 자산운용사들 끌어들여 금융허브로 가는 발판을 다지겠다는 계획 때문이다. 간단히 정리하면 남는 외환보유액을 모아 외국 자산운용사에 맡겨 수익을 내보자는 발상인 셈이다.

세계적으로 나라에서 직접 투자회사를 만들어 해외 투자에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다. 1400억달러 이상을 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싱가폴투자공사(GIC)가 가장 크고 노르웨이석유기금(NGPF)과 중동의 산유국들이 모여 만든 걸프투자회사(GIC) 정도가 전부다. 정부는 KIC를 한국판 GIC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최중경 전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은 “외환보유액이 늘어나고 국민연금까지 끌어들이면 10년 뒤에는 1천억달러 이상의 규모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위탁자산 1천억달러 국내 최대 투자회사

문제는 온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만든 이 국내 최대의 투자회사가 과연 얼마나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느냐다. 참여연대는 그동안 KIC의 지배구조와 투명성 문제를 계속 지적해왔다. 정치권의 간섭을 차단하고 부실운용과 비리를 적발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자칫 재경부 퇴직관료들의 낙하산 착륙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과거 관치금융의 악몽도 떠올랐다.

그러나 법안 개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독립성이 크게 강화됐고 재경부가 개입할 여지도 상당부분 줄어들었다. KIC의 투자담당 이사나 민간위원이 되려면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자산운용회사나 은행, 보험회사, 증권회사, 국제통화기금, 아시아개발은행 등에서 10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한다. 후보 추천도 재경부나 정부 부처가 아니라 한국금융학회와 자산운용협회 등 민간기관 대표가 하도록 했다.

독립성은 어느 정도 보장됐다지만 진짜 문제는 운영의 투명성이다. KIC는 위탁자산의 운용내역을 공개하지 않는다. 외환운용 전략이 노출되면 외환방어 능력이 손상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전체 위탁자산의 규모와 수익률, 자산 배분비율 정도만 공개하면 된다. 국회나 감사원이 정보 공개를 요청하는 경우에도 자료는 제공할 수 있지만 대외적으로 공개되지는 않는다. 국민들이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KIC의 성패는 수익성 못지 않게 얼마나 투명성을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필요하다면 법을 개정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KIC의 합리적인 운영을 보장할 최후의 수단은 CEO의 도덕성이다. CEO는 외부의 압력에 맞서 바람막이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투명하고 공정한 자산운용을 위한 준법감시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만큼 CEO의 도덕성과 청렴성은 필수 덕목이다.

국부유출, 외자유치라고 강변하는 이강원

그렇다면 KIC의 초대사장으로 내정된 이강원 전 굿모닝신한증권 사장은 이런 덕목을 갖추고 있을까. 그의 과거 행적, 특히 외환은행 행장으로 재직하던 무렵을 돌아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눈에 띈다. 그는 2003년 9월 외환은행을 론스타 펀드에 매각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평가하기 나름이겠지만 자산 규모가 62조6033억원에 이르는 은행의 경영권이 단돈 1조3834억원에, 그것도 투기적 목적의 단기 펀드에 넘어갔다. 그는 외환은행을 투기자본에 팔아넘겼다는 비난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강원(직책 생략)은 외환은행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2003년 4월, 5천억원의 외자유치 계획을 발표한다. 그리고 다섯달 뒤 외환은행의 지분 51%를 1조3834억원에 론스타에 매각한다. 5천억원이면 살릴 수 있다던 은행을 돌연 1조4천억원에 매각해야만 했던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매각이 아니라 외자유치였다고 강변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그의 논리를 들어보자. 그의 발언을 그대로 옮긴다.

“51%의 지분 중에서 42%는 증자, 외자 유치를 통해서 왔고요, 그러니까 상당히 대부분 100으로 봤을 때 84%는 외자 유치고요, 나머지 16%가 구주 매각에 의한 겁니다. 따라서 저는 이것은 매각보다는 외자 유치라고 생각합니다.”

이날 국감에서는 외자유치 계획이 매각 계획으로 뒤바뀔만큼 은행의 재정상황이 급박하고 어려웠느냐는 질문이 쏟아졌지만 이강원은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5천억원이 왜 1조4천억원으로 뻥튀기 됐느냐가 핵심이었는데 그는 이를 무시하거나 빗겨갔고 국감은 시간에 쫓겨 서둘러 끝났다. 이강원은 잘 모르겠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외환은행 매각은 아직까지 많은 부분이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경영권을 넘겨주면서도 액면가에도 못미치는 헐값을 받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대주주였던 한국은행과 수출입은행까지 나서서 300억원이 넘는 손실을 보고 주식을 내다판 이유는 무엇일까. 법적으로 국내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는 론스타에 매각 승인이 난 배경은 무엇일까. 왜 금감위는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넘겨주려고 안달을 했던 것일까. 이 모든 의혹의 중심에 이강원이 있다. 그런데 그는 철저하게 입을 다물고 있다.

윤증현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은 국감에서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 “바람직한 것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의혹의 진실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지만 론스타가 금융기관의 대주주가 될 자격이 없는 투기 펀드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투기 펀드가 집어삼킨 2년은 엄청난 국부 유출을 초래했고 그 책임의 상당부분은 이강원에게 있다.

국부유출 논란에 대한 설명은 더 필요하다. 수출입은행은 1999년 4월과 2000년 12월 외환은행의 유상증자에 두차례 참여, 7360억원을 출자한 바 있다. 이 돈은 수출입은행의 100% 대주주인 한국은행이 댔다. 준 공적자금이 들어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수출입은행은 이렇게 사들인 주식을 론스타에 손해를 보면서 되판다. 이강원은 수출입은행을 어떻게 설득한 것일까. 역시 수수께끼다.

그해 6월 외환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은 9.56%였다. 결코 위험한 상황이라고 볼 수 없었다. 보통 자기자본비율이 8% 미만이면 부실로 간주한다. 외환은행의 자기자본비율은 1997년 이후 한번도 8%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예금 지급이나 차입금 상환이 정지된 적도 없었고 외부 자금 지원 없이 회생이 불가능한 심각한 상황도 아니었다.

론스타는 2년 동안 외환은행 지분을 팔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쓴 바 있다. 그 2년이 끝나는 때가 올해 11월이다. 최근 주가를 감안하면 론스타는 2년 사이에 무려 1조5천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올릴 것으로 보인다. 두배가 넘는 수익률이다. 결국 외환은행은 론스타의 손을 떠나 또 다른 외국 자본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외환은행 매각의 주역에게 외환보유액을 맡겨?

KIC의 사장은 20조원의 위탁자산을 쥐고 흔들게 된다. 국민연금까지 가세하면 KIC의 위탁자산은 많게는 100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KIC는 이를 직접 운용하는게 아니라 외국의 자산운용사들에게 다시 위탁할 계획인데 당연히 온갖 청탁을 다 받게 된다. 그런 유혹을 뿌리치는 게 사장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다. 이강원이 과연 그런 역할의 적임자인가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김우찬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CEO의 도덕성을 거듭 강조한다. “국제 금융시장의 검은 뒷거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KIC가 투명성과 국제적인 공신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금융 허브는커녕 국제적인 망신거리가 될 수도 있다. 합리적인 지배구조 못지 않게 CEO의 도덕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KIC 설립위원회는 사장 추천 기준을 밝히지 않았다. 설립위원회는 재경부 차관과 한국금융학회, 자산운용협회 등에서 각각 1인씩 추천한 7명으로 구성됐다. 이강원과 전광우 전 우리증권 부회장이 막판까지 접전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왜 이강원이 최종 낙점됐는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전문성과 조직 장악력 등을 두루 검증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정종남 국장은 “외환은행 매각의 주역에게 외환보유액의 운용을 맡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강원은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를 둘러싼 많은 의혹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고 그가 이번에 맡게 될 역할은 막중하다. 모든 의혹을 명확히 해명할 수 없다면 그는 KIC 사장의 자격이 없다. 그는 외환은행 졸속 매각의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국영 투자회사의 사장 자리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이강원과 그의 인맥.

이강원은 1950년 광주 태생으로 광주서중과 서울고를 거쳐 서울대 농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 아시아개발은행 금융전문위원, 대신증권 상무, 기아포드할부금융 대표, LG구조본 사업조정팀 전무, LG증권 부사장, LG투신운용 사장 등을 역임했다. 이어 외환은행장과 굿모닝신한증권 사장을 거쳐 이번에 KIC의 사장으로 내정되기까지 탄탄대로를 밟아왔다.

인맥도 탄탄하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 홍석주 전 조흥은행장과 마찬가지로 이헌재 전 부총리의 광주서중 후배다. 진념 전 부총리가 기아자동차 회장으로 있던 무렵 기아포드할부금융 사장으로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전윤철 감사원장과는 서울고 동문이고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과는 아시아개발은행에서 같이 일했다. 은행 경력이 없던 그가 외환은행장에 내정됐을 때 구설수에 오른 것도 이런 이력 탓이었다.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이들의 이름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은 우연일까. 이헌재는 그무렵 론스타의 법률 대리인을 맡았던 김앤장법률사무소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강원은 이른바 이헌재 사단의 핵심 멤버 가운데 하나다. 외환은행의 대주주였던 수출입은행의 행장 이영회도 역시 이헌재 사단의 멤버다. 이영회는 그 뒤 아시아개발은행 사무총장으로 옮겨갔다. 진념은 론스타의 회계법인인 삼정회계법인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었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한 직후인 지난해 11월, 계약기간이 아직 남아있는데도 회계법인을 삼정회계법인으로 변경해 눈길을 끌었다. 공교롭게도 모든 인맥의 중심에 이강원이 있다.

1950년 출생
1969년 서울고등학교 졸업
1974년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 졸업
1985년 미국 존스 홉킨스대 경제학 박사

1977년 산업연구원 지역5실장, 동향분석실장
1989년 대신증권 국제영업담당 상무
1993년 아시아개발은행 동아시아금융담당 전문위원
1995년 기아포드 할부금융 대표이사 사장
1999년 LG투자증권 부사장
2001년 LG투자신탁운용 대표이사 사장
2002년 한국외환은행 은행장
2003년 한국외환은행 경영고문
2004년 굿모닝신한증권 대표이사 사장
2005년 한국투자공사 사장 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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