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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사죄의 글.

대우 문제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데 대해 머리숙여 깊이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우그룹의 경영을 총괄했던 제가 좀 더 일찍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국가경제의 활로개척을 위해 몸바쳤던 지난 30여년의 세월은 이미 가슴속 깊이 묻었습니다. 이제 저는 실패한 기업인으로서 과거의 문제들을 정리하고저(정리하고자)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이렇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대우그룹의 예기치 못한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를 맞아 그 격랑을 헤쳐나가지 못하고 국가경제에 부담을 드린 것은 전적으로 제 자신의 잘못인 만큼 저는 그 결과에 대한 사법당국의 조치를 달게 받겠습니다.

저의 잘못으로 인해 크고 작은 희생을 치르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대우와 함께 했던 모든 대우가족 여러분께 미안한 마음을 전하저(전하고자) 합니다.

2005년 6월 14일 김우중.


대우는 왜 망했을까.

과연 대우의 세계 경영 전략은 망할 수밖에 없는 사업모델이었을까. 370개 해외법인과 1040개 지사를 거느리고 전세계를 호령하던 대우는 결국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김우중씨는 아직도 대우가 운이 나빠서 몰락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우가 부딪힌 첫번째 문제는 역시 IMF였다. 환율과 금리가 갑자기 뛰어오르면서 대우가 해외 법인들에 쏟아부은 빚 11조원은 몇달 사이에 26조원까지 늘어났다. 아무리 정부가 뒤를 봐준다지만 밑빠진 독에 물붓기도 한계가 있었다. 정부는 1998년 결국 대우를 죽이기로 결정한다. 그해 7월 단기 기업 어음 발행 한도를 제한한데 이어 10월에는 회사채 발행 한도까지 제한해 쓰러져가는 대우의 숨통을 졸랐다. 벼랑끝에 몰린 대우는 그해 12월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를 맞바꾸자는 제안을 내놓는다. 삼성으로서는 부실덩어리일 게 뻔한 대우전자를 인수할 이유가 없었다. 대우의 무리한 성장전략은 유동성 위기와 함께 벽에 부딪혔다.

두번째 문제는 잘못된 시장예측이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 만든 인도나 동유럽의 공장들은 생각만큼 빠르게 성장하지 않았다. 갚아야 할 빚은 눈덩이처럼 늘어나는데 현금이 돌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우는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 이듬해 7월 대우는 고민 끝에 ‘구조조정 가속화 및 구체적 실천방안’을 내놓는다. 김우중씨 의 경영권과 재산을 모두 내놓을 테니 대신 급한 빚을 막을 수 있도록 4조원을 지원해달라는 또 한번의 최후의 발악이었다. 숨통을 죄던 6조원의 초단기 기업어음도 어렵사리 만기를 6개월 더 연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최후의 발악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을 껐을 뿐 근본적인 대안은 못됐다. 이때쯤 대우의 빚은 이미 100조원에 가까와지고 있었다.

긴급 지원된 4조원은 언발에 오줌 누기 마냥 흐지부지 사라져 버렸다. 김우중씨는 금융기관들 탓을 한다.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선진국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다가 후진국 금융기관에 돈을 빌려주는데 재미를 붙이다가 아시아 국가들 외환위기가 시작되면서 같이 위기를 맞게 됐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들 외환위기만 없었으면, 또는 정부가 좀더 도와줬더라면, 그런 가정들은 모두 부질없다.


대우그룹 패망일지.

1998년
7월22일 금융감독위원회 초단기 기업어음 발행한도 규제
10월28일 금융감독위원회 회사채 발행한도 규제
10월29일 “대우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노무라 보고서 발간
12월7일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의 교환 제안

1999년
4월19일 대우중공업 조선부문 매각 등 구조조정 계획 발표
7월19일 대우그룹 구조조정 가속화 및 구체적 실천방안 발표
7월25일 김우중 회장, “자동차 정상화 후 퇴진” 선언
8월26일 (주)대우 등 12개 계열사 워크아웃 돌입
9월6일 대우중공업 대우전자 대우통신 등 3개사 은행관리 개시
11월1일 김우중 회장 및 12개 계열사 사장단 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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